삶에서 음식이란?

우리 집은 먹기 위해서 산다고 말할 정도로 먹는 것에 목숨을 걸지는 않지만 그래도 음식과 식사를 참으로 중시한다. 나의 부모님이 그랬고, 아내와 내가 그랬으며, 내 아이들이 그렇다. 아니 부모님보다는 내가, 나보다는 아이들이 더 그런 것 같다. 대충 먹는 경우가 흔치 않다.

요즘 나는 가급적 이러한 집안의 전통을 지켜가려고 노력한다. 식사 준비와 마무리가 주부와 같은 누군가만의 고통이 되지 않는 한 나는 그러한 전통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의식주 중에서도 특히 ‘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 사는 것이 부유하게 살거나 권력을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니듯이 잘 먹는 것은 화려하고 값비싼 음식을 섭취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잘 먹으려면 몇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음식에 좋은 식자재를 사용해야 하고, 식단이 건강상의 요구에 잘 맞아야 하며 물론 음식의 맛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음식은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공간에서, 적절한 양을, 적절한 예법을 갖추고 먹어야 한다.

일생을 살아오면서 때로는 너무 가난해서 굶거나 겨우 허기를 면하면서 지내기도 했고, 때로는 너무 바빠서 식사를 소홀히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잘 먹으며 지내려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시골에서 지내다보니 잘 먹고 지내기가 어렵지 않다. 계절에 맞는 좋은 식재료를 저렴하게 혹은 거의 돈들이지 않고 구할 수 있으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있다.

반찬 가짓수도 적고 식사 양도 많지 않지만 꼼꼼하게 준비된 음식을 프로토콜에 맞추어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으면 행복하다. 게다가 식후에 커피나 차를 정성스럽게 끓여서 디저트와 함께 먹을 수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이러한 일상을 얻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일하며 일생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때로는 우리가 삶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 건 지, 무엇이 중요한 지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쩌면 일상의 작은 행복, 그것이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갖고자 했고, 가지려고 하고, 또 가졌으면 하고 소망하는 것이 아닐까. 음식과 식사는 바로 그 일상을 채우는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2020-10-05)

은목서 향기와 좋은 집

내게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내음 중 하나는 은목서의 꽃향기이다. 그것은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묘한 매력이 넘치는 향기이다.

현관 주위 적어도 십여 미터 이상은 은목서 향기로 가득하다. 바람 방향에 따라서는 몇 십터 밖에서도 그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은목서의 꽃은 보일락말락할 정도로 조그맣다. 그 작은 꽃들이 수백 수천 합쳐져서 신비로운 향기를 내뿜는 것이다.

8여 년 전 현관 곁 삼보정(팔각정) 앞에 심은 나무가 무척 자랐다. 해마다 20cm 이상 자라는 것 같다.  역시 집이라는 작품은 세월이라는 마스터에 의해 완성되는 모양이다.

“여기는 마치 내 몸에 꼭 맡는 옷을 입은 것 같아요. 안채의 안방은 항상 좀 쌀쌀하다고 느꼈는데 이 곳은 항상 따뜻해요. 실내 희망 온도를 20도로 맞춰 놓았는데, 실내 공기가 밤에도 27도에요. 너무 신기해요.”

사랑채에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 아내가 감사하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이렇게까지 단열이 잘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작년에 아내 침실 앞에 유리 온실을 붙였고, 금년 봄에 지붕 단열을 보강하였으며, 욕실을 북쪽 벽 전면으로 확장하고 방바닥을 코르크재로 바꾼 효과를 단단히 보는 것 같다. 큰 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면서도 방이 외부와 직접 닿는 면을 없앤 때문인가.

사랑채의 거실 겸 주방은 바닥 공사를 완전히 새로 했다. 10cm 두께의 강화 스치로폼으로 바닥 단열을 하고 그위에 엑셀 파이프를 설치한 다음 마감을 하고 그 위에 5mm 짜리 친환경 장판을 깔았다. 보일러를 전혀 돌리지 않는데도 쾌적하다. 안채에서는 늘 실내화를 신었던 아내가 사랑채에서는 맨발로 지내면서 너무 좋아한다.

오랫동안 아내는 손발이 차가워서인지 추운 걸 싫어했었는데, 더구나 금년 봄 암 수술을 받은 이후에는 더욱 더 따뜻한 환경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랑채에서의 생활이 그렇게 좋은 모양이다. 물론 본인의 독립적인 공간을 갖게 되었다는 점도 한 몫 하겠지만.

좋은 집이라는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집이 공통적으로 몇 가지 기본적인 조건은 갖춰져야 하겠지만 사람마다 좋아하는 집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굳이 한다면 좋은 집이란 집 주인의 선호에 꼭 맞는 집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집 주인의 선호가 변하기도 한다. 단독주택이 좋은 점은 집주인의 바뀌는 선호나 니즈에 맞추어 집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집도 지난 8년 동안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큰 틀은 바뀌지 않았지만 세부적인 모습은 참으로 많이 달라졌다. 8년 만에 방문한 사람이 크게 놀랄 정도로 변했다. 8년 후에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기야 노부부가 아침에 정성스럽게 끓인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담소를 나눌 수 있다면, 집이 어떤 모습이면 어떠하랴. 행복은 무엇보다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을. (2020-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