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연주의론 메모(1): 특이점 그리고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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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2007.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뛰어날 뿐 아니라 담대하다. 그는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천문, 심리, 의학, 전산학 등의 첨단 연구를 종횡무진 인용할 뿐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주저없이 명쾌하게 제시한다. 사실 보수적이고 분절적인 학계에서는 그 두 가지 모두 위험천만한 행동인데 말이다.

2005년 출간 이래 <특이점이 온다>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10여년 동안에 출판된 책 중 가장 심대한 사회적 영향을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많은 찬사와 비판이 쏟아졌으며, 그 책으로 인해 Singularity University라는 초유의 기관이 설립되고 첨단기업들의 AI 연구가 크게 활성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글판이 10년 동안 9쇄나 인쇄되었으니 그 영향이 작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내용이 쉽지 않은데다 840쪽이나 되는 책을 독자들이 얼마나 충실히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열흘 전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특이점(singularity)을 언급하면서 내년으로 예정된 은퇴를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10년 정도 특이점의 도래에 대비한 사업을 주도하고 물러나겠다는 것이었다.

책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가득하다.  하지만 저자의 분석 모형은 몇 가지 요소로 요약된다:

1) 인간 중심: 인간은 우주 진화의 정점. 인간은 21세기 중엽까지는 첨단 과학기술로 진화의 새로운 단계를 열 것이고, 궁극적으로 우주 전체를 지능적 존재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2) 지능 제일: 우주를 지배하는 최고의 힘은 지능(intelligence). 기억, 분석, 추론, 상상, 사랑, 공감 등은 모두 지능의 측면들이다. 진화는 보다 강력한 지능을 추구하는 단일한 경쟁이다. 지능은 인류와 지구가 직면한 문제, 나아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에 해답을 줄 것이다.

3) 기술 진화: 지능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집약되며, 과학기술의 발전은 가속적이다. 21세기는 GNR(Genetics, Nano technology, Robotics) 혁명의 무대. 2020년~2030년 정도이면 유전학은 질병과 노화를 대부분 해결하며 발전의 정점에 도달할 것이다. 2030~2040년에는 나노기술이 생물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전학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몸과 뇌, 그리고 인간이 사는 세상을 분자 수준으로 정교하게 재설계하고 재조립하게 해 줄 것이다. 가장 강력한 혁신은 로봇공학에 의해 실현된다. 인간은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창조할 것이며 그 이후의 진화는 인공지능의 몫이다. 2040년~2050년에 인류는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한다. 생물과 비생물의 구분, 인간과 로봇의 구분,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사라지며, 인간에 대한 해독이 끝나고 인간은 전혀 새로운 존재양식을 갖게 된다. 특이점 이후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 신체 구성, 수명, 쾌락 수단 등을 자유롭게 선택하게 된다.

4) 유물론: 생명의 본질은 정보이며, 생명체는 정보를 처리하는 일종의 컴퓨터이다. 몇 가지 중대한 혁신이 이루어지면서 박테리아 수준의 생물체가 탄생했고, 생물체는 수십억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 고도로 지능적인 인간에 도달했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이다.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스스로 자신을 뛰어넘는 존재로 진화한다. 과학기술 덕분에 질병, 노화,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면서 신과 종교는 불필요해진다. 죽음이 더 이상 미화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은 예방될 수 있는 정보의 손실일 뿐이다.

<특이점이 온다>는 S.F.도 아니고 철학서도 아니다. 과학자이며, 발명가이고, 사업가인 한 천재가 제시한 미래 예측이다.  그리고 그것은 21세기의 인류 문명을 이끄는 기업과 기관들의 사업 로드맵에 반영되고 있다. 사실 그점이 이 책을 다른 미래전망서와 구분짓고 있다. 그 책은 단지 미래를 예측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이점의 구체적인 범위와 도래 시점은 논란의 대상이고, 그의 예측은 맞는 것만큼이나 빗나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특이점의 도래를 완전히 부정할 수 있을까. 과학기술은 커즈와일이 예견한 방향으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그에게서 영감을 받은 사업가들은 새로운 시대를 선점하기 위해 분주하다.

특이점은 올 것이다. 그가 묘사한 것처럼은 아닐지라도. 그가 얼마나 정확히 예측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대전환–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던–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예비할 것인가이다.

나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적극 수용하지만 그의 기계론적 우주관–그것은 다수의 과학자들이 암묵적으로 취하고 있는 우주관이기도 하다–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가. 얘기해 보자. (2016/07/04)

식물은 인간의 소통 상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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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 행성B 출간

사람이 꽃이나 나무와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궁금한 점은 어떻게, 얼마나 깊이 있는, 그리고 양방향적 의사소통이 가능한가였다. 이 책은 그러한 궁금증을 푸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인간의 관계망에 식물을 포함해야 한다는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담고 있다.

“지능(intelligence)이 문제해결능력을 의미한다”면(187), 식물은 단연 높은 지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5억년 동안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고, 영토를 확장하며, 후손을 퍼뜨리는 데 있어 식물은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단지 ‘자동반응’ 덕분이라는 해석은 설득력이 없다. 식물이 고도의 판단, 구상, 대처에 필요한 지적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는 설명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식물은 고정상태에서 생존하기 위해 다양한 능력을 발전시켰다. 특히 근단(뿌리의 말단)은 고도의 지각, 판단, 명령을 시행하는 일종의 군집지성(swarm intelligence)으로 동물의 두뇌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 식물은 동물과 같은 장기를 지니는 대신에 신체 전체에 기능을 분산시키는 모듈식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움직임이 워낙 서서히 일어난다는 점에서 인간과 크게 다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식물을 마치 무생물처럼 인식한다.  그러나 이 책은 사실 식물이 고도로 지적인 행동을 하고 있음을 풍부한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보여주고 있다.

인간처럼 생기지 않고, 인간처럼 사고하지 않는다고 지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우리가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식물은 우리와 함께 즐겁게 소통하고 공존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꽃과 나무를 마치 무생물인 것처럼 대하는 사상과 태도가, 지적인 생명체로서 꽃과 나무를 대하는 그것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가. 성장, 산업 발전, 풍요의 성취?

지구에서 바이오매스(biomass)의 99.7%를 점하는 식물을 무시하고 약탈의 대상으로만 보는 한 생명존중의 사상과 삶은 인간 중심의 오만과 자기 모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인류에게 견디기 어려운 환경적 재앙이 될 것이다.

커피 그라인더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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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ssenhaus La Paz mill

18년 전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커피 그라인더를 퇴역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2년 전 일본제 Kalita를 구해서 몇 번 사용했으나, 뚜껑이 없어 원두가 튀어나오고, 커피분 담는 상자가 너무 작아 분이 넘치는 불편이 있어 사용을 포기했다.

최근에 손이 아파서 커피 갈기가 어려워 자동 그라인더를 구입했다. 편하기는 한 데 커피 맛이 현저히 떨어져서 결국 다시 수동 그라인더로 돌아왔다.

지난 금요일(6/3) 남대문 시장에 가서 독일 자센하우스 라파즈 밀을 구했다. 수입상가(옛날 도깨비시장) 지하 1층 161호 우신상사(02-319-5770)에서 24만원 달라는 것을 흥정을 해서 겨우 2만원 깍고 현찰로 구입했다.

상품이 격조가 있다. 뚜껑은 황동, 내부 부품은 7천도의 고열에서 생산된 탄소강철, 목재 부분은 너도밤나무라고 한다. 자센하우스 커피 그라인더 중 가장 고가 제품이다.

몇 번 사용했는데 아직 손에 익지 않다. 원두가 잘 흘러내려가지 않아 공회전이 자주 발생한다. 잘 되다 안되다 하니 며칠 더 사용해보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환을 해야할 듯 싶다.

커피 맛은 훌륭하다. 라파즈 밀은 미분이 많이 나와 쓴 맛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우리에게 그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사람도 물건도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가야한다. 지난 번 독일산 그라인더를 18년 사용했으니 이번 제품도 그렇게 오랜 사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내 생애 마지막 커피그라인더가 될 수도 있겠다.

첫 나리꽃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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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나리꽃이 피었다. 작년에는 태풍에 견디지 못해 나리가 일부 꺾이고 쓰러졌다. 지지대를 받쳐주었지만 몇몇은 다시 생환하지 못했다. 금년에는 일찍 지지대를 세워 줘야겠다.

나리는 참 수수께끼이다. 자신의 줄기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꽃을, 그것도 여러 송이를 동시에 피운다. 다알리아도 그렇지만 나리가 가장 심하다. 왜 그럴까?

산수국 구역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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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국을 힘들게 하던 잔디를 걷어내고 벽돌로 경계를 둘러 주었다. 작지만 셋이서 오붓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다. 이제 잔디 때문에 힘들어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녀석들이 신난 표정이다.

영리한 산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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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일찍 물을 듬뿍 주었던 산수국 세 모둠이 인상을 활짝 폈다. 한 녀석은 줄기가 쑥 올라왔고, 한 녀석은 잎을 무성하게 펼쳤다. 나머지 한 녀석도 싱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 놀라운 녀석들이다. 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지 아니면 주인의 정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지 알 수 없지만 정원의 어느 꽃나무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올 여름은 이 녀석들과 대화를 많이 해야겠다.

꽃나무들의 영역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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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바위들 사이에 심은 트리안이 엄청난 속도로 자라나 근처에 심은 영산홍이나 장미의 줄기와 잎을 덮어 버렸다.

특히 몇몇 작은 영산홍들의  아우성이 들려서 영역 구분 작업을 했다. 그 동안 방치했던 점에 대해 영산홍들에게 사과했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트리안의 줄기를 잘랐지만 가능한 한 자르지 않고 영역을 나누어 주었다.  트리안이라고 나쁜 맘을 먹고 그리 했겠는가.

우리는 모두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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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공감의 시대, The Empathic Civilization>(2009)라는 저서에서 오늘날 우리는 모두 배우가 되었다고 썼습니다. 인터넷, 소셜미디어, 스마트폰의 발달은 연극적 자아(theatrical self)의 만개를 가져왔다고 주장합니다. 누구나 사이버공간이라는 무대에서 일생 동안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리프킨다운 탁월한 해석입니다.

정보기술의 발달은 마샬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지적처럼 우리로 하여금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고 인정하지만, 리프킨은 긍정적인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둡니다. 정보기술 덕분에 그 어느 시대보다도 넓은 범위에서의 공감(empathy)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삶이라는 연극공연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의 영향을 받은 리프킨은 연극공연이 무엇보다도  공감과 협력이라는 특성을 지닌다고 강조합니다. 우선 공감은 크게 네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연극공연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팀웍을 위한 공감입니다. 제작자, 투자자, 연출자, 시나리오 작가, 각색 담당, 배우, 무대 담당, 조명 담당, 음악 담당, 소품 담당 사이의 공감입니다. 이 공감에는 일종의 상황정의(definition of situation)가 필요합니다. 어떤 대본을 가지고, 누가 어떤 역할을 맡으며,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연극을 공연할 것인지에 대해 명시적이며 묵시적인 합의가 필요하지요. 그 바탕에 참여자들의 깊은 상호이해가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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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배역과 연기자 사이의 공감입니다. 대본의 스토리 속에 있는 배역들(characters)은 각자 나름의 자아(self)를 갖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누적된 경험, 사회적 관계, 직업, 성격, 배경, 감정, 컨텍스트가 배역의 자아를 구성합니다. 연기자가 그 배역의 자아와 혼연일체가 될 때 배역과 연기자 사이에 공감이 이루어집니다.

셋째는 연기자와 관객 사이의 공감입니다. 연기자와 관객 사이의 공감은 주로 연기자의 연기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연기말고도 관객의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여러가지 여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언어, 음향, 배경 음악, 조명, 의상, 소품 등이 공연에 적합하게 확보되어야 합니다.

넷째는 연극공연은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통해서 사회 전체와의 공감을 시도합니다. 연극과 같은 무대 공연은 공연 현장을 찾은 사람들과의 공감이 일차적으로 중요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나리오, 녹화 동영상, 비평 등의 확산을 통해서 연극공연은 보다 폭넓은 의미의 청중과의 공감을 추구하곤 합니다.

협력은 크게 두 측면에서  이루어집니다. 우선 연극공연 팀 내부에서 긴밀한 협력이 요구됩니다. 설령 연극이 일인극일지라도 협력이 필요합니다. 시나리오, 연출, 각색, 조명, 소품, 음향 등을 담당한 스탭과 연기자 사이의 협력이 필요하지요.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연극은 철저히 협력을 통한 공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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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연극공연팀과 관객 사이에 협력이 이루어집니다. <자아연출의 사회학>(1959/2016)에서 고프먼은 관객들(그리고 외부자들도)이 공연자들의 실수를 눈감아 주기도 하고 일부러 공연자들과 접촉을 자제하는 보호적 관행을 지적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들은 공연의 흥행을 도와줄 뿐 아니라 자신들도 연극을 더 잘 즐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의도적 무관심이지요.

연극공연에서 공감과 협력이 일어나려면 진정성(authenticity)있는 소통이 필요합니다. 연극공연에서 진정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리프킨은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연기자가 연기력으로만 배역을 표현하는 표면연기를 넘어서 배역의 자아와 일체를 이루는 심층연기를 해낼 때 진정성이 확보된다고 주장합니다.

리프킨은 일상적인 삶에서의 연극공연에서는 두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첫째, 공연자가 진정한 자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리프킨은 자아에는, 타인에게 보여지는 현실적 자아,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이상적 자아, 그리고 자신이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진정한 자아가 있는데, 이중 진정한 자아를 드러낼 때 진정성이 확보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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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진정으로 타인의 입장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타인의 목소리에 경청하고, 타인의 어려움, 고통, 슬픔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나아가 그것을 경감하는 실천에 나설 때 진정성이 확보된다는 것입니다.

리프킨은 정보기술의 발달 덕분으로 오늘날 공감이 직은 지역을 넘어서 전국, 전세계에 걸쳐 일어날 수 있으며, 그러한 지구적 공감은 인류 뿐 아니라 생물을 포함하는 생물권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공감-엔트로피 역설’을 해소해야 한다고 그는 역설합니다. 리프킨은, 과학과 산업,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한편으로 공감의 지구적 확장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엔트로피(다시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의 급속한 증가를 초래한 현상을 공감-엔트로피 역설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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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킨의 대안은 구체적이고 명쾌합니다. 석유와 석탄 같은 재생불가능한 화석 연료와 핵연료 대신 태양열, 풍력 등과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그것은 분산 에너지이기도 하다–사용을 확대하며,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하여 엔트로피의 증가, 대기 오염, 수질 오염, 해양 오염, 온실효과에 대처하고, 난개발로부터 자연을 보호하여 생물종의 감소를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원의 꽃과 채소에 물주다

며칠 비가 오지 않았다. 2-3주 전 후원에 이식한 수국의 잎들이 말렸다.

아침에 물을 듬뿍 주었다. 후원에 있는 장미들은 물론이고 다른 꽃들과 채소들에게도 모두 물을 줬다.

앞뜰에 있는 세 모둠의 수국에게도 물을 줬다. 집에 온 지 3년 차인 이 수국들은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다. 미안하게도 두 번이나 자리를 옮겼다. 무식한 주인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다행히 이제 제대로 자리를 잡았음에 분명하다. 잎들에서 윤기가 난다. 감나무가 오후의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니 좋은가보다.

사랑채 앞 장미의 가지중 심하게 병든 부분을 잘랐다. 애도 본격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꽃을 다 피우고 나면 1미터 이하로 잘라서 후원의 장미 동산으로 옮겨야겠다.

사회연결망분석, 충분히 유용한가?(1)

지난 40여 년 동안 사회연결망분석(social network analysis, SNA)은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데 유용함을 증명했다. 구직 활동에서 개인의 ‘약한 관계(weak ties)’가 중요함을 보인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의 연구,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을 잘 메꾸는 사람이 승진에 유리하다는 로날드 버트(Ronald Burt)의 연구, 그리고 미국 로비 단체들의 커넥션과 대기업들의 상호 지배를 밝힌 에드워드 라우만(Edward Laumann)의 고전적 연구부터 시작해서 최근 빅데이터를 이용한 SNS 분석에 이르기까지 사회현상분석에 있어 SNA가 보인 성과와 잠재성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개인에 있어 사회연결망(social network)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개인의 행복, 불행, 외로움, 두려움, 정체감, 삶의 질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또한 그것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남북한 대립, 과학적 발견, 기술적 혁신, 정치적 후진성, 구조 조정, 저출산, 고령화 등과 같이 우리 사회의 중대한 현안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그런 문제에 대한 해법이나 영감을 얻는데 기여한 SNA 연구를 본 적이 없다. (혹시 그런 소중한 연구를 알고 있는 분은 내게 꼭귀뜸해 주기 바란다.)

나는 SNA가 그러한 한계를 보이는 것이 연구자들이 무능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지난 30여 년 동안 미국사회학 분야에서 가장 머리 좋은 젊은 학자들 중 상당수가 SNA에 뛰어들었고,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사회학은 물론이고 커뮤니케이션, 경영학, 정치학 등 여러 분야에서 우수한 신진 학자들이 SNA 연구를 하고 있다. 한 마디로 SNA연구가 사회과학 분야의 가장 뛰어난 신진 학자들을 대거 흡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그것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SNA 모델링이 방법론적 금기(methodological inhibition)와 규정화 오류(specification errors)에 막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SNA라는 도구가 학자들의 문제의식과 상상력을 억압하고 있다는 말이다.

C. 라이트 밀즈(Mills)는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문제 의식을 따라서 연구주제를 선택하기 보다 자신이 적용하는 방법론이 허용하는 연구주제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음을 비판하는데 방법론적 금기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그 비판을 SNA 연구에 적용하면, 사회관계중 양적으로(quantitatively) 측정이 가능하고, SNA 모형으로 표현이 가능한 사회관계만이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규정화 오류라는 두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동일한 척도로 측정될 수 없는 요인은 아예 처음부터 모형에서 제외된다. 그것이 설령 중요한 결정 요인이라고 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예컨대 대화를 트윗(tweets)을 수집해서 분석한다면, 설령 현실에서 바디 랭귀지나 눈빛을 통한 대화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분석 모형에 포함될 수 없으며, 트위터를 사용하지 않은 사회 집단, 애완 동물, 식물 같은 존재는 원천적으로 분석모형에 포함될 수 없다. 분석모형에서 중요한 결정요인이 빠져 있으면 요인들의 계수 추정은 신뢰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사회연결망(social network)을 확장해서 타자 관계망(network of  others) 분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자관계망 분석은, 나는, 왜 불행한가, 왜 외로운가, 혹은 왜 두려운가, 나는 누구인가, 내게 가장 중요한 존재는 누구인가, 나는 세계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 등과 같은 문제에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관계망 분석은 개인의 사회적 상황이나 심리상태에 대한 설명을 넘어서 개인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있어서도 대단히 효과적인 접근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관계망은 사회연결망(social networks)과 다르다. 사회적 관계망에는 인간과 조직만이 노드가 되지만 타자 관계망(network of others)에는 사람, 조직, 국가,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생물, 무생물, 교통, 통신, 자연 환경까지도 노드가 될 수 있다. 아래 그림을 보면 타자관계망이 사회연결망과 얼마나 다른 지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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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질적이고 다층적이며 복잡한 관계망이 과연 도움이 될까? 나는 타자의 중요성(significance of others)을 중심으로 모델링을 하면 충분히 간략해질 수 있으며, 질적 분석과 양적 분석이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잠재성을 검토해 보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