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상자 속의 삶

노년의 삶이란 여러 모로 상자 속의 생활이다. 무엇보다 재정적으로 그렇다.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 노인들은 매달 고정된 수입 속에 살아야 한다. 그것도 넉넉치 않은 수입으로 말이다. 연금 생활자가 특히 그러하다.  통상 연금 액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 버는 정도의 수입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사회 초년생과의 다른 점은 수입이 늘 가능성보다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어느 달 지출이 갑자기 증가하면 노인들은 그 후유증을 오래 앓아야 한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안정된 수입이 있기 때문에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고 생활비를 아껴쓰면 돈을 조금씩이나마 채곡채곡 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란 게 어찌 그렇게 되던가. 살다보면 늘 예상치 않은 지출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노인은 가난하다.

노년의 삶이 재정적으로만 박스 안인 것은 아니다. 노화로 인해 체력이 약화되고 의욕이 줄어들면서 재력이 있어도 노인은 상자 안에 갇히게 된다. 늙어갈수록 박스는 점점 더 작아지고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그 박스가 요양원의 침대 정도로까지 축소되고 만다.

그래서 노년을 보낼 곳을 잘 택해야 한다. 어떤 환경이 좋은가에 대해 누구에게나 맞는 정답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노인 각자의 선호에 달려 있다. 자연이 좋은 사람은 자연 속에, 도회적 삶이 좋은 사람은 도시 속에 터를 잡아야 할 것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은 가족이나 친지, 친구가 가까이 있는 지역이 좋을 것이고,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은 호젓한 산 속이라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따뜻한 곳이 좋을 것이고, 추위에 잘 견디는 사람은 기후가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집을 따뜻하게 하고 살면 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겨우내내 집안에만 머물 수도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에는 겨울에 영하 10도는 말할 것도 없고 수시로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지역이 드물지 않다. 반면에 겨우내내 영하 5도 이하로는거의 내려가지 않은 지역도 적지 않다. 이 작은 나라에서 기후와 기온이 지역에 따라 놀랍도록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전원의 기온은 기상청이 공표하는 기온과 몇 도씩 차이가 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끝으로 누구에게는 공통적이겠지만 병원들이 가깝고 근처에 훌륭한 요양시설이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노인들에게는 이사도 이동도 쉽지 않다. 노후에 지낼 지역은 신중히 선택되어야 한다. 충동적인 결정은 마음에 들지 않는 곳에 노년을 영영 갇히게 만들 수도 있다. 특히 전원 주택은 거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지역이 더욱 신중하게 선택되어야 한다.

어느 곳이라도 100% 만족스러울 수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결국 현재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왕이면 아쉬움이나 불편함이 적은 곳이 좋지 않겠는가.

오늘도 나는 동네라는 박스 속에서 산다. 그러나 그 박스 밖의 세상을 일주일에 한 두번만 나가도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곳에서 노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창 밖으로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고 문밖에만 나가면 한 겨울에도 별로 추위를 느끼지 않고 걸을 수 있으며, 소리에 민감한 내가 온갖 소음–특히 자동차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에서 살 수 있음에 감사한다. (2020-11-02)

삶에서 음식이란?

우리 집은 먹기 위해서 산다고 말할 정도로 먹는 것에 목숨을 걸지는 않지만 그래도 음식과 식사를 참으로 중시한다. 나의 부모님이 그랬고, 아내와 내가 그랬으며, 내 아이들이 그렇다. 아니 부모님보다는 내가, 나보다는 아이들이 더 그런 것 같다. 대충 먹는 경우가 흔치 않다.

요즘 나는 가급적 이러한 집안의 전통을 지켜가려고 노력한다. 식사 준비와 마무리가 주부와 같은 누군가만의 고통이 되지 않는 한 나는 그러한 전통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의식주 중에서도 특히 ‘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 사는 것이 부유하게 살거나 권력을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니듯이 잘 먹는 것은 화려하고 값비싼 음식을 섭취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잘 먹으려면 몇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음식에 좋은 식자재를 사용해야 하고, 식단이 건강상의 요구에 잘 맞아야 하며 물론 음식의 맛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음식은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공간에서, 적절한 양을, 적절한 예법을 갖추고 먹어야 한다.

일생을 살아오면서 때로는 너무 가난해서 굶거나 겨우 허기를 면하면서 지내기도 했고, 때로는 너무 바빠서 식사를 소홀히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잘 먹으며 지내려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시골에서 지내다보니 잘 먹고 지내기가 어렵지 않다. 계절에 맞는 좋은 식재료를 저렴하게 혹은 거의 돈들이지 않고 구할 수 있으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있다.

반찬 가짓수도 적고 식사 양도 많지 않지만 꼼꼼하게 준비된 음식을 프로토콜에 맞추어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으면 행복하다. 게다가 식후에 커피나 차를 정성스럽게 끓여서 디저트와 함께 먹을 수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이러한 일상을 얻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일하며 일생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때로는 우리가 삶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 건 지, 무엇이 중요한 지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쩌면 일상의 작은 행복, 그것이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갖고자 했고, 가지려고 하고, 또 가졌으면 하고 소망하는 것이 아닐까. 음식과 식사는 바로 그 일상을 채우는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202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