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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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잎 순

산책하는데 바람이 차갑다. 그래도 영낙없이 봄이 온다.

뜰의 꽃나무 가지에서 봄의 영웅적인 귀환을 느낀다. 미세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다. 그 미세함을 담아내는데 카메라마저도 힘겨워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만족감이나 기쁨은 삶의 어떤 부분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부자가 되면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질까요? 의미있는 삶, 보람있는 삶이란 어떤 삶을 말하는 걸까요? 어려운 이웃 돕기, 공동체 봉사, 예술적 성취, 학문적 성취….또 무엇이 있을까요? 가족과 화목하고, 친구나 이웃과 잘 지내고….부부가 서로에게 화내지 않고….

참, 아파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일이나 직장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이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직업이 없다면 기업은 어떻게 되지요?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하면 기업은 시장에서 무엇을 가지고 다른 기업들과 경쟁하게 될까요? 아이디어, 품질, 서비스에서 기업들 사이에 차별화가 가능할까요? 소비자는 어떤 기준으로 제품을 선택하게 될까요?….

1시간 남짓 산책하는 동안 아내에게 너무 많은 질문을 퍼부었나보다. 머리가 아프단다.

내가 커피 원두를 갈고 정성들여서 내린 커피를 마시는 아내의 얼굴에 만족감이 읽혀진다. 아내에게는 그것이 행복한 순간이가보다. 물론 내게도 그렇다.

그렇게 보면 행복이란 분명히 특별한 게 아니다. (2016/03/13)

책에 관한 열 가지 지혜: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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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DOE Library 서가. 수백만 권의 책이 꽂힌 서가에 앉아 있다보면 무엇보다 겸손해진다.

아이들에게 책에 관한 지혜를 들려주고 싶다. 그 지혜를 실천에 옮기는가는 온전히 그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

첫째, 세상의 진리는 오직 책에 담겨 있다. 인류 최고의 스승, 최고의 지혜는 오직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노자, 석가모니, 예수, 무함마드,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이순신, 아인쉬타인 등등. 책을 통하지 않고 만날 수 있는 현자를 한 명이라도 말해 보거라. 현자의 지혜는 스스로 글을 써서 남겼거나, 누군가가 책에 남겨 놓았다. 그렇지 않은 지혜는 모두 잊혀졌다. 책에 대해서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을 상대하지 말라. 그는 둘 중의 하나이다. 세상을 모르는 자거나 너를 속이려는 자이다. 진리를 영화나, 게임, 강연, 혹은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은 엉터리이거나 거짓말이다.

둘째, 책의 형식에 구애받지 말라. 그것이 양피지든, 대나무든, 종이든, e-book이든 무슨 상관이냐? 시대적 기술 여건에 맞는 형식이 있을 뿐이다. 형식은 책을 읽지 않을 핑계가 될 수 없다.

셋째, 어떤 저자도 완전히 믿지 말고 어떤 저자에게도 기죽지 말라. 저자들, 특히 뛰어난 천재들은 친절하지도 착하지도 않다. 재미삼아 독자를 희롱하기도 하고 속이기도 한다. 항상 숲 전체를 보면서 나무를 대하라. 그러면 길을 잃지(속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천재는 뽐내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천재라고 반드시 전달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모르는 저자들도 수두룩하다. 비평가나 해설자에게 의지하려고 하지도 말라. 비평이나 해설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밥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직업적 활동일 뿐이다. 저자가 책을 통해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가를 판단하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너 자신임을 잊지 말라.

넷째, 환경을 고르지 말라.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말고 책을 읽어라. 책에 몰입하면 주위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알 수 없게 된다. 훈련하면 그것이 가능하다. 얘들아, 이점에 대해서는 나를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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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DOE library reference 열람실. 이런 환경에서 책 읽기를 기대하지 말라.

다섯째, 어떤 책이든 하루에 읽는 것을 목표로 하라. 대부분의 책은 하루에 읽을 수 없다. 그러나 하루에 다 읽기를 목표로 삼으라. 그러면 놀라운 집중력이 생길 것이다. 인류 최고의 현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그 정도의 자세를 갖추지 않고는 결코 지혜를 얻을 수 없다. 현실에도 그렇지 않겠는가? 아인쉬타인, 달라이 라마, 혹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실제로 만났다고 생각해 보거라. 책을 하루에 다 읽지 못하는 사람은 일주일을 줘도 다 읽지 못하고, 한 달, 아니 일년을 줘도 다 읽지 못한다. 잘못된 책 읽기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독서 방법이 올바르면 헐거운 책은 몇 시간에도 다 읽을 수 있다.

여섯째, 책 읽는 프로가 되어라. 손에 쥔 책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를 기획하라. 인류 최고의 스승을 만나는데 그 정도 준비없이 되겠는가? 시간 계획, 대화 기획(읽는 순서), 정리 계획이 기본이다.

일곱째, 맘에 드는 책만을 읽지 말라. 편식하면 육신처럼 영혼도 영양실조에 걸린다. 맘에 들지 않은 책일수록 더 정성껏 읽어라.

여덟째,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책을 읽지 말라. 우리가 평생 읽어봐야 도서관의 한 귀퉁이에 꽂힌 책들도 다 읽지 못한다. 내가 다니던 대학원 도서관의 본관은 책장의 길이만 84km였다. 아마도 300만권의 책은 그곳에 있었으리라.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그곳에는 32개의 도서관이 있고 책은 1천만권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의회도서관과 하버드에는 그보다 더 많은 책이 있다. 책 몇 권 읽고 아는 척하지 말라. 그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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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Main Library인 DOE Library의 정면. 저 문을 들어갈 때마다 마치 교회 문을 들어가듯이 경건해졌다. 인류의 스승들이 모두 저기에 모여 있지 않는가.

아홉째, 독서는 네 인생에 있어 어떤 보장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고는 어느 분야의 리더도 될 수 없다. 독서가 행복을 가져다 주지도 않고, 출세를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않고는 행복하거나 존경받는 리더가 될 수는 없다. 때로 천한 영혼이 지배자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운을 믿지 말라. 운이란 우연이다. 우연을 믿고 세상을 사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자는 없다.

열째, 밥은 굶어도 책 읽기를 건너 뛰지는 말라. 육신의 배고픔이야 밥 한 숟갈로 간단히 달래지지만 영혼의 갈증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영혼은 오직 진리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진리는 쉽게 섭취할 수 없다. 그런데 매일 진리를 먹지 않으면 영혼이 메마른다. 육신이 음식으로 영양분을 섭취하듯이 영혼은 책을 통해서 영양분을 섭취한다. 결코 손에서 책을 놓지 마라.

여의도 효과

IFC몰 지상 입구

서울은 맥박을 고동치게 한다. 특히 여의도에 가면 도전 의식이 꿈틀거리며 살아난다. 국회의사당, 방송국, 금융가….

2시간 30분이면 내 육체가 전통의 필암마을에서 여의도의 초현대식 IFC빌딩에 들어간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21세기 환경에서 2시간 30분만에 16세기 환경으로 돌아온다.

그 때마다 나는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데페이스망(Depaysement)을 경험한다. 전혀 다른 환경에 놓임으로써 자신이 속한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남태평양의 외딴 섬에 가서 원시부족과 함께 지내던 인류학자가 런던에 돌아오면서 경험하던 것과 유사한 정신현상을 나는 여의도를 방문하고 돌아올 때마다 경험하고 있다. 그것을 여의도 효과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그렇다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서 살고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도시와 인공환경보다 농촌과 자연환경이 내게는 훨씬 더 편안하고 훨씬 더 생산적이다. 가끔 내가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정도로만 서울을 다녀오면 충분하다. (윤영민, 2016/2/19)

수학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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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발행된 고등학교 수학교과서 중 하나

대학원 유학 시절 5년차인 1990년 어느 날인가 학위논문 지도교수였던 Michael Hout(현재 New York University 사회학과 석좌교수)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나는 당시 학과에서 대학원 조교를 하고 있었는데, 새로 입학한 한 대학원생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라는 것이었다.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막막하던 나는 한국에 있던 아내에게 고등학교 수학교과서를 구입해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 교과서를 가지고 집합, 미적분, 행렬, 확률을 가르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일은 내게 정말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 학생은 중학교 3학년 이후에 수학을 배운 적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영어로 수학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수학 용어의 영어 표현을 찾아가면서 가르쳐야 했다.

어찌어찌해서 악몽같은 개인 지도가 두 달만에 끝났다. 아마도 그 (여)학생의 머리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내 엉터리 강의를 알아들었으리라. 그 여학생은 Harvard University Law School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사회학을 공부하기 위해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대학원에 다시 입학했다.

아마도 지금 그 일을 한다면 훨씬 수월할 것이다. 공부를 업으로 한참을 보낸 후에야 나는 수학이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학교에서 수학의 한 가지 얼굴만을 배웠다. 바로 셈법으로서의 수학, 계산 원리와 과정으로서의 수학이다.

그런데 수학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수학 교과서에도, 수학 ‘정석’에도 없는 얼굴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논리 전개를 위한 도구로서의 수학이다. 나는 학교에서 그 수학을 배우지 못했다.

나는 그 때문에 나보다 학교(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수학을 덜 배운 지도교수가 정작 연구에서 나보다 수학을 훨씬 잘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무한한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사실 그가 사용한 수학이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문제는 자신의 주장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할 수 있었고, 나는 할 수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수학적 표현과 씨름하면서 논리 전개를 위한 수학을 뒤늦게 공부하고 있다. 이제라도 균형잡힌 수학 능력을 갖추었으면 좋겠다. 다행스럽게도 예상했던 것보다 수학 공부가 재미 있다! (윤영민, 2016/02/17)

어린 왕자와 장미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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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타고 오르는 넝쿨 장미의 가시

닷새째 되던 날 어린 왕자가 주인공에게 물었다.

“가시는 어떤 쓸모가 있어?”

고장난 비행기를 수리하는데 여념이 없던 주인공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가시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 가시는 꽃이 부리는 단순한 심술일 뿐이야!”

“아저씨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 꽃들이…..”

“아니! 난 아무 생각도 없어! 그냥 아무렇게나 대답한 거야. 난 지금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주인공의 태도에 어린 왕자는 크게 실망한 모습이었다.

“중요한 일이라고?”….

“아저씨는 어른들처럼 말하는구나!”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김미성 옮김, 인디고, 2016)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화가 난 어린 왕자는 주인공에게 수백만년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는 양들과 꽃들 사이의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가시의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나는 연장을 내려놓았다. 망치도, 볼트도, 목마름도, 죽음도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별, 어떤 행성, 내 행성, 바로 지구에 위로해 주어야 할 어린 왕자가 있었다(56쪽).”

“미안하다. 아빠는 지금 정말 중요한 일을 하느라 너와 대화를 하지 못하겠구나.” “여보, 중요한 일 때문에 다음 주에 당신과 여행가기로 한 약속을 연기해야겠어. 미안해요.” 늘 그렇게 구차스럽게 변명하면서 우리는 진정으로 소중한 순간, 소중한 인연을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구별 여행을 후회없이 마치기 위해 꼭 해야만 할 정말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윤영민, 2016/02/16).

눈속의 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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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속의 필암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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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속의 필암마을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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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리는 필암문화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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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의 필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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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빨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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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속의 삼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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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멈춘 필암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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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멈춘 핑암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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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필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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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필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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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필암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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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필암 실개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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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의 시가 지닌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자연, 사람 그리고 시인 자신이 전혀 구분될 수 없도록 하나가 되는 모습이다.

강천사에 효선이라는 지인을 만나고 오는 길에 쓴 시로 추정되는 剛泉寺 留別孝先(강천사 유별효선: 강천사에 효선을 남겨두고 오다)에는 하서의 그러한 모습이 아주 잘 나타나 있다.

山中一雨過 樓前溪水碧(산중일우과 누전계수벽)

산중에 한차례 비가 내리니 누각앞 시냇물이 푸르러졌다

巖高日欲西 古樹長百尺(암고일욕서 고수장백척)

바위 위의 해는 서쪽으로 지려하고 고목의 키는 백자가 넘는다

僧徒送行客 兩兩座溪石(승도송행객 양양좌계석)

스님들은 방문객을 배웅하려고 짝지어 물가에 앉아 있다

握手謝留伴 杯深傾不惜(악수사유반 배심경불석)

손잡고 벗과 작별하면서 잔을 가득 채워 아낌없이 마시네(술마시는 것을 不惜身命, 몸이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불도를 닦는데다 비유한 것인가?)

寒風何處來 颯颯掠雙頰(한풍하처래  삽삽략쌍협)

어디선가 불어오는 찬바람이 홀연히 두 빰을 훔치는구나(멋진 표현이다! 삽삽은 바람불어오는 소리를 느끼게 하는 의성어 아닌가?)

落葉沒前徑 蒼蒼間松竹  (낙엽몰전경 창창간송죽)

낙엽은 오솔길을 파묻고 군데군데 소나무와 대나무가 푸르다(지름길 경, 창창은 푸른 모습을 느끼게 하는 의태어?)

一醉歸去來 幽禽響空谷(일취귀거래 유금향공곡)

한껏 취해 돌아가려니 새소리가 빈골짜기를 울리네(‘귀거래’라는 표현을 빌려와서 세상을 등진 도연명과 같은 심정을 슬쩍 내보인 것은 아닐까? 그윽할 유 자를 쓴 이유가 무얼까?)

석양에 친구 스님과 헤어지는 순간이다. 늦가을 강천계곡은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하다. 그러한 계곡의 모습이, 헤어짐의 아쉬움, 그리고 한 잔 술과 어우러진다.

자연주의자, 또한 낭만주의자로서의 하서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황금알을 낳는 때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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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어느 곳에 아주 아주 훌륭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은 경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착하고 인심이 넉넉했습니다.

어느 날 그 마을에 때까우(거위) 한 가족이 날아들었습니다. 그 때까우들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매일매일 황금알을 낳았습니다.

그 때까우 가족에게 신비스런 비밀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모이를 먹고 사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이웃 사랑이라는 한 가지 모이였습니다. 때까우들이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을 주민들이 서로 위하고 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마을 주민들이 황금알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알을 감추지 않나, 하나라도 더 가져가지 않나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서로 먼저 하나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마을에서 때까우 가족은 황금알을 낳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살아갈 수 조차도 없습니다. 때까우 가족이 점점 야위어 갑니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2016/01/08)

어른

김수환_법정

어른이 되면 한 가지를 얻고 열 가지를 잃습니다.

어른은 함부로 속 마음을 내보일 수 없습니다. 항상 온화한 모습으로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한 사회의 평화는 어른들의 온화함 속에서 나옵니다.

어른은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죽여야 합니다. 좋은 것은 주위 사람들이 먼저 갖도록 해야 합니다. 어른이 먼저 자기 잇속을 챙기면 사회는 아귀다툼에 빠집니다.

어른은 늘 남을 배려해야 합니다. 항상 주위 사람들의 형편을 살펴야 합니다. 어른이 이웃들의 통곡을 베고 편안히 잠들 수는 없습니다.

어른은 늘 베풀어야 합니다. 어른 한 명이 지갑을 열면 가난한 이웃 열 명에게 희망이 생깁니다.

어른은 당산나무처럼 든든해야 합니다. 죽는 소리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이웃들이 기댈 곳이 있습니다.

어른은 이웃을 넓게 포용해야 합니다. 어른이 당파성을 갖게 되면 사회가 평화를 구하기 어렵게 됩니다.

어른은 정의를 쫓아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와 사회의 기강이 바로 섭니다.

어른은 생색을 내서는 안됩니다. 선행을 하고서 남이 자신을 알아주길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른은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쉽게 부화뇌동해서는 안됩니다. 어른이 흔들리면 사회가 좌표를 잃게 됩니다.

어른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사라져야 합니다. 세상 것에 집착하면 마지막이 추해집니다.

진정한 바보만이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른은 가진 것 다 내어놓고, 잘 해야 존경을 얻을 뿐이지요.

그래도 누군가가 그 어려운 “어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너무 각박해요.

아, 내 한몸 편하자는 속셈인가. (윤영민, FB 2015/08/27)

뿌리

시내

시냇물을 매일 보다보면 눈앞에 물만 보지 않고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 물이 어디에서 발원해서 어디를 거쳐서 흘러 왔는지 궁금해지지요.

오늘은 물이 깨끗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물이 깨끗하지 않으면 누구집의 논에 물을 대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오수를 방류했는가 생각합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리 생각합니다.

오늘처럼 물이 맑으면 그냥 감사하게 됩니다. 비를 내려준 하늘에게도 감사하고, 오수를 버리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시냇물을 보는데 훈련된 철학자, 문학자, 사회학자, 종교인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물을 오래 보면 거기에서 철학이, 시가, 사회분석이, 심지어 신심마저 생겨납니다. 자연은 그렇게 우리의 진정한 스승이며 인도자입니다.

4백년 전 하서 선생은 시냇물을 보면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걸음 걸음 물결 보며 올라가면서
시 읊으니 생각이 더욱 그윽해
참 근원을 사람들은 찾지를 않고
담장 뚫고 흐르는 물만 멍하니 쳐다보네.”
(‘담장 밑을 뚫고 흐르는 물’, 이기동 역) (윤영민, FB 2015/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