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마을이 되려면…

나이 든 사람들에게 마을이 살기 좋으려면, 아름다운 경관, 깨끗한 환경, 편리한 교통, 훌륭한 의료시설, 좋은 이웃이라는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마을을 찾기는 무척 어렵다.

사실 그 중 아름다운 경관과 깨끗한 환경을 갖추었으면서 동시에 교통이 편리한 곳은 드물다. 교통이 좋으면 공업이나 상업 시설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명과 자연을 조화시키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인들의 삶의 질을 위해서는 의료 시설이 대단히 중요하다. 대중 교통을 이용해서 좋은 병원이나 의원에 손쉽게 갈 수 있어야 한다. 응급 상황에서는 5-10분 이내에 앰블런스가 도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 조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면 그것은 좋은 이웃이리라. 다정하고 친절한 이웃이 있으면 매일매일의 생활이 즐겁고 비상시에는 긴급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좋은 이웃이며, 깨끗한 환경, 그리고 심지어 의료시설까지도 두 가지 숨은 조건에 의지한다. 하나는 훌륭한 리더이고, 다른 하나는 커뮤니티를 위한 자신의 애정과 노력이다. 그런데 훌륭한 리더는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과 노력을 끌어낼 수 있고, 환경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유지하며, 심지어 교통과 의료시설의 접근성을 높일 수도 있다.

결국 살기좋은 마을이 되려면 훌륭한 리더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리더는 변화를 일으킨다. 멋진 비전을 제시하고,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며, 사람의 행동을 변하게 하고, 나아가 이웃들 사이에는 화평을, 마을에는 번영을 가져온다.

우리 나라의 노인은 얼마나, 왜 가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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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삶의 어려움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는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그냥 ‘노인 빈곤율’이라고도 함)이다.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이렇게 계산된다. 한 사회의 65세 이상 노인을 연간소득 기준으로 한 줄로 세웠을 때, 딱 가운데 해당되는 소득(중위 소득이라고 함)의 50% 미만인 계층이 65세 노인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9.6%로, 위 표에서 보듯이 OECD 회원국 중 단연 1등이다. OECD 국가 평균이 12.6%이니, 그것의 거의 네 배나 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18-25세 인구층이나 25-65세 인구층에서는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이 OECD 국가 평균보다 낮다. 이는 우리나라에 가난한 사람들이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많은 편이 아닌데 유독 노인층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왜 그럴까? 다음 표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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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소득을 기준으로 산출한 노인 빈곤율을 보면 우리나라가 61.3%로 다른 OECD 회원국들에 비해 다소 낮은 편이다. 시장소득이란 요소 소득(근로소득+사업소득+재산소득)과 사적 이전소득(퇴직금, 개인연금 등)을 합한 소득을 말한다.

그런데 가처분 소득을 기준으로 산출한 노인 빈곤율은 우리나라가 49.6%로 다른 OECD 회원국들에 비해 매우 높다. 가처분 소득이란 시장 소득과 공적 이전 소득(공적연금 등)을 합한 것에서 비소비지출(소득세, 사회보험료 등)을 뺀 소득을 말한다.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에 있어 노인층에게 주어지는 공적 이전 소득이 노인 빈곤율을 현저하게 낮추고 있는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공적 이전 소득이 작아서 노인 빈곤율을 별로 낮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가난한(가처분 소득이 아주 작은) 노인들이 무척 많다. 그 이유는 일하는 노인들이 적어서가 아니라 노인들에게 주어지는 공적 이전 소득이 작기 때문이다.

이 자료들은 노인에 대한 공적 이전 소득을 늘리는  길이 우리 사회의 노인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특히 노인 인구 비율이 현저하게 높은 호남 지방에는 노인층에 대한 공적 이전 소득의 확대가 절실하다고 판단된다. (윤영민, 2015/12/30)

교육을 다시 생각한다

 

교육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것이 수행해야하는 사회적 역할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교육(혹은 공공의 교육 기관)은 네 가지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 학생들의 인지 능력과 인성(품)을 높임으로써 그것이 가능해 진다. 둘째, 삶의 기회(life chances)를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 사회적 상승 이동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셋째, 민주주의를 실천한 시민(citizens)을 육성해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시민 육성은 근대적 공민교육이 분명하게 지향하는 목표이다. 넷째,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해야 한다. 학교, 특히 대학은 국가 경제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창조적인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교육 제도와 현실을 평가하고 대안을 수립할 때는 이 네 가지 측면을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 삶의 질 향상

학교에서는 무엇보다도 독립된 인격체로서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skills), 철학, 그리고 태도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점이 교육의 본원적 기능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학교 교육이 글을 읽고 쓰고 숫자를 계산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지능력을 넘어서 창의력이나 종합적 사고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학교 교육이 현실 문제의 해결 능력을 길러주는 지는 더욱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시험문제를 푸는 능력은 높아지는데,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동료와의 협력을 통해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철학과 태도 교육은 더욱 빈곤하다. 학교 교육이 경쟁심만 부추기고 각자 도생 능력만 높일 뿐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성품, 그리고 동료나 이웃과 협력하는 기술과 능력을 길러주는데는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학 교육비는 물론이고 중고등학교 교육비가 과도하게 커서 학생 본인과 부양자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트리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녀의 삶의 질을 확보해 주기 위해서 부모의 삶의 질을 떨어트려야 하는 상황이다. 자녀의 미래가 부모의 현재를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 삶의 기회 향상

현대 사회에서 학교는 사회적 지위의 변화나 재생산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낮은 사회 계층에게는 사회적 상승 이동의 통로가 되고, 특수층에게는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수단이 된다. 학교가 지위 대물림 수단이 되는 현상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학교가 계층 상승 이동의 관문이 되도록 사회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 교육은 “개천에서 용이 나게” 했다. 그러나 교육제도가 점차 사회적 상승이동의 통로 대신에 사회적 지위 재생산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민은 물론이고 웬만한 중산층마저 감당하기 어려운 교육비(사교육비 포함), 특수층 자녀에게 유리한 대학입시제도 등이 계층을 뛰어넘는 경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 민주시민 육성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정치제도이다.  학교는 민주주의 교육장이어야 한다.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과 태도를 교육할 뿐 아니라 비판, 토론, 협의, 합의 등 실제 민주적 절차와 관행이 학생들의 몸에 충분히 밸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또한 학교는 서로 다른 계층간의 교류가 일어나는 공간이어야 한다. 서로 다른 계층 출신의 아이들이 만나서 서로 이해, 공감, 협력하는 기회를 충분히 가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민족이 하나의 민주적 공동체로 유지될 수 있다.

민주주의 교육장으로서의 학교가 지닌 역할은 특히 취약하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중대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교육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 국가경쟁력 제고

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국가간, 그리고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글로벌한 경제 환경에서 교육은 국가 경쟁력의 제고라는 또 다른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특히 대학은 연구를 통해서 새로운 기술개발에 앞장 서야 하고 국가 경제가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을 배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이점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의 ‘추격 경제’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하는데 우리 교육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우리 교육은 인지능력 제고, 경쟁심 고취, 그리고 인내심과 순응적 태도를 배양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러한 교육이 ‘선도 경제’에서도 충분할 지는 의문이다.

21세기의 선도 경제에서 필요한 창의, 공감, 그리고 협력 능력을 기르는데는 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며, 대학에서의 창의적인 연구도 투입 대비 효과가 대단히 낮은 실정이다.

우리 교육제도를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윤영민, 2015/12/28)

우리가 살기 힘든 진짜 이유

  1. 우리 나라의 경제발전 수준이 낮지 않다. 물가를 반영한 우리 나라의 실질 국민소득(PPP GDP 35,400달러)은 일본, 영국, 뉴질랜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과 같은 수준이다.
  2. 우리 나라의 전체적인 소득 불평등 수준이 나쁘지 않다. 지니계수가 3.2 정도로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캐나다와 비슷한 수준이다.
  3. 우리의 가계지출구조가 취약하다. 2015년 유럽연합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 나라 가구의 가계비 지출 중 교육비(6.7%)와 통신비(4.3%) 비율이 매우 높다. 아마도 학생 자녀를 둔 대부분의 가정은 실제로 대부분 그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상당히 많은 가정이 주택구입으로 인한 채무에 대한 원리금 상환 부담을 안고 살고 있다.
  4. 사회보장 제도가 취약하여 삶의 불확실성이 대단히 크다. 2014년 GDP 대비 복지 지출이 10.4%로 세계 주요국가 20개국 중 멕시코(7.9%) 다음으로 낮다. 참고로 프랑스는 31.9%, 일본은 23.1%, 미국은 19.2%이다. 2011년 기준 노인 빈곤율은 48.6%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2012년 기준 45.2%로, OECD 국가 평균인 65.9%에 훨씬 못미친다.
  5. 우리 나라는 개인(혹은 가족)이 삶의 무거운 짐을 대부분 져야한다. 교육, 사회적 성취, 취업, 주거, 기초 생활, 노후, 노부모 부양 등의 부담이 개인에게 주어진다. 국가나 사회 공동체의 역할이 너무 작다.
  6. 사람들이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학교 시험, 대학 입시, 취업, 승진, 사업 등 인생 동안 끝없는 경쟁에 시달린다.

이러한 현실은 국민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 국가가 가져야할 정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시사한다. (윤영민, 2015/12/27)

어른

김수환_법정

어른이 되면 한 가지를 얻고 열 가지를 잃습니다.

어른은 함부로 속 마음을 내보일 수 없습니다. 항상 온화한 모습으로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한 사회의 평화는 어른들의 온화함 속에서 나옵니다.

어른은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죽여야 합니다. 좋은 것은 주위 사람들이 먼저 갖도록 해야 합니다. 어른이 먼저 자기 잇속을 챙기면 사회는 아귀다툼에 빠집니다.

어른은 늘 남을 배려해야 합니다. 항상 주위 사람들의 형편을 살펴야 합니다. 어른이 이웃들의 통곡을 베고 편안히 잠들 수는 없습니다.

어른은 늘 베풀어야 합니다. 어른 한 명이 지갑을 열면 가난한 이웃 열 명에게 희망이 생깁니다.

어른은 당산나무처럼 든든해야 합니다. 죽는 소리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이웃들이 기댈 곳이 있습니다.

어른은 이웃을 넓게 포용해야 합니다. 어른이 당파성을 갖게 되면 사회가 평화를 구하기 어렵게 됩니다.

어른은 정의를 쫓아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와 사회의 기강이 바로 섭니다.

어른은 생색을 내서는 안됩니다. 선행을 하고서 남이 자신을 알아주길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른은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쉽게 부화뇌동해서는 안됩니다. 어른이 흔들리면 사회가 좌표를 잃게 됩니다.

어른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사라져야 합니다. 세상 것에 집착하면 마지막이 추해집니다.

진정한 바보만이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른은 가진 것 다 내어놓고, 잘 해야 존경을 얻을 뿐이지요.

그래도 누군가가 그 어려운 “어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너무 각박해요.

아, 내 한몸 편하자는 속셈인가. (윤영민, FB 2015/08/27)

얼마나 더 부유해져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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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만큼 안과 밖의 평가가 크게 다른 나라도 드뭅니다. 아마도 이웃 나라인 일본 정도만 비슷할 겁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는데, 밖에서 우리 나라를 보는 사람들은 우리가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의 CIA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정보력은 신뢰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내놓는 통계를 인용하겠습니다.

CIA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GDP 규모는 2014년 현재 세계 195개국 중 13위입니다. 호주, 스페인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구매력으로 환산한 1인당 GDP는 표에서 보듯이 그보다 좀 많이 떨어져서 46위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일본, 영국이 우리보다 약간 높은 각각 43위, 44위이고, 뉴질랜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스페인은 우리나라보다 아래입니다.

분명히 대한민국은 부유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가 잘 사는 나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실 그와는 반대입니다. 우리는 크게 잘 못사는 나라입니다.

지나친 경제 집중과 빈부격차, 취약한 복지제도, 높은 청년 실업, 과도한 개인주의와 배금주의, 치열한 경쟁, 각박한 인심, 엄청난 스트레스….거기에다 부패한 정치, 무책임한 행정까지.

이 문제들 중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정치인들과 일부 언론은 우리가 아직 더 경제적으로 부유해져야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합니다. 저는 바로 그점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부자가 되고도, 사유는 ‘결핍의 독재(tyranny of scarcity)’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이 우리를 더 나은 사회로 데려다 줄 것이라는 신화에 포박되어, “우리도 잘 살아보자”, “배부른 소리 하지마라”라는 주장에 아직도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기 어려운 것은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각박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주의, 배금주의, 경쟁 지상주의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만들 수 있는 모든 자원과 도구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더 이상 ‘결핍의 독재’가 우리를 지배하게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으면 설령 우리 나라가 1인당 GDP 1위 국가가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가난할 것입니다.

개인주의에 탈출구는 없습니다. (윤영민, FB 2015/10/04)

인문학의 실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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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출간된 책에서 Fareed Zakaria가 인문 교육을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가진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입니다.

그 책을 보면 인문학의 위기가 우리 나라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네요. 학생과 학부모는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얻는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공학이나 경영학과 같은 실용적인 전공을 선호하고, 심지어 대통령이나 주지사와 같은 정치 지도자들마저도 인문학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기술 교육에 대한 지원을 늘이겠다고 나서고 있답니다.

그러한 분위기에 대해 자카리아가 반기를 들고 나섰습니다. 그는 미국이 계속 세계를 리드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미국 대학교육의 강점인 인문학 교육을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일류 기업들이 인문학 교육을 잘 받은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책의 제3장에서 그는 인문 교육(그는 인문학에 문학, 역사, 철학, 종교, 인류학 뿐 아니라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과학도 포함합니다)의 혜택을, 쓰기(how to write), 말하기(how to speak), 배우는 방법(how to learn)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결국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지식을 획득하는 기술, 두 가지를 말하는 것이지요.

저는 자카리아의 주장에 무척 공감합니다. 요즘과 같은 인터넷 세상에 쓸 줄 모르는 사람, 말할 줄 모르는 사람, 정보와 지식을 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여러분 주위에는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정교하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가요? 그 정도야 앞으로 ‘구글신’이나 ‘빅 데이터’ 요술 방망이가 해결해 줄 것이라고요?

십수년 전 어떤 수업에서 저는,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쓸 줄만 알면 밥먹고 사는 걱정을 안해도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 멀티미디어 시대가 되었으니 워딩을 좀 바꾸겠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줄만 알면 밥먹고 사는 걱정을 안해도 될 것이다.”

저는 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과 같은 기술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합니다. 그들에게 기본적인 공학적 소양을 갖추라고 강조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공학도가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21세기의 인문학은 문학, 역사학, 철학, 예술, 심리학, 사회학, 과학, 그리고 공학적 소양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고도의 기술기반 사회에서 공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 책을 읽어주는 자카리아의 목소리에 인디언 액센트가 남아 있네요. 그도 인도 출신 미국인입니다.

그 책에 인용된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다음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은 테크놀로지인 것만큼, 심리학이며 사회학입니다.” (윤영민, FB 2015/04/07)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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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탐구에는 이미 그 당시에도 돈이 들었다. 당시의 위대한 예술 보호자들, 즉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왕들, 페르가몬의 아탈리아 사람들, 그 외 다른 통치자들이 학문 연구를 후원했다. 그리하여 많은 학자들이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과 같은 대형 교육 및 연구 시설에서 여유있게 작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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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들은 학문을 장려할 때 응용 학문이 아닌 순수 학문에 관심을 쏟았다(<알렉산드리아>, 160-161).”

인류는 진보하는가? 역사를 읽으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을 깨닫곤 한다. 기원전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보다 21세기 서울의 정치와 대학이 더 나은 것 같지 않다. (윤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