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변수와 확률분포(1)

학생들에게는 ‘확률’이라는 표현이 다소 혼란스럽다.  사실 그것은 배우는 학생들이 아니라 통계학자들 때문이다.

확률은 때로 probability를 의미하고, 때로 random을 의미한다. 그 두 단어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동의어는 아니다. 확률(probability), 확률 분포(probability distribution), 확률 함수(probability function)의 경우는 확률이  probability를 의미하고, 확률적(stochastic) 혹은 확률 변수(random variable)의 경우는 확률이 randomness(무작위)를 의미한다. 전자인 probability는 어떤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을 표현한 수치이고, 후자인 random 혹은 stochastic은 우연적 혹은 무작위적이라는 뜻이다. 이러니 학습자들이 충분히 혼란스러워할만 하다.

우리가 어떤 현상을 확률적이라고 말하면, 그 현상이 우연적으로 결정되는 현상, 다시 말해, 인위적으로 결정될 수 없는 현상임을 의미한다. 동전 던지기나 주사위 던지기가 확률적 현상의 가장 흔한 사례가 될 것이다. 동전 던지기의 결과는 누군가의 의지나 기분 혹은 음모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주사위 던지기의 결과도 마찬가지이다.

확률 변수(random variable)에서 확률은 그런 의미이다. 수학에서 변수(variable)란 2개 이상의 값을 가질 수 있는 문자를 말한다. 변수는 흔히  등으로 표현된다. 변수의 반댓말은 상수(constant)이다. 상수는 하나의 고정된 값만 갖는 문자이다. 흔히 로 표시된다.

random variabl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런데, 확률 변수는 특별한 속성을 지닌 변수이다. 즉, 확률 변수의 값은,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정해져 있지 않은 어떤 과정–그것을 확률 과정(random process) 혹은 통계적 실험이라고 한다–을 통해 결정된다. 동전 던지기를 상상하면 된다. 때문에 확률 변수의 각 값은 특정한 확률을 갖고 있다. 예컨대 하나의 동전을 던졌는데, 앞면이 나올 확률(그것은 0.5이다), 혹은 두 개의 동전을 던졌는데, 두 개 모두 앞면이 나올 확률(그것은 0.25(0.5*0.5)이다)처럼 말이다.

여기서 두 개의 동전을 던지는 경우만 생각해 보자. 동전 던지기는 바로 확률 과정이고, 그 결과인 앞면의 갯수는 확률변수이다. 동전 던지기의 결과는 정해져 있지 않으면 누군가의 의지나 기분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앞면의 갯수(라고 하자), 즉, 확률변수의 값은 이다. 그리고 각 값은 특정한 확률을 갖고 있다.  앞면이 두 개가 나올 확률 는 0.25, 한 개가 나올 확률 은 0.5, 하나도 나오지 않을 확률은 은 0.25이다. 그리고 그 세 값의 확률을 더하면 1.0이다.

‘어떤 학생이 기말시험에 대비해 공부할 시간’은 변수이지만 확률변수는 아니다. 그것은 그 학생의 의지나 기분에 의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자동차 세일즈맨이 하루에 파는 자동차 댓수는 확률변수일 것이다. 자동차의 판매 결과가 본인의 의지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사에는 확률변수가 많다. 다시 말해 결과가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 현상이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때로 우연에 희망을 걸기도 한다. 복권이 잘 팔리는 이유가 그 때문 아니겠는가. (윤영민, 2018-06-13).

트럼프, 문재인 그리고 김정은의 자아 표현 전략(2)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도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초기 반응은 한 마디로 “죽을래? 끝장을 내버릴거야. 짜식, 까불고 있어” 였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과격한’ 행동이 “미국과 대화를 하고싶다”,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신호”라고 해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무력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극적인 트윗을 쏘아올렸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제재의 강도를 높여가도록 국제사회를 휘몰아갔다.

북한은 미국의 그러한 ‘협박’에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편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적발언에 대해 모욕적 발언으로 대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쪽 공해상을 향해 장거리 미사일을 쏘았다. 마치 이판사판 한판 붙어보자는 듯한 자세였다.

두 사람의 불놀이에 한반도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위기 속으로 치달았다. 마치 누군가 금방이라도 핵단추를 누를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개시할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정치는 명분과 실리를 두고 벌이는 게임이다. 특히 국가들 사이에 벌어지는 국제정치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한 국가의 대표 선수(정상)의 한 마디 한 마디, 일거수 일투족이 그냥 나오는 법은 없다. 모두 관련국과 그 나라들의 대표 선수의 반응을 염두에 둔 계산적이고 전략적이라고 보면 된다. 게임의 목표는 승리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쟁자를 압도하는 승리보다는 최대한의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것이다. 정상들은 게임에서 명분과 실리를 거두기 위해 전략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한다.

대표 선수가 아무리 뛰어나도 팀 전체의 전력이 약하다면 게임을 이길 수 없다. 국제정치에서도 국력이 약하면 정상이 아무리 뛰어나도 마이너 리거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운동 경기에서 대표 선수의 능력이 팀 성적의 중요한 요소이듯이 국제정치에서도 정상 요인(leader factor)은 대단히 중요하다. 동일한 국력이라도 뛰어난 지도자가 등장하면 국제정치라는 게임에서 훨씬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다. 그래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제정치 국면에서 정상의 전략적 자아표현(strategic self-presentation)이 주목받지 않을 수 없다.

오래 전에 발표된 Edward Jones와 Thane Pittman(1982)의 논문, “Toward a general theory of strategic self-presentation”은 현재 긴박하게 전개되는 트럼프, 문재인, 김정은 세 사람의 국가 지도자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바라보는데 유용한 시각을 준다. 조운스와 피트먼에 의하면, 전략적 자아표현이란, 사람들이 목표 인물(target person)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특정한 인상을 갖게 만듦으로써 그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power)을 강화하려고 하는 언행을 말한다. 세 정상이 내놓는 발언이나 취하는 행동이 딱 그런 전략적 자아표현에 해당된다.

그들에 의하면, 전략적 자아표현에는 크게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 환심사기(ingratiation), 겁주기(intimidation), 자기 PR(self-promotion), 모범화(exemplification), 간구(supplication)가 그것이다. 여러 가지 말, 표정, 행동이 환심사기에 속하지만, 특히 아부(flattery)가 대표적이다. 환심을 사려는 사람은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들에 의하면, 어떤 구체적인 방법으로 환심을 사는가는 세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 목표 인물의 환심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둘째,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가, 셋째, 환심을 사는데 사용되는 방법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인가이다.

겁주기는 리스크가 큰 전략이다. 겁주기의 중심은 위협(threat)인데, 잘못 사용하면 상대를 굴복시키지 못한 채 상호 관계의 파국만 초래할 수도 있다.

자기 PR은 자신을 능력자로 보이려는 전략이다. 자기 PR이 성공하려면 정말로 자신이 주장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모범화는 상대에게 자신을 성실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라고 인식시키려는 전략이다. 그것은 상대에게 자신을 보고 따라하게 하려는 시도이다.

끝으로 간구는, 자신이 도움이 절실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전략이다. 흔히 아이들이 부모나 어른들로부터 관심이나 도움을 받고자 할 때 그 전략을 사용한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상호 관계는 겁주기로 시작했다. 지난 1년 동안 북한이 내보낸 메시지를 종합해 보면, 현재 김정은이 절실히 희망하는 것은 자신과 북한의 안전 그리고 경제발전이다. 그런데 그 관건을 미국–현재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쥐고 있으며, 김정은은 그 점을 대단히 잘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북한과 미국의 오랜 적대 관계를 생각할 때 트럼프의 관심을 끌기 위해 김정은이 선택할 수 있는 자아표현은 겁주기 외에 없었을 것이다. ICBM에 핵탄두를 실어서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고 북한이 트럼프의 주요 관심 대상이 될 수 있었겠는가. 트럼프가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할 수 있다고 트윗을 날리고 김정은이 트럼프와 대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을 때 과연 어느 언론사가 진지하게 그 말을 받았었던가.

미국과 북한이 험악한 말은 물론이고 미사일 실험과 제제 강화로 전쟁 분위기가 끝없이 상승하고 있을 때 한국의 국민과 대통령은 얼마나 공포에 떨어야 했던가. 미국과 북한이 전쟁에 들어가면 일차적, 그리고 최대의 피해자가 남한이 아니던가. 그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남한의 대통령이라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미국 ‘큰 형님’이 알아서 잘 해주길 넋놓고 기다리고 있을까?

지난 해 7월 미국 방문을 기점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럼프를 만나서 긴 회담을 하고, 베를린에서 평화를 지향하는 ‘신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으며, 중국에서는 ‘굴욕적인’ 대우를 받으면서도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다. 필자는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모범화 전략을 취했던 것으로 해석한다. “신뢰할만한 지도자 나아가 자국민을 위해 간절하게 평화를 원하는 지도자”라는 인식을 트럼프, 시진핑 같은 주요 당사국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김정은에게도 굳게 각인시켰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눈물겨운’ 노력은 평창 올림픽을 통해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그 지점에서는 미국과 북한도 대화 국면에 들어서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입장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미국도 북한도 그렇지는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사실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김정은 못지 않게 트럼프에게도 절실히 필요했다. 여러 가지 스캔들로 국내 정치에서 코너에 몰려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핵 해결이 가을에 있을 중간 선거에서 승기를 잡게 해줄 묘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에 대표팀을 보내겠다는 의지로 남한에게 대화의 제스처를 보냈고, 핵무기 완성을 선언하면서 역설적으로 미국과의 대화 의사를 내보냈다. 평창올림픽은 미국과 북한, 즉, 트럼프와 김정은에게 대화를 시작할 명분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언사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자아표현 전략이 모범화에서 환심 사기로 전환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반도 대화국면 전환에 관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모든 공을 돌리는 모습,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을 정중하게 대하는 모습은 때로 국민들이 “저렇게까지 해야하나”하는 측은지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 때 즈음해서 1년 전만 해도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파격적인 방식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남북 정상이 만나고 북미 회담이 약속되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들이 대화 국면에 하나 둘 동참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북한에 대해 가장 호전적이었던 아베 수상마저도.

모범화와 환심 사기를 결합한 자아표현 전략–의도적으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으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는 자신의 의사를 정직하게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달할 수 있는 지도자로,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의 뜻을 가감없이 전달해 줄 수 있는 민족 지도자로 인정받았다고 생각된다.

문 대통령은 1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미국과 북한으로부터는 물론이고 세계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언론인들에게, 평화를 사랑하는 지도자, 겸손한 지도자, 현명한 지도자, 그리고 집요한 지도자라는 놀라운 인식을 심는 데 성공했다. 로버트 라이시(클린턴 행정부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UC Berkeley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을 이렇게 극찬했다.

“Over the years, I have come across many presidents and prime ministers, and have worked with many of their governments. But rarely if ever have I witnessed someone as talented, intelligent, humble, and progressive as President Moon.”

한반도에서 평화를 향한 게임은 아직, 그리고 앞으로도 한참 동안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우여곡절을 겪을 수도 있다. 70여 년 동안 지속되어온 적대와 불신이 어찌 단 시간내에 사라지겠는가. 부디 정치 지도자들이 현명한 말과 행동으로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주길 기원한다. (윤영민, 2018-05-28)

트럼프, 문재인 그리고 김정은의 자아 표현 전략(1)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내가 아는 어떤 여론 조사기관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예측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주요 매체들은 트럼프 후보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영향력도 떨어지고 극보수 성향인 폭스 TV 정도가 예외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1월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당당히 백악관에 입성한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전례없는 방식의 정치를 시작했다. 그를 정치적 이단아쯤으로 조롱하듯 묘사하는 미국의 주류 매체들의 보도를 한 수 접고 보더라도 그는 ‘정치적인 것(political)’과는 거리가 먼 태도와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의 정치 코드를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동맹국이나 이웃 국가와의 전통적인 외교 관계도 존중하지 않았다. 게다가 후보 때는 물론이고 대통령이 되고나서도 그가 세계와 소통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사용하는 채널은 트위터(Twitter)였다. 그는 거의 매일 온갖 문제에 대해 트윗을 날렸다.

Trump twitter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전대미문의 트위터 정치를 선보인 것이었다. 그것은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공개하는 미국 대통령–다른 나라의 국가수반도 그렇다–의 전통적인 소통방식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그것은 홍보, 의전, 혹은 외교 팀에 의해 사전에 걸러지고 조정되는 소통과는 크게 다른 방식이다. 한 국가 정상의 발언이 트위터라는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대단히 개인화된 메시지의 형태로 거의 매일 터져나오는 것이다.

트럼프의 트위터 정치는 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인들까지도 당황하게 만들곤 한다. 미국 정부 관리는 물론이고 미국의 언론인, 유권자, 기업인, 그리고 외국의 정상, 관리, 외교관, 언론인, 기업가, 심지어 국민들마저도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그의 트위터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백악관 보좌관의 임명과 해임, 국무장관의 임명 등과 같은 주요 인사의 통보에 트위터를 사용하고, 외국의 정상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트위터에 올리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내놓는 공적 메시지와 도날드 트럼프라는 개인의 사적 메시지가 뒤섞이면서 대통령직의 수행이 트럼프 개인의 매우 개인적인 선호, 의사결정, 그리고 능력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의 경제를 부흥시키고 일자리를 늘이겠다는 공약을 실천에 나선 트럼프는 그 자신이 정의한 미국의 국익–미국내 투자 확대, 일자리 증가, 무역 역조 개선–이라는 오직 하나의, 그것도 매우 단기적 관점에서 대외 관계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겠다는 듯이 무섭게 달려 들었다. ‘설마’ 하면서 눈치를 살피던 국가들과 기업들이 트럼프가 허풍쟁이가 아님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국, 멕시코, 일본, 독일, 영국, 대한민국  등의 국가들, 그리고 미국 내외의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트럼프의 신호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투자를 늘리겠다는 약속과 행동, 무역 역조를 개선하겠다는 약속과 조치가 줄을 이었다. 그들은 트럼프가 그들이 아직 겪어보지 못한 ‘사업가’ 대통령을 상대하고 있음을 인식했고, 아직은 미국도, 그 미국의 힘을 휘두르는 트럼프 대통령이 결코 종이 호랑이가 아님도 실감했다.

그런데 어느날 동북아시아의 한반도 북쪽에서 강펀치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아직 미국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그런 나라가 별로 없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발사 실험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급 진전되는 것이었다. (윤영민, 2018-05-27)

조건부 확률, 곱셈법칙, 베이즈 정리(4)

(예제 3) 사십 대 여성이 정기 건강 검진의 일환으로 유방 엑스레이를 찍었다. 일주일 뒤 그녀는 유방암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다는 통보를 받았다. 유방암에 관한 가족력도 없고 또 징후도 없는 그녀가 진짜로 유방암에 걸렸을 확률은 얼마일까? 

미국에서 사십 대 여성 1만명 가운데 대략 40명이 유방암을 가지고 있다(유방암 발병 확률은 40/10,000이다). 그리고 유방암 환자가 유방 엑스레이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올 확률은 80%이다. 그러면 그 40명 가운데 32명이 양성 판정을 받는다(그 확률은 32/40이다). 또한 유방 엑스레이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올 확률은 10%이다(그 확률은 1,000/10,000이다).

(풀이)

사건의 정의: B = 유방암 발병, P = 유방암 엑스레이 양성 결과

주변 확률:

조건부 확률: 

문제는  로 표시할 수 있다.

식 (1)의 우변에 있는 확률들의 값이 모두 있으므로 식 (1)에 대입한다.

이 결과를 말로 풀어 보면, 유방암 엑스레이 검사 결과가 양성이 나온 40대 여성이 실제로 유방암에 걸렸을 확률은 0.032, 즉, 3.2%밖에 되지 않는다.

 

(예제 4) 이메일의 스팸을 걸러내는 소프트웨어에는 베이즈 이론이 적용된다. 영어로 된 스팸메일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단어가 shipping!이다. 스팸 메일 중 shipping!을 포함하는 메일의 비율은 0.051이고, 스팸이 아닌 메일에서 shipping!을 포함하는 메일의 비율은 0.0015이다. 그리고 많은 메일 중에서 10%가 스팸 메일이다. 만일 메일이 shipping!을 포함하고 있다면 스팸일 확률은? 만일 메일이 shipping!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팸이 아닐 확률은? 만일 메일이 shipping!을 포함하고 있다면 스팸이라고 판명해야할까?

(풀이)

사건의 정의: Shipping = 메일에 shipping!이라는 단어가 포함됨, Spam = 스팸 메일

이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첫번째 관문은, 여기서 “스팸 메일 중 shipping!을 포함하는 메일의 비율”이라는 표현을 확률적으로 정확히 번역해 내는 일이다. “그것은 “어떤 메일이 스팸일 때, 그 메일이 shipping!을 포함할 확률”로 번역된다. 아래와 같은 조건부 확률인 것이다.

조건부 확률: 

주변확률: 

원래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표시될 수 있다.

문제 풀이의 두 번째 관건은, 분모가 되는 shipping의 주변확률을 구하는 것이다. 주변확률은 관련된 결합확률들의 합이다. P(shipping)과 관련된 결합확률은 아래처럼 두 가지이다.

우변의 결합확률 각각을 곱셈법칙을  이용해서 주변확률과 조건부 확률의 곱으로 바꾼다.

이제 주변확률 을 구할 준비가 되었다.

위 식 (1)의 좌변에 해당 확률 값을 대입한다.

이 결과를 말로 풀어보면, 어떤 메일에 shipping!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을 때 그 메일이 스팸일 확률은 0.7907이고, 스팸이 아닐 확률은 0.2093이다. 따라서 만약 어떤 메일에 shipping!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면 스팸이라고 분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런 메일 중 약 80%가 스팸이기 때문이다. (윤영민, 2018-05-25)

조건부 확률, 곱셈법칙, 베이즈 정리(3)

(예제 2) 서로 다른 두 납품업체(공급자 1과 공급자 2)로부터 원자재를 공급받는 제조회사가 있다. 현재 공급자 1로부터 65%의 원자재를 구매하고, 공급자 2로부터는 35%를 구매한다. 한편 그 동안 두 업체로부터 납품 받은 원자재의 품질은 아래와 같다.

 좋은 품질 비율(%)나쁜 품질 비율(%)
공급자 1982
공급자 2955

그런데, 제품 생산 과정에서 어떤 원자재가 불량으로 나타났다. 그 원자재가 공급자 1로부터 왔을 확률은 얼마이고, 공급자 2로부터 왔을 확률은 얼마인가?

(풀이)

사건의 정의: A1 = 공급자 1로부터 납품 받음, A2 = 공급자 2로부터 납품 받음, B = 나쁜 품질의 원자재, G = 좋은 품질의 원자재

이 문제는 데이터(정보)가 주변확률과 조건 사건의 조건부 확률(즉, 우도)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결합확률표와 조건부 확률 공식을 사용하지 못하고 베이즈 정리를 이용해서 풀어야 한다.

이 문제 풀이의 첫 번째 관건은  표에 있는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이다. 예컨대 공급자 1이 좋은 품질의 원자재를 납품할 확률은 98%이다. 이 진술은, 공급자가  1일 때(조건), 좋은 품질의 원자재일 확률(조건부 확률)이 0.98임을 말한다. [공급자가 1이면서 좋은 품질의 원자재를 납품할 확률(즉, 결합확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에 유의. 실제로 결합확률이 그렇게 높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음. 결합확률은 주변확률의 곱이기 때문이다.] 즉,

이 문제 풀이의 두 번째 관건은 주변확률, 를 구할 수 있느냐이다. 사실 베이즈 응용 문제에서, 분모에 들어가는 조건 사건의 주변확률을 구하는 것이 자주 풀이의 관건이 되곤 한다.

문제를 베이즈 정리 형식으로 표현해 보자. 어떤 원자재가 불량(나쁜 품질)일 때, 그 원자재가 공급자 1로부터 왔을 확률은 다음과 같이 표시할 수 있다.

우변에서 우리는, 임을 알고 있으니,  분모에 있는 B의 주변 확률을 구하면 된다. 주변 확률은 해당되는 결합확률을 모두 더한 값이다. 즉,

이다.

그런데 곱셈법칙에 의하면,

이 값을 식 (2)에 대입하면,

우리는 식 (2)의 우변에 확률값을 모두 알고 있다. 그 값들을 대입해서 를 구하자.

다시 식 (1)로 돌아가서 확률값들을 대입한다.

즉, 원자재가 불량일 때, 그것이 공급자 1로부터 왔을 확률은 0.426이다. 그렇다면 공급자 2로부터 왔을 확률은 1-0.426 = 0.574가 될 것이다. (윤영민, 2018-05-25)

조건부 확률, 곱셈법칙, 베이즈 정리(2)

(예제 1) 다음은 미국에 있는 어떤 도시의 경찰관들이 2년 동안 승진한 경험을 남녀 비율로 나타낸 자료이다.

 남자여자
승진28836324
승진 탈락672204876
9602401,200

1. 임의로 뽑힌 어떤 경찰관이 여성이다. 그가 승진할 확률은? 만약 그가 남성이라면 승진할 확률은?

2. 경찰관의 성별이 경찰관의 승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는가? 근거를 제시하시오.

(풀이)

사건의 정의: 여성 = F, 남성 = M, 승진 = P,  승진탈락 = N

이 문제의 경우 확률을 추정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가 풍부하다. 때문에 조건부 확률 정리를 이용하여 문제를 풀 수도 있고, 베이즈 정리를 이용하여 문제를 풀 수도 있다.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해서 풀고 결과를 비교해 보자.

먼저 주어진 데이터를 가지고 결합확률표를 구해 놓으면 효율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 각 칸의 빈도를 경찰관 총수인 1,200으로 나누어 주면 다음과 같은 결합확률표를 얻는다.

 남자여자주변 확률
승진0.240.030.27
승진 탈락0.560.170.73
주변 확률0.800.201.00

결합확률

주변확률

이제 이 정보를 가지고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조건부 확률을 구할 수 있다.

1. 어떤 경찰관이 여성일 때 승진할 확률, 남성일 때 승진할 확률은 각각 아래와 같이 계산된다.

이 문제를 베이즈 정리를 이용해서 풀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분자에 있는 를 모르기 때문에 조건부 확률 정리를 이용해서 그것을 먼저 계산한다.

이제 에 관해 풀 수 있다. (남성일 경우도 동일한 방법으로 계산할 수 있음)

(1)과 (2)를 보면 0.15로 같은 값임을 확인할 수 있다. 조건부 확률로 계산하면 간단한 것을, 베이즈 정리로 풀었더니 복잡하기만 하다. 만약 결합확률표를 구할 수 있으면, 이런 문제는 조건부 확률 공식만으로도 충분히 풀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결합확률을 모르고 조건 사건의 조건부 확률[이것을 공산 혹은 우도(likelihood)라고 함]과 주변 확률을 아는 경우에는 베이즈 정리를 이용해서 계산한다.

2. 남성일 때 승진할 확률은 0.3이고, 여성일 때 승진할 확률은 0.15이니, 남성의 승진확률이 여성의 승진확률의 두 배이다. 경찰관의 성별이 승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결론을 독립사건의 정리를 이용해서 도출할 수도 있다.

만약 경찰관의 성별이 승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승진의 주변확률(사전확률), 이 승진의 조건부 확률(사후확률),  혹은 과 같아야 한다. 즉,

그런데 곱셈법칙에 의하면,

여기서 이므로,

이다.

그리고 당연히 일 것이다.

두 사건이 상호 독립적일 때(mutually independent), 두 사건의 결합확률은 두 사건의 주변확률을 곱한 값이다. 경찰관 승진 자료를 가지고, 성별과 승진이 관련이 없다는 가정 아래 가상적인 결합확률표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남성여성주변확률
승진0.22(=0.8*0.27)0.05(=0.2*0.27)0.27
승진탈락0.58(=0.8*0.73)0.15(=0.2*0.73)0.73
주변확률0.800.201.00

표 2와 표 3에서 의 값을 비교해 보면, 표 2의 값은 0.24이고, 표 3의 값은 0.22이다. 실제로 남자이면서 승진한 결합확률의 값이 성별과 승진이 상호 독립적이라는 가정 아래 도출한 결합확률의 값보다 크다. 표 2와 표 3에서 의 값을 비교해 보면, 표 2의 값은 0.03이고, 표 3의 값은 0.05이다. 즉, 실제로 남자이면서 승진한 결합확률의 값이 성별과 승진이 상호 독립적이라는 가정 아래 도출한 결합확률의 값보다 작다.

남성의 승진 확률은, 성차별이 없다는 가정 아래 예측된 승진 확률보다 높은 반면, 여성의 승진 확률은, 성차별이 없다는 가정 아래 예측된 승진 확률보다 낮다. 따라서 데이터는 경찰관의 승진에 성차별이 존재함을 시사하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윤영민, 2018-05-25)

조건부 확률, 곱셈법칙, 베이즈 정리(1)

상호 관련된(혹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두 사건이 있을 때, 그 중 하나의 사건(사건 A라고 하자)이 발생하면 다른 하나의 사건(사건 B라고 하자)이 발생할 확률에 대해 이전(사건 A가 발생하기 전)보다 좀 더 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예측을 수학적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지식이 조건부 확률, 곱셈법칙 그리고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이다. 그 세 가지 법칙(혹은 정리)은 논리적으로 깊이 연관되어 있다.

다음과 같이 사건을 정의한다.

A: 사건 A의 발생, B: 사건 B의 발생

(조건부 확률) 사건 A의 발생 확률이 사건 B의 발생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면, 두 사건의 발생확률 사이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말로 풀어보면, 사건 B가 발생했을 때 사건 A가 발생할 확률–사건 A의 조건부 확률–은 사건 A와 사건 B가 동시에 발생할 확률–사건 A 와 사건 B의 결합확률–을 사건 B의 발생 확률–조건이 되는 사건 B의 주변확률–로 나눈 값이다.

(곱셈 법칙) 정리(1)에서 양변에 를 곱하고, 좌변과 우변을 이항하면 다음 결과를 얻는다.

말로 풀어보면, 사건 A와 사건 B가 동시에 발생할 확률–사건 A와 사건 B의 결합 확률–은 조건이 되는 사건 B가 발생할 확률과 사건 A의 조건부 확률의 곱이다.

(베이즈 정리) 확률의 교환법칙에 따르면,

그리고 우변에 곱셈법칙을 적용하면,

결합확률을 조건부 확률과 조건의 주변확률로 표현하기 위해 식(2)와 식(4)를 식(3)에 대입하면,

이 식의 양변을 로 나누면,

이 식이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이다. 말로 표현하면, 사건 A의 조건부 확률은 사건 A의 발생 확률에 사건 B의 조건부 확률을 곱한 값을 조건 사건 B의 주변확률로 나눈 값이다.

이 정리는, 조건이 되는 사건 B의 발생을 기준으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즉, 는 사전 확률(prior probability 혹은 간단히 prior)이며, 는 사후 확률(posterior probability 혹은 간단히 posterior)이다. 그리고 와 는 예측을 위한 데이터(혹은 정보)이다.

베이즈 정리는, 어떤 사건(여기서는 사건 A)과 관련된 사건(여기서는 사건 B)에 관한 데이터(혹은 정보)를 얻었을 때 그 사건(사건 A)에 대한 향상된 예측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과정은  로 표현할 수 있다.

논의가 추상적이니 몇 개의 응용 사례를 가지고 조건부 확률, 곱셈 법칙, 베이즈 정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윤영민, 2018-05-25)

손, 펜, 그리고 글

너무 오래 컴퓨터로 글을 쓰다보니 손글을 잃어버렸다.  그 변화는 단지 필기구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깊이 생각한 후에 글을 썼다. 평소에 메모는 해두었지만 그것을 엮어서 글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작업이었다. 더 이상 크게 손질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생각이 잘 정리된 후에 원고지나 노트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워드로 글을 쓰면서부터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비로소 본격적으로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한다.  그리고 긴 편집 시간을 갖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머지않아 커리어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했는지 모르겠다) 최근 문득 문득 다시 손으로 글을 쓰고싶다는 충동이 일곤 했다. 그러다 엊그제는 맘을 크게 먹고 수성펜 세 자루를 샀다.

그런데, 어제 우연치고는 상당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오래 전 석사 학위 지도 학생이었던 제자로부터 몽블랑 펜을 선물받은 것이었다. 그것은 25년이 넘는 커리어에서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기품있는 필기구였다.

과연 과분한 선물을 받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다가 그 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 전부터 내게 만년필을 선물하고 싶었다는 그에게 차마 돌려준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약속했다. 앞으로 그 펜으로 글을 쓰겠노라고.

행복한 우연이다. (윤영민, 2018-05-24)

Marshall McLuhan과의 가상적 대화(4)

만리거사: 이제 선생님과의 대화가 종착역에 가까워졌습니다. 선생님과 저와의 대화에서 다른 분들은 무엇을 느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선생님과 제가 공감한 점은 새로운 시대가 대화의 시대, 참여의 시대라는 인식입니다. 선생님을 그것을 쿨미디어의 시대라고 규정하셨고, 저는 인간메시지의 시대라고 규정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선생님은 참여를 강조하였고, 저는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참여와 의미의 공통점이 바로 인간이라는 점에서 선생님과 제가 도달한 지점이 같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은 social media의 네트워크성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SNS라는 용어가 뜨고, 인맥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트워크는 손가락일 뿐입니다. 정작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인간과 의미입니다. 네트워크를 쫓는 것은 잘해야 꽁무니를 쫓는 일이고 대개는 헛다리를 짚는 일입니다. 네트워킹은 수단일 뿐이지요.

아무튼 이 점이 이번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제가 얻은 가장 큰 성과입니다. 이번 대화 덕분에 최근 Mark Zuckerberg의 행보에서 network에서 meaning으로의 이동이라는 변화를 읽어냈습니다. 지적 돌파구를 열 때는 항상 선생님 같은 대가와 붙는 것이 최곱니다. 바로 아이디어를 얻든 지, 아니면 비판 속에서 아이디어가 파생적으로 얻어질 수도 있거든요. 죄송합니다. 선생님의 지적 세계를 너무 거칠게 다루어서요. 이해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제가 워낙 훈고학을 싫어해서요.

끝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나누지요. 문화적 갈등에 관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문화적 갈등을 어떤 뜻으로 사용하셨나요?

McLuhan: 세상의 변화는 그냥 오지 않습니다. 항상 치열한 갈등을 수반하지요. 문화적 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각 문화(visual culture)에서 구두 문화(oral culture)로의 변화도 그렇습니다. 예컨대 학교는 죽어가는 인쇄문화인 선형적 사고와 시각적 가치에 포박되어 새로운 사고방식과 가치를 핍박하고, 새로운 세대들에게 “담벼락 없는 감옥”이 됩니다. 탈중앙화, 분산화 경향은 기존의 관료제도와 충돌합니다. 1960~70년대 저항문화와 지배문화의 충돌은 바로 그러한 문화적 갈등의 표출이지요.

만리거사: 좋은 말씀이십니다. 요즈음 저는 우리 사회에서 비슷한 문화적 갈등을 많이 봅니다. 참여적, 수평적 대화가 핵심인 새로운 문화와, 일방적, 수직적 커뮤니케이션이 근간이 된 기존 문화 사이에 치열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일방적, 수직적 커뮤니케이션이 지배적입니다. 참여적, 수평적 대화가 차츰 확산되고는 있지만 아직 걸음마에 불과합니다. 지난 몇 년간 과거의 권위주의 문화가 다시 회귀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과거 문화의 복수”일 수도 있지요.
제가 마지막에 문화적 갈등을 들고나온 이유는, 기업이나 기관 조직 내부에서도 그렇고, 사회 전체적으로 보아도 문화적 전환이 심각한 갈등을 수반하지 않고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선생님과의 대화를 마치려고 합니다. 선생님께 충분한 발언 기회를 드리지 않고 거의 일방적으로 공격만 한 점, 진심으로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제 능력이 거기까지입니다. 선생님이 저의 무례를 기꺼이 용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내 책들은 발견의 완성된 산물이 아니라 발견의 과정을 구성한다”. 언제든 까 부셔도 좋다고요.

다시 영면하시길 빌면서 이만 줄입니다. <끝> (윤영민, 2018-05-17)

Marshall McLuhan과의 가상적 대화(3)

Tetrad
Tetrad

만리거사: 선생님, 아마도 지구촌(global village)과 재부족화(retribalization)는 선생님께서 고안하신 개념들 중 가장 널리 애용되고 있을 겁니다. ‘지구촌’은 선생님 생전 때부터 현재까지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재부족화’는 지난 10여 년 사이에 학문적으로 부활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특히 노마디즘(nomadism), 부족주의(tribalism)에 관심을 가진 프랑스 학자들이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그런데 애초에 그 개념들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였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 개념들이 원래의 의미를 많이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McLuhan: 한 명의 학자로서 사후에도 자신의 학문적 성과가 널리 애용되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고 영광이지요. 그런 점에서 나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개념들이 대중화되면서 제 원래 의도가 다소 왜곡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이미 그 개념들이 제 손을 떠나 사회적 자산이 되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 사용되든 사실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닙니다만 원 뜻이 존중된다면 저로서는 더욱 만족스럽겠지요.

제가 하늘에서 내려다 보니까, ‘지구촌’에 대한 가장 심각한 오해는 그것을 사랑과 조화가 충만 된 곳으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그런 의미로 사용한 적이 없는데. Playboy지 인터뷰에서도 분명히 밝혔듯이 “일치(uniformity)와 평온(tranquility)이 지구촌의 특징은 아닙니다.” 부족화되면 사랑과 조화만큼 갈등과 불일치도 잦아집니다. 부족이란 게 원래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기도 하지만 헤게모니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기도 하고 뭐 그런 것 아닌가요?

사려 깊은 독자라면 “지구촌”과 “미국의 발칸화”라는 두 현상이 서로 별개이거나 상충되는 경향이 아니라는 내 입장을 정확히 파악했을 텐데, “미국의 발칸화”는 무시하고 “지구촌”만 살려 놓는 탓에 그런 오해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만리거사: 선생님이 글을 너무 재미 없게 써서 독자들이 선생님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때문도 있겠지요. 그건 선생님 자신의 책임이 큰 것 같네요. 그리고 미국의 발칸화로 표현한 소국(ministates)의 번성이라는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명제를 무시하거나 잊어버린 게 아닐까요? 결국 “지구촌”만 살아남은 것이지요.

McLuhan: 뭐 틀린 해석으로 보이지는 않군요. 근데 내가 서로 대비해 지적했듯이, 인쇄미디어는 사회적으로 중앙집중화(centralizing)시키고, 심리적으로는 파편화(fragmenting)시킵니다. 반면에 전자미디어는 사회적으로 탈중앙화(decentralizing)시키고, 심리적으로는 통합(integrating)시킵니다. 인쇄미디어는 개인주의를 촉진시키며, 거기에서 자유(freedom)는 기껏해야 소외되고 파편화되기 위한 권리일 뿐입니다. 반면에 전자미디어는 부족주의를 촉진시키고, 통합된 개인을 출현시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결과 수많은 소국들(ministates)이 출현하리라 예상했습니다. 나는 그런 맥락에서 미국의 발칸화(balkanization of the United States)를 예견했던 것입니다.

만리거사: 제가 보기에는 미국의 발칸화라는 예측이 맞지 않았다는 사실이 선생님의 인쇄미디어와 전자미디어의 구분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선생님은 TV를 전자미디어라는 이유로 신문과 다른 사회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단정했는데, 거기에 문제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을 공부하는 젊은 연구자들은 신문과 TV를 한 묶음으로 간주합니다. 뭐 선생님도 기억하실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좀 오래 된 연구자들도 그렇게 봅니다. 세 가지 의미에서이지요. 하나는 일방향적 매체라는 점, 둘은 중앙집중적 매체라는 점, 셋은 사회통합적 매체라는 점입니다. 신문이나 TV같은 대중매체가 일방향적이라거나 중앙집중적이라는 점은 요즘은 상식적인 얘기이고, 사회통합적 매체라는 주장은 좀 논란 중입니다.

위르겐 하버마스, 베네딕트 엔더슨(Benedict Anderson), 그리고 최근에는 카스 선스타인(Cass Sunstein) 같은 학자들이 대중매체의 사회통합적 기능에 주목합니다. 선생님과는 다르지요? 이 중 하버마스와 선스타인은 인터넷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사회를 파편화시킨다는 겁니다. 소위 반향실(eco-chamber) 효과라는 가설인데, 뭐 인터넷이 사용자들에게 고도의 정보선별(filtering)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유사한 생각, 유사한 취미, 유사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뭉치는 경향이 강화된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을 위협한다고 주장합니다. 반 앨스타인과 브린졸퍼슨(Van Alstyne and Brynjolfsson)은 그것을 사이버발칸화(cyber-balkanization)라고 불렀는데, 선스타인은 사이버발칸화를 넘어 사회 전체에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를 초래하고, 인터넷은 테리리스트나 KKK같은 극단적 집단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주장합니다.

반면에 요차이 벤클러(Yochai Benkler)나 클레이 셔키(Clay Shirky), 그리고 저도 그렇습니다만, 대중매체는 상당히 엘리트 중심적이고, 억압적인 측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대중매체는, 통합은 통합인데, 불평등한(비대칭적 정보) 계층질서 위의 통합을 촉진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통합이 아니라는 거지요.

저는 인터넷이 바로 그 지점에 도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도전을 “엘리트주의의 종말”, “지식인의 죽음”이라고 해석합니다.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지식인이 아니라, 비대칭적 지식 분배 위에 권력을 향유하는지식권력으로서의 지식인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일방향적 매체, 선생님 표현으로 하자면 hot media가 사라짐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사실 쿨미디어(cool media) 시대가 온다는 선생님의 예측은 놀랍게 들어맞았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바로 그것이고, Social media야말로 쿨미디어가 아니겠습니까? 지난번에 제가 선생님의 쿨미디어 주장을 비판한 것은 이제 모든 매체가 쿨미디어가 되었기 때문에 핫미디어니 쿨미디어니 하는 구분이 불필요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미국의 발칸화” 예측이 틀린 또 다른 이유는 선생님이 민족주의(nationalism)의 자기 재생산 능력을 과소 평가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부족을 강조하다 보면 당연히 민족주의를 가볍게 보게 되겠지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 민족주의는 죽은 개가 아닙니다. 아직도 한참 동안 민족주의는 사람들의 정체성(identity)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세계의 정치적 지형을 형성하는데 있어 거대한 힘을 행사할 것입니다. 민족, 민족주의, 민족국가와 같은 논쟁은 별도로 해야 하겠지만, 간단히 말씀 들이자면, 그것들을 기능적으로만 접근하는 학자들은 쉽게 민족국가의 종말을 얘기하지만, 근본적으로 민족이 지닌 역사적, 그리고 권력적 측면을 무시했기 때문에 나온 섣부른 결론이지요. 선생님도 그런 학자들 중 한 분이고요.

그렇다고 “부족”의 개념이 무용하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마페졸리(Michel Maffesoli)가 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집단으로서의 “부족주의”는 민족주의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족주의”와는 좀 다르지요? 마페졸리는 선생님한테 큐를 받아서 “신부족주의”를 제기했는데, 선생님만큼 그렇게 all-encompassing(모든 것을 포함하는) 컨셉을 제시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터넷상에 마페졸리적 의미의 “부족”과 “부족주의”는 넘쳐나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페이스북이 전세계 사용자 5억 명을 넘어 질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지구적 규모로 돌아가는 페이스북이 갖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혹은 문화적 함축성이 무엇일까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입니다.

일단 선생님의 시각을 원용하면, 페이스북에 등장한 실시간 지구촌에는 한편으로 “사랑(love)과 조화(harmony)”가 넘치고, 다른 한편으로 “단절(discontinuity), 다양성(diversity), 분리(division), 갈등(conflict), 불일치(discord)”가 끊임 없이 발생하리라 예상되는 군요. 뭐 크게 인상적인 예측은 아닌데요. 좀 더 구체적인 전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선생님이 주실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윤영민, 2018-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