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김수환_법정

어른이 되면 한 가지를 얻고 열 가지를 잃습니다.

어른은 함부로 속 마음을 내보일 수 없습니다. 항상 온화한 모습으로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한 사회의 평화는 어른들의 온화함 속에서 나옵니다.

어른은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죽여야 합니다. 좋은 것은 주위 사람들이 먼저 갖도록 해야 합니다. 어른이 먼저 자기 잇속을 챙기면 사회는 아귀다툼에 빠집니다.

어른은 늘 남을 배려해야 합니다. 항상 주위 사람들의 형편을 살펴야 합니다. 어른이 이웃들의 통곡을 베고 편안히 잠들 수는 없습니다.

어른은 늘 베풀어야 합니다. 어른 한 명이 지갑을 열면 가난한 이웃 열 명에게 희망이 생깁니다.

어른은 당산나무처럼 든든해야 합니다. 죽는 소리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이웃들이 기댈 곳이 있습니다.

어른은 이웃을 넓게 포용해야 합니다. 어른이 당파성을 갖게 되면 사회가 평화를 구하기 어렵게 됩니다.

어른은 정의를 쫓아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와 사회의 기강이 바로 섭니다.

어른은 생색을 내서는 안됩니다. 선행을 하고서 남이 자신을 알아주길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른은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쉽게 부화뇌동해서는 안됩니다. 어른이 흔들리면 사회가 좌표를 잃게 됩니다.

어른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사라져야 합니다. 세상 것에 집착하면 마지막이 추해집니다.

진정한 바보만이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른은 가진 것 다 내어놓고, 잘 해야 존경을 얻을 뿐이지요.

그래도 누군가가 그 어려운 “어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너무 각박해요.

아, 내 한몸 편하자는 속셈인가. (윤영민, FB 2015/08/27)

얼마나 더 부유해져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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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만큼 안과 밖의 평가가 크게 다른 나라도 드뭅니다. 아마도 이웃 나라인 일본 정도만 비슷할 겁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는데, 밖에서 우리 나라를 보는 사람들은 우리가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의 CIA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정보력은 신뢰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내놓는 통계를 인용하겠습니다.

CIA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GDP 규모는 2014년 현재 세계 195개국 중 13위입니다. 호주, 스페인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구매력으로 환산한 1인당 GDP는 표에서 보듯이 그보다 좀 많이 떨어져서 46위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일본, 영국이 우리보다 약간 높은 각각 43위, 44위이고, 뉴질랜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스페인은 우리나라보다 아래입니다.

분명히 대한민국은 부유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가 잘 사는 나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실 그와는 반대입니다. 우리는 크게 잘 못사는 나라입니다.

지나친 경제 집중과 빈부격차, 취약한 복지제도, 높은 청년 실업, 과도한 개인주의와 배금주의, 치열한 경쟁, 각박한 인심, 엄청난 스트레스….거기에다 부패한 정치, 무책임한 행정까지.

이 문제들 중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정치인들과 일부 언론은 우리가 아직 더 경제적으로 부유해져야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합니다. 저는 바로 그점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부자가 되고도, 사유는 ‘결핍의 독재(tyranny of scarcity)’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이 우리를 더 나은 사회로 데려다 줄 것이라는 신화에 포박되어, “우리도 잘 살아보자”, “배부른 소리 하지마라”라는 주장에 아직도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기 어려운 것은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각박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주의, 배금주의, 경쟁 지상주의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만들 수 있는 모든 자원과 도구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더 이상 ‘결핍의 독재’가 우리를 지배하게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으면 설령 우리 나라가 1인당 GDP 1위 국가가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가난할 것입니다.

개인주의에 탈출구는 없습니다. (윤영민, FB 2015/10/04)

인문학의 실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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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출간된 책에서 Fareed Zakaria가 인문 교육을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가진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입니다.

그 책을 보면 인문학의 위기가 우리 나라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네요. 학생과 학부모는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얻는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공학이나 경영학과 같은 실용적인 전공을 선호하고, 심지어 대통령이나 주지사와 같은 정치 지도자들마저도 인문학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기술 교육에 대한 지원을 늘이겠다고 나서고 있답니다.

그러한 분위기에 대해 자카리아가 반기를 들고 나섰습니다. 그는 미국이 계속 세계를 리드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미국 대학교육의 강점인 인문학 교육을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일류 기업들이 인문학 교육을 잘 받은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책의 제3장에서 그는 인문 교육(그는 인문학에 문학, 역사, 철학, 종교, 인류학 뿐 아니라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과학도 포함합니다)의 혜택을, 쓰기(how to write), 말하기(how to speak), 배우는 방법(how to learn)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결국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지식을 획득하는 기술, 두 가지를 말하는 것이지요.

저는 자카리아의 주장에 무척 공감합니다. 요즘과 같은 인터넷 세상에 쓸 줄 모르는 사람, 말할 줄 모르는 사람, 정보와 지식을 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여러분 주위에는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정교하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가요? 그 정도야 앞으로 ‘구글신’이나 ‘빅 데이터’ 요술 방망이가 해결해 줄 것이라고요?

십수년 전 어떤 수업에서 저는,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쓸 줄만 알면 밥먹고 사는 걱정을 안해도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 멀티미디어 시대가 되었으니 워딩을 좀 바꾸겠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줄만 알면 밥먹고 사는 걱정을 안해도 될 것이다.”

저는 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과 같은 기술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합니다. 그들에게 기본적인 공학적 소양을 갖추라고 강조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공학도가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21세기의 인문학은 문학, 역사학, 철학, 예술, 심리학, 사회학, 과학, 그리고 공학적 소양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고도의 기술기반 사회에서 공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 책을 읽어주는 자카리아의 목소리에 인디언 액센트가 남아 있네요. 그도 인도 출신 미국인입니다.

그 책에 인용된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다음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은 테크놀로지인 것만큼, 심리학이며 사회학입니다.” (윤영민, FB 2015/04/07)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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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탐구에는 이미 그 당시에도 돈이 들었다. 당시의 위대한 예술 보호자들, 즉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왕들, 페르가몬의 아탈리아 사람들, 그 외 다른 통치자들이 학문 연구를 후원했다. 그리하여 많은 학자들이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과 같은 대형 교육 및 연구 시설에서 여유있게 작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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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들은 학문을 장려할 때 응용 학문이 아닌 순수 학문에 관심을 쏟았다(<알렉산드리아>, 160-161).”

인류는 진보하는가? 역사를 읽으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을 깨닫곤 한다. 기원전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보다 21세기 서울의 정치와 대학이 더 나은 것 같지 않다. (윤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