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병원에 가는 날

특별히 건강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늙은이는 병원에 자주 간다. 나도 한 달에 한 두번은 병원에 가야한다. 한 달에 한번은 읍내에 있는 내과에 들려 몇 가지 질환에 대해 진찰을 받고 약을 타야하며, 한 달에 한 두번은 멀리 광주 시내에 있는 병원들에 가서 주기적으로 진찰을 받고 약을 받아야 한다.

읍내에 가든 광주에 가든 병원 가는 날은 나가서 여러 가지 일을 함께 처리한다. 가급적 읍내나 시내에 가는 횟수를 줄일려고 노력하다보니 중요한 외출을 중심으로 일을 묶어서 하는 것이다.

오늘은 광주 시내의 병원에 가는 날이다. 한 40km 정도를 가야하기 때문에 비교적 큰 외출에 속한다. 내 일상은 통상 반경 30km를 넘지 않는다.

큰 외출에는 약간의 기대나 궁금함 심지어 설레임도 있다. 의사 선생이 내 병에 대해 무어라고 언급할까 하는 궁금함, 병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그리고 대도시에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설레임도 있다. 큰 외출이라고 해야 고작 서너 시간에 불과하지만 시골 거주자에게는 생활에 약간의 변화를 줄 수 있는 순간이다.

은퇴 후 시골 생활이 재직시의 도시 생활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아마도 쇼핑이 사라졌다는 점일 것이다. 대부분의 일상 용품은 인터넷으로 구매하고 옷가지 정도나 시내에 나가 골라야 하는데 옷을 사지 않으니 시내에서 쇼핑할 일이 거의 없다. 직장에 출근하지 않으니 아내도 나도 옷을 구입하지 않는다. 옷장에 걸려있는 외출복들을 충분히 입고나서 여생을 마칠 수 있을 지가 오히려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시내 병원에 가는 날은 내게(아마도 식구들에게도) 즐거운 날이다.

“여보, 우리 라이프 스타일을 미니멀리즘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내가 묻자 아내가 머리를 젓는다.

아냬: “에고, 무슨 미니멀리즘…편리한 것 좋아하고, 이렇게 가진 게 많은데…”

나: “맞아. 그래도 의식주 중 ‘의’와 ‘식’은 그렇게 봐도 되지 않을까….”

아내: “그래요. 뭐, 그 정도는.” (2020-10-16)

평안 = 노동 free, 돈 걱정 free, 스트레스 free, 질병 free?

60대 중반이 되면 사람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거치게 되는 인생의 단계가 은퇴이다.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고 어떤 사람은 갑작스럽게 은퇴를 맞이하지만 누구도 은퇴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흥미있게도 은퇴자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여행을 좋아하는 누군가는 오랫동안 해외 여행을 가기도 하고(그나마 코로나 19 때문에 금년에는 그것이 옵션에서 빠졌다), 또 누군가는 부지런히 국내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휴식이 필요했던 누군가는 실컷 잠을 즐기고, 원없이 영화를 보기도 하며, 사진 촬영, 악기 연주, 그림 그리기 등 미루어 두었던 취미생활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재정적이나 건강상의 여건이 뒷받침 되는 사람들의 경우이다.

게다가 은퇴자는 누구나 많은 적응을 요구받는다. 아주 운이 좋은 소수를 제외하곤 대다수의 은퇴자들은 크게 줄어든 재정 수입이나 불안한 재정 수입에 적응해야 하고, 무력감, 소외감, 박탈감, 혹은 외로움 같은 심리적 상태에도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좀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타인에 의한 망각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또한 재정적 어려움과 심리적 위축은 육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 노화가 빨리 진행되어 신체적으로 여러 가지 징후가 나타난다. 은퇴자는 이러한 신체적 변화에도 적응해야 한다.

삶에서 생산적인 활동이 빠지면서 적지 않은 은퇴자들은 삶의 의미나 보람 혹은 사회적 위상에 위협을 느낀다. 직업적인 후퇴는 사회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무력감을 수반한다. 짐짓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예전 그대로 행동하기도 하지만 머지 않아 가족이나 이웃이 그런 행동을 받아주지 않게 된다.

그것은 정도와 진행 속도가 다르기는 하겠지만 누구나 거쳐가야 하는 적응 과정이다.  은퇴 후 그렇게 몇 달 혹은 몇 년의 적응 과정을 보내고 나면, 은퇴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매일매일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라는 과제가 안겨지고, 별다를 것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주어진다. 그리고 더욱 공평하게도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병들이 찾아온다.

은퇴 이후 안타깝게도 누구나 꿈꾸었던 평안한 노후가 결코 평안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의 종류가 늘어가고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늘어가며 자신이나 배우자가 덜컥 암 수술이라도 받게 되면, ‘평안’과 ‘안녕’을 새롭게 인식해야 하는 때가 찾아 온다.

은퇴 후의 평안은 그냥 아무일 없이 편히 쉬는 삶도 아니고, 돈 걱정이 없는 삶도 아니며, 스트레스 없는 삶도 아니고, 병이 없는 삶도 아니다. 그런 평안은 보험회사 광고에나 있을 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평안이란, 사회와 자신을 위한 얼마간의 노동, 사회 초년생의 벌이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수입, 사회와 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지병(들)이 함께 하는 일상 속에서 은퇴자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마음의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노동이야말로 은퇴 후 평안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적당한 노동은 수입 문제, 스트레스 문제, 그리고 지병까지 어느 정도 해소해 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산업 현장에서 적당한 노동의 기회를 찾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특히 도시의 은퇴자들에게 개방된 일자리는 흔치 않다. 현대와 같은 노동절약적인 사회에서는 갈수록 노인에게 돌아가는 취업 기회가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발상을 바꾸면 어디에서나 생산적인 활동을 발견할 수 있다. ‘생산’이 꼭 돈벌이일 필요는 없지 않는가.

베란다에다 꽃을 가꾸고, 옥상에 채소를 재배하는 것도 생산적인 활동이며, 집안 일을 거들고 손주를 돌보는 것도 생산적인 활동이다. 길 앞 도로를 청소하고 공공 시설에서 자원 봉사를 하는 것도 물론 생산적인 활동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생산적인 일이 천지이다. 돈을 받는 일이 드물 뿐이다.

나는 삼복 더위에 땡볕 아래에서 일주일이 멀다하고 뜰의 잔디를 깎는다.  그것을 보는 사람 열명이면 아홉이 나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땀을 비오듯이 쏟아가며 잔디깍이를 밀고 다니는 나의 모습을 안타깝게들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나는 잔디와 풀들에 감사한다. 환갑을 한참 넘긴 나를 누가 그렇게 잔인하게 부릴 수 있겠는가? 돌아서면 자라나는 잔디와 잡초 덕분에 나에게는 끝없이 일이 생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너무 힘들어지면 더욱 기계화를 하든지, 유료 인력을 써서 내 노동량을 줄일 것이다. 그러나 그 때가 올 때까지 나는 정원을 가꾸는 노동을 계속 할 것이다.

잘 가꾸어진 집과 정원을 보는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이웃이나 지나가는 행인도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그래서 잔디와 꽃나무를 가꾸는 일은 텃밭에 채소를 가꾸는 것 이상으로 생산적이다. 비록 그것으로 한 푼의 수입도 올리지 못하고 오히려 기계와 도구를 사는데 지출이 들어가지만 가드닝은 매우 생산적인 활동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제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편안히 쉬세요!”라고 노인에게 말하는 것은 축복의 인사가 아니다. “너무 과하게 일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모를까. (2020-09-03)

공적 생활을 마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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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의 삶에는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 행성에서의 여정은 길지 않다. 기껏해야 1백년 미만이다. 그나마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보내는 활동적인 기간만 계산한다면 길어야 50년을 넘지 않는다. 정말 눈 깜박할 사이이다.

지구에는 오기도 어렵고 떠나기도 쉽지 않다. 이 행성에 오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자궁(혹은 그와 유사한 인공환경)에서 아이로 태어나야 하고 적어도 20년은 부모의 품에서 자란다. 떠날 때도 훌쩍 가는 경우는 드물고 대체로 늙고 병들어서 외롭고 힘든 세월을 보낸 후에야 다른 별로 갈 수 있다. 당연히 나도 그렇다.

내게는 이제 늙고 병든 때가 왔다. 활동적인 시기에 하던 여러 가지 일들을 남은 생에서도 계속 해야 하는가에 대해 냉정히 새겨보아야 한다.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생에서는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가면 지구 여행이 잘 마무리 될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내려 놓는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과 혼란 속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가난과 혼란을 벗어나는 과제의 일부를 떠맡아야 했다. 사회적으로나 가정적, 혹은 개인적으로 그러했다.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나야 했고, 보다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했다.

우리 사회의 가난과 혼란을 극복하는 데 있어 나는 결코 남보다 더 기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신 독재에 저항하다 어려운 대학 시절을 보냈고, 대학 교수가 된 이후에도 내 시간과 능력의 3분의 1을, 돈을 버는 목적이 아닌,  순수하게 사회적으로 가난과 혼란을 극복하는 데 사용하겠다는 원칙을 지키며 20여년을 보냈다.

최근에 건강 상태가 내게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낸다. 이제 그러한 공적, 정치적 삶을 마무리하고 여생을 온전히 나와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웃을 위해 보내라는 신호로 해석된다. 진정한 의미의 은퇴를 의미하는 그 시그날을 나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상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각 세대에게는 그 세대가 짊어져야할 짐(과제)이 주어진다. 한 세대가 모든 문제를 다 풀겠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다음 세대가 져야할 짐은 과감하게 다음 세대에게 넘겨야 한다. 아쉬움은 많지만 아쉬움에 붙들리면 미련이 되고 집착이 된다.

“여보, 당신 요즘 산책하면서 정치 얘기를 통 하지 않네요.” 며칠 전 아내가 궁금한 표정으로 내게 운을 건넸다. 산책 중 수학 얘기를 계속하다 아내에게서 심한 나무람을 들은 후였다.

이상이 아내의 의문에 대한 간략한 답변이다. 은둔자의 삶이 시작된다.  그 삶이 낯설기는 하지만 지구에서 보내는 여정의, 또 하나의 소중한, 그리고 마지막 부분이 될 것이다. (윤영민, 2018/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