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대화, 무엇이 먼저일까

우리네 삶에서 대화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 인간에게 있어 대화 욕구는 물욕, 권력욕은 물론이고 식욕이나 성욕보다 더 근본적이다. 그래서 미하일 바흐찐과 마틴 부버는 인간을 대화적 존재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대화는 공기만큼이나 흔하고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대화의 기회를 잃고–살다보면 누구나 그런 때가 오지 않나 싶다–나면, 사람들은 대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된다.

대화의 상실은 많은 노인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노인이 되면 대화와 관련해서 두 가지를 깨닫게 된다. 첫째는 대화의 상대가 아주 소수라는 사실이고, 둘째는 상대에 따라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는 사람이 많아 걱정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아는 사람이 ‘대화’의 상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업이나 업무로 만난 사람과는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사업상 혹은 직업상의 동료나 파트너가 아무리 많아도 그들이 당신의 ‘인간적’ 혹은 ‘사적’ 대화 상대가 되어줄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나 오해일 뿐이다.

관계의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특히 관계가 비대칭일수록 그러하다. 은퇴하면 전직과 현직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비대칭적이 된다. 사회적 위상, 정보, 재력, 체력 등 어느 것 하나 전직이 현직과 대등하거나 더 나을 수는 없다. 은퇴자는 과거를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과거가 은퇴자에게 힘이 되어줄 수 가능성은 없다. 업무상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특히 인간적인 측면에서 그러하다.

당신의 연락처 명단에서 인간적인 혹은 사적인 대화가 가능한 사람만 남기고 모든 사람을 제거하면 과연 몇 명이나 남을까? 아마도 아주 소수일 것이다. 그것 자체가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다. 누구나 그러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소수마저도 각각의 상대와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주제가 제한적이다. 대화 주제를 잘못 꺼내면 그 소수의 ‘친구’나 가족, 이웃마저도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직 시절의 화려했던 추억, 즐겁거나 슬픈 가족 이야기(대개 자식 자랑), 자신이 가진 부동산이나 주식이 오른 소식, 해외여행이나 값비싼 취미생활 등은 은퇴자의 무료한 일상을 채워줄 대화 소재이기도 하고, 입이 근질근질하여 자제하기 어려운 이야기 재료이기도 하지만, 친구를 멀어지게 할 가능성이 높은 대화 주제이기도 하다.

다양한 대화 주제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배우자만한 상대가 없다. 그러나 그 배우자마저도 항상 당신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신의 배우자는 당신이 아닌 다른 대화 상대를 선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설령 다정한 사이일지라도 그 배우자가 언제까지나 당신 곁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은퇴자에게는 누구와의 대화에서든 절제와 조심성이 필요하다. 은퇴자는 말을 꺼내기 전에 혹시나 내가 하는 말이 상대를 거북하게 하거나 부담스럽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몇 차례 해보는 습관을 가지면 좋다. 그래도 간혹 ‘선’을 넘을 것이고 ‘친구’는 기꺼이 그 실수를 양해해 줄 것이다. 하지만 ‘선’을 자주 넘으면  ‘친구’들의 인내도 바닥나게 된다.

대화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역이 더 진실이다. 관계가 존재해야 대화가 가능하다. 대화가 가능한 상대를 오래 옆에 두려면 사려깊지 못한 대화로 그 관계를 위협하는 처신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2020-11-18)

행복한 토론을 위한 몇 가지 기술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국가들 사이의 회담이 연이어 진행되고 있다. 정상회담, 당국자 회담, 실무회의 등 여러 수준의 대화가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숨가쁘게 열리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대화가 개인 뿐 아니라 집단에게도 생존과 번영을 위한 최고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런데 대화가, 상호 이해나 타협 혹은 의사결정에 도달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지식의 생산(즉, 연구)이나, 지식과 깨달음의 습득(즉, 학습)에도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흔쾌히 인정하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연구나 학습이 개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라고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분위기를 개선하는데 쓸모가 있으리라 생각되어, 6년 전 페이스북의 ‘정보사회학’ 페이지에 올렸던 글을 약간 손질하여 전재한다. 당시에는 온라인 대화에 특정해서 논의하였지만 거기에 제시된 내용은 오프라인 대화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권위주의적 혹은 신분계층적 잔재가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서 생산적인 대화가 쉽지 않음은 별로 놀랍지 않다. 우리 사회에는 대화를 통해서 상호 이해와 합의에 도달하는 토론(discussion)이 발달하지 못했고, ‘함께 생각하는(thinking together)’ 수단(혹은 과정)으로서의 대화(dialogue)가 보기 드물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방송에 시사토론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몇몇 논쟁적 지식인이 연예인 수준의 명사로 등극하고, 유튜브상의 수많은 대안 미디어 덕분에 적지 않은 스타 지식인들이 출현했지만, 대화 그리고 대화적 지식인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선 문화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도대체 ‘함께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부정되는 분위기이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생각한다는 것은 홀로 명상을 한다거나 글을 쓰는 행위와 동일시된다. 대화를 통해 함께 생각하기(이하에서는 다이어로그라고 부름)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한데,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리고 직장(일부 교육을 제외)이나 대중매체 같은 사회에서도 다이어로그하는 훈련을 시켜주지 않는다.

대화에는 한담(閑談), 난장(亂場)적 대화, 논쟁, 토론, 다이어로그(對談)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앞 세 가지는 잘 발달한 반면 뒤 두 가지는 좀 약한 편이다. 난장적 대화(Carnivalesque)는 전통적으로 판소리 가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요즘에는 유튜브의 시사토론 미디어에서도 발견된다. 그것은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대화이다. 논쟁(debate)도 서구사회 이상으로 발달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벼슬자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목숨까지 걸면서 정치적 논쟁을 했고, 요즘도 TV 시사토론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상에는 직업적 ‘논객’들이 적지 않다.

논쟁(debate)은 나름대로 사회적 가치가 있다. 한 사회에 내재한 상이한 입장과 견해를 극적으로 드러내주는데 논쟁만한 대화 형식이 없다. 또한 논쟁은 논리 발달을 촉진하고 게다가 첨예한 논쟁은 시청자에게 말싸움을 구경하는 재미를 주고, 덕분에 방송국은 저비용으로 취약 시간대 방송을 커버하고 운이 좋으면 제법 괜찮은 시청률을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논쟁은 치명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대화의 목표가 승리(혹은 설득)이기 때문에 찬반 발언은 당파성을 띄게 되고 참여자는 상대의 논리적 허점을 찾아내어 공격해야 한다. 상대편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패배이다. 논쟁은 보통 우리가 말싸움이라고 부르는 경기이다. 거기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 어려우며 상호 이해와 합의를 기대할 수 없고 지식의 생성이나 자기발견적 학습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사회적으로는 분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거기에서는 쟁점이 실제의 차이보다 훨씬 단순화되고 과장되며 감정적인 응어리까지 남기기 때문이다.

논쟁은,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면서도 상호이해와 합의에 도달하는 토론과 구분되며, 더구나 참가자들의 기여를 최대한 끌어내면서 교육(혹은 학습) 효과를 내거나,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의사결정을 해내는 다이어로그와는 판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지식생성과 학습을 위한 다이어로그를 성공적으로 일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우리가 정말로 ‘함께 생각하기(thinking together)’의 놀라운 효과를 기대한다면, 무엇보다 세 가지 전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대화 참여자들이 서로 존중해야 한다. 다른 참여자들의 능력에 대해 무한 신뢰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그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참여자들의 잠재력이 성공적으로 표출될 수 있다. 서로 무시하고 경시하는 순간 함께 생각하기는 물 건너 간다. 참여자들은, 내 의견이 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공동의 목표가 설정되어야 한다. 꼭 명시적인 대화를 통해서 공동의 목표가 설정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일방적으로 주어질 수는 없다. 설령 묵시적일지라도 대화 참여자들이 대화의 목표를 충분히 공감하고 수용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일회의 대화가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의 공동체로서의 목표일 수도 있다. 예컨대 SNS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목표가 될 수도 있겠고 지역발전이 목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진정성을 갖추어야 한다. 대화 참여자들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이 자신도 모르게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목표와 용도가 명시적이며(explicit) 공공적(public)이어야 한다. 이는 대화 주도자에게 해당되는 요건이다. 일반적인 대화 참여자들이 대화를 통해서 자신을 알리거나 자신의 입지를 만들어가려는 의도까지 배제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요건을 갖추면 다이어로그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은 Lawrence M. Miller의 “Dialogue: Think Together Rather than Alone (2005)”를 참고하여 작성된, 다이어로그가 성공하기 위해 실천되어야 할 요소들이다.

1) 경청하라(Practice Deep Listening): 논쟁할 때는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을 발견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지만 다이어로그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경청한다. Miller의 글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다이어로그는 작가적 경청을 필요로 한(Dialogue requires the listening of the writer). 즉,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 다른 사람의 스토리를 듣는 능력, 각 스토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디테일에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이 필요하다(Miller, 2004: 9).”

2) 질의하라(Practice Inquiring versus Acquiescing): Miller의 지적처럼 “질문은 학습의 근본적인 수단이다.” 여기까지는 대단할 게 없고 다음이 중요하다. 논쟁과 달리 상대방을 곤경에 몰아넣기 위해서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에서 상대방의 기여를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질문을 해야 한다. 예컨대 누군가가 어떤 제안을 했다면, 그 제안의 완성도를 높이고 실현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이어로그는 대화의 상대를 성장시키면서 내가 성장하는 기회이다.

3) 판단을 유보하라(Practice Suspending Judgment): 논쟁에서는 판단이 빨라야 한다. 전광석화처럼 상대의 허점을 치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이어로그에서는 누군가의 발언에 대해 서둘러 평가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충분한 반대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경험을 했고, 다른 사람보다 지식이 많으며, 다른 사람보다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통 판단이 빠르다. 그것이 장점인 경우도 많겠지만 다이어로그에서는 단점이 된다. 다이어로그에서는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이 최고의 미덕이다. 겸손이야말로 다른 사람이 함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백을 준다.

수업이나 온라인 다이어로그에서는 겸손이 특별히 중요하다. 참여자들은 자신이 어떻게 평가 받을 지에 대해 두려운 생각을 갖기 쉽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이 편안히 자신의 생각을 발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겸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4) 상대를 부인하는 유형화를 피하라(Avoid Dismissive Categorizing): 이 또한 뼈아픈 말이다. 그것은 논쟁에서는 가장 자주 사용되는 공격법이다. 좌빨, 수구꼴통, 진보, 보수…정말 우리 사회의 대화에서는 부인적 유형화가 아주 심하다. 사람이든 발언이든 부인적 유형화를 해버리면 그 다음부터 다이어로그는 회복 불능 상태에 들어간다. 일단 상대에게 색칠을 해버리면 그의 모든 발언이 긍정적으로 해석되기 어렵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상대나 상대의 발언에 대한 유형화는 피해야 한다.

5) 당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찾아라(Seek Your Authentic Voice):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모두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남의 말을 이해한 다음 자신의 생각을 새겨본다. 말하기 전에 먼저 곰곰이 자신의 생각을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는 대화 중인 주제에 관해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입장을 찾았다고 생각되면 지체 없이 그리고 당당히 발언해야 한다. 대화의 흐름이 빠르면 말할 기회를 놓치기 쉽다. 그리고 일단 흘러가고 다면 대화의 초점을 되돌리기가 무척 어렵다.

다이어로그를 시작할 때 대다수의 참여자들은 주제에 관한 잘 모를 수 있고, 참여자들의 사전적인 지식의 편차가 아주 클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이어로그가 진행되면서 참여자 개개인에게 정보와 깨달음이 빠르게 쌓여간다. 뿐만 아니라 다이어로그의 최대의 성과는 혼자라면 얻기 어려운 깨달음-지식-을 함께 얻게 되는 것이다. 집단지성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다이어로그가, 최적 상태에 도달하기 전에 끝나버리는 ‘집단사고(group think)’에 머물지, 아니면 참여자 개개인의 지적 능력을 초월하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성취할 지는 쉽게 예단할 수 없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하고, 다섯 가지 원칙을 잘 지킨다면 다이어로그를 성공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윤영민, 2018-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