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shall McLuhan과의 가상적 대화(2)

Herbert Blumer, Berkeley 연구실
Herbert Blumer, UC Berkeley의 사회학과 연구실에서

만리거사: 어제 제가 말씀들이다 중단한 부분부터 다시 시작하지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를 폐기처분 하자고 제안했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은 이렇게 되물으시겠지요? “미디어가 메시지가 아니면 뭔데?”

인류에게 미디어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이해합니다만, 선생님은 극단적인 형태의 기술결정론적 입장을 취하셨지요. “미디어가 인간(혹은 인간 감각)의 확장”이라는 문구가 선생님의 관점을 정확히 드러내줍니다.

미디어를 미디어라고 놓고 보아야 무슨 얘기가 되지요. 기술결정론이든, 사회결정론이든, 아니면 사회구성주의든 말입니다. 선생님처럼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이라고 정의해 버리면, 그 때부터는 동어반복(tautology)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미디어가 뭐냐고 물으면, “인간의 확장”이라고 대답하고, “인간의 확장”이 뭐냐고 물으면 “미디어”라고 대답해야 하는 세계 말입니다. 미디어 만능주의 혹은 미디어 신비주의에 귀결되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오버’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사이보그 인권선언’의 입장에 서 있는 학자들에게는 미디어와 인간의 이원론을 부정하는 선생님의 철학이 예언자의 목소리로 들리겠지요. 그러나 저 같은 사회학자에게 미디어와 인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경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가정되어야 합니다. 저는 미디어를 도구 혹은 환경으로 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의 혜안을 통째로 거부하지는 않으니 너무 실망하시지는 마십시오.

일단 미디어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그렇게 정리해 놓아야, 메시지의 주체가 인간임을 선언할 수 있습니다. 즉, “미디어가 메시지이다”가 아니고 “인간이 메시지이다”라는 제 입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뭐 그것이 제 독창적인 생각은 아닙니다. 선생님과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허버트 블루머(Herbert Blumer) 선생님한테 받은 영향이지요. 끝없이 의미를 생산하고 해독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관점 말입니다. 메시지는 의미이고, 메시지의 시작과 끝은 인간(발신자, 수신자)입니다.

Claud Shannon과 그 후예인 정보학자들이 이 말을 들으면 뒤집어 지겠지요. 메시지에서 의미를 탈각시킴으로써 디지털 정보혁명이 가능해졌는데 뭔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예, 맞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디지털 정보혁명이 성공하면서 스스로를 넘어서는 형국이 된 것이지요. “의미의 귀환”이라고 해둡시다.

혹자들은 컨텐츠(contents)를 강조합니다만, 짧은 생각입니다. 컨텐츠보다 인간이 우선이지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Google이 컨텐츠를 중심에 두고 있고, Facebook이 인간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모르시겠다고요? 그렇겠지요.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인식을 갖고는 답이 안 나올 겁니다.

저는 fb이 이길 것으로 봅니다. “인간이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컨텐츠는 인간과 결합될 때 의미가 부여됩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의미(meaning)”이지 “컨텐츠”는 아닙니다. Google이 그것을 깨닫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데, Facebook이 한 수 위이더군요.

이 정도면 “미디어가 메시지”가 아니면 뭐냐는 선생님의 도발적 질문에 대한 제 답변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선생님이 “미디어가 마사지(massage)”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미디어의 영향을 강조하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님의 그 문구를 참 좋아합니다. 요즘 fb를 사용하노라면 두뇌가 참 많이 마사지를 받는다는 느낌입니다. Fb 친구들은 굳어진 제 머리를 마구 두들겨 주거든요. 정말 선생님의 그 말씀은 지금도 살아있어야 할 명언입니다. 좀 위안이 되시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문구를 잊어버리고, 시대에 맞지 않는 “미디어가 인간 감각의 확장”이라든가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문구만 기억해요.

다음에는 “재부족화”와 “지구촌”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 볼까요? 선생님이 고안한 그 개념들도 요즘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도 잘 사용합니다만 또 따져봐야 할 점들이 있어요. (윤영민, 2018-05-17)

Marshall McLuhan과의 가상적 대화(1)

Marshall McLuhan, Playboy (March, 1969)

McLuhan이 살아 돌아온다면 인터넷, SNS, 집단지성 등에 대해 무어라고 말할까요? web 2.0시대에 McLuhan의 미디어 이론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마음 편하게 좀 따져보고, 건질 것은 건지고, 버릴 것은 버렸으면 합니다.

만리거사: McLuhan 선생님,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도 벌써 30년이 흘렀군요. 그 동안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어떤 부분은 선생님께서 예상하신 대로 되어가고 있고, 어떤 부분은 선생님의 예상과 많이 다르게 전개되고 있어요. 선생님 자신이 보시는 오늘날의 세상을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중심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McLuhan: 만리거사님, 기억하실 지 모르겠지만, 내가 41년 전에 Playboy지와의 인터뷰 에서 압축적으로 예측했던 세상이 대체로 그대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전보로 시작되어 라디오, TV, 컴퓨터 등으로 발전된 전자미디어(electronic media)가 인터넷, 멀티미디어, 모바일로까지 발전했고, 내가 지적했던 실시간-구두문화로의 회귀(시각적 공간에서 청각적 공간으로의 전화), 재부족화, 지구촌화, 실시간 참여정치, (시각적 문화와 청각적 문화 사이의) 문화적 갈등, 미국사회의 발칸화, 학교의 창살 없는 감옥화, 프라이버시의 몰락(?), 쿨 미디어의 발달 등이 대체로 모두 실현되지 않았나요? 기술 자체는 내 생전에 비해 많이 발전했지만 기술의 성격에 본질적인 변화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네요.

만리거사: 예. 1969년 Playboy지 인터뷰 기억합니다. 이제야 드리는 말씀이지만 참 길었어요. 50페이지가 넘었으니까요. 선생님이 당시 대중문화의 icon으로 떠오르기는 했지만 뭐 Playboy같은 야한 잡지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인터뷰였지요. 지금 다시 읽어보니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히 예측하셨더군요. 진짜 미래를 엿보신 것 아니었던가요? 그렇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생생하게 4-50년 후의 세계를 그릴 수 있는 지 도무지….그렇다고 뭐 예측이 다 맞았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요즈음 인터넷은 좀 둘러보셨나요? 선생님께서는 Web 2.0, SNS 등의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McLuhan: 나는 인류문명의 발달을 청각문화와 시각문화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음소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구두문화(oral culture)가 존재했고, 그것은 인간의 감각 중 청각을 중심으로 시각, 촉각 등 여러 감각기관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부족(tribal) 사회였지요. 소규모의 부족이 한 마을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식이지요. 부족 구성원들끼리는 서로 잘 알고 있었으며, 부족의 문제는 늘 부족 구성원들의 대화를 통해 해결하였습니다.

그런데 알파벳이나 한글 같은 음소문자가 출현하고, 금속활자, 활판 인쇄가 발명되면서 인간의 감각 기관 중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 문명으로 바꾸었습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탈부족화하고, 국가, 관료제, 대의민주주의, 산업화, 민족주의 등이 발달하였지요. 하지만 1800년대 중엽 전보(telegraph)가 발명되고, 20세기 들어와 라디오, TV, 컴퓨터와 같은 전자 미디어가 속속 등장하면서 인간의 문명은 다시 구두문화로 회귀하고 재부족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만리거사: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요즘 사람들은 긴 글을 참지 못합니다. 40년 전하고는 달라요. 좀 짧게 말씀해 주시지요.

McLuhan: 알겠습니다. 긴 글을 참지 못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지요. 그것은 구두문화의 특징이니까요. 문자문화에서 구두문화로의 회귀라는 제 주장에 대한 강력한 반증입니다. 한 마디로 인터넷, SNS, Web 2.0은 전자적 미디어에 의해 실시간(instant, real-time)으로 이루어지는 텔리커뮤니케이션 세상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내가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고 부른, 지구적 규모에서의 재부족화(retribalization)가 실현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페이스북의 사용자가 5억 명을 넘어섰다는데, 그것은 ‘지구촌’이 실현되는데 강력한 인프라가 되겠군요.

만리거사: 글쎄요. 저는 선생님의 그러한 해석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미디어의 발전을 인터넷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보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문, TV, 라디오, 잡지 등과 같은 대중매체(mass media)와 인터넷과 같은 공중매체(public media)로 나눕니다. 선생님과는 대중과 공중이라는 용어를 반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John Dewey, C. Wright Mills나 Jurgen Habermas와 같은 비판적 학자들의 용례를 따라 대중과 공중을 구분합니다. 뭐 그건 그렇게 중요한 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요.

선생님께서는 수용자의 참여를 중심으로 cool media와 hot media로 나누셨는데, 그것으로 참 여러 사람 헷갈리게 만드셨지요. 지금 와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TV에 대한 선생님의 과장된 해석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TV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에서 TV라는 단어를 빼고 인터넷을 바꾸어 넣으니 놀랍게도 참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만약 굳이 선생님의 그 용어를 적용한다면 인터넷 이전의 대중매체는 모두 hot media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용자의 참여랄 게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멀티미디어 시대에 그것은 사실 무의미한 분류입니다. 선생님이 hot media로 분류한 라디오, 책, 사진 등이, 디지털화되고 인터넷과 결합되면서 실질적으로 cool media로 변신해 버렸지 않습니까? 멀티미디어 인터넷 시대에 모든 매체는 cool media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용어들은 폐기처분 하면 어떨까요? 선생님도 반대하지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매체 융합이 발생하면서 매체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는 입장입니다. 모두 공중매체가 됩니다. 공중매체는 사용자 중심의 참여적 매체(participatory media)입니다. 저자와 독자,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구분이 없어지고, 공중매체의 key가 되는 대화(dialogue)는 모두의 발화(utterance)를 통해 완성됩니다. 완성이라는 표현이 좀 께름칙합니다. 공중매체에는 완성 혹은 종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흐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새로운 발화에 의해 언제든 개정될 수 있는 일시적인 정지만이 있을 뿐입니다.

SNS를 보세요. 타임라인에 한번 들어오면 어떤 발화도 무시되지 않습니다. 게시될 자리에 게시된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발언도 아주 허무하게 금새 흘러가 버립니다. 또한 누군가가 올린 posting은 댓글(comment, reply)과 묶이면서 하나의 메시지가 형성됩니다. 설령 posting의 내용이 아무리 위대할 지라도 댓글은 그것을 순식간에 해체시켜 버립니다. 반대로 하찮게 보이는 posting일지라도 댓글에 의해 훌륭한 글로 격상되기도 합니다. 인터넷이 지닌 실시간 대응이라는 특성이 누구에게도 저자(author)의 특권을 부여하는 걸 거부합니다.

매체 융합(media convergence)은 선생님 이론의 핵심적인 명제인 “미디어는 메시지다”를 무색하게 해버렸습니다. 미디어의 구분이 불가능한데 상황에서 미디어가 메시지가 될 수는 없지요. 미디어가 지닌 특성이 분명히 구분될 수 있어야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를 발할 겁니다. 이제 그 명제도 폐기처분 했으면 합니다. 너무 시간이 늦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일 계속 말씀드리기로 하지요. (윤영민, 2018-05-17: Facebook 정보사회학 페이지, 2010/08/04에 게시했던 글을 약간 수정 전재함. 연결된 포스팅들도 동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