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yes 학습)(1) ‘확률’을 새롭게 인식하며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따르면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실성을 수량적으로 나타낸 것”이 확률(probability)이다. 근원 사건이 같은 정도로 일어난다고 가정할 때, 어떤 사건의 확률 P(A)은 사건 A가 일어나는 경우의 수()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N)로 나눈 값이다. 이것을 수학적 확률이라고 한다.  (참고로 근원 사건이란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사건을 말한다.)

P(A) = {N_A \over N} .

두 개의 주사위를 동시에 던질 때, 눈의 합이 5로 되는 확률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를 보면, 표본공간(sample space) N은 6*6 = 36이고, 눈의 합이 5가 되는 사건(event)은 (1,4), (2,3), (3,2), (4,1)의 4 가지이므로 구하는 (수학적) 확률은 4/36 = 1/9이다.

그러나, 현실은 동전이나 주사위 던지기가 아니다. 근원 사건이 같은 정도로 일어난다는 가정이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고(예: 혈액형 유형별 발생 확률), 표본공간 N의 크기가 알 수 없거나 무제한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 수학적 확률을 구하기 어렵거나 심지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통계적 확률로 수학적 확률을 대신한다.

시행의 횟수 n이 커짐에 따라 사건 A가 일어나는 상대빈도(relative frequency) 이 일정한 값 p와 거의 같다고 간주할 수 있을 때, 그 p를 통계적 확률이라고 말한다.

\lim_{n \to \infty}{n_a \over n}=p

상대빈도와 확률 사이에 이러한 관계를 성립시켜주는 것은 대수의 법칙(the law of large numbers)이다. 대수의 법칙에 따르면 통계적 확률과 수학적 확률이 일치한다. 따라서 수학적 확률을 알 수 없을 때 통계적 확률을 대신하고, 상대빈도로 통계적 확률을 근사할 수 있다.

예컨대 100원짜리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통계적 확률을 구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동전을 한 1천번 정도 던져보아야 한다. 만약 정말로 1천번을 던져서 앞면의 수가 501번이 나왔다면 통계적 확률이 1/2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확률의 정의이다. 이 확률의 정의를 가지면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데 충분할까?

사실 현실에서 상식적으로 확률을 그런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 아이가 A 대학에 붙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북한이 남한에 대해 미사일 공격을 가해 올 확률이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내일 오전에 비가 내릴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소풍 가는 날 맑은 날씨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더민주당이 총선 이후 다시 제1야당이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국민연합을 탈당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백혈병 환자의 5년 이상 생존율이 얼마나 되나요?” “말기 폐암 환자가 1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얼마나 되나요?” “저 백혈병 환자가 1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에이즈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온 저 남자가 실제로 에이즈에 감염되었을 확률은 얼마나 되나요?” “그녀가 사업에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이 사례들은 모두 정당한 확률적 의문이다.

즉, 이 사례들에서 보듯이 현실에서 사람들은 확률을, 반복적이지 않은 사건의 객관적인 발생 가능성을 가리키는데 사용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건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주관적인 믿음의 정도(degree of belief)나 지식의 상태(state of knowledge)를 가리키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수학적 확률이나 상대빈도(relative frequency)는 반복적으로 많은 횟수가 발생하는 사건의 객관적인 발생 가능성을 숫자로 나타내는 데 유용함이 분명하다. 그러나 희소한 사건의 발생 가능성, 혹은 반복적이지 않은 사건의 발생 가능성은 어떻게 숫자로 표현할까? 혹은 어떤 사건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전문가의 확신을 추정이나 예측에 반영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베이즈 추론(Bayesian inference)은 그러한 상상에 유용한 접근 방법이 될 수 있다. 관찰값이 주어졌을 때, 그것으로부터 관찰이 불가능한 모수(parameters)의 값을 추정하거나, 또는 관찰값이 주어졌을 때, 그것으로부터 미래에 혹은 다른 사례에서 동일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을 예측하는데 대단히 유용할 수 있다.

베이즈 추론은 “관찰값이 주어졌을 때”, 다시 말해 어떤 특정한 조건이 주어졌을 때, 모수를 추정하거나 미지의 수를 예측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조건부 확률(conditional probability)이다. 조건부 확률을 복습하면서 베이즈 정리를 도출해 보자.

사건 A가 일어났을 때의 사건 B의 조건부 확률 P(B|A)는

 , P(A) ≠ 0

으로 표시된다. 여기서 양변에 P(A)를 곱하면,

가 된다. 이것은 바로 확률의 곱셈정리이다.

그런데 집합의 교환법칙에 따르면,  이므로,

가 된다. 여기서 양변을 P(A)로 나누면,

   , P(A) ≠ 0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가 도출되었다. 말로 풀어보면, 사건 A가 일어났을 때 사건 B가 일어날 조건부 확률 P(B|A)은 사건 B가 일어날 확률 P(B)에, 사건 B가 일어났을 때 사건 A가 일어날 조건부 확률 P(A|B)를 곱한 값을 사건 A가 일어날 확률 P(A)로 나눈 값과 같다. 베이즈 추론은 이 베이즈 정리에서 출발한다. 이 정리가 그렇게 중요할 줄은 고등학교 때는 물론이고, 대학 수학 시간이나 대학원 통계학 시간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베이즈 정리를 좀 깊이 이해해 보자. (윤영민, 2016/02/29)

끝낼 수 없는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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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사이언스 워크숍

필암문화원에서 어제(토요일) 오후 4시부터 오늘 오후 2시까지 마라톤 워크숍을 가졌다. 대구에서 온 전채남 박사와 김희대 박사, 서울에서 온 나의 대학원 학생들(유자현, 정성호, 구경모), 그리고 막내와 내가 참여했다. 나는 베이즈 통계 부분을 리드하고 막내는 파이썬 프로그래밍 파트를 리드했다.

두 명씩 서로 도와가면서 학습하는 페어 프로그래밍(pair programming) 방식으로 진행했다. 참가자들이 준비를 잘 해온 덕분에 상당히 많은 내용을 소화할 수 있었다.

워크숍의 목표는 지난 겨울방학 동안에 공부한 베이지안 통계(Bayesian statistics)와 파이썬(Python)(프로그래밍 언어)을 총복습하는 것이었다. 빈도주의(frequentism)라고 불리는 기존의 확률과 통계 분석에만 익숙한 사람들이 베이즈주의(Bayesianism)에 입문하기가 쉽지 않다. 확률에 대한 개념이 다르고, 분석 과정도 다르며, 수학과 컴퓨터 지식도 더 많이 요구된다. 또한 SAS와 같은 통계패키지를 사용하면 굳이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베이지안 통계분석을 실행할 수 있지만.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배우는 것이 베이지안 통계를 더욱 철저히 배울 수 있고, 나아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을 공부하는데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어 어려운 길을 택했다.

베이즈 통계를 사용하려면 몇 가지 핵심적 개념과 원리, 분석과정, 분석도구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간략히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베이즈 통계에서는 확률(probability)이란 특정 상황의 불확실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 개인이 갖는 믿음의 정도(degree of belief)(혹은 확신의 정도(degree of confidence))를 말한다.
  • 베이즈 통계에서는 모든 표본값(sampling statistics)과 모수(parameters)가 확률변수(random variable)이다(일 수 있다).
  • 따라서 베이즈 통계의 알파와 오메가는 확률분포(probability distribution)이다.
  • 베이즈 통계의 출발은 조건부 확률(conditional probability)이다.
  • 베이즈 통계의 핵심은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이다.
  • 베이즈 통계를 이해하고 실행하려면 수학에서 순열과 조합, 미적분, 집합, 그리고 특히 행렬대수(matrix algebra)를 알아야 한다.
  • 베이즈 추론에는 수학적 해 대신에 통계적 근사치를 사용한다.
  • 베이즈 추론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적용된다.
  •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하는 데는 MCMC(Markov Chain Monte Carlo) 방법이 사용된다. MCMC를 이해하려면 특히 마르코프 연쇄랜덤 워크(random walk) 이론을 잘 파악해야 한다.
  • MCMC 방법을 사용하여 사전 분포(prior distribution)로부터 수만 개 혹은 수십만 개의 수를 생성하여 모수를 근사(approximate)한다.
  • 베이즈 추론 과정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1) 사전정보(prior)(사전 분포) 추정(편의상 우도함수와 같은 계열의 함수를 채택하는 방법을 쓴다 <– 공액함수(conjugate prior)라고 불린다),  (2) 데이터의 우도 함수(likelihood function) 추정. (3) 우도함수를 가지고 사전분포를 갱신(update)하여 사후 함수를 구한다. (4) 절차의 적절성을 평가한다. 특히 시뮬레이션의 수렴(convergence)에 대해 평가해야 한다.
  • 평가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확률모형을 수정하거나 절차를 개선하여 다시 추론 과정을 밟는다.

두 달 후에 가질 2차 워크숍에서는 MCMC와 평가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파이썬을 사용해서 모수 추정 뿐 아니라 예측이나 가설 검증도 해 보아야 겠다.

정년도 몇 년 남지 않았는데, 과연 이렇게 낯선 공부를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대에 인공지능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사회적 불평등, 일, 직업, 그리고 인간의 행복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발언하고 개입할 수 있겠는가. 사회학자이기를 그만 두지 않은 한 도전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윤영민, 2016/02/29)

“부유하다”와 “잘살다”가 구분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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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에서 “잘살다” = “부유하게 살다”이다. “그집은 아주 잘살아!”라는 말은 “그집은 아주 부자다”, “그집은 아주 부유하다”라는 의미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살기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언어 사용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잘살다”가 “부유하다”와 분화되지 않으면 새로운 시대 지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데 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잘하다”가 “훌륭하다” 혹은 “멋지다”는 의미인 것처럼 “잘살다”를 “행복하게 살다”, “현명하게 살다”와 같은 의미에 국한시켜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영어에서는 “부유하다”를 표현할 때 richness, affluence, wealth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행복하게 산다”, “현명하게 산다”를 표현할 때는 well-be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물론 서구사회에서도 well-being이라는 단어가 비교적 신조어일 것이다. 스펠링이 아직 wellbeing이라고 굳어지지 못하고 well-being과 혼용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짐작된다. 그것은 서구 국가들에서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과 함께 새롭게 등장한 어휘일 것이다.

지난 반 세기 이상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우리나라는 J.K. Galbraith가 말한 “풍요로운 사회”에 진입했다. 부유한 나라가 된 것이다! 구매력 기준으로 우리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3만5천달러로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뉴질랜드 등 소위 선진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물론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 사실을 별로 느끼지도 흔쾌히 인정하지도 못하겠지만 말이다.

인식 전환의 핵심은 삶의 지향이 “부자되기”가 아니라 “행복해지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행복“을 영어의 well-being에 해당되는 단어로, 그리고 “잘살다”행복을 추구하며 지혜롭게 산다”는 의미의 동사로 사용하기를 제안하다.
wellbeing-wheel

풍요로움 혹은 재산(돈)은 행복을 위한 경제적 조건에 불과하며, 어느 정도 이상으로 소득이 증가하면 소득은 행복을 증가시키는데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Easterlin paradox). 행복(well-being)은 경제적 조건 외에 사회적 관계, 신체적 여건, 심리적 상태, 환경적 여건, 직업 등 여러가지 요인들에 의해 좌우된다(그림 참조).

지난 반세기 동안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면서 우리는 부자가 되면 당연히 행복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지표가 그것을 증명한다. OECD 국가들 중 자살률 1위, 자살증가율 1위, 노인 빈곤율 1위 등등. 우리 사회는 부유하지만 가장 불행한 나라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행복해 질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을 찾아가야 한다. 그 전환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 (윤영민, 2016/2/20)

베이즈(Bayes)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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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ald J. Wonnacott & Thomas H. Wonnacott. 1985. Introductory Statistics, 4th ed.

1986년 가을 미국 University of South Carolina(Columbia)에서 사회학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첫 학기에 전공 필수 과목 중 하나로 ‘사회통계학 입문’을 수강했다.  그 과목을 강의했던 밀러 맥퍼슨(J. Miller McPherson) 교수는 학기 초반에 조건부 확률을 가르치면서 베이즈 공리(Bayes Theorem)를 잠깐 소개했다. 나는 그가 수업 시간에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여러분이 미래에 베이즈 분석을 사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잠시 그 원리를 설명하고 교재의 마지막 부분, 제19장과 제20장에 있는 베이즈 추론과 베이즈 의사결정이론은 수업에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맥퍼슨 교수와 그의 부인인 Lynn Smith-Lovin 교수는 상당히 우수한 사회학자였다. 그는 나중에 코넬대학교와 아리조나 대학교 교수를 거쳐서 듀크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부인과 함께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했다. 요즈음 인기가 좋은 분야인 사회연결망(social network) 분석 전문가인 그는 특히 계량적 방법에 뛰어났다. 그런 그가 30년 전 베이즈 접근과 분석이 지닌 시대적 잠재성을 깨닫지 못했고, 덕분에 베이즈 공리와 분석은 나의 시야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그런데 나는 환갑 나이에 베이즈를 다시 공부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베이즈를 공부하지 않는다면 나는 새로운 시대의 수많은 학문적 연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사회과학도로 남을 것이다.

다행히 금년 한 해 연구년을 보내는 덕분에 차분하게 베이즈를 공부하고 있다. 더구나 베이즈 분석을 컴퓨터로 실행하기 위해 파이썬(Python)이라는 컴퓨터 언어를 함께 배우고 있다. 어느 하나를 새로 시작해도 익히기 쉽지 않겠지만 다행히 전산과학을 전공하는 막내가 파이썬 학습을 거들어 주니 그럭저럭 공부할 만하다.

베이즈 분석은 내가 젊은 시절 배우고 평생 동안 사용한 통계학 접근과 참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사고의 전환이 요구되는데 그 점에 적응이 어려웠다. 이제 베이즈적 사고가 점점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파이썬의 구조에 대한 이해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어느덧 한 고비를 넘은 것 같다. 좀 더 박차를 가하자(2016/02/14).

살기 좋은 마을이 되려면…

나이 든 사람들에게 마을이 살기 좋으려면, 아름다운 경관, 깨끗한 환경, 편리한 교통, 훌륭한 의료시설, 좋은 이웃이라는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마을을 찾기는 무척 어렵다.

사실 그 중 아름다운 경관과 깨끗한 환경을 갖추었으면서 동시에 교통이 편리한 곳은 드물다. 교통이 좋으면 공업이나 상업 시설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명과 자연을 조화시키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인들의 삶의 질을 위해서는 의료 시설이 대단히 중요하다. 대중 교통을 이용해서 좋은 병원이나 의원에 손쉽게 갈 수 있어야 한다. 응급 상황에서는 5-10분 이내에 앰블런스가 도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 조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면 그것은 좋은 이웃이리라. 다정하고 친절한 이웃이 있으면 매일매일의 생활이 즐겁고 비상시에는 긴급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좋은 이웃이며, 깨끗한 환경, 그리고 심지어 의료시설까지도 두 가지 숨은 조건에 의지한다. 하나는 훌륭한 리더이고, 다른 하나는 커뮤니티를 위한 자신의 애정과 노력이다. 그런데 훌륭한 리더는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과 노력을 끌어낼 수 있고, 환경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유지하며, 심지어 교통과 의료시설의 접근성을 높일 수도 있다.

결국 살기좋은 마을이 되려면 훌륭한 리더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리더는 변화를 일으킨다. 멋진 비전을 제시하고,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며, 사람의 행동을 변하게 하고, 나아가 이웃들 사이에는 화평을, 마을에는 번영을 가져온다.

우리 나라의 노인은 얼마나, 왜 가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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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삶의 어려움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는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그냥 ‘노인 빈곤율’이라고도 함)이다.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이렇게 계산된다. 한 사회의 65세 이상 노인을 연간소득 기준으로 한 줄로 세웠을 때, 딱 가운데 해당되는 소득(중위 소득이라고 함)의 50% 미만인 계층이 65세 노인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9.6%로, 위 표에서 보듯이 OECD 회원국 중 단연 1등이다. OECD 국가 평균이 12.6%이니, 그것의 거의 네 배나 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18-25세 인구층이나 25-65세 인구층에서는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이 OECD 국가 평균보다 낮다. 이는 우리나라에 가난한 사람들이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많은 편이 아닌데 유독 노인층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왜 그럴까? 다음 표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빈곤율2001

시장 소득을 기준으로 산출한 노인 빈곤율을 보면 우리나라가 61.3%로 다른 OECD 회원국들에 비해 다소 낮은 편이다. 시장소득이란 요소 소득(근로소득+사업소득+재산소득)과 사적 이전소득(퇴직금, 개인연금 등)을 합한 소득을 말한다.

그런데 가처분 소득을 기준으로 산출한 노인 빈곤율은 우리나라가 49.6%로 다른 OECD 회원국들에 비해 매우 높다. 가처분 소득이란 시장 소득과 공적 이전 소득(공적연금 등)을 합한 것에서 비소비지출(소득세, 사회보험료 등)을 뺀 소득을 말한다.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에 있어 노인층에게 주어지는 공적 이전 소득이 노인 빈곤율을 현저하게 낮추고 있는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공적 이전 소득이 작아서 노인 빈곤율을 별로 낮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가난한(가처분 소득이 아주 작은) 노인들이 무척 많다. 그 이유는 일하는 노인들이 적어서가 아니라 노인들에게 주어지는 공적 이전 소득이 작기 때문이다.

이 자료들은 노인에 대한 공적 이전 소득을 늘리는  길이 우리 사회의 노인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특히 노인 인구 비율이 현저하게 높은 호남 지방에는 노인층에 대한 공적 이전 소득의 확대가 절실하다고 판단된다. (윤영민, 2015/12/30)

교육을 다시 생각한다

 

교육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것이 수행해야하는 사회적 역할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교육(혹은 공공의 교육 기관)은 네 가지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 학생들의 인지 능력과 인성(품)을 높임으로써 그것이 가능해 진다. 둘째, 삶의 기회(life chances)를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 사회적 상승 이동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셋째, 민주주의를 실천한 시민(citizens)을 육성해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시민 육성은 근대적 공민교육이 분명하게 지향하는 목표이다. 넷째,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해야 한다. 학교, 특히 대학은 국가 경제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창조적인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교육 제도와 현실을 평가하고 대안을 수립할 때는 이 네 가지 측면을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 삶의 질 향상

학교에서는 무엇보다도 독립된 인격체로서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skills), 철학, 그리고 태도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점이 교육의 본원적 기능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학교 교육이 글을 읽고 쓰고 숫자를 계산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지능력을 넘어서 창의력이나 종합적 사고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학교 교육이 현실 문제의 해결 능력을 길러주는 지는 더욱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시험문제를 푸는 능력은 높아지는데,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동료와의 협력을 통해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철학과 태도 교육은 더욱 빈곤하다. 학교 교육이 경쟁심만 부추기고 각자 도생 능력만 높일 뿐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성품, 그리고 동료나 이웃과 협력하는 기술과 능력을 길러주는데는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학 교육비는 물론이고 중고등학교 교육비가 과도하게 커서 학생 본인과 부양자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트리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녀의 삶의 질을 확보해 주기 위해서 부모의 삶의 질을 떨어트려야 하는 상황이다. 자녀의 미래가 부모의 현재를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 삶의 기회 향상

현대 사회에서 학교는 사회적 지위의 변화나 재생산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낮은 사회 계층에게는 사회적 상승 이동의 통로가 되고, 특수층에게는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수단이 된다. 학교가 지위 대물림 수단이 되는 현상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학교가 계층 상승 이동의 관문이 되도록 사회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 교육은 “개천에서 용이 나게” 했다. 그러나 교육제도가 점차 사회적 상승이동의 통로 대신에 사회적 지위 재생산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민은 물론이고 웬만한 중산층마저 감당하기 어려운 교육비(사교육비 포함), 특수층 자녀에게 유리한 대학입시제도 등이 계층을 뛰어넘는 경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 민주시민 육성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정치제도이다.  학교는 민주주의 교육장이어야 한다.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과 태도를 교육할 뿐 아니라 비판, 토론, 협의, 합의 등 실제 민주적 절차와 관행이 학생들의 몸에 충분히 밸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또한 학교는 서로 다른 계층간의 교류가 일어나는 공간이어야 한다. 서로 다른 계층 출신의 아이들이 만나서 서로 이해, 공감, 협력하는 기회를 충분히 가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민족이 하나의 민주적 공동체로 유지될 수 있다.

민주주의 교육장으로서의 학교가 지닌 역할은 특히 취약하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중대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교육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 국가경쟁력 제고

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국가간, 그리고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글로벌한 경제 환경에서 교육은 국가 경쟁력의 제고라는 또 다른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특히 대학은 연구를 통해서 새로운 기술개발에 앞장 서야 하고 국가 경제가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을 배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이점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의 ‘추격 경제’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하는데 우리 교육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우리 교육은 인지능력 제고, 경쟁심 고취, 그리고 인내심과 순응적 태도를 배양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러한 교육이 ‘선도 경제’에서도 충분할 지는 의문이다.

21세기의 선도 경제에서 필요한 창의, 공감, 그리고 협력 능력을 기르는데는 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며, 대학에서의 창의적인 연구도 투입 대비 효과가 대단히 낮은 실정이다.

우리 교육제도를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윤영민, 2015/12/28)

우리가 살기 힘든 진짜 이유

  1. 우리 나라의 경제발전 수준이 낮지 않다. 물가를 반영한 우리 나라의 실질 국민소득(PPP GDP 35,400달러)은 일본, 영국, 뉴질랜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과 같은 수준이다.
  2. 우리 나라의 전체적인 소득 불평등 수준이 나쁘지 않다. 지니계수가 3.2 정도로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캐나다와 비슷한 수준이다.
  3. 우리의 가계지출구조가 취약하다. 2015년 유럽연합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 나라 가구의 가계비 지출 중 교육비(6.7%)와 통신비(4.3%) 비율이 매우 높다. 아마도 학생 자녀를 둔 대부분의 가정은 실제로 대부분 그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상당히 많은 가정이 주택구입으로 인한 채무에 대한 원리금 상환 부담을 안고 살고 있다.
  4. 사회보장 제도가 취약하여 삶의 불확실성이 대단히 크다. 2014년 GDP 대비 복지 지출이 10.4%로 세계 주요국가 20개국 중 멕시코(7.9%) 다음으로 낮다. 참고로 프랑스는 31.9%, 일본은 23.1%, 미국은 19.2%이다. 2011년 기준 노인 빈곤율은 48.6%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2012년 기준 45.2%로, OECD 국가 평균인 65.9%에 훨씬 못미친다.
  5. 우리 나라는 개인(혹은 가족)이 삶의 무거운 짐을 대부분 져야한다. 교육, 사회적 성취, 취업, 주거, 기초 생활, 노후, 노부모 부양 등의 부담이 개인에게 주어진다. 국가나 사회 공동체의 역할이 너무 작다.
  6. 사람들이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학교 시험, 대학 입시, 취업, 승진, 사업 등 인생 동안 끝없는 경쟁에 시달린다.

이러한 현실은 국민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 국가가 가져야할 정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시사한다. (윤영민, 2015/12/27)

어른

김수환_법정

어른이 되면 한 가지를 얻고 열 가지를 잃습니다.

어른은 함부로 속 마음을 내보일 수 없습니다. 항상 온화한 모습으로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한 사회의 평화는 어른들의 온화함 속에서 나옵니다.

어른은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죽여야 합니다. 좋은 것은 주위 사람들이 먼저 갖도록 해야 합니다. 어른이 먼저 자기 잇속을 챙기면 사회는 아귀다툼에 빠집니다.

어른은 늘 남을 배려해야 합니다. 항상 주위 사람들의 형편을 살펴야 합니다. 어른이 이웃들의 통곡을 베고 편안히 잠들 수는 없습니다.

어른은 늘 베풀어야 합니다. 어른 한 명이 지갑을 열면 가난한 이웃 열 명에게 희망이 생깁니다.

어른은 당산나무처럼 든든해야 합니다. 죽는 소리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이웃들이 기댈 곳이 있습니다.

어른은 이웃을 넓게 포용해야 합니다. 어른이 당파성을 갖게 되면 사회가 평화를 구하기 어렵게 됩니다.

어른은 정의를 쫓아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와 사회의 기강이 바로 섭니다.

어른은 생색을 내서는 안됩니다. 선행을 하고서 남이 자신을 알아주길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른은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쉽게 부화뇌동해서는 안됩니다. 어른이 흔들리면 사회가 좌표를 잃게 됩니다.

어른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사라져야 합니다. 세상 것에 집착하면 마지막이 추해집니다.

진정한 바보만이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른은 가진 것 다 내어놓고, 잘 해야 존경을 얻을 뿐이지요.

그래도 누군가가 그 어려운 “어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너무 각박해요.

아, 내 한몸 편하자는 속셈인가. (윤영민, FB 2015/08/27)

얼마나 더 부유해져야할까요?

gdppp

우리 나라만큼 안과 밖의 평가가 크게 다른 나라도 드뭅니다. 아마도 이웃 나라인 일본 정도만 비슷할 겁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는데, 밖에서 우리 나라를 보는 사람들은 우리가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의 CIA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정보력은 신뢰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내놓는 통계를 인용하겠습니다.

CIA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GDP 규모는 2014년 현재 세계 195개국 중 13위입니다. 호주, 스페인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구매력으로 환산한 1인당 GDP는 표에서 보듯이 그보다 좀 많이 떨어져서 46위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일본, 영국이 우리보다 약간 높은 각각 43위, 44위이고, 뉴질랜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스페인은 우리나라보다 아래입니다.

분명히 대한민국은 부유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가 잘 사는 나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실 그와는 반대입니다. 우리는 크게 잘 못사는 나라입니다.

지나친 경제 집중과 빈부격차, 취약한 복지제도, 높은 청년 실업, 과도한 개인주의와 배금주의, 치열한 경쟁, 각박한 인심, 엄청난 스트레스….거기에다 부패한 정치, 무책임한 행정까지.

이 문제들 중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정치인들과 일부 언론은 우리가 아직 더 경제적으로 부유해져야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합니다. 저는 바로 그점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부자가 되고도, 사유는 ‘결핍의 독재(tyranny of scarcity)’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이 우리를 더 나은 사회로 데려다 줄 것이라는 신화에 포박되어, “우리도 잘 살아보자”, “배부른 소리 하지마라”라는 주장에 아직도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기 어려운 것은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각박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주의, 배금주의, 경쟁 지상주의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만들 수 있는 모든 자원과 도구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더 이상 ‘결핍의 독재’가 우리를 지배하게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으면 설령 우리 나라가 1인당 GDP 1위 국가가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가난할 것입니다.

개인주의에 탈출구는 없습니다. (윤영민, FB 2015/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