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

현대 사회는 마치 신기루 같습니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다양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지 어떤 천재의 눈에도  쉽게 잡히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겠지요. 어차피 우리는 살아야 하고 기왕에 살아야 한다면 잘 살아야 하니까요.

급변하는 세상에서는 자기가 태어난 땅에 살면서도 마치 이민자가 되어 낯선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성공적인 이민자들이 이민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적응도 잘 하고 사업도 잘 운영할 수 있을테니까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현재의 사회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난 가을 교육부가 개통한 온라인 대학교육 서비스인 K-MOOC에 제가 <정보사회학 입문>을 개설한 이유는 이웃들이 새로운 세상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강의에서 저는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실마리가 되는 일곱 가지 키워드를 선정하고 그 키워드에 관련된 고전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를 분석했습니다. 프라이버시, 맥도날드화, 위험사회, 유희, 네트워크, 연극공연, 그리고 선물경제가 제가 고른 키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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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공부하다가 난관에 부딪치면 고전에서 지혜와 영감을 구하곤 합니다. 이 강의에서 그런한 저의 노력을 이웃들과 공유하고자 하였습니다. 다만 저는 고전 문학에서 영감을 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만 과목의 성격상 강의에는 사회과학 고전만 포함시켰습니다.

4월 1일에 한양대학교 K-MOOC  서비스가 다시 시작됩니다. 이번에는 7주 동안 학기가 진행됩니다. 수강생들, 담당 교수, 그리고 운영진의 소통을 위해서 페이스북에 그룹(‘K-MOOC 정보사회학 입문’)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학기에는 9백명 정도가 <정보사회학 입문>을 수강했습니다만, 이번 학기에는 그보다 적은 수가 수강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덕분에 수강생들과 함께 대화할 기회가 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윤영민 배상.

디지털 시대의 사회조사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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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들을 면담했더니 몇몇이 ‘사회조사분석사’라는 자격증에 관심을 보였다. 우리 학과 졸업생 중 사회조사분석사 자격증을 딴 학생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걸 보면 그 자격증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어제오늘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 자격증의 실효성은 물론이고 시대적 적합성에 대해 무척 회의적이다. 사회조사방법과 사회통계학에 대한 지식을 테스트하는데 그 내용이 많이 낡았다. 기존에 개설된 관련 과목들을 제대로 수강했으면 누구나 합격할 수 있는 내용과 수준이다. 문제는 그것이 현장에서 사회조사자(social researcher)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과의 불일치가 너무 심하다는 사실이다. (통계청 사이트의 사회조사분석사 검정자격기준을 참고하기 바람)

사회조사분석사가 1급과 2급으로 나누어 있듯이 사회조사자에도 다양한 수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사회조사자가 갖춰야할 전문적 지식과 능력은 다음과 같지 않을까?

사회조사자는 (1) 무엇보다 주어진 과제를 연구문제(research question)로 번역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조사는 규칙적인 사회 현상(social regularities)에 관련된 의문이나 쟁점에 대한 해답을 얻는데 필요한 실증적 근거를 만들거나 찾는 작업이다. 규칙적인 사회현상에는 사회문제(social problems), 사회적 쟁점(social issues), 사회적 의문들(social questions), 혹은 사회학적 의문이나 쟁점(sociological questions or issues)이 포함될 수 있다. 사회현상에 대해, 왜 그럴까, 어떤 상태인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어떤 해법들이 있을까, 어떤 해법이 상대적으로 더 바람직한가 등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데 있어 실증적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사회조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예측분석학(predictive analytics)에서 다루는 것 같은 개인의 행동에 대한 예측이 사회조사의 연구에 포함되어야 하는가는 논란이 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빅데이터 환경의 등장과 더불어 사회조사자가 ‘예측분석’ 능력을 갖추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트렌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조사자는 (2) 주어진 의문과 여건 아래에서 무엇이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연구방법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설문조사, 실험, 심층면접, 참여관찰, FGI, 델파이, 예측(forecasting), 이차분석(secondary analysis), 시나리오 플래닝(scenario planning) 등과 같은 전통적인 연구방법은 물론이고, 구글링(Googling), 모델링(modelling), 컴퓨터 모의실험(computer simulation), 집단지성, 데이터과학(data science), 사회연결망 분석(social network analysis) 등과 같은 새로운 연구방법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회조사자는 (3) 자신이 그러한 방법을 혼자서 수행하거나 타인이나 기관(혹은 기업)과 협업을 통해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모든 연구방법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어떤 방식으로든 최선의 답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협업을 통해서 가능하다. 특히 해당분야 전문가, 통계학자, 수학자, 혹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와의 협업이 필요하다.

흔히 제도는 변화를 따라오지 못한다. 제도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안정적인 시대에는 제도가 힘을 발휘하지만 급변하는 시대에 제도는 시대착오적이 되곤 한다.

현재 사회조사분석사라는 제도가 후자에 해당되지 않나 싶다. 사회조사분석사가 디지털 시대에 있어 사회조사 능력을 보증하는 자격증이 되지 못하고 있다.

 

미래 예측의 세계

A businessman is consulting a crystal ball to foretell the future.

한 동안 나는 대학과 기업체에서 시나리오 기법을 강의했다. 시나리오 기법은 강력한 미래예측 방법 중 하나이다. 대학의 학부에서는 <미래학입문>이라는 타이틀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강의하다가 중단한 지가 4~5년 되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강의 <미래고객 발굴을 위한 시나리오 플래닝>은 아직 서비스되고 있다.

미래학 수업을 중단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내 관심이 다른 분야로 이동했다. 소셜미디어, 집단지성, 데이터 사이언스와 같은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데도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둘째는 미래학 강의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다루어야 할 내용은 많은데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에 시나리오 방법 하나 소화시키기도 힘겨워 했다. 셋째는 미래학의 이름으로 자신의 지적 불성실함을 감추려는 자들이 너무 많다. 그 분야에는 제사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많은 자들이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읽는 일은 참으로 흥미있다. ‘미래학’은 좀 엉터리일지 몰라도 말이다. 그런데 미래 전망은 과거에도 점성술이나 사주처럼 특별한 능력이 요구되었듯이 지금도 범상치 않은 능력을 요구한다. 그것이 함정이다. 일반인들에게도 그런 능력을 나누어 줄 수는 없을까.

사실 미래예측에 있어 중요한 것은 기술이나 기법이 아니다. 핵심은 문제의식이다. 문제의식은 네 가지 점에 대한 첨예한 인식으로 구성된다. 1) 예측하고자 하는 문제(questioning)에 대한 분명한 규정, 2) 예측하려는 문제의 불확실성(uncertainties)의 정도와 성격에 대한 정확한 인식, 3) 예측에 가용한 자원(available resources)에 대한 파악, 그리고 4) 얼마나 신속하게, 그리고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해야 하는가 하는 요구 조건(demanding conditions)의 인식이 필요하다. 이 네 가지에 대한 대답에 따라 미래전망의 효과적인 접근방법이 달라진다.

예컨대 시나리오(scenario) 방법은, 거시적 전망에 사용되는데, 전체적으로 불확실성이 상당히 크고,  연구자(혹은 연구의 클라이언트)가 관여하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을 때 사용된다. 이 방법은 최적의(optimal) 해법 대신에 강고한(robust) 해법을 찾는다. 즉, 미래가 어느쪽으로 전개되더라도 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런데 미래 읽기에 시나리오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미래 예측이나 전망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이론(theory)이다. 각 영역(domain)에는 학자와 전문가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개발해 놓은 이론들이 적지 않다. 이론은 보편적이거나 일반적인 인과관계(causal relations)를 담고 있기 때문에 미래 읽기의 강력한 도구가 된다. 이론의 가장 큰 장점은 미래 예측에 비용이 적게 들고 신속한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수학도 이론에 못지 않게 유용할 수 있다. 자주 비현실적인 전제(assumptions)가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수학적 전개는 결정적(deterministic) 예측을 가능하게 해준다. 마르코프 연쇄(Markov chains)나 베이즈 추론(Bayesian inference)은 수학적 전망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학적 해답이 불가능할 경우 통계적 근사(statistical approximation)가 유용한 대안이 된다.

아마도 미래 전망에 가장 애용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통계학일 것이다. 여론조사를 통한 선거 예측, 전문가 델파이 기법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최근 네이트 실버(Nate Silver)는 베이즈 추론을 이용해서 운동 경기와 선거 예측에 놀라운 혁신을 가져오기도 했다(참고로 FiveThirtyEight을 볼 것).

경제 예측(economic forecasting)에는 시계열 분석(time-series analysis)이 자주 사용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현재까지의 추세(trend)를 연장시켜서 전망하는 외삽법(extrapolation)이다. 이 방법은 불확실성이 비교적 작을 때 유용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달한 후에는, 조건부 모의실험(what-if simulation)(사례: 기후변화 정책 결정을 위한 시뮬레이션)이나 집단지성(사례: Hollywood Stock Exchange)이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빅데이터가 이용가능하게 되면서 예측 분석(predictive analytics)(사례: 수술 환자의 위험 예측)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 예측분석은 미시적 전망(개인에 관한 전망)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불확실성이 너무 커지면 백약이 무효하다. 그저 열심히 기도하는 게 상책이다. 그리고 자신이나 자신의 클라이언트가 개입해서 미래의 전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객관적인 미래를 물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나 자신의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미래를 규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위에 언급된 방법들 중 쉽게 터득될 수 있는 것은 없다. 상당히 깊은 지식과 실전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지가 양해되지는 않는다.

창조주를 제외하고 불확실성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가 항상 세상에 애정을 갖고, 부지런히 자신이 지닌 지식과 도구를 갈고 닦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욕심을 버리면 세상과 사람의 미래가 비교적 잘 읽힌다는 사실이다.

 

‘율도국’에 나타난 ‘어린 왕자’

SAMSUNG CSC 어제 저녁 집 근처의 장성 군립도서관에서 열린 고전 소설 독서 동아리 모임에 갔다. 지난 달 10여명이 모여서 시작했는데, 어제 열린 첫 모임에 주최측인 군립도서관 직원 두 명과 나, 그렇게 3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는 적었지만 우리는 <홍길동전>과 <어린 왕자>를 가지고 두 시간이 넘도록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참석자가 적어서 다행히 실컷 얘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3백 여년 전 조선 최고의 진보적 지식인이었던 허균은 <홍길동전>에 자신의 유토피아 기획을 제시했다. 처절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친 16세기말 조선은 전쟁과 궁핍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적서 차별, 부정부패 등 정치와 사회현실도 백성들의 눈에는 절망적 상태였으리라. <홍길동전>에는 그러한 시대에 대한 허균의 인식이 깊이 베어 있다.

작품 속 홍길동은, 조선 최고의 성군이었던 세종대왕의 치세에, 재상의 집안에서, 영웅적 자질을 완벽하게 갖춘 서자로 세상에 태어났다! 아, 얼마나 비극적인 상황 설정인가. 엄격한 노예제, 신분제의 사회인 조선 초기에 서자로 태어났다! 그것도 영웅호걸의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재상의 집안에서…. 허균은 초인적 영웅이 나타나 자신의 유토피아를 실현시켜주길 소망했으리라.

그가 의적의 모습으로 오던 왕의 모습으로 오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의적떼 활빈당 수령 홍길동은 조선을 구제하지 못하고 결국 조선을 떠나 율도국의 왕이 되지 않는가. 허균은, 세종대왕이라는 최고의 성군과 홍길동이라는 초인적 영웅의 만남을 사회 개혁과 혁신을 낳지 못한 채 끝나게 만든다.

적서차별로 대변되는 모순된 사회구조는, 시대를 앞서간 혁명가 허균에게도 도전하기에 너무 벅찬 상대였을 것이다. 그래서 허균은 홍길동과 활빈당이 조선의 율법이 미치지 않은 율도국에서 유토피아를 건설하게 만든다. 그것도 홍길동이 왕이 되어서 말이다.

허균은 율도국이라는 유토피아를 이렇게 그린다. “새 왕이 왕위에 오른 후에 시절이 태평하여 풍년이 들고,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여 사방에 일이 없고, 임금이 베푼 덕이 온 나라에 퍼져 길거리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는 이가 없었다(101쪽).” 허균은 홍길동이 영웅의 꿈을 이루었다고 칭송하면서 이야기를 마친다. “아름답구나! 길동이 행한 일들이여! 자신이 원한 것을 흔쾌하게 이룬 장부로다. 비록 천한 어미 몸에서 태어났으나 가슴에 쌓인 원한을 풀어 버리고, 효성과 우애를 다 갖춰 한 몸의 운수를 당당히 이루었으니, 만고에 희한한 일이기에 후세 사람에게 알리는 바이다(105쪽).” 전쟁이 없고, 백성의 육신이 편안하고 부유하게 사는 사회가 율도국에 실현시킨 허균의 유토피아이다.

그런데 과연 율도국 사람들은 행복했을까? 왕이 된 홍길동과 그 집안은 틀림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유토피아’에서 백성들도 과연 두루두루 행복했을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바로 ‘율도국’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홍길동전>이 끝나는 지점에서 <어린 왕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율도국’을 찾아온 ‘어린 왕자’는 유토피아의 어른들이 얼마나 세상을 잘못 살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허균이 율도국에 그렸던 유토피아를 이루었다. 적어도 경제적 측면에서 말이다. 오늘날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조선 시대의 귀족은 물론이고 왕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좋은 집에 산다. 길거리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서 주워가는 사람이 없기도 하다. 물건 나름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그 유토피아의 주민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국민이다. 자살률 1위, 자살 증가율 1위, 노인빈곤율 1위 등등 어느 지표로 보아도 우리 국민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

<어린 왕자>는 유토피아에서도 사람들이 불행할 수 있음을 깨우쳐 준다. 권위와 지배, 부유함과 편리함, 그리고 일에 집착한 사람들(‘어른들’)은 무엇이 삶에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감각을 잃어버렸다. 성장의 댓가인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는 독자를 발가벗기는 거울이다. 우리의 민낯, 몸뚱이, 그리고 마음 속까지 남김없이 보여주는 무서운 거울이다. 초인적 영웅들은 유토피아의 기반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영웅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이다. 진정 행복한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데 영웅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아니 초인적 영웅을 기다리는 한, 영웅 의존성을 버리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결코 행복한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유토피아는 모두가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소통 언어로서의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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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정석>의 초판이 발행된 지 딱 50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 동안 그 책은 4천5백만부가 팔려서 우리나라에서 성경 다음으로 인기 있는 책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심지어 어떤 비평가는 모 중앙 일간지의 ‘내 인생의 책’이라는 컬럼에 그 책을 올리기도 했다.

나는 스무살 때 어느 작은 학원의 단과반에서 <수학 1정석>을 가르친 인연도 있다. 그러나 나는 <수학의 정석>에 그렇게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정석’이라는 걸맞지 않은 이름으로 우리나라 수학 교육의 방향을 오도하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석>은 우리나라의 문화에 수학이 계산을 하는 도구라는 인식을 뿌리박게 하는데 기여했다(심지어 수학을 암기 과목으로 만들었다는 의심도 있다). 그것은 수많은 개인들에게는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이었다.

수학은 다른 더 중요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통의 도구 혹은 하나의 언어로서의 수학이다. 수학은 신(god)의 언어라는 갈릴레오의 믿음까지는 아니더라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뛰어난 인류의 스승들은 수학이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는데 훌륭한 도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정석>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의 수학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그 점을 깨닫게 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그리고 일상적 대화에서 수학이 얼마나 사용되지 않는가가 그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수학은 영어, 한문, 일본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나 독일어만큼도 사용되지 않는다.

내가 재직하는 학과와 단과대학 졸업생 중 상당수가 광고업계로 진출한다. 광고업계에서는 “어떤 사용자가 내 클라이언트의 광고를 클릭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수업시간에 어떤 학생으로부터, “교수님, 어떤 인터넷 사용자가 특정 광고를 클릭할 가능성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을 받았다. 과연 내가 수학을 사용하지 않고 그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을까?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광고를 클릭할 확률의 로짓(logit)을 예측하는 로지스틱 회귀모형을 구성하고, 훈련데이터세트로 그 모형의 모수(parameters)를 구하면 가능하다.”

그러면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거릴까? 결코 아니다. 학부는 물론이고 대학원 수업에서도 그런 대답은 학생들을 혼란에 빠트릴 것이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어떤 사용자가 우리의 광고를 클릭할 것인가 말것인가이기 때문에 그것은 범주적 변수(categorical variable)이고, 그 변수는 1(클릭함)과 0(클릭하지 않음)이라는 값(범주)를 가질 것이다. 그러면 수학적으로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광고를 클릭할 확률()은 라는, 독립변수들()의 좀 복잡한 선형함수로 나타낼 수 있다.  여기서 는 지수함수를 가리킨다. 승산(odds)이라는 개념을 이용하면 이 식을 좀 더 간략히 나타낼 수 있다.

좌변은 광고를 클릭할 확률광고를 클릭하지 않을 확률로 나눈 승산(odds)이다. 광고를 클릭할 승산은 독립변수들의 영향을 선형으로 더한 지수함수이다. 여기서 양변에 log를 취하면 아래와 같다.

좌변을 로짓(logit)(혹은 승산의 자연로그, natural logarithm of the odds, 간단히 log-odds라고 부른다)이라고 부른다. 종속변수로 로짓으로 바꾸니 우리에게 익숙한 회귀 방정식(regression)이다. 만약 우리에게 이 광고에 관해 축적된 데이터가 있다면 와 를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로지스틱 회귀(logistic regression)은 역로짓 함수(inverse-logit function)을 사용한다.)

좀 복잡해 보이지만 이 전개에는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 나의 수학 실력도 고등학교 수준을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40년 전에 배운 수학이다.

우리 사회에 매스포비아(math-phobia: 수를 두려워하는 사람)가 너무 많다. 우리 교육이 매스포비아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빠른 속도로 수학과 통계학을 이용하는 기술 기반으로 바뀌어 간다. 그런데 우리의 학교 교육은 수학 ‘문맹자’를 양산하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익혀야 하는 이유

python스크린샷 몇 년 전부터 내가 일하는 학과의 커리큘럼에 컴퓨터 프로그래밍 과목을 넣고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그 과목을 수강하도록 조치했다. 동료 교수들 중 어떤 분은 그러한 조치에 반대했다. 사회과학 전공 학생들이 프로그래밍까지 배워야할 이유가 없고, 더구나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몰라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시대에 컴퓨터 과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프로그래밍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학생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프로그래밍 언어는 영어 이상으로 중요한 언어이다.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들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개발자, 공학자, 프로그래머들과 함께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기술기반의 사회에서 프로그래밍 언어는 공용어이다. 프로그래밍 문맹자가 가질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내 학생들을 프로그래밍 문맹자로 만들 수는 없지 않는가.

학과의 모든 학생들이 2학년 1학기 때 파이썬(Python)이라는 언어를 배운다. 그런데 프로그래밍 수업 담당 교수의 말이 한 학기 수업으로는 학생들이 기초 정도밖에 배우지 못한다고 해서 올해부터는 수업 기간을 1년으로 늘렸다. 그래서 한 학기는 기초, 한 학기는 응용 수준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요즘 막내와 함께 통계학과 프로그래밍(파이썬)을 공부하면서 우리 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게 한 것이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의미에서 잘한 조치였음을 확인하고 있다. 프로그래밍을 하려면 프로그래밍하려는 문제나 지식이 논리적으로 아주 정확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문제나 지식이 명쾌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을 컴퓨터 언어로 번역할(즉, 코딩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학은 소프트(soft)한 과학이다. 사회적 불평등, 범죄, 사회적 갈등, 협력 등 사회학이 다루는 사회 문제에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불명료한 문제의식이나 엉성한 논리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사회학 전공 학생은 물론이고 전공 학자가 지닌 사회학 지식이 명료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사회학 주제를 가지고 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훈련은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학 전공 지식은 물론이고 지식 자체를 명료하게 갖는 습관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기대된다.

책에 관한 열 가지 지혜: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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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DOE Library 서가. 수백만 권의 책이 꽂힌 서가에 앉아 있다보면 무엇보다 겸손해진다.

아이들에게 책에 관한 지혜를 들려주고 싶다. 그 지혜를 실천에 옮기는가는 온전히 그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

첫째, 세상의 진리는 오직 책에 담겨 있다. 인류 최고의 스승, 최고의 지혜는 오직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노자, 석가모니, 예수, 무함마드,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이순신, 아인쉬타인 등등. 책을 통하지 않고 만날 수 있는 현자를 한 명이라도 말해 보거라. 현자의 지혜는 스스로 글을 써서 남겼거나, 누군가가 책에 남겨 놓았다. 그렇지 않은 지혜는 모두 잊혀졌다. 책에 대해서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을 상대하지 말라. 그는 둘 중의 하나이다. 세상을 모르는 자거나 너를 속이려는 자이다. 진리를 영화나, 게임, 강연, 혹은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은 엉터리이거나 거짓말이다.

둘째, 책의 형식에 구애받지 말라. 그것이 양피지든, 대나무든, 종이든, e-book이든 무슨 상관이냐? 시대적 기술 여건에 맞는 형식이 있을 뿐이다. 형식은 책을 읽지 않을 핑계가 될 수 없다.

셋째, 어떤 저자도 완전히 믿지 말고 어떤 저자에게도 기죽지 말라. 저자들, 특히 뛰어난 천재들은 친절하지도 착하지도 않다. 재미삼아 독자를 희롱하기도 하고 속이기도 한다. 항상 숲 전체를 보면서 나무를 대하라. 그러면 길을 잃지(속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천재는 뽐내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천재라고 반드시 전달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모르는 저자들도 수두룩하다. 비평가나 해설자에게 의지하려고 하지도 말라. 비평이나 해설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밥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직업적 활동일 뿐이다. 저자가 책을 통해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가를 판단하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너 자신임을 잊지 말라.

넷째, 환경을 고르지 말라.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말고 책을 읽어라. 책에 몰입하면 주위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알 수 없게 된다. 훈련하면 그것이 가능하다. 얘들아, 이점에 대해서는 나를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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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DOE library reference 열람실. 이런 환경에서 책 읽기를 기대하지 말라.

다섯째, 어떤 책이든 하루에 읽는 것을 목표로 하라. 대부분의 책은 하루에 읽을 수 없다. 그러나 하루에 다 읽기를 목표로 삼으라. 그러면 놀라운 집중력이 생길 것이다. 인류 최고의 현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그 정도의 자세를 갖추지 않고는 결코 지혜를 얻을 수 없다. 현실에도 그렇지 않겠는가? 아인쉬타인, 달라이 라마, 혹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실제로 만났다고 생각해 보거라. 책을 하루에 다 읽지 못하는 사람은 일주일을 줘도 다 읽지 못하고, 한 달, 아니 일년을 줘도 다 읽지 못한다. 잘못된 책 읽기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독서 방법이 올바르면 헐거운 책은 몇 시간에도 다 읽을 수 있다.

여섯째, 책 읽는 프로가 되어라. 손에 쥔 책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를 기획하라. 인류 최고의 스승을 만나는데 그 정도 준비없이 되겠는가? 시간 계획, 대화 기획(읽는 순서), 정리 계획이 기본이다.

일곱째, 맘에 드는 책만을 읽지 말라. 편식하면 육신처럼 영혼도 영양실조에 걸린다. 맘에 들지 않은 책일수록 더 정성껏 읽어라.

여덟째,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책을 읽지 말라. 우리가 평생 읽어봐야 도서관의 한 귀퉁이에 꽂힌 책들도 다 읽지 못한다. 내가 다니던 대학원 도서관의 본관은 책장의 길이만 84km였다. 아마도 300만권의 책은 그곳에 있었으리라.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그곳에는 32개의 도서관이 있고 책은 1천만권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의회도서관과 하버드에는 그보다 더 많은 책이 있다. 책 몇 권 읽고 아는 척하지 말라. 그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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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Main Library인 DOE Library의 정면. 저 문을 들어갈 때마다 마치 교회 문을 들어가듯이 경건해졌다. 인류의 스승들이 모두 저기에 모여 있지 않는가.

아홉째, 독서는 네 인생에 있어 어떤 보장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고는 어느 분야의 리더도 될 수 없다. 독서가 행복을 가져다 주지도 않고, 출세를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않고는 행복하거나 존경받는 리더가 될 수는 없다. 때로 천한 영혼이 지배자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운을 믿지 말라. 운이란 우연이다. 우연을 믿고 세상을 사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자는 없다.

열째, 밥은 굶어도 책 읽기를 건너 뛰지는 말라. 육신의 배고픔이야 밥 한 숟갈로 간단히 달래지지만 영혼의 갈증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영혼은 오직 진리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진리는 쉽게 섭취할 수 없다. 그런데 매일 진리를 먹지 않으면 영혼이 메마른다. 육신이 음식으로 영양분을 섭취하듯이 영혼은 책을 통해서 영양분을 섭취한다. 결코 손에서 책을 놓지 마라.

황금측백, 그리고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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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측백

지난 주에는 정원의 꽃나무들에 퇴비를 듬뿍 주었다. 그러고나니 비가 많이 내렸다. 꽃나무들이 오랜만에 포식을 했으리라. 대문부터 현관까지 도열한 황금측백 나무들이 옷을 갈아 입는다. 잎의 끝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연초록빛으로 바뀌고 있다. 봄이 온 것이다.

틈만 나면 막내에게 강의(?)를 해준다. 그렇게 학구적이 아닌 녀석인데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니 고맙다.

어제 밤에는 개념, 모형, 이론, 그리고 지식에 대해 이야기 했다. 아래는 내 이야기에 관한 간략한 요약이다.

  •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인간이 생각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개념(concepts)이다.
  • 개념이란 무엇일까? 개념은 공통적인 특질을 지닌 대상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단어이다. 책상, 걸상, 사람, 여자, 남자, 책, 연필, 컴퓨터, 스마트폰, 볼펜 등등.
  • 개념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대상을 다른 대상과 구분할 수 있게 도와준다. 남자라는 개념은 남성을 여성으로부터 구분시켜주고, 사람이라는 개념은 신이나 짐승처럼 사람이 아닌 존재로부터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해준다.
  • 개념의 저수지(reservoir)가 풍부한 사람은 세상을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반면에 개념의 저수지가 빈약한 사람은 대상들이나 현상들을 구분해내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흔히 사용되는 “개념 없는 사람”이란 대상의 구분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가리키고, 반면에 “개념녀”라는 말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잘 인식해서 말하고 행동하는 여성을 가리킨다.
  •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은 개념의 저수지를 채우는 일이다. 대학을 다니는 것도 동일한 이유이다.
  • 개념들이 논리적으로 연결되면 주장이나 설명이 된다. 이론이란 세상에 대한 간략한 설명(혹은 주장)이다. 무엇보다도 어떤 설명이나 주장이 없으면 이론이 아니다. 설명이나 주장은 반드시 인과관계(causality)를 포함한다. 인과관계란 원인과 결과에 대한 서술이다. 그래서 이론은 세상을 이해하게 해준다. 또한 이론은 간략해야 한다. 세상 자체가 복잡해서 머리가 아픈데 세상을 설명하는 이론까지 복잡하면 그것은 세상에 대한 인식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머리만 더 아프게 할 뿐이다. 그리고 무슨 현상이든 ‘세상’이 될 수 있다. ‘화학적 현상’이 ‘세상’이 되면 화학이론이 되고, ‘생물학적 현상’이 ‘세상’이 되면 생물학 이론이, ‘물리학적 현상’이 ‘세상’이 되면 물리학 이론이 된다.
  • 복잡한 세상을 간략하게 묘사해서 이해를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개념들이 결합되 있다는 점에서 모형(model)은 이론과 닮았다. 지구 모형, 자동차 모형, 확률 모형, 회귀 모형 등등. 그러나 모형은 그 안에 꼭 인과관계(causality)를 포함할 필요가 없다. 통계학에서는 모형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 중 회귀 모형(regression model)과 같은 이론적인 모형(theoretical model)은 인과관계를 포함하지만, 정규분포, 멱함수 분포, t 분포, 베타분포, 균일 분포 등과 같은 확률 모형(probability models)은 인과관계를 포함하지 않는다.
  • 지식(knowledge)은 정보(information)와 구분될 수 있다. 물론 넓은 의미로 정보는 지식을 포함하지만 말이다. 지식은 반드시 체계적인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이론이나 모형은 지식의 중요한 부분이 되곤 한다. 지식과 달리 파편적이거나 단편적인 내용도 정보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다는 정보이지만 지식이 아니다. 공무원 시험에 사용되는 두꺼운 “일반 상식” 책에는 단편적인 정보만 가득 담겨있지 체계적인 정보인 지식은 거의 없다.
  • MIT 교수였던 Machlup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보는 그냥 듣기만 해도 얻을 수 있지만, 지식은 오직 생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Information is acquired just by being told, whereas knowledge is acquired only by thinking).”

지식은 오직 생각이라는 과정(흔히 그것은 수고스럽다)을 거쳐서 얻어진다. 예컨대 대학 수업에서 교수는 지식을 강의하지만, 학생들에게 교수의 강의는 정보에 지나지 않곤 한다. 학생들이 교수의 강의를 자신의 지식으로 만드는 유일한 길은 그 강의를 곰씹어 생각하는 것이다.

막내에게 내 이야기가 단순히 정보에 그치지 않고 지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윤영민, 2016/03/07)

 

 

(Bayes 학습)(3) 베이즈 정리의 응용성

<Bayes 학습> (1)에서 도출한 아래의 베이즈 정리(Bayes’s Theorem: 이하 Bayes Theorem)는 놀라운 응용성을 갖는다.

                              (1)

베이즈 정리를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A를 로, B를 로 바꾸어 아래와 같이 다시 쓰자.

                                   (2)

  • 어떤 불확실한 현상도 가 될 수 있다. 그것은 미지의 모수(unknown parameters)일 수도 있고, 하나의 가설(hypothesis)이나 모형(model)일 수도 있고, 하나의 데이터 점(data point)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베이즈 정리는, 어떤 현상에 관하여 우리가 지니고 있는 믿음(prior beliefs)을, 수집된(관찰된) 데이터(data)에 비추어서 그것을 어떻게 갱신하여(update) 새로운 믿음(posterior beliefs)을 갖게 되는가를 말해준다. 즉, 하나의 귀납법적 사유 방식이다. 그것을 다음과 같이 도식화하여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1  

믿음(prior beliefs)  –> 관찰된 데이터(data) –> 갱신된 믿음(posterior beliefs)

이 도식을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도 있다.

베이즈 정리가 응용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 두 그릇의 쿠키가 있다. 그릇 I에는 30개의 바닐라 쿠키와 10개의 초콜렛 쿠키가 들어있고, 그릇 II에는 바닐라 쿠키와 초콜렛 쿠키가 각각 20개씩 들어있다. 만약 당신이 그릇을 쳐다보지 않고  한 그릇으로부터 쿠키 하나를 집었는데 그것이 바닐라 쿠키였다. 그렇다면 그 쿠키가 그릇 I로부터 집었을 확률은 얼마인가?2
  • Let’s Make a Deal이라는 게임쇼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사회자 Monty Hall은 출연자에게 세 개의 닫힌 문을 보여주면서, 그중 하나의 문 안에는 자동차가 상품으로 들어있고, 다른 두 문 안에는 땅콩버터나 장식용 손톱 같은 훨씬 덜 값나가는 상품이 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게임은 출연자가 자동차가 들어 있는 문을 알아맞추는 것이다. 만약 출연자가 자동차가 들어 있는 문을 고르면 자동차를 상품으로 받게 된다. 상품은 무작위로 배치되어 있다. 출연자가 문 하나를 고르고 나면, 그 문을 열기 전에 Monty는 나머지 두 문 중 자동차가 들어있지 않은 문을 열어보이면서 출연자에게 기존의 선택을 바꿀 의사가 있는 지 물어본다. 과연 출연자는 자신의 선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유리할까요 아니면 다른 문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할까요?3
  • 한 철도회사가 자사 소유의 기관차들에 일련번호를 붙였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신이 60이라는 번호가 붙은 기관차를 봤다면, 그 철도회사는 몇 대의 기관차를 갖고 있겠는가?4
  • “벨기에에서 제조된 1유로짜리 동전을 세워서 250회 돌렸더니 앞면이 140회가 나오고, 뒷면이 110회가 나왔다. 이 실험 결과는 그 동전이 한쪽으로 편향되게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가?5
  • 라플라스(Laplace, 1825)의 유명한 질문: “역사의 시작을 5천년 전으로 간주한다면, 인류는 24시간 마다 해가 뜨는 현상을 총 1,826,213번 관찰했다.  이 증거로 볼 때 내일 다시 해가 뜰 확률은 얼마나 되는가?”6
  • 어떤 사람이 word processor에 ‘radom’이라고 입력했다. word processor는 그 단어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그것은 ‘random’이라는 단어의 오기일 수도 있고, ‘radon’이나 혹은 다른 단어의 오기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사용자의 의도적인 표기이거나 조어일 수도 있다. ‘radom’이 실제 ‘random’의 오기일 확률은 얼마인가?7
  • 2000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3월초에 발표된 미국 플로리다주 유권자들의 투표 의사에 관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509명의 응답자 중 279명이 조지 부시를 찍겠다고 응답했으며, 230명이 엘 고어를 찍겠다고 응답했다. 이 조사결과에 의하면 적어도 플로리다 주에서는 부시가 고어보다 훨씬 많은 지지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 조사결과를 믿을 수 있을까? 참고로 그 전에 발표된 한 조사기관의 예측에 의하면 2000년 대선에서 플로리다주에서 예상되는 공화당 후보의 지지율이 49.1%이며 표준오차가 2.2%이었다. 이 두 가지 조사결과를 결합하면, 실제 플로리다주에서 공화당 후보인 조지 부시의 지지율이 얼마라고 볼 수 있겠는가?8
  • 라틴 아메리카에서 외국의 위협과 사회혁명의 상관관계에 관한 한 연구에서 다음과 같은 자료가 제시되었다. 각 관찰은 한 국가에서 20년 동안에 발생한 사건이다. 아래 표에서 왼쪽 상단의 칸에 있는 1은 볼리비아의 사례이다. 볼리비아는 1935년에 군사적 패배를 했고, 1952년에 사회혁명을 겪었다. 왼쪽 하단의 칸의 2는 멕시코(1910년 사회혁명)와 니카라구아(1979년 사회혁명)이다. 이 자료를 보고,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군사적 패배를 경험하지 않은 나라보다 군사적 패배를 경험하는 나라가 사회혁명을 겪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9
revolution no revolution
Defeated and invaded or lost territory 1 7
Not defeated for 20 years 2 74
  • 임의의 노동자를 반도체 제조공정에 배치했을 때 이 노동자로부터 백혈병이 발생할 확률은 일반인의 백혈병 발병률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가? 참고로 2008년 한국 산업안전공단의 조사에 의하면, 반도체 제조업 노동자  139,763명 중 백혈병 암 등록자는 총 16명이었다. 그리고 WHO의 2010년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백혈병 발병률은 10만명 당 2.9명이었다.10

이상의 구체적인 사례들에서 보듯이 베이즈 정리는 온갖 종류의 추론이나 추정, 의사결정, 혹은 가설 검증에 응용될 수 있다. 빈도주의 통계학으로 분석할 수 있는 현상은 모두 베이즈 통계로 분석이 가능하며, 빈도주의 통계학으로 하기 어려운 현상들도 베이즈 통계에 의해 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베이즈 추론은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관점 혹은 하나의 인식 과정이라고 간주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윤영민, 2016/03/04)

(주석)

  1. Simon Jackman. 2009. Bayesian Analysis for the Social Sciences. Wiley. p. 29
  2. Allen B. Downey. 2012. Think Bayes. Green Tea Press. p. 3
  3. Downey. p.8
  4. Downey. p.23
  5. Downey. p.33
  6. Jackman. p.57
  7. Andrew Gelman, John B. Carlin, Hal S. Stern, David B. Dunson, Aki Vehtari, and Donald B. Rubin. Bayesian Data Analysis, 3rd edition. CRC Press.  p.9
  8. Jackman. p.54
  9. Jackman. p.73
  10. 박종희. 2014. “베이지안 사회과학 방법론이란 무엇인가?” 평화연구 22(1). pp.490-492

상상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Pythagorean-Theorem

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의 길이를 제곱한 값과 나머지 두 변의 길이를 각각 제곱하여 더한 값이 일치한다.

중학교 수학 시간에 학생들이 배우는 수학적 경이 중 하나는 피타고라스 정리이다. 그런데 과연 몇 명의 학생이나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수학적, 과학적,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철학적 발견인가를 들으면서 그 정리를 배울까?

내 기억에 따르면, 선생님의 간략한 설명과 함께 우리는 증명을 따라하고, 연습문제와 응용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피타고라스 정리를 기억한다. 그 정도면 입시 대비로서 충분하고, 언젠가 간단한 계산에 써먹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물론 나는 지난 40년이 넘은 세월 동안 실생활에서 그 정리를 사용한 기억이 없다). 우리에게 피타고라스 정리는 도형의 면적이나 길이를 구하는 공식에 불과했다(당연한 일인가?). 그리고 온갖 시험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경쟁은 그 정리를 이용해서 몇 번이나 ‘꼬인’ 문제를 풀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어려운 응용문제를 풀수록 ‘수재’도 되고 ‘천재’도 되었다. 우리는 피타고라스 정리가 피타고라스를 포함한 천재 수학자들이 밝혀낸 ‘우주의 법칙’, ‘자연의 법칙’, ‘진리’, 심지어 ‘신의 섭리’의 일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 위대한 진리를 배우면서 우리는 어떤 감동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그것은 우리가 잘 외우고 써먹어야 할 수많은 수학 공식 중 하나일 뿐이었다.

어디 피타고라스 정리만 그랬겠는가? 누구도 그 정리를 건드려보거나 뒤집어보지 않았다. 피타고라스와 그 정리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 아니라 무관심과 무감각 때문이었다. ‘시험’, ‘입시’ 대비 말고 우리가 수학에 관심을 가질 동기가 없었다. 놀랍지 않다. 우리는 중학교 이후 진리 접근으로서의 수학, 논리로서의 수학, 그리고 놀이로서의 수학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 중 누구도 다음을 묻지 않았다. 만약 가 성립한다면, 도 성립하지 않을까? 는? 는? 그리고 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면적과 길이를 구하는 공식으로 외우는 학생들, 시험 대비용 지식으로만 받아들이는 학생들, 그리고 그 위대한 정리를 아무런 감흥없이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선생님으로 채워진 교실에서 그러한 상상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에서 페르마(Fermat)나 오일러(Euler)나, 그리고 와일즈(Wiles)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하는 일은 300년이 넘는 세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어렵지만, 을 가지고 로 바꿔보는 시도는 초등학생에게도 어렵지 않게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학교와 가정은 아이들을 그러한 발상이 가능한 자유롭고 여유로운 환경에 버려두지 않는다. 선생님과 부모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미션, 그리고 학생들이 내면화한 최고의 목표는 일단 ‘명문’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쓸데 없는 상상하지 말고 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 학습에서 가장 소중한 지적 호기심이 선생님의 그 한 마디에 철없는 태도, 비현실적인 행동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학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야할 선생님이 학생들의 호기심을 억누르는 반지성적 현장이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입시와 진도의 강박이, 그리고 대학에서는 취업의 강박지적 자극이 없는 학교, 반지성적인 학교를 만들고 있다. 그 때문에 상상은 우리에게 낯선 문화가 되었다. 수학적 상상력, 과학적 상상력, 사회적 상상력, 그리고 문학적 상상력이 낯선 사회가 된 것이다. 이는 대학에서 상상력을 길러주기 위한 과목을 몇 개 개설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교육 문화에 깊이 내재한 지적 자극의 부재반지성적 경향을 극복해야 한다.  그것들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의,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의 상상력을 앗아가고 있는 진정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1998, 사이먼 싱 지금/박경철 역)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