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문명의 시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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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알렌 튜링은 기계가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는가를 검증하기 위한 이미테이션 게임을 구상했다. 2016년 구글은 기계가 인간보다 더 뛰어나게 사고할 수 있음을 검증하기 위해 바둑에 도전했다. 전자를 튜링 테스트 버전 1.0이라고 부른다면,  후자를 튜링 테스트 버전 2.0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튜링과 구글이 시도했던 것과 유사하게 나는 국가 관리자들이 문명인으로 사고할 수 있는가를 검증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공무원이 되고 정치인이 되도록 제도화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공감능력 테스트이다.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있는가를 검증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질문이 꼭 들어가야 할 것이다. 하나는, 당신은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하나는, 당신은 세월호가 왜 2년 이상 인양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그 시험을 세월호 테스트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그리고 세월호 테스트에서 얻은 고위공직자의 점수, 대통령과 국회의원 후보의 점수는, 마치 재산 공개하듯이 국민에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세월호 참사는 국가 관리자들에 의해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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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 명이 넘는 사람이 근해에서 침몰하는 여객선에 갇혀 죽는 사회, 그것은 문명사회가 아니다. 또한 ‘실종’된 시신이 머무르고 있을 여색선을 2년 이상 바다 속에 방치하는 나라,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모든 사회에는 권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권력은 벌거벗은 폭력일 뿐이다. 그것이 사회주의이든 자본주의이든, 그것이 진보이든 보수이든, 앙리 레비의 표현처럼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다.

우리를 야만으로 만드는 것은 예절의 부재도, 법률의 흠결도, 그리고 기술의 부족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 국민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국가, 그리고 오직 권력과 돈에 대한 욕심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공감문명(empathic civilization)이라고 부른다. 인터넷, 스마트폰 같은 정보통신기술 덕분에 지구적 공감, 생태적 공감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840여 쪽에 달하는 <공감의 시대>에서 그에 대해 이론적, 경험적 증거를 깨알같이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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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21세기 공감 문명의 일부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세월호’가 시금석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문명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문명국가가 되려면 세월호를 한시 바삐 인양하고, 참사의 원인을 밝히며, 피해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공감이 충만한 사회를 만들어 한다. 희생자들의 가족을 따뜻하게 품어 주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세월호’에 진 빚을 갚아야 우리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부디 이 땅에 인간 존중의 문화 그리고 공감의 정치가 꽃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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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yes 학습)(12)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여아출생비율

오래만에 다시 베이즈 공부로 돌아왔다. 예전에 공부한 것을 복습도 할겸 라플라스(Laplace)가 베이즈 정리를 이용해 구했던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여아출생률(female birth rate) 계산을 생각해 보자.

라플라스에게 주어진 데이터는 1745년부터 1770년까지의 프랑스 파리의 출생 기록이었다. 그 기간 동안 총 출생(live births)은 493,472명이었고, 출생한 여아는 241,945명이었다. 물론 남아는 251,527명이었겠지.

이것을 라고 표기하자. 그리고 파리의 여아출생비율을 라고 하면, 이 되겠다. 비율이 0과 1사이라는 의미이다.

베이즈 정리에 따르면, 사후확률(posterior probability)은 우도(likelihood)와 사전확률(prior probability)의 곱에 비례하니 먼저 우도와 사전확률을 추정해야겠지.

우도(likelihood)는, 범주가 여아와 남아 둘 뿐인 비율이니 아래와 같이 이항분포(Binomial distribution)로 놓으면 되겠다.

그리고 사전확률은 라플라스의 예에 따라 아래와 같이 균일분포(uniform distribution)로 두자.

베이즈 공식을 적용해서 사후확률, 을 구하면 다음과 같다.

라플라스는 정규화(normalization)에 필요한 적분(분모)을 계산하기 위해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가 1730년에 발견한 베타함수(Beta function)를 이용했다. 베이즈 목사는 하지 못했던 계산이지. 그렇게 하면 다음과 같은 사후확률이 구해진다.

간단하지? 그런데 사실은 그 뒷면에 아래와 같은 복잡한 계산이 있다.

위에서 Uniform(|0,1) = Beta(|1,1)임을 상기해라.  베타분포를 복습해 보면,

For parameters ,

오일러의 베타함수가 정규화를 위해서 다음과 같이 사용된다.

여기서 는 계승(factorial)의 연속적 일반화이다. 이 부분은 복잡하지만 네가 파이썬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파리의 여아출생비율로 돌아오면, 사후확률은 Beta(|1+241945, 1+251527)이다.

그리고 사후확률의 평균은,

즉, 여아출생비율은 49%로 추정된다. 남아출생비율은 당연히 51%가 될 것이다. 남아출생비율이 여아출생비율보다 다소 높다.

기존에 존재하던 증거나 믿음으로 추정되는 사전확률(prior distribution)이, 데이터와 모수의 관계를 이어주는 우도(likelihood)에 의해 업데이트되어 사후확률(posterior distribution)이 구해졌다. 이 사후확률 분포의 일차 모멘트가 평균이다. 하나의 모집단 비율을 베이즈 추론으로 구해보았다. 이는 가장 간단한 베이즈 추론의 경우가 되겠다. 이제 좀 더 복잡한 경우들을 다루어 보자.

참고문헌

Bob Carpenter. 2015. “Bayesian Inference and Markov Chain Monte Carlo.”

Surya Tapas Tokdar. 2013. “STA 250: Statistics Notes 7. Bayesian Approach to Statistics.” Book chapters: 7.2

 

세월호 그리고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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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아빠가 생각할 때 인간이 지닌 가장 고귀한 능력은 공감(empathy)이다. 그것은 남을 측은하게 여기는 동정과는 다르다. 물론 동정도 칭찬받을만한 마음이고 태도이지만 공감이란 그 보다 훨씬 훌륭한 모습이다.

공감이란 얼마 전에 너도 읽었던 <앵무새 죽이기>에서 하퍼 리(Harper Lee)가 썼다시피 “상대의 몸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 다니는 거다.” 그것은 단순히 남의 어려운 상태를 안타까워하고 도움을 주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상대의 입장에 서 보려는 노력이다.

내가 보기에 공감보다 어렵고 훌륭한 태도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저명한 미국의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Roger Ebert)는 “나는 문명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 공감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아빠도 그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달리 반신반인이 아닌 것 같다. 두 분의 공감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 뻗쳤다. 온 세상에 있는 타인의 고통을 그대로 함께 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감이 기껏해야 자신의 가족을 벗어나지 못하는 범인으로서는 상상하기 불가능한 놀라운 공감 능력이지. 우리가 예수님이나 부처님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공감이 가족에게만 국한되도록 놔둘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해 말 아빠는 누군가에게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생존자들을 일주일에 한번은 만나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직 실천을 못하고 있다. 그냥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작은 격려라도 되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세월호

언어는 힘을 지니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데 말이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말보다 행동이 필요하단다.

지금처럼 세월호 비극을 내팽개친다면 우리 나라를 문명 사회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비극을 잊지 않아야 하지만, 그 아픔을 푸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럴려면 행동이 필요하다. 작은 움직임이라도 말이다. (2016/04/16)

(Bayes 학습)(11) 베이즈 추론의 역사

사십 대 여성이 정기 건강 검진의 일환으로 유방 엑스레이를 찍었다. 일주일 뒤 그녀는 유방암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다는 통보를 받았다. 유방암에 관한 가족력도 없고 또 징후도 없는 그녀가 진짜로 유방암에 걸렸을 확률은 얼마일까?

나는 실제로 몇몇 의사, 간호사, 약사에게 물어 보았다. 80%, 60%, 30%, 10% 라고 대답했다. 모두 틀렸다. 그 확률은, 미국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3%에 불과하다!  그 확률은 아래의 베이즈 정리로 간단히 계산할 수 있다.

여기서 A는 유방 엑스레이 양성 반응이고, B는 유방암을 가지고 있음이다. 좌변의 P(B|A)는 유방 엑스레이 양성 반응이 나온 사람이 실제로 유방암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다. 우변의 P(B)는 유방암을 가지고 있을 확률, P(A|B)는 유방암 환자가 유방 엑스레이 양성 반응이 나올 확률, 그리고 P(A)는 유방 엑스레이 양성 반응이 나올 확률이다.

미국에서 사십 대 여성 1만명 가운데 대략 40명이 유방암을 가지고 있다(유방암 발병 확률은 40/10,000이다). 그리고 유방암 환자가 유방 엑스레이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올 확률은 80%이다. 그러면 그 40명 가운데 32명이 양성 판정을 받는다(그 확률은 32/40이다). 또한 유방 엑스레이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올 확률은 10%이다(그 확률은 1,000/10,000이다).

이 수치를 위 공식에 대입해서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3%이다. 간단하지만 매우 강력한 공식이다.

베이즈 정리라고 불리는 이 공식은 250여년 동안 역사적 퇴장과 등장을 반복하면서 살아남았다.  게다가 그 공식에 기반한 추론은 21세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불확실성을 다루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깊은 과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유쾌한 동반자

이 책은 1740년대 영국의 토머스 베이즈 목사가 별로 자신없이 세상에 내놓았던 수학적 정리가 오늘날 온갖 학문과 현업 분야에서 불확실성을 다루는 강력한 도구로 떠오르기까지의 부침을 기록한 역사이다.

거기에는 숱한 영웅과 천재가 등장한다.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 아서 베일리, 레너드 지미 새비지, 에드워드 몰리나, 앨버트 워츠 휘트니, 해럴드 제프리스, 데 피네티, 앨런 튜링, 잭 굿, 안드레이 콜모고로프, 존 튜키, 오스굿 쿠프먼, 제롬 콘필드, 앨버트 매단스키, 데니스 린들리, 로버트 오셔 슐라이퍼, 하워드 라이파, 프레더릭 모스텔러, 존 피냐 크레이븐, 에이드리언 래프터리, 저먼 형제, 에드리언 스미스, 앨런 겔팬드, 키스 헤이스팅스 등. 게다가 베이즈 추론을 없애버리려는 악당들(?)도 등장한다. 통계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을 기억할 로널드 피셔, 예지 네이만 등이 베이지언들의 공적으로 등장한다. 이 책에서 독자는 그 인물들을 딱딱한 수학자나 과학자가 아니라 생생한 인간으로 만나게 된다. 이 책의 첫번 째 뛰어난 점이다.

베이즈 접근은, 추론 과정에 연구자의 주관적 판단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학계, 특히 통계학계에서는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베이즈 정리를 언급하면 대학에서 자리를 얻을 수 없을 정도였다.

반면에 실제 문제를 풀어야 하는 현업에서는 비교적 다양한 분야에서 수용되었다. 그러나 베이즈 접근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정적분 계산이라는 산을 넘어야 했다. 베이즈 정리의 분모에 적분이 들어가는데, 변수가 많아지면 그 계산은 종이와 연필, 계산자, 혹은 계산기를 사용해서는 거의 불가능했다.

다행히 1980년대 이후 한편으로 몇 명의 탁월한 학자들에 의해 그에 대한 해법이 발견되고, 다른 한편으로 컴퓨팅 환경이 급격히 향상하면서 비로소 대중화의 길이 열렸다. 1989년 발표된 마르코프 연쇄 몬테카를로(Markov Chain Monte Carlo, MCMC) 방법이 어려운 적분을 대체하게 되었다. 베이즈 추론이 계산의 악몽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저자인 샤론 버치 맥그레인(Sharon Bertsch McGrayne)은 그러한 발전에 누가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어렵지 않게 기술하고 있다. 책에는 베이즈 추론을 위한 핵심적인 개념들과 절차들의 발견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베이즈 추론과 관련된 수많은 사건들이 상세하게 기술된 점도 이 책이 흥미 진진하게 읽히는 이유이다. 드레퓌스 사건, 이차대전시 독일군 암호의 해독, 보험업계의 발전, 폐암 원인의 규명, 냉전시 소련 핵잠수함의 추적, 연방주의자 논고의 분석 등 신기한 스토리가 끝이 없는 듯이 이어진다. 이 책의 두번 째 매력이다.

6백쪽이 넘는 책이라 하루이틀 사이에 읽기는 힘들지만,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쉽게 놓을 수 없도록 이야기들이 박진감 넘치게 전개된다. 베이즈 추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베이즈 추론 자체에는 관심이 없더라도 학자의 삶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 학문과 현업, 학문과 전쟁, 학문과 행정, 그리고 순수 학문과 응용 학문의 관계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책으로부터 커다란 흥미와 교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멋진 책이다. (2016/04/15/윤영민)

개울의 길이는?

“아빠, 깨끗한 개울을 따라 걸으니 기분이 정말 좋아요.”

함께 산책하던 막내가 즐거워한다. 2주일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변화가 개울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호영아.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개울의 길이가 얼마나 될 것 같으냐?”

“모르겠는데요. 재보지도 않고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보기에 3km에서 약간 부족할 것 같다. 2.6km에서 2.8km 정도 될 것이다.”

“어떻게 알아요?”

“집 앞  빨랫터에서 이 개울이 끌나는 문화센터까지의 직선 거리가 900m 정도 된다. 거기에 (3.14)를 곱하면 개울의 길이를 구할 수 있다. 농수로로 쓰기 위해 직선으로 만든 부분을 감안해서 100m정도 빼주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왜 를 곱해요?”

“수학자들의 발견에 의하면 완만한 경사를 흐르는 강의 길이는 직선 거리의 이다. 몽골 초원의 구불구불한 강들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오, 재밌네요.”

“그렇지? 수학자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법칙을 찾아서 공식으로 표현하려고 한단다. 우주가 수학적 법칙으로 움직인다고 믿는 것이지.”

“이제 포크래인을 가지고 개울 바닥에 깊이 묻힌 무거운 쓰레기만 치우고 나면 우리 개울은 세상의 어느 나라의 개울 못지 않게 깨끗해질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가 산책할 때 집게와 쓰레기 봉투를 들고 새로 버려진 쓰레기를 수시로 치우면 된다. 그러면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 따라 개울이 아주 말끔하게 유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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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멋진 곳일수록 쓰레기가 많았다. 쓰레기를 치워놓으니 개울의 정겨움이 되살아난다. 4월 11일 오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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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에서 건져낸 쓰레기가 다양하다. 전국 도시주변 농촌의 개울이 비슷한 상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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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사무소가 노인일자리 제도를 이용해서 10명 이상의 어르신들을 보냈다. 한 남자 어르신이 전신 장화를 신고 쓰레기를 건져내고 아주머니들이 건져낸 쓰레기를 마댓자루에 담았다. 이제 포크래인이 개울 바닥에 박힌 대형 쓰레기를 치우면 청소가 마무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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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에서 가장 쓰레기가 많았던 곳이 깨끗해졌다. ‘국민성’이란 독재자들이 만들어 낸 신화일 뿐이다. 우리도 일본이나 네덜란드만큼 깨끗한 환경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안된다”고 해버리면 결코 변할 수 없다. “된다고”고 믿으면 가능성이 열린다. 이웃과 자신을 믿고 실천에 나서면 면사무소도 군청도 움직인다.

“쓰레기는 보는 대로 주워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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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몰래 버린 폐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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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가 만 건축 폐자재 — 이것은 면사무소나 군청이 치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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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 바닥에도 폐비닐
그냥 치워야지. 모두 이웃들이 버린 쓰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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퍠비닐 —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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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가 밭에서 흘러내리는 폐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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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폐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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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또 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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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히 2년은 버려져 있는 수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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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병들 — 정말 대책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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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정자나무 옆 집이 버린 폐자재. 치워달라고 부탁하니 나중에 치우겠다고. 내가 그냥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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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개울이 저렇게 더러우니 누가 들어갈 수 있겠나…. 

학문 분야의 판별: 사회학을 중심으로

최근 학문에서 융합이 대세인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융합적인 연구가 얼마나 활발하게 일어날 지 의문이다.

학문의 오랜 역사는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융합이 결코 성공적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고대 이래 철학, 수학, 신학, 사회학, 물리학, 생물학….통합적 체계를 꿈꾸었던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했다. 특정 분야의 이론이나 연구방법이 학문에 있어 보편적인 적합성을 갖는다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하고, 또한 무엇을 위한 융합인지, 누구를 위한 융합인지가 분명치 않은 데다, 현실적으로 분과 학문 사이의 제도적 칸막이가 워낙 강고하기 때문이다.

설령 실용적인 이유로 인해 학문간의 넘나듦이 활발하게 일어난다고 해도 융합보다는 협업의 형태가 아닐까 예상된다. 그런데 협업은 참여자들이 자신의 정체(identity)와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을 때 더욱 잘 진행된다. 협업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경쟁이나 오해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학문간의 경계도 유동적이다. 그렇다고 특정 시점에서 분과 학문의 판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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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개론 교과서에 나오는 이 구분은 매우 사회학답다. 그러나 이러한 추상적인 구분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좀 더 현실적인 구분을 생각해보자. 사회학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학문의 구분에는 세 가지 기준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연구 주제에 의한 판별이다. 가장 흔히 채용되는 기준이다. 예컨대 연구 대상이 천체 현상이면 천문학, 생물이면 생물학, 질병이면 의학, 신이나 믿음이면 신학(종교학), 정치 현상이면 정치학, 국가행정이면 행정학, 경제 현상이면 경제학이 된다. 여기에 두 가지만 첨언해 보자.

학문에서 인과적 명제는 종속변수와 독립변수(들)로 구성된다. 설명하려고 하는 현상(즉, 결과가 되는 현상)은 종속변수(dependent variable)이고, 설명에 사용되는 현상(원인이 되는 현상)은 독립변수(independent variable)이다.

학문의 판별에서는 독립변수보다 종속변수가 중요하다. 예컨대 석, 박사 논문을 심사할 때 심사자들은 종속변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독립변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사회학에서는 불평등, 갈등, 고령화, 저출산, 가족, 성, 세대 차이, 커뮤니티, 사회연결망, 사회심리, 사회조직, 사회발전, 사회문화가 타당한 연구 주제로 인정받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광고, 마케팅, 인공지능, 컴퓨터 소프트웨어, 컴퓨터 네트워크, 소셜미디어, 국제정치, 종의 진화 같은 연구 주제는 “그게 왜 사회학이지?”하는 정체성 논란에 부딪치곤 한다.

그러나 기초 학문의 경우는 연구 주제 선정에 관해 비교적 관대하다. 사회학, 철학, 수학, 물리학이 그렇다. 연구자가 논리적으로 방어만 잘 하면 무엇이든 타당한 연구 주제로 인정받는다.

학문간의 경계에 속한 주제이거나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주제도 있다. 예컨대 사회발전, 이노베이션, 확산 같은 주제가 그러하다. 그런 경우에 그 주제가 특정 분야의 정당한 연구 주제로 인정받는 것은 연구자의 능력과 노력에 달려 있다. 참고로 이차대전 이후 사회발전은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심지어 인류학에서도 정당한 연구 주제로 인정받았다.

실천을 강조하는 학자나 학파의 경우도 분별이 어렵거나 무의미하다. 칼 마르크스를 어느 분야의 학자로 분류할까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경제학자이며, 사회학자, 철학자, 그리고 역사학자였다. 마르크스는 사회학 창시자 중의 일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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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연구 방법에 의한 판별이다. 각 학문 분야는 내부적으로 발전시켜온 방법론이 있다. 과학이라고 이름 붙여진 실증적인 학문에서는 연구 주제 못지 않게 연구 방법이 학문적 인정을 받는 데 중요하다.

경험적 자료를 수집하는 데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실험(또는 유사 실험), 설문조사, 문헌조사, 비교역사, 참여관찰, 심층인터뷰, 사례분석, 이차분석, 임상, 시뮬레이션 등등. 각 학문 분야마다 타당하다고 인정받는 방법들이 있으며, 그 방법을 사용하면 설령 연구 주제가 낯선 경우에도 특정 분야의 연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사회학은 매우 다양한 방법을 타당하다고 인정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사회학이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비평으로서의 사회학, 사회과학으로서의 사회학, 사회운동으로서의 사회학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세 얼굴은 모두 사회학의 정당한 모습이다. 연구방법에 있어 그 세 가지의 사회학이 동일할 수 없다. 사회비평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측면이 강조되고, 사회과학에서는 과학적 엄밀성이 강조되며, 사회운동에서는 실천성이 강조된다.

사회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채택된 연구방법이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는가, 그리고 충분히 논리적인가가 중요하다. 그 어느 경우에도 논리적이 아니면 학문적 연구가 될 수 없다.

셋째, 준거틀(frame of reference)에 의한 판별이다. 연구자가 어느 학문 분과에 소속되어 있는가를 가지고 특정 연구의 분야를 판별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연구물이 어느 분야의 이론, 어느 분야의 문헌, 어느 분야의 연구자를 주로 인용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느 분야의 저널에 발표되었는가가 그것이 어느 분야에 속한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곤 한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가지고 어느 학문 분야에 말을 걸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 때 준거틀의 선정이 대단히 중요하다. 잘못하단 돈키호테로 간주될 수 있다.

특히 사회학처럼 경계가 불분명한 기초 학문에서 학문 분야의 판별에 있어 준거틀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사회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가장 실용적인 답은 사회학자가 하는 연구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이다.

학문은 진리와 진실을 추구한다. 그러나 허공에서 그러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진실인가는 학자 커뮤니티가 판단한다. 학자 커뮤니티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진리와 진실에 관한 객관적인 판단 기준의 존재가 의심받는 시대에 학자 커뮤니티의 합의는 그래도 진리와 진실을 발견하는 차선이 되지 않겠는가.

연구자(그리고 심지어 대학생도)가 자신이 어느 학자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가를 아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정체성의 문제이면서 생존의 문제이다.

라플라스, 수학이 자유를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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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 나의 새로운 역할 모형(role model)이다. 역할 모형을 갖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인가. 그는 1749년 3월 23일에 태어나 1827년 3월 5일 서거했다. 78세.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전쟁 등 혁명과 반혁명, 그리고 전쟁이 번갈아 일어나던, 인류 역사상 가장 극심한 격변과 혼란의 시대에 그는 오래 살았다. 그런데 가장 부러운 부분은 그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는 점이 아니라(장수가 부럽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가 말년에도 학문적 성과를 계속 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래와 같은 베이즈 정리의 일반 공식을 발표한 것도 60세가 넘어서였다.

이 방정식을 말로 설명하면, 사건 가 발생했을 때 그것의 원인이 일 확률 는, 원인 가 주어졌을 때 사건 가 발생할 확률 에, 이것이 일어날 확률에 대한 최초의 추정치인 를 곱한 수를 가능한 모든 원인에서 사건 가 발생할 확률(사건 의 전체 확률)로 나눈 값과 같다.

뿐만이 아니다. 확률이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중심극한정리(Central Limit Theorem)을 발표한 것도 61세 때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마이다스(Midas)가 손을 대는 것마다 모두 황금으로 바뀐다. 마찬가지로 라플라스가 손을 대는 것마다 모두 수학으로 바뀌었다. 수학 자체는 물론이고, 천체 역학, 물리학, 생물학, 지구과학, 통계학, 군사학, 인구학, 법학, 사회과학 그리고 신의 존재까지 그의 손을 거치면 모두 수학적 탐구 대상으로 바뀌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그의 전공이 무엇이었나고 묻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의 영혼은 결코 어느 한 학문 분야에 갇힐 수 없었다. 그의 호기심은 지칠 줄 몰랐고, 그는 수학이라는 도구를 가지면 세상의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던 것 같다.

계량 사회과학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회학자로 간주되는 던컨(Odis Dudley Duncan)은 회고록에서, 자신이 평생 방법론을 공부했던 이유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라플라스는 바로 그러한 자유인이 아니었을까. 전공이 무어냐는 물음이 모욕이 되는 학문적 유목민 말이다. 오늘날이라고 그런 유목민이 존재할 수 없을까.

인간 vs 인공지능, 진실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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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라는 역서가 출간되었다. 영국의 리딩대학교(University of Reading)의 저명한 인공지능 연구자인 케빈 워릭 교수의 저서였다. 5백쪽이 넘는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내 수업의 교재 중 하나로 채택했다.

그는 팔에 실리콘 칩으로 된 트랜스폰더를 이식했다. 그리고는 영국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미국에 있는 부인에게 신호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그에게는 최초의 인간-사이보그(cyborg)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 책을 읽힌 다음 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 물었다.

“자신이 90% 이상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드세요?”

“자신이 70% 이상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50% 이상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30% 이상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결코 사이보그라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다수의 학생들이 자신은 30% 이상 사이보그라고 대답했다. 워릭 교수는 결코 인간 최초의 사이보그가 아니었다. 사이보그가 되는데 몸에 굳이 칩을 이식할 필요가 없었다. 칩은 다만 상징일뿐.

통신 네트워크는 이미 매클루언적 의미에서 우리의 신체적(그리고 정신적) 연장(extension of body)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명된 이후 우리는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끊임없이 ‘접속’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두뇌 기능은 상당 부분 네트워크에 아웃소싱되어 인터넷과 스마트폰 없이는 우리는 제대로 생각할 수조차 없다. 그래도 단지 몸에 기계를 이식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사이보그가 아니라고 자위할 것인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 관한 수많은 논의들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인간과 기계 사이에 대한 범주착오(category mistake)를 본다. 알파고는 바둑에서 승리만을 미션으로 수행하는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난 계산, 판단, 추론 그리고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프로그램된 존재(programmed being)이다.

그런데 우리는 프로그램된 존재가 아닌가? 유치원 때부터, 아니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그보다 더 일찍부터 생존경쟁에서 이기도록 프로그램되고 있지 않는가? 지금 우리가 아이들에게 심어주려고 하는 알고리즘들은 오직 승리라는 목적만을 위해 사용되도록 개발된 것들이 아닌가? 우리가 가정과 학교에서 생존의 전사를 길러내고 있고 있음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인공지능의 응용에서 가장 앞서 가는 업체 중 하나인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가 생산하는 로봇이 어디에 일차적으로 사용될 것인가? 아마도 그것은 전투일 것이다.

Lance Cpl. Brandon Dieckmann, (front), native of Las Vegas and Pfc. Huberth Duarte, from Riverside, Calif., and infantrymen with India Company, 3rd Battalion, 3rd Marine Regiment, prepare to walk with the Legged Squad Support System through a grassy area at Kahuku Training Area on Oahu, Hawaii, July 12, 2014, during the Rim of the Pacific 2014 exercise. The LS3 is experimental technology being tested by the Marine Corps Warfighting Lab during the Advanced Warfighting Experiment. It is programmed to follow an operator through terrain, carrying heavy loads like water and food to Marines training. There are multiple technologies being tested during RIMPAC, the largest maritime exercise in the Pacific region. This year's RIMPAC features 22 countries and around 25,000 people. (U.S. Marine Corps photo by Cpl. Matthew Callahan/RELEASED)
The LS3 is experimental technology being tested by the Marine Corps Warfighting Lab during the Advanced Warfighting Experiment. It is programmed to follow an operator through terrain, carrying heavy loads like water and food to Marines training. There are multiple technologies being tested during RIMPAC, the largest maritime exercise in the Pacific region. This year’s RIMPAC features 22 countries and around 25,000 people. (U.S. Marine Corps photo by Cpl. Matthew Callahan/RELEASED)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인식 방법을 빌리자면, 알파고와, TV와 인터넷을 통해서 전세계에 중계된 이세고와 알파고의 바둑 대결은, 이미 우리 자신이 프로그램된 존재이고 우리 사회가 그런 전사들이 지배하는 황폐화된 전장임을 은폐하는 쇼가 아닐까? 기술비평가들은, 그리고 그 비평가들의 언설을 통해서 우리는 짐짓 진지하게 인간성(humanity)을 다시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의 의례(ritual)로 끝날 뿐이다. 언제 그랬냐는듯이 우리는 다시 생존의 ‘전장’으로 내몰리고 기꺼이 전투 모드로 돌아온다. 하나의 슬픈 코메디다.

미래 사회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존재는 인간도 인공지능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거대한 시스템(system)이리라. 오직 최고의 이윤과 효율성만을 덕성으로 인정하는 비정한 시스템 말이다. 창의성도, 사랑도, 공감도, 인격도, 자연도, 인문학도, 심지어 비극마저도 돈이 될 때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 시스템. 이미 그 시스템은 프로토타입(prototype) 수준을 넘어 우리 사회의 실제(reality)가 되어 있다.

진실로 우리가 인간이기를 바란다면 그 시스템에 싸움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진실로 인간이기를 바라기나 하는 걸까? (2016/3/31, 윤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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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Blade Runner의 한 장면. 인조인간 레플리컨트(replicant)와 레플리컨트를 사냥하는 인간 블레이드 러너 중 누가 더 인간적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블레이드 러너 조차 인조인간이 아닌가하는 해석도 있다.)

이 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

현대 사회는 마치 신기루 같습니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다양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지 어떤 천재의 눈에도  쉽게 잡히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겠지요. 어차피 우리는 살아야 하고 기왕에 살아야 한다면 잘 살아야 하니까요.

급변하는 세상에서는 자기가 태어난 땅에 살면서도 마치 이민자가 되어 낯선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성공적인 이민자들이 이민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적응도 잘 하고 사업도 잘 운영할 수 있을테니까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현재의 사회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난 가을 교육부가 개통한 온라인 대학교육 서비스인 K-MOOC에 제가 <정보사회학 입문>을 개설한 이유는 이웃들이 새로운 세상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강의에서 저는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실마리가 되는 일곱 가지 키워드를 선정하고 그 키워드에 관련된 고전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를 분석했습니다. 프라이버시, 맥도날드화, 위험사회, 유희, 네트워크, 연극공연, 그리고 선물경제가 제가 고른 키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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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공부하다가 난관에 부딪치면 고전에서 지혜와 영감을 구하곤 합니다. 이 강의에서 그런한 저의 노력을 이웃들과 공유하고자 하였습니다. 다만 저는 고전 문학에서 영감을 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만 과목의 성격상 강의에는 사회과학 고전만 포함시켰습니다.

4월 1일에 한양대학교 K-MOOC  서비스가 다시 시작됩니다. 이번에는 7주 동안 학기가 진행됩니다. 수강생들, 담당 교수, 그리고 운영진의 소통을 위해서 페이스북에 그룹(‘K-MOOC 정보사회학 입문’)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학기에는 9백명 정도가 <정보사회학 입문>을 수강했습니다만, 이번 학기에는 그보다 적은 수가 수강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덕분에 수강생들과 함께 대화할 기회가 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윤영민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