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이라는 이름의 게임(13): 집단지능과 블록체인(5)

비교적 단순한 기술적 요소인 메시 토폴로지(Mesh topology)부터 알아보자.

블록체인은 인터넷 위에서 운영되는 P2P 프로토콜(protocol)이다. P2P(Peer-to-peer) 네트워크는 인터넷 프로토콜(Internet Protocol, IP) 위에서 파일을 검색하고 공유하는 독자적인 프로토콜을 수행한다. P2P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컴퓨터들은 P2P 네트워크의 노드로써 클라이언트(client)도 되고 서버(server)도 된다.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P2P 네트워크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MP3 파일 공유 사이트인 넵스터(Napster)일 것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네트워크를 구성한 노드들(nodes)은 여러가지 방식–토폴로지(topology)라고 부름–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 중에서 메시 토폴로지는 기본적으로 노드들이 다른 노드를 거치지 않고서도 서로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소위 완전 접속망(fully-connected network)이다. 물론 부분적으로만 완전접속망인 메시 토폴로지도 있다(아래 그림 참조).

메시 토폴로지 방식의 P2P 프로토콜로서의 블록체인은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1) 블록체인은 분산 원장(ditributed ledger)이다. 거래와 원장에 대해 책임지는 통제나 권위 기구(노드)가 없으며, 모든 노드(참여자)들이 원장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갖는다.

2) 네트워크의 참여자는 누구나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모든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

3) 각 노드는 다른 모든 노드들에게 방송(broadcast)이 가능하다. 네트워크 참여자는 누구나 거래 요청이 담긴 블록에 대해 검증 요구와 검증 결과를 참여자들 모두에게 즉각 알릴 수 있다.

4) 설령 일부 참여자(들)가 네트워크에서 탈퇴하거나 노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네트워크는 정상적으로 가동된다.

5)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데이터에 대해 집단적으로 동의–이 과정을 합의(consensus)라고 부름–해야 정당한 거래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일단 합의를 거친 거래 기록(블록)은 변경될 수 없다.

한 마디로 메시 토폴로지 기반의 블록체인은 중앙집중적 통제를 대신해서 참여자 모두가 거래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나누어 갖겠다는 사상 그리고 중개자 없이도 신뢰할 수 있는 거래가 가능하다는 사상이 반영된 교환 네트워크이다. (2018-05-13)

지능이라는 이름의 게임(12): 집단지능과 블록체인(4)

Bitcoi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비트코인(Bitcoin)이 세상에 출현 한 시점이 2009년이니 블록체인(blockchain)은 우리 주위 어딘가에 꽤 오래 존재했던 셈이다. 비트코인이라는 암호화폐(crytocurrency)와 분리해서 블록체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는 어렵다. 블록체인이라는 테크놀로지가 등장한 후 비트코인이 그것의 응용제품들 중 하나로 발명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을 탄생시키는 테크놀로지로 출현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하나의 대체 화폐로 고안되었다. 화폐의 생명은 신뢰(turst)에 있다. 화폐는 근본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매개체(medium)로 출현했지만 현실에서 화폐는 그런 본원적 기능을 넘어서 가치를 평가, 저장, 그리고 확장하는 수단이 되었다.

화폐 재료는 불쏘시기로 쓰이기에도 작은 종이 조각이거나 크게 쓸모가 없는 금속 조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앙정부–대개의 경우 중앙은행–가 그것에 찍힌 액면 가격에 해당되는 가치를 보증함으로써 화폐는 한 사회가 지닌 신뢰라는 자본의 금전적 표현이 되었다.

비트코인이나 다른 암호화폐의 개발자와 사용자들은 화폐의 생산과 유통을 책임지는 중앙정부(은행) 없이도 충분히 신뢰할만한 통화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암호화폐는, 사용자들 모두가 거래 원장(ledgers)을 공유하고 사용자들의 노력과 암호기술을 결합하여 거래의 위변조를 방지하며 거래의 정당성을 보증해 줌으로써 가치의 교환이 가능한 하나의 통화 시스템이다.  블록체인은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테크놀로지이다.

블록체인은 아래 표에 보듯이 다섯 가지의 요소 기술(element technologies)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해시함수(hash function)가 핵심 기술이다. 거래 원장은 블록과 블록체인으로 구성되는데 그것들 내부의 모든 요소들이 해싱(hashing)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원장에 기재되는 거래자 성명은 공개키로 가명화되고(pseudomized), 거래자는 비밀키로 전자서명을 함으로써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장부의 위변조를 방지한다.

거래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작업증명(proof of work)이 사용되는데, 그것은 해싱에 일정한 난이도를 주고 그 해시(hash 혹은 digest)를 산출하는 어떤 값–논스(nonce)–을 찾아내는 작업을 말한다. 암호화폐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들이 원장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완전 노드(full nodes)를 제외한 나머지 사용자–경량 노드(lightweight node)라고 부름–들에게는 아주 간단히 요약된 원장–그것이 머클 루트(Merkle Root)이다–만 블록 헤더에 포함시켜 공유된다.

암호화폐에서 노드들(nodes)–사용자들–이 연결되는 방식은 메시 토폴로지(Mesh topology)이다. 메시 토폴로지는 기본적으로 노드들이 상호간에 ‘완전히 연결된(fully connected)’ 네트워크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그 요소 기술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2018-05-12)

지능이라는 이름의 게임(11): 집단지능과 블록체인(3)

이번에는 구글의 검색 엔진을 살펴보자. 내부 개발자가 아닌 다음에는 현재 구글의 검색 엔진이 정확히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구글이 검색엔진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의 검색엔진은 2000년 페이지랭크(PageRank) 알고리즘으로 시작한 이후 계속 갱신되어 왔으며 2013년에 허밍버드(Hummingbird) 알고리즘으로 전환된 후에는 큰 틀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의 발표에 의하면 검색엔진 알고리즘에는 200여 개의 요소가 투입되고 있다. 외부에 알려진 요소로는, 랭크브레인(RankBrain), 페이지랭크(PageRank), 웹사이트 품질, 검색어의 위치(제목/URL), 검색어의 동의어 존재 여부, 서버의 위치, 컨텐츠 발행 날짜 등이 있다. 그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추측한 다음, 가장 적합한 정보 순으로, 최대한 신속하게 검색결과가 제시되도록 작동한다.(주석 1)

구글의 검색엔진 알고리즘은 계속 진화해 왔지만 구글의 접근방식을 이해하는 데는 아직도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은 크게 변화되지 않았으며 아직도 구글 검색엔진 알고리즘의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다. 웹페이지의 페이지랭크 (점수)를 계산하는 원리는 아래 식(1)로 간단히 나타낼 수 있다.

웹페이지 A의 페이지랭크 는 기본적으로 웹페이지 A에 링크를 건 웹페이지 B, C, D 등의 페이지랭크[ ]를 합한 것이다. 식(1)에서 나머지 요소들은 그렇게 단순한 합을 점수로 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되었다. (주석 2)

이 식을 곰곰히 살펴보면, 해당 검색어(들)를 갖고 있는 웹페이지의 등급—그것도 링크라는 상당히 엉뚱한 기준을 가지고 매긴—이 검색 결과를 제시하는 순서를 결정한다(현재는 페이지랭크 외에도 많은 정보들이 고려되어 최종적인 나열 순위가 결정된다). 한 웹페이지의 페이지랭크는 다른 웹페이지와의 관계(링크 여부)와, 그 웹페이지를 링크한 웹페이지의 영향력(페이지랭크)에 의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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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페이지랭크는 일종의 인기도이다. 웹페이지들이 각 웹페이지를 두고 링크(link)를 거는 방식으로 일종의 인기투표를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구글의 검색 엔진이, 웹사이트들(결국 그것은 운영자들)의 지혜를 기술적으로 취합해서 효율적인 정보검색이라는 사용자들의 ‘공동’ 과제를 해결하는 집단지능임을 의미한다.

IBM의 Chef Watson은 인지적 컴퓨팅(cognitive computing)이라는 방법을 사용해서 요리 아이디어와 요리법이라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숙제를 해결해주고 있다. 이 사례도 대단히 흥미 있지만 생략하고 다음 포스팅부터는 블록체인을 살펴보자.

 

주석 1: 구글의 검색엔진이 변해온 과정을 보려면 MOZ 웹사이트의 Google Algorithm Change History를 참조. 랭크브레인 알고리즘에 관해서는 Search Engine Land blog의 FAQ: All about the Google RankBrain algorithm을 참조.  PageRank에 대한 알기 쉽고 상세한 수학적 설명은 코넬대학교가 운영하는 The Mathematics of Web Search에서 찾을 수 있음. 이 사이트는 PageRank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선형대수(linear algebra)에 대한 설명도 제공함.

주석2: 는 damping factor인데, “어떤 무작위로 웹서핑을 하는 사람이 현재의 페이지에서 다른 페이지로 가는 링크를 클릭할 확률”이다. 은 모든 웹페이지의 숫자이며, 는 B라는 페이지가 가지고 있는 링크(outbound links)의 총 개수이다. 이 요소들에 대한 쉬운 설명은 ‘조성문의 실리콘밸리 이야기’ 블로그의 “‘쉽게 설명한’ 구글의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을 참조.

지능이라는 이름의 게임(10): 집단지능과 블록체인(2)

초기에 아마존 웹사이트는 전문가들이 작성한 서평과 추천을 게시했다. 그 서평과 추천은 인기가 있었고 책 판매에 상당한 성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런 방식의 효과에 만족할 수 없었던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고객들 자신의 구매 선호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오래지 않아 알고리즘에 의한 추천은 사람에 의한 추천을 완전히 대체하였다(Mayer-Schönberger & Cukier, 2013).

아마존의  책 추천에는 품목-대-품목 협업 필터링(Item-to-item collaborative filtering)이라는 알고리즘이 사용된다. 그것은 기존의 추천 시스템들이 지니고 있던 여러 가지 한계를 극복한 것이었다(Linden et. al., 2003).

예컨대 전통적인 협업 필터링(traditional collaborative filtering)은, 고객들 사이의 상관성(흔히 코사인 유사도를 사용한다)을 구해둔 다음, 어떤 고객이 웹사이트을 방문하면, 그 고객과 가장 유사한 몇 명의 고객들을 추려서 그들이 가장 많이 구입했거나 선호하는 상품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고객들 사이의 상관성은 고객들의 상품 구매 기록과 상품 평가 기록을 가지고 계산한다. 이 알고리즘은, 규모가 작은 웹사이트에서는 그런대로 잘 작동하지만 고객의 숫자가 1천만 명을 넘고 상품의 종류가 1백만 가지를 넘어서면 막대한 컴퓨팅 비용을 초래하는 여러가지 문제가 대두된다(Linden et. al., 2003: 76-77).

전통적인 협업 필터링처럼 군집 모형(cluster models)도, 웹사이트를 방문한 고객에게 유사 고객들(similar customers)의 선호를 기반으로 상품을 추천한다. 이 알고리즘은, 고객들을 많은 그룹들로 세분해 둔 다음, 새 고객이 방문하면 그를 그 그룹들 중 하나 혹은 몇 개로 분류한다. 그룹들은 군집화 알고리즘이나 비지도학습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생성된다.

군집 모형은 전통적인 협업 필터링에 비해 큰 규모의 웹사이트에서도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 알고리즘은 전체 고객들의 정보 대신 제한된 수의 그룹들의 정보만으로 추천하기 때문에 추천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Linden et. at., 2003: 77).

이 알고리즘들과는 달리 검색 기반 방법(search-based methods)은,  어떤 고객의 상품 구매나 평가 기록에 근거해서 유사한 상품을 추천한다. 즉, 고객에게 그가 구매했거나 긍정적으로 평가한 컨텐츠의 동일한 저자, 작가, 감독, 장르 등의 인기 상품을 추천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고객의 구매나 평가 기록에 포함된 상품이 소수일 때는 잘 작동하지만 그 숫자가 크게 늘어나면 그러한 상품들을 추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다(Linden et. al., 2003: 78).

아마존의 품목-대-품목 협업 필터링은 고객들의 경험 데이터를 이용하되, 그것을 상품들 사이의 상관관계로 전환해서 사용한다. 설명을 단순화하기 위해 아마존에 네 권의 책(A,B,C,D)만 있고 사용자가 두 명(사용자 1, 2)만 있다고 하자.

만약 새로운 방문자(사용자 3)가 A라는 책을 보았다면 그에게 어떤 다른 책을 추천하면 좋을까? 아마존의 추천 엔진은 다른 사용자들의 책 탐색 기록 정보를 이용해서 A와 가장 상관성이 높은 책 B와 C를 추천한다.

이 그림은 Software Programming blog의 How does the Amazon recommendation system work?을 손질한 것임.

이 과정을 수학적으로 설명해 보자. <그림 1>에서 사용자 1은 [B, C, B] 순으로 검색했고, 사용자 2는 [C, A, B] 순으로 검색했다. 이 정보를 가지고 품목-대-품목 행렬을 구하면 우측의 상단과 같다. 이 행렬을 가지고 두 벡터(vector) 끼리의 코사인 유사도(Cosine Similarity, CosSim)를 구한다. 아래 식에서처럼 두 벡터의 내적(inner product)을 두 벡터의 노름(norm, 벡터의 크기)의 곱으로 나누어 코사인값을 구하면 된다.

위 식에서 보듯이 두 벡터의 내적은 두 변수값의 곱()의 합이고,  벡터의 노름은 각 변수값의 제곱 합(, )의 양의 제곱근이다.

이렇게 구한 유사도는 –1에서 1까지 값을 갖는다. 코사인 유사도 –1은 두 벡터가 서로 완전히 반대 방향인 경우, 코사인 유사도 1은 두 벡터가 완전히 방향이 같은 경우, 그리고 코사인 유사도 0은 두 벡터가 서로 독립적인 경우를 가리킨다. 정보나 책의 검색에서 빈도가 음의 값을 가질 수 없으므로 코사인 유사도는 0에서 1까지의 값을 갖는다.

위의 경우 아마존의 검색 엔진은 책 A와 코사인 유사도가 가장 큰 책 B와 C를 추천한다. 즉, 아마존 검색 엔진은 사용자가 누구인가에 관계없이 책들의 상관성만 가지고 책을 추천한다.

책들 사이의 상관성은 오프라인에서 이미 계산해 두고 있기 때문에 아마존은  고객들에게 책을 비롯한 수많은 상품들을 더욱 빠르고, 더욱 정확하게 추천할 수 있다. 품목-대-품목 협업 필터링은 고객들의 구매, 클릭, 평가 등의 경험을 취합하여 온라인 상품 구매에서 고객들이 안고 있는 불확실성 문제를 해결하는 집단지능인 것이다.

단시간 내에 전세계 검색 시장의 최강자로 떠오른 구글(Google.com)의 검색엔진도 집단지능의 흥미 있는 사례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내친 김에 구글 검색 엔진의 원리도 살펴보자. (윤영민, 2018-05-12)

참고 문헌

Mayer-Schönberger,  Victor, & Kenneth Cukier. 2013. Big Data: A Revolution that will transform how we live, work, and think. Boston: An Eamon Dolan Book.

Linden, Greg, Brent Smith, & Jeremy York. 2003. “Amazon.com Recommendations: Item-to-item collabrative filterning.” IEEE Internet Computing, January-Feburary: 76-80.

지능이라는 이름의 게임(9): 집단지능과 블록체인(1)

‘지능이라는 게임’ 시리즈 포스팅의 (1)부터 (8)은 유기적 지능(organic intelligence)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고, 기계적 지능(mechanical intelligence)에 대해서도 약간 언급했다. 기계적 지능에 관해서는 나중에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라는 소주제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현대적 지능의 세 번째 유형인 사회적 지능(social intelligence)에 논의해 보자.  거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블록체인을 집단지능의 하나로 보고 있고, 학교 수업에서 블록체인을 다루기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이다.

collective intelligenc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사회적 지능의 대표적인 모습은 집단지능(collective intelligence, 흔히 집단지성이라고 불림)이다. 집단지능은, 많은 사람들의 정보, 지식, 지혜, 추정, 혹은 판단을 모아서, 혹은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 기여를 통해서 공동의 관심사 혹은 문제에 대한 해결을 도모하는 현상을 말한다. (전산학에서는 집단지능을 응용 프로그래밍의 하나로 보고 있다. 그 예로 Programming Collective Intelligence 을 참조하시오.)

그렇게 정의하면, 모든 사회조직은 집단지능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국가, 기업, 시민단체, 이익단체, 마을 공동체 등이 모두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적 노력이라는 점에서 집단지능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적 집단지능에는 과학기술(technology)이 추가된다. 많은 사람들의 기여를 취합하거나, 조정하고, 나아가 그 결과를 제시하는데 과학기술이 적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집단지능은 사회적 지능이라기보다 사회-기술적 지능(socio-technological intelligence)라고 분류하는 편이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집단지능의 변천을 추적해 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인터넷을 이용한 집단지능의 효시로는 아마도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University of Iowa)의 교수진이 운영하는 Iowa Electronic Markets (IEM)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소위 예측시장(prediction markets)의 효시이기도 하다(예측시장의 훨씬 흥미있고 대중적인 사례로 Hollywood Stock Exchange, HSX가 있음).

IEM에서 참가자들은 소액의 돈으로 해당 선거의 후보에 해당하는 주식을 산다. 실제로 해당 선거가 끝나면, 선거 결과에 따라서 배당을 받는다. 당연히 자신이 구입한 주식에 해당하는 후보가 선거에서 이기면 배당이 된다. 따라서 참가자들은 진지하게 선거 결과를 예측하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게 배팅(?)한다. 그리고 IEM 시스템은 그것들을 기술적으로 취합해서 선거 결과를 예측한다.

IEM에서는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대통령, 정당의 대통령 후보, 주지사, 상원의원, 하원의원, 시장 등 각종 공직자 선거에 대한 주식거래가 이루어졌고, 선거 결과를 예측했다. IEM의 예측 성공률은 상당히 높아 유명 여론조사 기관들의 출구조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관련 논문을 참고하시오).

리눅스(Linux)는 집단지능의 대표적인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마도 상업적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추천엔진(recommenders)만한 집단지능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특히 Amazon.com의 추천 시스템은 이전의 추천 시스템들과 달리 대규모의 쇼핑몰에서도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음이 입증되었고, 음악이나 영화 사이트, 인터넷 쇼핑몰 그리고 SNS까지 너도나도 유사한 추천엔진을 도입해서 고객들에게 ‘개인화’ 서비스 혹은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아마존 추천엔진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가를 살펴보자. (윤영민, 2018-05-11)

행복한 토론을 위한 몇 가지 기술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국가들 사이의 회담이 연이어 진행되고 있다. 정상회담, 당국자 회담, 실무회의 등 여러 수준의 대화가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숨가쁘게 열리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대화가 개인 뿐 아니라 집단에게도 생존과 번영을 위한 최고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런데 대화가, 상호 이해나 타협 혹은 의사결정에 도달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지식의 생산(즉, 연구)이나, 지식과 깨달음의 습득(즉, 학습)에도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흔쾌히 인정하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연구나 학습이 개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라고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분위기를 개선하는데 쓸모가 있으리라 생각되어, 6년 전 페이스북의 ‘정보사회학’ 페이지에 올렸던 글을 약간 손질하여 전재한다. 당시에는 온라인 대화에 특정해서 논의하였지만 거기에 제시된 내용은 오프라인 대화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권위주의적 혹은 신분계층적 잔재가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서 생산적인 대화가 쉽지 않음은 별로 놀랍지 않다. 우리 사회에는 대화를 통해서 상호 이해와 합의에 도달하는 토론(discussion)이 발달하지 못했고, ‘함께 생각하는(thinking together)’ 수단(혹은 과정)으로서의 대화(dialogue)가 보기 드물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방송에 시사토론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몇몇 논쟁적 지식인이 연예인 수준의 명사로 등극하고, 유튜브상의 수많은 대안 미디어 덕분에 적지 않은 스타 지식인들이 출현했지만, 대화 그리고 대화적 지식인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선 문화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도대체 ‘함께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부정되는 분위기이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생각한다는 것은 홀로 명상을 한다거나 글을 쓰는 행위와 동일시된다. 대화를 통해 함께 생각하기(이하에서는 다이어로그라고 부름)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한데,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리고 직장(일부 교육을 제외)이나 대중매체 같은 사회에서도 다이어로그하는 훈련을 시켜주지 않는다.

대화에는 한담(閑談), 난장(亂場)적 대화, 논쟁, 토론, 다이어로그(對談)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앞 세 가지는 잘 발달한 반면 뒤 두 가지는 좀 약한 편이다. 난장적 대화(Carnivalesque)는 전통적으로 판소리 가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요즘에는 유튜브의 시사토론 미디어에서도 발견된다. 그것은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대화이다. 논쟁(debate)도 서구사회 이상으로 발달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벼슬자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목숨까지 걸면서 정치적 논쟁을 했고, 요즘도 TV 시사토론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상에는 직업적 ‘논객’들이 적지 않다.

논쟁(debate)은 나름대로 사회적 가치가 있다. 한 사회에 내재한 상이한 입장과 견해를 극적으로 드러내주는데 논쟁만한 대화 형식이 없다. 또한 논쟁은 논리 발달을 촉진하고 게다가 첨예한 논쟁은 시청자에게 말싸움을 구경하는 재미를 주고, 덕분에 방송국은 저비용으로 취약 시간대 방송을 커버하고 운이 좋으면 제법 괜찮은 시청률을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논쟁은 치명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대화의 목표가 승리(혹은 설득)이기 때문에 찬반 발언은 당파성을 띄게 되고 참여자는 상대의 논리적 허점을 찾아내어 공격해야 한다. 상대편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패배이다. 논쟁은 보통 우리가 말싸움이라고 부르는 경기이다. 거기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 어려우며 상호 이해와 합의를 기대할 수 없고 지식의 생성이나 자기발견적 학습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사회적으로는 분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거기에서는 쟁점이 실제의 차이보다 훨씬 단순화되고 과장되며 감정적인 응어리까지 남기기 때문이다.

논쟁은,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면서도 상호이해와 합의에 도달하는 토론과 구분되며, 더구나 참가자들의 기여를 최대한 끌어내면서 교육(혹은 학습) 효과를 내거나,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의사결정을 해내는 다이어로그와는 판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지식생성과 학습을 위한 다이어로그를 성공적으로 일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우리가 정말로 ‘함께 생각하기(thinking together)’의 놀라운 효과를 기대한다면, 무엇보다 세 가지 전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대화 참여자들이 서로 존중해야 한다. 다른 참여자들의 능력에 대해 무한 신뢰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그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참여자들의 잠재력이 성공적으로 표출될 수 있다. 서로 무시하고 경시하는 순간 함께 생각하기는 물 건너 간다. 참여자들은, 내 의견이 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공동의 목표가 설정되어야 한다. 꼭 명시적인 대화를 통해서 공동의 목표가 설정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일방적으로 주어질 수는 없다. 설령 묵시적일지라도 대화 참여자들이 대화의 목표를 충분히 공감하고 수용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일회의 대화가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의 공동체로서의 목표일 수도 있다. 예컨대 SNS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목표가 될 수도 있겠고 지역발전이 목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진정성을 갖추어야 한다. 대화 참여자들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이 자신도 모르게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목표와 용도가 명시적이며(explicit) 공공적(public)이어야 한다. 이는 대화 주도자에게 해당되는 요건이다. 일반적인 대화 참여자들이 대화를 통해서 자신을 알리거나 자신의 입지를 만들어가려는 의도까지 배제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요건을 갖추면 다이어로그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은 Lawrence M. Miller의 “Dialogue: learning to Think Together(2004)”를 참고하여 작성된, 다이어로그가 성공하기 위해 실천되어야 할 요소들이다.

1) 경청하라(Practice Deep Listening): 논쟁할 때는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을 발견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지만 다이어로그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경청한다. Miller의 글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다이어로그는 작가적 경청을 필요로 한(Dialogue requires the listening of the writer). 즉,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 다른 사람의 스토리를 듣는 능력, 각 스토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디테일에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이 필요하다(Miller, 2004: 9).”

2) 질의하라(Practice Inquiring versus Acquiescing): Miller의 지적처럼 “질문은 학습의 근본적인 수단이다.” 여기까지는 대단할 게 없고 다음이 중요하다. 논쟁과 달리 상대방을 곤경에 몰아넣기 위해서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에서 상대방의 기여를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질문을 해야 한다. 예컨대 누군가가 어떤 제안을 했다면, 그 제안의 완성도를 높이고 실현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이어로그는 대화의 상대를 성장시키면서 내가 성장하는 기회이다.

3) 판단을 유보하라(Practice Suspending Judgment): 논쟁에서는 판단이 빨라야 한다. 전광석화처럼 상대의 허점을 치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이어로그에서는 누군가의 발언에 대해 서둘러 평가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충분한 반대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경험을 했고, 다른 사람보다 지식이 많으며, 다른 사람보다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통 판단이 빠르다. 그것이 장점인 경우도 많겠지만 다이어로그에서는 단점이 된다. 다이어로그에서는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이 최고의 미덕이다. 겸손이야말로 다른 사람이 함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백을 준다.

수업이나 온라인 다이어로그에서는 겸손이 특별히 중요하다. 참여자들은 자신이 어떻게 평가 받을 지에 대해 두려운 생각을 갖기 쉽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이 편안히 자신의 생각을 발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겸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4) 상대를 부인하는 유형화를 피하라(Avoid Dismissive Categorizing): 이 또한 뼈아픈 말이다. 그것은 논쟁에서는 가장 자주 사용되는 공격법이다. 좌빨, 수구꼴통, 진보, 보수…정말 우리 사회의 대화에서는 부인적 유형화가 아주 심하다. 사람이든 발언이든 부인적 유형화를 해버리면 그 다음부터 다이어로그는 회복 불능 상태에 들어간다. 일단 상대에게 색칠을 해버리면 그의 모든 발언이 긍정적으로 해석되기 어렵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상대나 상대의 발언에 대한 유형화는 피해야 한다.

5) 당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찾아라(Seek Your Authentic Voice):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모두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남의 말을 이해한 다음 자신의 생각을 새겨본다. 말하기 전에 먼저 곰곰이 자신의 생각을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는 대화 중인 주제에 관해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입장을 찾았다고 생각되면 지체 없이 그리고 당당히 발언해야 한다. 대화의 흐름이 빠르면 말할 기회를 놓치기 쉽다. 그리고 일단 흘러가고 다면 대화의 초점을 되돌리기가 무척 어렵다.

다이어로그를 시작할 때 대다수의 참여자들은 주제에 관한 잘 모를 수 있고, 참여자들의 사전적인 지식의 편차가 아주 클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이어로그가 진행되면서 참여자 개개인에게 정보와 깨달음이 빠르게 쌓여간다. 뿐만 아니라 다이어로그의 최대의 성과는 혼자라면 얻기 어려운 깨달음-지식-을 함께 얻게 되는 것이다. 집단지성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다이어로그가, 최적 상태에 도달하기 전에 끝나버리는 ‘집단사고(group think)’에 머물지, 아니면 참여자 개개인의 지적 능력을 초월하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성취할 지는 쉽게 예단할 수 없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하고, 다섯 가지 원칙을 잘 지킨다면 다이어로그를 성공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윤영민, 2018-05-04)

대학에서의 사회과학 수업,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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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사회과학 수업에서 교수는 자신이 강의하는 사회 문제나 쟁점에 대해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학 수업에서는 중고등학교 때처럼 표준화된 교과서식 해답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강의하는 교수가 분석 문제나 쟁점에 대해 자신의 의견이나 입장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교수는 자신의 목소리(주장) 톤을 최대한 낮춘다. 그래야 학생들이 사회 현상에 대해 다양한 이론과 입장을 분석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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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이, 교수가 학생이라는 포박된 청중(captive audience)에게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강의는 추종자, 비판자, 그리고 무관심한 자를 생산하는 설득 행위가 되어 버린다. 강의가 일종의 상품 광고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에서 교수는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 문제나 쟁점에 관련된 다양한 관점, 입장, 이론, 사실 등을 검토하도록 요구한다. 교수들은, 학생이 무슨 의견이나 입장을 갖고 있는가보다 학생이 자신의 의견, 입장, 혹은 느낌을 얼마나 기품있게 제시할 수 있는가에 주목한다. 학생에게 그러한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대학 교육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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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의실은, 교수의 ‘정견’ 발표장이 아니듯, 학생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그것은 흔히 선입견이나 편견이곤 한다–을 확인하거나 강화하는 장소가 아니다. 물론 이 말은 학생들이 자신의 신념이나 의견을 주장해서는 안되는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그보다는 교수나 다른 학생들의 의견과 입장을 존중하는 열린 자세를 강조하는 말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은 서로 다른 생각이나 입장을 가진 타인(교수, 학생 등)을 만나서 자신의 생각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며, 수정한다. 수업에서 그런 깨달음을 얻으려면 학생들은 남을 존중하는 자세를 갖고 토론에 임해야 한다. 물론 이는 교수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칙이다. 교수도 학생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매년 신입생을 마주하면, 나 스스로 대학교육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교수와 학생은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좋은 반성의 기회이다. (윤영민, 2018-04-15)

 

뉴런-시냅스에서의 정보 전달

인체의 신경계(neural system)는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등 감각기관을 통해서 감지된 신호(자극, 정보)가 두뇌에 전달되고 두뇌의 대응 지시가 다시 감각기관에 전달되어 우리의 신체가 내외부에서 받는 신호에 대해 신속하고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게 해주는 신체 내의 체계이다. 신경계의 신호전달을 담당하는 세포가 뉴런(neuron, 신경세포)이다. 뉴런이 다른 뉴런에게 신호를 전달하는 과정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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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런의 세포체(cell body)는 두 가지의 연장체(extension)를 지니고 있다. 다른 뉴런으로부터 신호를 받아들이는 수상돌기(dendrite)와 다른 뉴런에게 신호를 내보내는 축삭(axon)이 그것이다. 수상돌기는 통상 짧지만 축삭은 긴 경우 1 m 이상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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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돌기에는 이온 수용체들(ion receptors)이 달려 있다. 시냅스 전 뉴런(presynaptic neuron)의 축삭 종말에 활성 전위(action potential)가 이 도달하면 거기에서 글루타민산염(Glutamate)이 방출되고 그것은 시냅스 후 뉴런(postsynaptic neuron)에 해당 신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이온 수용체가 열리도록 작용한다. 만약 시냅스 전 뉴런이 흥분 뉴런(excitory neuron)이면 나트륨을 받아들이는 이온 수용체가 열려서 나트륨()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되면 수상돌기 끝에서 막탈분극화(membrane depolarization)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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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상태(resting state)에 있던 수상돌기 멤브래인(membrane)의 전극은 세포 안쪽이 음극(-), 세포 바깥쪽이 양극(+)으로 되어 있는데, 이온 채널(pump)이 열려서 양극의 나트륨 이온이 경계막 안쪽으로 흘러들어오면 막탈분극화가 일어난다. 점점 양쪽의 전극이 약화되고 종래에 경계막 안쪽은 양극(+)으로, 경계막 바깥쪽은 음극(-)으로 바뀐다. 그러면 옆쪽 부분의 전극이 아직 음극(-)이므로 전위차가 발생하고 신호 이동이 일어난다. 그런 다음 옆쪽 이온 채널이 열리면 그곳에도 나트륨 이온이 경계막 안으로 흘러들어오고 그곳에서도 막탈분극화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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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에 신호 전달을 마친 부분에서는 이온 채널을 통해서 칼륨() 이온이 경계막 바깥으로 배출되며 경계막 내부가 다시 원상태인 음극으로 되돌아가는 막재분극화(membrane repolarization)가 일어난다.  [만약 시냅스 전 뉴런이 억제 뉴런(inhibitory neuron)이면 염화이온(chloride ion, )이 배출되며 시냅스 후 뉴런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온 수용체가 열려서 수상돌기 끝에서 막분극화를 강화하여 막탈분극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작아진다. 즉, 신호가 전달될 가능성이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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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수상돌기에서 세포체로 신호가 전달되며, 신호가 충분히 강하면 세포막에서 축삭으로 신호가 전달되면서[여러 수상돌기로부터 온 신호가 합쳐져서 충분히 강하면 축삭소구(hillrock)에서 활성 전위(action potential)가 발사된다] 막탈분극화-막재분극화가 반복되고 종국에 활성 전위(신호)가 축삭 종말(axon terminal)에 도달한다. 축삭 종말에서 신호가 전달되면 주머니에 쌓여 있는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이 시냅스 틈(synapse cleft)으로 분비되며, 그것이 다음 뉴런의 수상돌기에 있는 수용체(receptors)를 통해서 흘러들어간다. 그리고 위에서와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서 뉴런에서 다른 뉴런으로 그리고 거기서 또다른 뉴런으로 신호가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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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민, 2018-04-13)

사이버 폭력–해법 없는 야만

사이버 폭력은 영어로 online violence (혹은 cyber-bullying)로 불리기도 하고 online harassment로 불리기도 한다. 폭력(violence)은 법적으로 명백한 범죄이지만 harassment(괴롭힘)은 범죄일 수도 있고, 단순한 도덕적 혹은 윤리적 일탈일 수도 있다. 이 표현상의 애매함은 사이버 폭력에 내재한, 해소될 수 없는 모순 혹은 이중성을 보여주며, 나아가 그것이 지닌 사회적 심각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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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형태의 사이버 폭력이 ‘괴롭힘’이고 심각한 형태의 사어버 폭력이 ‘폭력’인 것이 아니다. 그 두 용어가 단지 사이버 폭력의 강도를 의미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것은 가해자 입장에서 보는가 아니면 피해자 입장에서 보는가를 질적으로 구분해 주는 용어로 봐야 한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괴롭힘’도 있고 ‘폭력’도 있겠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오직 ‘폭력’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재밌자고 한 말인데요.” “화가 나서 그냥 한 마디 한 것 뿐이에요.” “좀 튀어볼라고 쓴 것 뿐인데.”

사이버 폭력 가해자를 인터뷰할 때 듣게 되는 전형적인 반응들이다. 가해자들은 사이버 폭력을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는 행동으로 인식하거나 기껏해야 가벼운 일탈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가해자 입장에서는 피해자를 비아낭거리거나 다소 심한 농담을 한 정도, 좀 더 심하면, 약간 화를 내거나 욕설을 퍼붓는 행위, 아주 심각한 경우라해야 침을 뱉거나 따귀를 때리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가해자는 그것을, 주먹으로 상대가 부상을 당할 정도로 때리거나 둔기를 내려치는 범죄, 더구나 칼로 찌르는 행동 같은 중대한 범법 행위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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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달리 사이버 폭력의 피해자들 대부분–그것을 좀 넉넉하게 받아들이자는 문재인 대통령은 소수의 예외에 속할 것이다–은 사이버 폭력이 심각한 사회 범죄라고 생각한다. 가해자 개개인은 가벼운 비난이나 욕설만을 했어도 그렇다. 수백명, 수천명, 혹은 수만명이 비난과 욕설을 쏟아내면 그것을 담담하게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사이버 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나아가 사회적 피해는 워낙 위중하다. 피해자는 오랜 기간 극도의 분노, 좌절, 공포에 사로 잡히고, 불면증은 물론이고 위통, 근육통 등 신체적 이상이 수반되기도 한다. 명사들의 경우 그 피해가 심리적 혹은 신체적 상태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로 인해 그들은 직장이나 직업을 잃고 영원히 사회적으로 매장되기도 한다. 명사들에게는 명예나 이미지가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명예를 잃거나 이미지가 망가지는 것은 사회적 죽음이나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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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폭력에 대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그러한 의식 격차(awareness gap)는 사이버 폭력의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중대한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소리 한번 지르거나 침 한번 뱉었는데 상대가 죽어버리는 현상이 사이버 폭력이다.

사이버 폭력은 인터넷 야만(野蠻)이다. 사이버 폭력의 피해자는, 때로 성폭력, 성추행, 혹은 성희롱을 저지른 성범죄 혐의자일 수 있고, 때로 범죄까지는 아니더라도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했을 수 있으며, 때로 남이 저지른 비행에 대해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일 수도 있고, 때로 특정 사회적 사건과는 관계없는 엉뚱한 사람일 수도 있다. 문제는 흔히 아직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피해자’에 대한 일종의 여론 재판이 끝나 버리곤 한다는 사실이다. 법적 판결을 받기도 전에 이미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사형’이 집행되어버리곤 한다는 사실이다. 그 재판에서 선고는 사형 뿐이고 집행은 즉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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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에 대해서든 집단에 대해서든 타인에 대한 직접적인 복수나 응징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그것은 명백한 범죄 행위이다. 범죄에 대한 판단과 처벌은 오직 국가의 사법기구만에게만 부여되어 있으며 반드시 법률에 따라야 한다(죄형법정주의). 경찰이나 검찰이 범죄를 인지하거나 범죄 피해자의 고발이나 고소가 있으면 사법기구가 범죄를 조사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재판하며 피해자를 대신해서 형을 집행한다. 그리고 그 형은 범죄 행위에 대해 적절한 수준이어야 한다. 2-3년 정도 실형을 살아야 하는 범죄자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집행할 수는 없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사법권은 국가에게만 배타적으로 주어지고 사법부는 사회 정의(正義)의 최종 담지자이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범죄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범죄 혐의자(혹은 그렇게 추정되는 사람)에게 충동적이고 무책임한 심판과 처벌이 발생한다. 제어되지 않은 대중의 분노–그것은 왕왕 근거가 잘못 된 것이곤 하다–가 순식간에 한 사람의 사회적 생명을 끝장내 버린다. 거기에는 적법한 절차, 적절한 형량, 정당한 집행 따위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것은 집단적 린치이다.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 개개인은 양심의 가책은 커녕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사소한’ 댓글 한 마디 올렸을 뿐인데, 수백, 수천의 댓글들이 합쳐져서 당하는 사람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린치요 형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문명 사회에 살고 있다면 그러한 사회적 범죄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언론의 자유도 아니고 표현의 자유도 아니다. 당하는 사람에게 있어 그것은 그냥 흉악한 범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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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야만인 사이버 폭력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사이버 폭력이 인터넷 사용자의 자율적인 방법이나 교육을 통해서 해결될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사이버 폭력에 대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의식 격차가 너무 크며, 사이버 폭력은 대단히 가볍고 충동적이며 순식간에 발생해 버리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을 엄격하게 한다고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가해 행동의 성격에 따라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도 비현실적이고, 그렇다고 피해의 정도에 따라 가해자를 처벌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사이버 문화의 향상이나 교육을 통한 인식의 제고가 필요하겠지만 사이버 폭력이 발생하는 공간에 대한 통제가 필수적이 아닐까 생각된다. 인터넷 포털, 인터넷 매체, SNS 운영 업체에 대해 예방 책임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사실 무분별한 댓글이 방치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그 업체들의 상업적 동기이다.

모든 인터넷 포털, 인터넷 언론, SNS에 대해 실명제를 의무화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실명제를 도입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벼운 비난, 퍼나르기, 신상털이는 실명으로도 얼마든 행해진다. 페이스북의 경우 사용자가 실명은 물론이고 자신의 얼굴까지 공개하고 있지만 사이버 폭력이 발생하고 있지 않는가. 더구나 관련 업체들은 언론의 자유 혹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라고 거세게 저항할 것이다. 그런데 실명제가, 정부가 그 저항을 강제로 잠재우고 시행할 정도로 효과적인 제도인지 의문이다.

답답하다. 과연 사이버 폭력에 대한 효과적인 해법은 없을까? (윤영민, 2018-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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