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shall McLuhan과의 가상적 대화(3)

Tetrad
Tetrad

만리거사: 선생님, 아마도 지구촌(global village)과 재부족화(retribalization)는 선생님께서 고안하신 개념들 중 가장 널리 애용되고 있을 겁니다. ‘지구촌’은 선생님 생전 때부터 현재까지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재부족화’는 지난 10여 년 사이에 학문적으로 부활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특히 노마디즘(nomadism), 부족주의(tribalism)에 관심을 가진 프랑스 학자들이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그런데 애초에 그 개념들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였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 개념들이 원래의 의미를 많이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McLuhan: 한 명의 학자로서 사후에도 자신의 학문적 성과가 널리 애용되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고 영광이지요. 그런 점에서 나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개념들이 대중화되면서 제 원래 의도가 다소 왜곡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이미 그 개념들이 제 손을 떠나 사회적 자산이 되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 사용되든 사실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닙니다만 원 뜻이 존중된다면 저로서는 더욱 만족스럽겠지요.

제가 하늘에서 내려다 보니까, ‘지구촌’에 대한 가장 심각한 오해는 그것을 사랑과 조화가 충만 된 곳으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그런 의미로 사용한 적이 없는데. Playboy지 인터뷰에서도 분명히 밝혔듯이 “일치(uniformity)와 평온(tranquility)이 지구촌의 특징은 아닙니다.” 부족화되면 사랑과 조화만큼 갈등과 불일치도 잦아집니다. 부족이란 게 원래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기도 하지만 헤게모니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기도 하고 뭐 그런 것 아닌가요?

사려 깊은 독자라면 “지구촌”과 “미국의 발칸화”라는 두 현상이 서로 별개이거나 상충되는 경향이 아니라는 내 입장을 정확히 파악했을 텐데, “미국의 발칸화”는 무시하고 “지구촌”만 살려 놓는 탓에 그런 오해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만리거사: 선생님이 글을 너무 재미 없게 써서 독자들이 선생님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때문도 있겠지요. 그건 선생님 자신의 책임이 큰 것 같네요. 그리고 미국의 발칸화로 표현한 소국(ministates)의 번성이라는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명제를 무시하거나 잊어버린 게 아닐까요? 결국 “지구촌”만 살아남은 것이지요.

McLuhan: 뭐 틀린 해석으로 보이지는 않군요. 근데 내가 서로 대비해 지적했듯이, 인쇄미디어는 사회적으로 중앙집중화(centralizing)시키고, 심리적으로는 파편화(fragmenting)시킵니다. 반면에 전자미디어는 사회적으로 탈중앙화(decentralizing)시키고, 심리적으로는 통합(integrating)시킵니다. 인쇄미디어는 개인주의를 촉진시키며, 거기에서 자유(freedom)는 기껏해야 소외되고 파편화되기 위한 권리일 뿐입니다. 반면에 전자미디어는 부족주의를 촉진시키고, 통합된 개인을 출현시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결과 수많은 소국들(ministates)이 출현하리라 예상했습니다. 나는 그런 맥락에서 미국의 발칸화(balkanization of the United States)를 예견했던 것입니다.

만리거사: 제가 보기에는 미국의 발칸화라는 예측이 맞지 않았다는 사실이 선생님의 인쇄미디어와 전자미디어의 구분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선생님은 TV를 전자미디어라는 이유로 신문과 다른 사회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단정했는데, 거기에 문제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을 공부하는 젊은 연구자들은 신문과 TV를 한 묶음으로 간주합니다. 뭐 선생님도 기억하실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좀 오래 된 연구자들도 그렇게 봅니다. 세 가지 의미에서이지요. 하나는 일방향적 매체라는 점, 둘은 중앙집중적 매체라는 점, 셋은 사회통합적 매체라는 점입니다. 신문이나 TV같은 대중매체가 일방향적이라거나 중앙집중적이라는 점은 요즘은 상식적인 얘기이고, 사회통합적 매체라는 주장은 좀 논란 중입니다.

위르겐 하버마스, 베네딕트 엔더슨(Benedict Anderson), 그리고 최근에는 카스 선스타인(Cass Sunstein) 같은 학자들이 대중매체의 사회통합적 기능에 주목합니다. 선생님과는 다르지요? 이 중 하버마스와 선스타인은 인터넷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사회를 파편화시킨다는 겁니다. 소위 반향실(eco-chamber) 효과라는 가설인데, 뭐 인터넷이 사용자들에게 고도의 정보선별(filtering)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유사한 생각, 유사한 취미, 유사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뭉치는 경향이 강화된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을 위협한다고 주장합니다. 반 앨스타인과 브린졸퍼슨(Van Alstyne and Brynjolfsson)은 그것을 사이버발칸화(cyber-balkanization)라고 불렀는데, 선스타인은 사이버발칸화를 넘어 사회 전체에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를 초래하고, 인터넷은 테리리스트나 KKK같은 극단적 집단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주장합니다.

반면에 요차이 벤클러(Yochai Benkler)나 클레이 셔키(Clay Shirky), 그리고 저도 그렇습니다만, 대중매체는 상당히 엘리트 중심적이고, 억압적인 측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대중매체는, 통합은 통합인데, 불평등한(비대칭적 정보) 계층질서 위의 통합을 촉진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통합이 아니라는 거지요.

저는 인터넷이 바로 그 지점에 도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도전을 “엘리트주의의 종말”, “지식인의 죽음”이라고 해석합니다.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지식인이 아니라, 비대칭적 지식 분배 위에 권력을 향유하는지식권력으로서의 지식인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일방향적 매체, 선생님 표현으로 하자면 hot media가 사라짐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사실 쿨미디어(cool media) 시대가 온다는 선생님의 예측은 놀랍게 들어맞았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바로 그것이고, Social media야말로 쿨미디어가 아니겠습니까? 지난번에 제가 선생님의 쿨미디어 주장을 비판한 것은 이제 모든 매체가 쿨미디어가 되었기 때문에 핫미디어니 쿨미디어니 하는 구분이 불필요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미국의 발칸화” 예측이 틀린 또 다른 이유는 선생님이 민족주의(nationalism)의 자기 재생산 능력을 과소 평가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부족을 강조하다 보면 당연히 민족주의를 가볍게 보게 되겠지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 민족주의는 죽은 개가 아닙니다. 아직도 한참 동안 민족주의는 사람들의 정체성(identity)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세계의 정치적 지형을 형성하는데 있어 거대한 힘을 행사할 것입니다. 민족, 민족주의, 민족국가와 같은 논쟁은 별도로 해야 하겠지만, 간단히 말씀 들이자면, 그것들을 기능적으로만 접근하는 학자들은 쉽게 민족국가의 종말을 얘기하지만, 근본적으로 민족이 지닌 역사적, 그리고 권력적 측면을 무시했기 때문에 나온 섣부른 결론이지요. 선생님도 그런 학자들 중 한 분이고요.

그렇다고 “부족”의 개념이 무용하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마페졸리(Michel Maffesoli)가 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집단으로서의 “부족주의”는 민족주의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족주의”와는 좀 다르지요? 마페졸리는 선생님한테 큐를 받아서 “신부족주의”를 제기했는데, 선생님만큼 그렇게 all-encompassing(모든 것을 포함하는) 컨셉을 제시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터넷상에 마페졸리적 의미의 “부족”과 “부족주의”는 넘쳐나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페이스북이 전세계 사용자 5억 명을 넘어 질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지구적 규모로 돌아가는 페이스북이 갖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혹은 문화적 함축성이 무엇일까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입니다.

일단 선생님의 시각을 원용하면, 페이스북에 등장한 실시간 지구촌에는 한편으로 “사랑(love)과 조화(harmony)”가 넘치고, 다른 한편으로 “단절(discontinuity), 다양성(diversity), 분리(division), 갈등(conflict), 불일치(discord)”가 끊임 없이 발생하리라 예상되는 군요. 뭐 크게 인상적인 예측은 아닌데요. 좀 더 구체적인 전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선생님이 주실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윤영민, 2018-05-17)

Marshall McLuhan과의 가상적 대화(2)

Herbert Blumer, Berkeley 연구실
Herbert Blumer, UC Berkeley의 사회학과 연구실에서

만리거사: 어제 제가 말씀들이다 중단한 부분부터 다시 시작하지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를 폐기처분 하자고 제안했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은 이렇게 되물으시겠지요? “미디어가 메시지가 아니면 뭔데?”

인류에게 미디어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이해합니다만, 선생님은 극단적인 형태의 기술결정론적 입장을 취하셨지요. “미디어가 인간(혹은 인간 감각)의 확장”이라는 문구가 선생님의 관점을 정확히 드러내줍니다.

미디어를 미디어라고 놓고 보아야 무슨 얘기가 되지요. 기술결정론이든, 사회결정론이든, 아니면 사회구성주의든 말입니다. 선생님처럼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이라고 정의해 버리면, 그 때부터는 동어반복(tautology)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미디어가 뭐냐고 물으면, “인간의 확장”이라고 대답하고, “인간의 확장”이 뭐냐고 물으면 “미디어”라고 대답해야 하는 세계 말입니다. 미디어 만능주의 혹은 미디어 신비주의에 귀결되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오버’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사이보그 인권선언’의 입장에 서 있는 학자들에게는 미디어와 인간의 이원론을 부정하는 선생님의 철학이 예언자의 목소리로 들리겠지요. 그러나 저 같은 사회학자에게 미디어와 인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경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가정되어야 합니다. 저는 미디어를 도구 혹은 환경으로 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의 혜안을 통째로 거부하지는 않으니 너무 실망하시지는 마십시오.

일단 미디어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그렇게 정리해 놓아야, 메시지의 주체가 인간임을 선언할 수 있습니다. 즉, “미디어가 메시지이다”가 아니고 “인간이 메시지이다”라는 제 입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뭐 그것이 제 독창적인 생각은 아닙니다. 선생님과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허버트 블루머(Herbert Blumer) 선생님한테 받은 영향이지요. 끝없이 의미를 생산하고 해독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관점 말입니다. 메시지는 의미이고, 메시지의 시작과 끝은 인간(발신자, 수신자)입니다.

Claud Shannon과 그 후예인 정보학자들이 이 말을 들으면 뒤집어 지겠지요. 메시지에서 의미를 탈각시킴으로써 디지털 정보혁명이 가능해졌는데 뭔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예, 맞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디지털 정보혁명이 성공하면서 스스로를 넘어서는 형국이 된 것이지요. “의미의 귀환”이라고 해둡시다.

혹자들은 컨텐츠(contents)를 강조합니다만, 짧은 생각입니다. 컨텐츠보다 인간이 우선이지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Google이 컨텐츠를 중심에 두고 있고, Facebook이 인간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모르시겠다고요? 그렇겠지요.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인식을 갖고는 답이 안 나올 겁니다.

저는 fb이 이길 것으로 봅니다. “인간이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컨텐츠는 인간과 결합될 때 의미가 부여됩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의미(meaning)”이지 “컨텐츠”는 아닙니다. Google이 그것을 깨닫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데, Facebook이 한 수 위이더군요.

이 정도면 “미디어가 메시지”가 아니면 뭐냐는 선생님의 도발적 질문에 대한 제 답변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선생님이 “미디어가 마사지(massage)”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미디어의 영향을 강조하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님의 그 문구를 참 좋아합니다. 요즘 fb를 사용하노라면 두뇌가 참 많이 마사지를 받는다는 느낌입니다. Fb 친구들은 굳어진 제 머리를 마구 두들겨 주거든요. 정말 선생님의 그 말씀은 지금도 살아있어야 할 명언입니다. 좀 위안이 되시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문구를 잊어버리고, 시대에 맞지 않는 “미디어가 인간 감각의 확장”이라든가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문구만 기억해요.

다음에는 “재부족화”와 “지구촌”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 볼까요? 선생님이 고안한 그 개념들도 요즘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도 잘 사용합니다만 또 따져봐야 할 점들이 있어요. (윤영민, 2018-05-17)

Marshall McLuhan과의 가상적 대화(1)

Marshall McLuhan, Playboy (March, 1969)

McLuhan이 살아 돌아온다면 인터넷, SNS, 집단지성 등에 대해 무어라고 말할까요? web 2.0시대에 McLuhan의 미디어 이론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마음 편하게 좀 따져보고, 건질 것은 건지고, 버릴 것은 버렸으면 합니다.

만리거사: McLuhan 선생님,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도 벌써 30년이 흘렀군요. 그 동안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어떤 부분은 선생님께서 예상하신 대로 되어가고 있고, 어떤 부분은 선생님의 예상과 많이 다르게 전개되고 있어요. 선생님 자신이 보시는 오늘날의 세상을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중심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McLuhan: 만리거사님, 기억하실 지 모르겠지만, 내가 41년 전에 Playboy지와의 인터뷰 에서 압축적으로 예측했던 세상이 대체로 그대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전보로 시작되어 라디오, TV, 컴퓨터 등으로 발전된 전자미디어(electronic media)가 인터넷, 멀티미디어, 모바일로까지 발전했고, 내가 지적했던 실시간-구두문화로의 회귀(시각적 공간에서 청각적 공간으로의 전화), 재부족화, 지구촌화, 실시간 참여정치, (시각적 문화와 청각적 문화 사이의) 문화적 갈등, 미국사회의 발칸화, 학교의 창살 없는 감옥화, 프라이버시의 몰락(?), 쿨 미디어의 발달 등이 대체로 모두 실현되지 않았나요? 기술 자체는 내 생전에 비해 많이 발전했지만 기술의 성격에 본질적인 변화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네요.

만리거사: 예. 1969년 Playboy지 인터뷰 기억합니다. 이제야 드리는 말씀이지만 참 길었어요. 50페이지가 넘었으니까요. 선생님이 당시 대중문화의 icon으로 떠오르기는 했지만 뭐 Playboy같은 야한 잡지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인터뷰였지요. 지금 다시 읽어보니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히 예측하셨더군요. 진짜 미래를 엿보신 것 아니었던가요? 그렇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생생하게 4-50년 후의 세계를 그릴 수 있는 지 도무지….그렇다고 뭐 예측이 다 맞았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요즈음 인터넷은 좀 둘러보셨나요? 선생님께서는 Web 2.0, SNS 등의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McLuhan: 나는 인류문명의 발달을 청각문화와 시각문화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음소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구두문화(oral culture)가 존재했고, 그것은 인간의 감각 중 청각을 중심으로 시각, 촉각 등 여러 감각기관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부족(tribal) 사회였지요. 소규모의 부족이 한 마을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식이지요. 부족 구성원들끼리는 서로 잘 알고 있었으며, 부족의 문제는 늘 부족 구성원들의 대화를 통해 해결하였습니다.

그런데 알파벳이나 한글 같은 음소문자가 출현하고, 금속활자, 활판 인쇄가 발명되면서 인간의 감각 기관 중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 문명으로 바꾸었습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탈부족화하고, 국가, 관료제, 대의민주주의, 산업화, 민족주의 등이 발달하였지요. 하지만 1800년대 중엽 전보(telegraph)가 발명되고, 20세기 들어와 라디오, TV, 컴퓨터와 같은 전자 미디어가 속속 등장하면서 인간의 문명은 다시 구두문화로 회귀하고 재부족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만리거사: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요즘 사람들은 긴 글을 참지 못합니다. 40년 전하고는 달라요. 좀 짧게 말씀해 주시지요.

McLuhan: 알겠습니다. 긴 글을 참지 못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지요. 그것은 구두문화의 특징이니까요. 문자문화에서 구두문화로의 회귀라는 제 주장에 대한 강력한 반증입니다. 한 마디로 인터넷, SNS, Web 2.0은 전자적 미디어에 의해 실시간(instant, real-time)으로 이루어지는 텔리커뮤니케이션 세상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내가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고 부른, 지구적 규모에서의 재부족화(retribalization)가 실현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페이스북의 사용자가 5억 명을 넘어섰다는데, 그것은 ‘지구촌’이 실현되는데 강력한 인프라가 되겠군요.

만리거사: 글쎄요. 저는 선생님의 그러한 해석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미디어의 발전을 인터넷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보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문, TV, 라디오, 잡지 등과 같은 대중매체(mass media)와 인터넷과 같은 공중매체(public media)로 나눕니다. 선생님과는 대중과 공중이라는 용어를 반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John Dewey, C. Wright Mills나 Jurgen Habermas와 같은 비판적 학자들의 용례를 따라 대중과 공중을 구분합니다. 뭐 그건 그렇게 중요한 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요.

선생님께서는 수용자의 참여를 중심으로 cool media와 hot media로 나누셨는데, 그것으로 참 여러 사람 헷갈리게 만드셨지요. 지금 와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TV에 대한 선생님의 과장된 해석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TV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에서 TV라는 단어를 빼고 인터넷을 바꾸어 넣으니 놀랍게도 참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만약 굳이 선생님의 그 용어를 적용한다면 인터넷 이전의 대중매체는 모두 hot media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용자의 참여랄 게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멀티미디어 시대에 그것은 사실 무의미한 분류입니다. 선생님이 hot media로 분류한 라디오, 책, 사진 등이, 디지털화되고 인터넷과 결합되면서 실질적으로 cool media로 변신해 버렸지 않습니까? 멀티미디어 인터넷 시대에 모든 매체는 cool media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용어들은 폐기처분 하면 어떨까요? 선생님도 반대하지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매체 융합이 발생하면서 매체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는 입장입니다. 모두 공중매체가 됩니다. 공중매체는 사용자 중심의 참여적 매체(participatory media)입니다. 저자와 독자,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구분이 없어지고, 공중매체의 key가 되는 대화(dialogue)는 모두의 발화(utterance)를 통해 완성됩니다. 완성이라는 표현이 좀 께름칙합니다. 공중매체에는 완성 혹은 종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흐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새로운 발화에 의해 언제든 개정될 수 있는 일시적인 정지만이 있을 뿐입니다.

SNS를 보세요. 타임라인에 한번 들어오면 어떤 발화도 무시되지 않습니다. 게시될 자리에 게시된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발언도 아주 허무하게 금새 흘러가 버립니다. 또한 누군가가 올린 posting은 댓글(comment, reply)과 묶이면서 하나의 메시지가 형성됩니다. 설령 posting의 내용이 아무리 위대할 지라도 댓글은 그것을 순식간에 해체시켜 버립니다. 반대로 하찮게 보이는 posting일지라도 댓글에 의해 훌륭한 글로 격상되기도 합니다. 인터넷이 지닌 실시간 대응이라는 특성이 누구에게도 저자(author)의 특권을 부여하는 걸 거부합니다.

매체 융합(media convergence)은 선생님 이론의 핵심적인 명제인 “미디어는 메시지다”를 무색하게 해버렸습니다. 미디어의 구분이 불가능한데 상황에서 미디어가 메시지가 될 수는 없지요. 미디어가 지닌 특성이 분명히 구분될 수 있어야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를 발할 겁니다. 이제 그 명제도 폐기처분 했으면 합니다. 너무 시간이 늦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일 계속 말씀드리기로 하지요. (윤영민, 2018-05-17: Facebook 정보사회학 페이지, 2010/08/04에 게시했던 글을 약간 수정 전재함. 연결된 포스팅들도 동일함)

지능이라는 이름의 게임(18): 집단지능과 블록체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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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은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이다. 즉, 블록체인이라는 원장을 구성원 모두에게 공유토록 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블록 체인의 거래가 크게 증가하고 참여자가 아주 많아지면 블록과 블록체인에 담긴 데이터의 양–대부분 거래 기록(transaction list)이겠지만–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그러면 데이터의 유효성이나 무결성 검증에 있어 효율성 확보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더구나 구성원들의 블록체인 참여는 인터넷에 연결된 단말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단말기의 성능이 제각각일 것이다. 어떤 참여자들은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기도 할 것이다. 거래 원장의 공유라는 원칙을, 그런 참여자들까지 포함해서 블록체인 참여자 모두가 과연 어떻게 따르게 할 수 있을까?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요소 기술이 머클 루트(Merkle root)–루트 해시(root hash)라고도 부름–이다. 머클 루트는 해싱을 이용하여 누적된 거래 기록을 최대한 가볍게, 그러면서도 신뢰를 창출하는 원래 기능을 유지하게 해주는 데이터 축소 방법이다. 아래 그림은 모의 블록체인이고, 각 블록의 헤더(block header)는 머클 루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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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클 루트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생성된다. 아래 그림을 가지고 설명한다.

나무–이 나무를 Merkle tree라고 부른다–의 가장 바닥에 있는 각 거래(Transaction A, B, C, D)는 해싱되어 Hash A, B, C, D가 된다. 그런 다음 그 해시들은 두 개씩 짝을 지어 다시 해싱된다. Hash A와 B는 Hash AB로 해싱되고, Hash C와 D는 Hash CD로 해싱된다. 그리고 그 두 해시는 다시 결합, 해싱되어 머클 루트(Merkle Root/Root Hash)를 형성하게 된다. 머클 루트에는 나무의 바닥에 있는 거래 기록 자체는 포함되지 않고 해시들만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사다리 타기 하듯이 연쇄적으로 해싱하면 아무리 많은 데이터라도 매우 가벼운 머클 루트로 변환될 수 있다.

이 머클 루트가 블록 헤더(header)에 포함되어 있으면 블록 바디(body)에 있는 거래 기록을 빼고 블록 헤더만 포함시켜 해싱을 해도 데이터의 무결성과 유효성이 충분히 검증될 수 있다. 그리고 블록 헤더에 담긴 머클 루트는, 그 블록에 포함된 거래 기록들의 머클 루트를 계산해서 비교해 보면, 그것의 유효성을 확인할 수 있다.

머클 루트는, 많은 거래 기록을 효율적으로 해싱하는 기술이며 다수의 참여자들이 많은 거래 기록을 손쉽게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기도 하다. 머클 루트는 블록체인에서 해시함수가 참으로 중요한 요소 기술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이상으로 블록체인이라는 집단지능을 구현하는 요소 기술들을 살펴보았다. 아마도 블록체인에 대해 낯설었던 독자들도 이제 그 기술과 조금은 친숙해 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다음에는 블록체인의 다양한 구현체–아직은 주로 암호화폐들이지만–와 그것이 지닌 사회적 잠재성에 관해 성찰해 보기로 하자. (윤영민, 2015-05-14)

지능이라는 이름의 게임(17): 집단지능과 블록체인(9)

앞 포스팅에서는 블록의 구성과 채굴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그러한 블록들로 구성된 블록체인(blockchain), 그리고 블록체인이 노드(참여자)들에 의해 공유되는 분산 블록체인(distributed blockchain)에 대해 알아보자.

다시 MIT의 블록체인 사이트의 신세를 진다. 위의 그림을 클릭하면 모의 블록들로 이루어진 블록체인이 보일 것이다. 블록체인 아래 부분의 슬라이딩 바를 움직이면 5개의 블록을 볼 수 있다. 앞 포스팅의 블록과 달리 이 블록들에는 Data 칸 아래에 Prev.(Previous)라는 칸이 있다. 1번 블록은 Prev.가 전부 0으로 채워져 있다. 당연히 그것은 이전 블록의 해시가 없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첫번째 블록의 해시는 두번째 블록의 Prev.와 정확히 동일한 해시이다. 마찬가지로 두번째 블록의 해시는 세번째 블록의 Prev.에 들어와 있고, 세번째 블록의 해시는 네번째 블록의 Prev.에, 네번째 블록의 해시는 다섯번째 블록의 Prev.에 들어와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각 블록의 해시는 Prev.의 해시를 포함해서 생성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블록체인(blockchain)에서 체인(chain)의 실질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블록들은 단순히 병열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해시 생성을 통해서 수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바로 그점 때문에 어떤 블록의 데이터가 변하면 곧 바로 그 사실을 탐지할 수 있으며, 특정한 블록을 변조하려는 자는 그 블럭 뿐 아니라 그 블럭과 해시로 묶여 있는 블록들을 모두 채굴해야만 한다.

한번 두번째 블록에 hi 라고 써보라. 1번을 제외한 모든 블록이 핑크색으로 바뀔 것이다. 그 블록들이 모두 다시 채굴되어야 함을 나타내는 신호이다.

블록체인이 블록의 변조를 방지하는 장치는 그것 뿐만이 아니다. 블록체인이 참여자들 모두에 의해 공유되어 있다는 점은 더욱 강력한 변조 방지 장치이다. 아래 그림을 클릭하면 분산 블록체인(distributed blockchain) 페이지가 열릴 것이다. 그것은 참여자(peer라고 되어 있다)가 3명인 가상적 블록체인 시스템이다.

참여자 A, B, C의 블록에 있는 논스와 해시를 보면 모두 동일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록체인의 분산원장에 문제가 없는 상태이다. 그런데 만약 그들 중 누군가의 블록과 블록체인에 변조가 발생하면 다른 참여자의 블록 및 블록체인과 이질성이 발생한다. 한번 Peer B의 두번째 Data 칸에 hi 라고 치고 핑그색으로 변한 블록들을 모두 채굴해 보라. 그리고 그 블록들의 논스와 해시를 Peer A와 C의 해당 블록의 논스와 해시를 비교해 보자. 비록 Peer A의 블록들의 채굴에 성공하였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논스와 해시가 다른 참여자들이 가진 블록들의 논스와 해시와 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블록체인의 일부인 블록의 변조가 쉽게 탐지된다. 만약 블록체인을 위조하려면 적어도 블럭체인 시스템의 참여자들의 51%가 가지고 있는 블록체인을 모두 채굴해야 한다. 그것도 10분 안에 끝내야 한다.

그런 조건에서 블록체인의 변조나 위조가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할 것이다. 어떤 블록체인 전문가는,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컴퓨팅 파워를 지닌 슈퍼컴퓨터를 다섯 대 정도 동원해야 블록체인의 위변조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블록체인과 분산원장은 블록체인 시스템의 참여자들이 기술적으로 신뢰를 확보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그리고 그것의 능력은 참여자 수가 많을수록 더욱 강력해진다. 블록체인과 분산원장은 집단지능으로서의 블록체인이 지닌 집단성을  구현하는 장치인 것이다. (윤영민, 2018-05-14)

지능이라는 이름의 게임(16): 집단지능과 블록체인(8)

blockchain mining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블록체인에서 신뢰가 창출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은 채굴(mining)이다. 비트코인의 경우 채굴은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1) 채굴자들(miners)은 검증이 필요한 블록(거래 내역이 기록된 원장)에 대해 주어진 조건에 맞는 해시값을 경쟁적으로 찾기 시작한다. 비트코인의 경우 10분마다 새로운 블럭이 생성되기 때문에 10분 이내에 채굴해야 한다. 해시값을 찾는데 성공[그것은 논스(nonce)라는 숫자로 인정된다]한 채굴자는 즉시 모든 노드(참여자)들에게 그 결과를 알린다.

2) 다른 노드(참여자)들은 그 결과의 유효성을 확인하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 블록을 블록체인에 추가한다. 그리고 검증이 끝난 블록에 대해 추가로 검증 결과가 날아오더라도 무시한다. 전체 참여자들의 51% 이상이 그렇게 하면 합의(consensus)가 성립된 것으로 간주된다.

3) 채굴의 성공이 인정된[그것이 작업증명(Proof of Work, PoW)이다] 채굴자는 수고에 대한 인센티브를 받는다. 그리고  채굴자들은 새로운 블록에 대한 검증 경쟁에 들어간다.

블록체인의 합의 알고리즘에는 작업증명(PoW) 외에도 PoS(Proof of Stake), Delegated Proof of Stake(DPoW), Practical Byzantine Fault Tolerance(PBFT) 등이 있으나 소개를 생략한다(이 알고리즘들에 대한 간략한 비교 설명은 Consensus in Blockchain Systems. In Sort. 라는 블로그 포스팅을 참조하시오).

은행 거래에서는 거래내역이 기록된 장부(원장)가 생명이다.  각 고객이 저금한 액수, 인출한 액수, 이체 내력, 잔고, 대출 현황 등이 정확히 기재되어야 한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착오가 있으면 사고이다. 은행에서는 은행원들이 원장을 기재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블록체인에서는 채굴자가 바로 은행원이 하는 역할을 대신한다. 그러나 두 가지 점에서 채굴자는 은행원과 다르다.

하나는, 은행에서는 은행원이 소정의 절차를 거쳐서 채용되고 기장에 있어 배타적 권한을 행사하지만, 블록체인(public blockchain의 경우)에서는 채굴 장비(컴퓨터 설비)만 갖출 수 있으면 누구나 채굴자(miner)가 될 수 있다.

bitcoin mining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다른 하나는, 은행원은 은행 업무를 수행하면 월급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만 블록체인의 채굴자는 블록(원장)을 검증하면 소정량의 암호화폐를 인센티브로 지급받는다. 비트코인(Bitcoin)의 경우 현재 비트코인 12.5개를 받는다. 그런데 그러한 인센티브 지급은 곧 암호화폐의 발행이기도 하다. 채굴에서 난이도는 비트코인의 발행량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비트코인이 너무 많이 발행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다.

국가에서는 중앙은행이 정책적인 결정에 따라 화폐를 발행하지만 암호화폐 시스템에서는 채굴행위를 통해서 암호화폐가 발행된다. 결국 채굴자가 암호화폐 발행자인 셈이다. 채굴이라는 메타포(metaphor)가 사용된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광산에서 금을 채굴하듯이 암호화폐를 채굴(곧 발행)한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모의 블록을 가지고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채굴 과정을 살펴보자. 아래 그림을 클릭하면 MIT의 블록체인 사이트로 이동하고 블록이 나타날 것이다.

그 블록에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 맨 위에 Block이라고 해서 블록의 번호가 쓰여있고, 그 다음 줄에는 Nonce라는 칸에 72608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다. 그 다음은 Data 칸인데 비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Hash 칸이 있고 복잡한 숫자와 문자의 배열이 적혀 있다. 그런데 그 숫자를 보면 앞의 네 자리가 모두 0이다. 그 0들은 채굴의 조건(혹은 난이도)을 나타낸다. 그 조건을 충족하는 해시를 발생하는 논스(Nonce)를 찾는 것이 채굴이다. 모의 실험이기 때문에 0이 네 자리 뿐이지 실제로 비트코인에서는 앞 18자리가 0이다. 논스를 찾아내기가 훨씬 어려운 것이다. Hash 칸 아래에는 Mine이라는 네모 단추가 있다.

Data 칸에 윤영민 $20 이라고 적어 보라. 배경의 연초록색이 핑크빛으로 바뀌고, Hash가 0이 없는 다른 값으로 바뀔 것이다. 논스와 해시가 불일치한 상태가 되었다. 이제 논스의 숫자를 1부터 차례로 넣으면서 해시의 변화를 살펴보라. 아마도 12를 넣으면 해시의 첫 자리가 0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앞 자리 네 개가 0이 되는 논스를 찾아야 한다. 필자는 해보지 않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하루가 걸릴 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람이 할 일이 못된다. Mine 단추를 눌러서 컴퓨터가 그 과정을 수행하게 하자. 아마도 1초 정도면 논스가 15607로 되고, 해시는 0000으로 시작되는 값이 되며, 박스의 배경색은 다시 연초록색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블록에 대한 채굴이 끝난 것이다.

블록체인은 참여자들 개개인의 신뢰성을 따지지 않는다. 참여자들이 선한 사람이든 투자자든, 아니면 사기꾼이든 조폭이든 괘념치 않는다. 그들이 설령 속임수를 쓰고 나쁜 짓을 하려고 해도 채굴과 같은 기술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도전’을 압도해서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창출하고 유지할 뿐이다. (윤영민, 2018-05-14)

지능이라는 이름의 게임(15): 집단지능과 블록체인(7)

블록체인에 있어 해시함수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요소기술은 공개키 암호화(public key encryption)이다. 공개키로는 원장에 있는 거래 참가자의 이름을 가명화(pseudomization)하여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으며, 개인키(private key)로는 송금액과 송신자의 신원을 묶어서 전자서명(digital signiture)을 하여 거래 참가자(송금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원장의 위조와 변조를 예방할 수 있다.

암호화(encryption)란, 누구나 내용을 알 수 있는 평문(plaintext)을 제3자가 알아볼 수 없는 글자, 숫자, 부호의 조합인 암호문(cypertext)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암호화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도구가 암호키(encryption key)이다. 암호문은 글자, 숫자, 부호 등이 마구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규칙이 숨어있다. 암호키란 그 규칙을 생성하는 값이다(아래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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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평문을 암호문으로 변환할(암호화) 때와 암호문을 평문으로 변환할(복호화) 때 동일한 암호키–그것을 비밀키(secrete key)라고 부름–를 사용하는 대칭키(symetric key)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한 쌍의 암호키를 생성하여 한 키–수신자의 공개키(public key)–는 암호화에 사용하고, 다른 키–수신자의 개인키(private key)–는 복호화에 사용하는 공개키(public key)(비대칭키, asymetric key라고도 부름) 방식이다.

참고로 해시함수도, 메시지를 제3자가 알아볼 수 없는 숫자와 문자의 조합으로 바꾼다는 의미에서 암호화의 일종이지만, 거기에는 별도의 암호키가 사용되지 않는다. 때문에 누가 해시함수를 수행해도 동일한 메시지(입력값)을 가지고 동일한 알고리즘을 적용하면 동일한 해시(산출값)를 얻는다.

블록체인에서는 공개키 방식의 암호화가 사용된다. 다만 암호화 대신에 전자서명(digital signiture)이 채택된다. 암호화와 전자서명은 동일한 알고리즘을 적용하지만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공개키와 개인키를 다르게 사용한다.

암호화은 주로 메시지를 안전하게 보내는 데 사용된다. 따라서 수신자의 공개키(public key)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암호화하여 보내면 수신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키(private key)로 복호화하여 전달된 메시지를 읽는다(아래 그림 참조).

encryptio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반면에 전자서명은 주로 신원확인과 위변조 방지에 사용된다. 먼저 데이터를 해싱하여 해시를 얻은 다음 그 해시를 서명자의 개인키를 사용하여 암호화하면 전자서명된 데이터가 된다. 검증자는 인터넷을 통해서 그 데이터에 접근하여, 서명자의 공개키(그것은 공개되어 있음)를 사용하여 복호화하여 얻은 해시와 원 데이터의 해시를 비교하여 서명자의 신원과 데이터의 무결성(integrity)을 확인할 수 있다(아래 그림 참조).

digital signatur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블록체인에서는 아래 그림처럼 먼저 공개키(public key)와 개인키(private key)의 쌍이 생성된다. (주석 1)

그 다음에 생성된 개인키(private key)를 이용하여 메시지 20.00($)에 대해 서명(sign)을 한다(아래 그림 참조).

그러면 아래 그림에서처럼 전자서명(signiture)이 생성된다. 이 과정을 좀 더 공식적으로,

Sign(hashed message, Private Key) = Signiture

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례에서 메시지는 20.00이다. 만약 20.00에 조금이라도 변경이 가해지면 설령 송금자자신이 그렇게 했더라도 바로 전자서명의 해시가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그리고 이 전자서명은 일반적인 서명과 달리 복사해서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없다. 그 안에 특정한 메시지(여기서는 20.00)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검증자(이체의 수신자)는 메시지(20.00)가 송금자가 기재한 대로인지에 대해 공개키(public key)를 이용하여 검증(verify)할 수 있다. 공식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Verify(hashed message, signiture, public key) = True/False

위 그림에 보면 From란에 송금자의 이름 대신 송금자의 공개키가 들어가 있다. 그렇게 가명화함으로써 누가 송금한 것인지를 알 수 없게 하고 있다. 즉, 송금자의 개인정보가 보호되는 것이다.

블록이 채굴된 후(즉, 검증된 후) 송금자 이외의 사람이 송금액수를 변조하면 전자서명에 오류가 발생하여 그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전자서명은, 서명할 때의 송금액, 서명할 때 사용된 송금자의 개인키라는 두 가지 입력값에 조금도 변화가 없을 때–이러한 상태를 무결성(integrity)이라고 한다–만이 오류가 없는 상태로 유지된다. (윤영민, 2018-05-14)

(주석 1) 직접 암호키를 생성해 보고 싶은 독자는 Putty라는 공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아래 그림과 같이 공개키와 개인키의 쌍을 생성할 수 있다[puttygen.exe (a RSA and DSA key generation utility)이라는 유틸리티를 다운로드 받을 것].

위 그림에서 Generate라는 단추를 누르면 암호키가 생성된다. 단, 그냥 기다리면 안되고 파랗게 된 부분(박스)에 커서를 대고 움직여 줘야 한다. 그러면 잠깐 동안에 암호키기 생성될 것이다. 파랗게 하일라이트된 부분이 필자가 생성한 공개키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보면 그 공개키의 해시(key fingerprint)가 나와 있다. 여기에 적용된 알고리즘은 RSA인데, 원하면 다른 알고리즘을 선택할 수 있다(Parameters 부분을 이용). 나중에 저장된 암호키를 사용하려면 Key passphrase 박스를 이용해서 비밀번호를 만들어 둬야 한다. 그래야 자신만이 개인키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능이라는 이름의 게임(14): 집단지능과 블록체인(6)

블록체인의 핵심 요소 기술은 해시 함수(hash function)이다. 해시 함수는 문자 그대로 하나의 함수(function)이다.

함수란 두 변수(독립변수와 종속변수) 사이의 관계를 규정한다. 독립변수의 값이 입력되면, 규정된 규칙에 따라 종속변수의 값이 산출된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간단한 함수  혹은  를 떠올려 보라.

해시 함수는 어떤 길이의 메시지가 입력되어도 동일한 길이의 숫자[해시값(hash value)]을 산출하는 함수 이다. 실제 다양한 해시 함수가 존재할 뿐 아니라 그것의 수학적 전개는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바로 해시함수를 실행한다. 비트코인에서 사용되는 해시함수는 SHA-256(Secure Hash Algorithm-256: 샤 256이라고 읽음)인데 아래 그림을 눌러서 열리는 사이트(MIT가 운영하는 블록체인 사이트)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자. (주석 1)

위 그림에서 Data 칸에 필자가 ‘윤영민’이라고 입력하니 Hash 칸에 복잡한 숫자와 문자가 나타났다. 그것이 ‘윤영민’에 대한 해시값(hash value)[그냥 해시(hash), 다이제스트(digest), 혹은 데이터의 지문(fingerprint)이라고 부름]이다.

(1) Data 칸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보라. 길이는 동일하지만 전혀 다른 숫자와 문자의 배열이 나타날 것이다. 이름을 지우고 아무 파워포인트나 워드 문서를 복사해서 넣어 보라. 아무리 긴 문서를 복사해 넣어도 동일한 길이의 해시가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해시함수의 첫번째 특성이다. 해시함수는 입력값에 관계없이 항상 동일한 길이의 해시값을 산출한다.   

(2) 이번에는 다시 자신의 이름을 넣어보라. 앞에서 이름을 넣었을 때와 정확히 동일한 해시가 나타날 것이다. 아무리 반복해서 이름을 넣어도 항상 동일한 해시가 나올 것이다. 이것이 해시함수의 두번째 특성이다. 해시함수는 동일한 입력값에 대해 항상 동일한 해시값을 산출한다. 

(3)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 뒤에 마침표를 찍고 해시값을 보라. 자신의 이름과 전혀 다른 해시값이 나타났을 것이다. 입력값이 아주 조금만 달라져도 해시의 숫자와 문자의 배열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것이 해시함수의 세번째 특성이다. 입력값이 조금만 변해도 해시값만 보아서는 입력값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전혀 추측할 수 없도록 완전히 다른 해시값이 산출된다.

(4) 이론적으로 해시함수는 소위 해시충돌(hash collision)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해시함수는 제한된 길이(SHA256은 256 비트)로 된 해시값을 산출하기 때문에 입력값이 무한대로 변화하면 서로 다른 입력값이 동일한 해시값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새장의 숫자보다 많은 수의 비둘기를 새장에 넣으면 두 마리 이상의 비둘기가 같은 새장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원리이다. 그래서 해시충돌이 없는 해시함수 알고리즘이 계속 새롭게 나오게 된다.    

블록체인은 해시함수를 이용해서 블록과 블록체인을 구성한다. 그렇게 해서 블록과 블록체인에 작은 변화만 생겨도 그것을 탐지할 수 있고 위조와 변조를 예방할 수 있다. (윤영민, 2018-05-13)

(주석 1)

해시 함수를 다양하게 시뮬레이션해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Quick Hash를 추천한다. Quick Hash는 실전용 해싱 소프트웨어이다. 자신의 컴퓨터 환경에 맞는 버전을 다운로드해서 설치하면, 실제로 책 한권의 분량에 해당되는 파일을 해싱해 볼 수 있으며,  MD5, SHA-1, SHA256, SHA512 등 다양한 알고리즘을 적용해서 해싱을 할 수도 있고, 해시함수를 이용해서 두 파일의 동일성을 검사해 볼 수도 있다. 안드로이드용 QuickHash 앱도 있다. 구글 스토어에서 다운로드 받아 스마트폰에서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지능이라는 이름의 게임(13): 집단지능과 블록체인(5)

비교적 단순한 기술적 요소인 메시 토폴로지(Mesh topology)부터 알아보자.

블록체인은 인터넷 위에서 운영되는 P2P 프로토콜(protocol)이다. P2P(Peer-to-peer) 네트워크는 인터넷 프로토콜(Internet Protocol, IP) 위에서 파일을 검색하고 공유하는 독자적인 프로토콜을 수행한다. P2P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컴퓨터들은 P2P 네트워크의 노드로써 클라이언트(client)도 되고 서버(server)도 된다.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P2P 네트워크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MP3 파일 공유 사이트인 넵스터(Napster)일 것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네트워크를 구성한 노드들(nodes)은 여러가지 방식–토폴로지(topology)라고 부름–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 중에서 메시 토폴로지는 기본적으로 노드들이 다른 노드를 거치지 않고서도 서로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소위 완전 접속망(fully-connected network)이다. 물론 부분적으로만 완전접속망인 메시 토폴로지도 있다(아래 그림 참조).

메시 토폴로지 방식의 P2P 프로토콜로서의 블록체인은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1) 블록체인은 분산 원장(ditributed ledger)이다. 거래와 원장에 대해 책임지는 통제나 권위 기구(노드)가 없으며, 모든 노드(참여자)들이 원장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갖는다.

2) 네트워크의 참여자는 누구나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모든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

3) 각 노드는 다른 모든 노드들에게 방송(broadcast)이 가능하다. 네트워크 참여자는 누구나 거래 요청이 담긴 블록에 대해 검증 요구와 검증 결과를 참여자들 모두에게 즉각 알릴 수 있다.

4) 설령 일부 참여자(들)가 네트워크에서 탈퇴하거나 노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네트워크는 정상적으로 가동된다.

5)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데이터에 대해 집단적으로 동의–이 과정을 합의(consensus)라고 부름–해야 정당한 거래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일단 합의를 거친 거래 기록(블록)은 변경될 수 없다.

한 마디로 메시 토폴로지 기반의 블록체인은 중앙집중적 통제를 대신해서 참여자 모두가 거래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나누어 갖겠다는 사상 그리고 중개자 없이도 신뢰할 수 있는 거래가 가능하다는 사상이 반영된 교환 네트워크이다. (2018-05-13)

지능이라는 이름의 게임(12): 집단지능과 블록체인(4)

Bitcoi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비트코인(Bitcoin)이 세상에 출현 한 시점이 2009년이니 블록체인(blockchain)은 우리 주위 어딘가에 꽤 오래 존재했던 셈이다. 비트코인이라는 암호화폐(crytocurrency)와 분리해서 블록체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는 어렵다. 블록체인이라는 테크놀로지가 등장한 후 비트코인이 그것의 응용제품들 중 하나로 발명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을 탄생시키는 테크놀로지로 출현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하나의 대체 화폐로 고안되었다. 화폐의 생명은 신뢰(turst)에 있다. 화폐는 근본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매개체(medium)로 출현했지만 현실에서 화폐는 그런 본원적 기능을 넘어서 가치를 평가, 저장, 그리고 확장하는 수단이 되었다.

화폐 재료는 불쏘시기로 쓰이기에도 작은 종이 조각이거나 크게 쓸모가 없는 금속 조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앙정부–대개의 경우 중앙은행–가 그것에 찍힌 액면 가격에 해당되는 가치를 보증함으로써 화폐는 한 사회가 지닌 신뢰라는 자본의 금전적 표현이 되었다.

비트코인이나 다른 암호화폐의 개발자와 사용자들은 화폐의 생산과 유통을 책임지는 중앙정부(은행) 없이도 충분히 신뢰할만한 통화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암호화폐는, 사용자들 모두가 거래 원장(ledgers)을 공유하고 사용자들의 노력과 암호기술을 결합하여 거래의 위변조를 방지하며 거래의 정당성을 보증해 줌으로써 가치의 교환이 가능한 하나의 통화 시스템이다.  블록체인은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테크놀로지이다.

블록체인은 아래 표에 보듯이 다섯 가지의 요소 기술(element technologies)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해시함수(hash function)가 핵심 기술이다. 거래 원장은 블록과 블록체인으로 구성되는데 그것들 내부의 모든 요소들이 해싱(hashing)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원장에 기재되는 거래자 성명은 공개키로 가명화되고(pseudomized), 거래자는 비밀키로 전자서명을 함으로써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장부의 위변조를 방지한다.

거래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작업증명(proof of work)이 사용되는데, 그것은 해싱에 일정한 난이도를 주고 그 해시(hash 혹은 digest)를 산출하는 어떤 값–논스(nonce)–을 찾아내는 작업을 말한다. 암호화폐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들이 원장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완전 노드(full nodes)를 제외한 나머지 사용자–경량 노드(lightweight node)라고 부름–들에게는 아주 간단히 요약된 원장–그것이 머클 루트(Merkle Root)이다–만 블록 헤더에 포함시켜 공유된다.

암호화폐에서 노드들(nodes)–사용자들–이 연결되는 방식은 메시 토폴로지(Mesh topology)이다. 메시 토폴로지는 기본적으로 노드들이 상호간에 ‘완전히 연결된(fully connected)’ 네트워크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그 요소 기술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2018-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