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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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

옛날에 나온 책이라고 꼭 고전인 것도 아니고, 근래에 나온 책이라고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고전이란 사람들에게 오래 오래 영향을 미치는 책으로 그것은 검증된 지혜를 담고 있다.

검증되었다고 해서 고전에 담긴 내용이 모두 진리라는 뜻은 아니다. 내용의 가치가 인정되었다는 의미이다.

고전은, 때로 사람들의 답답한 가슴을 뚫어주기도 하고, 때로 사람들의 슬픔을 달래주기도 하며, 때로 외로운 영혼의 벗이 되어주기도 한다. 나 같이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읽는 사람이 어떤 심정과 기대로 만나는가에 따라 고전은 팔색조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고전을 들면 나는 비밀의 성으로 들어간다. 낡은 표지의 냄새를 맡고 누런 속지를 여는 순간 가슴이 떨리고 동공이 확대된다. 거침없는 탐험과 만남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곳에는 공간적 제약도, 시간적 제약도 없다. 몇 백년 전 정도는 가까운 과거이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신화 속의 인물을 만나기도 하고 심지어 창조주를 만나기도 한다.

인생은 짧다. 일생 동안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랴. 고전을 ‘낡은 책’이 아니라 ‘지혜의 샘’으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고전을 가까이하는 학생들을 보고 싶다. (윤영민, F/B, 2015/03/24)

전통 연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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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패연과 가오리연

필암마을의 뒷산에는 전통 연에 쓰이는 시누대가 많이 자라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이 시누대를 베어 와서 정성을 들여 연 살을 깎았다. 연을 만드는데는 살을 깎고 다듬는 작업이 가장 어렵다.

연에는 가볍고 질긴 한지가 최고이다.  여러 가지 색상으로 생산되는 원주 한지를 구해서 연을 만들었다. 원주 한지는 중국 닥이 들어가지 않은 고급 한지이다. 그런 다음 튼튼한 실로 연에 목줄을 매달았다. 목줄에는 네 줄을 쓰기도 하지만 가운데 줄을 빼고 세 줄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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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하얀색 방패연 하나, 작은 분홍빛 방패연 하나, 그리고 작은 분홍빛 가오리연을 만들어 필암뜰에서 띄웠다. 모두 몇 차례 시도만에 하늘 높이 날았다. 아주 안정적으로 비행했다. 일차 성공이다. 다음에는 연에 무늬, 그림, 글씨를 넣기로 했다.

마을회관의 남자 어르신들의 방은 연 제작실로 탈바꿈했다. 연 제작은 상당 부분 어르신들의 기억에 의존해야 한다. 다행히 마을의 이재복 선생(한옥 목수)이 연 애호가라 비교적 쉽게 복원에 성공했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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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의 시가 지닌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자연, 사람 그리고 시인 자신이 전혀 구분될 수 없도록 하나가 되는 모습이다.

강천사에 효선이라는 지인을 만나고 오는 길에 쓴 시로 추정되는 剛泉寺 留別孝先(강천사 유별효선: 강천사에 효선을 남겨두고 오다)에는 하서의 그러한 모습이 아주 잘 나타나 있다.

山中一雨過 樓前溪水碧(산중일우과 누전계수벽)

산중에 한차례 비가 내리니 누각앞 시냇물이 푸르러졌다

巖高日欲西 古樹長百尺(암고일욕서 고수장백척)

바위 위의 해는 서쪽으로 지려하고 고목의 키는 백자가 넘는다

僧徒送行客 兩兩座溪石(승도송행객 양양좌계석)

스님들은 방문객을 배웅하려고 짝지어 물가에 앉아 있다

握手謝留伴 杯深傾不惜(악수사유반 배심경불석)

손잡고 벗과 작별하면서 잔을 가득 채워 아낌없이 마시네(술마시는 것을 不惜身命, 몸이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불도를 닦는데다 비유한 것인가?)

寒風何處來 颯颯掠雙頰(한풍하처래  삽삽략쌍협)

어디선가 불어오는 찬바람이 홀연히 두 빰을 훔치는구나(멋진 표현이다! 삽삽은 바람불어오는 소리를 느끼게 하는 의성어 아닌가?)

落葉沒前徑 蒼蒼間松竹  (낙엽몰전경 창창간송죽)

낙엽은 오솔길을 파묻고 군데군데 소나무와 대나무가 푸르다(지름길 경, 창창은 푸른 모습을 느끼게 하는 의태어?)

一醉歸去來 幽禽響空谷(일취귀거래 유금향공곡)

한껏 취해 돌아가려니 새소리가 빈골짜기를 울리네(‘귀거래’라는 표현을 빌려와서 세상을 등진 도연명과 같은 심정을 슬쩍 내보인 것은 아닐까? 그윽할 유 자를 쓴 이유가 무얼까?)

석양에 친구 스님과 헤어지는 순간이다. 늦가을 강천계곡은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하다. 그러한 계곡의 모습이, 헤어짐의 아쉬움, 그리고 한 잔 술과 어우러진다.

자연주의자, 또한 낭만주의자로서의 하서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황금알을 낳는 때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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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어느 곳에 아주 아주 훌륭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은 경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착하고 인심이 넉넉했습니다.

어느 날 그 마을에 때까우(거위) 한 가족이 날아들었습니다. 그 때까우들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매일매일 황금알을 낳았습니다.

그 때까우 가족에게 신비스런 비밀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모이를 먹고 사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이웃 사랑이라는 한 가지 모이였습니다. 때까우들이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을 주민들이 서로 위하고 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마을 주민들이 황금알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알을 감추지 않나, 하나라도 더 가져가지 않나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서로 먼저 하나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마을에서 때까우 가족은 황금알을 낳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살아갈 수 조차도 없습니다. 때까우 가족이 점점 야위어 갑니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2016/01/08)

조선 제일의 학자 중 한 명이었던 하서의 학문법

하서가 지은 五言古詩(오언고시) 중 ‘讀白鹿洞規(백록동 학규를 읽고)’를 보면, 그의 학문법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學問且思辨(학문차사변) 篤行在先知(독행재선지)

身修而可推(신수이가추) 應接皆得宜(응접개득의)

此乃爲學要(차내위학요) 儒者當孜孜(유자당자자)

  1. 배우고 묻고 그리고 생각하고 따지며,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다음 성실하고 친절하게 행동한다.
  2. 그러면 심신을 수양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하면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데 있어 적절함을 얻게 된다.
  3. 학문의 요체가 거기에 있으니, 선비는 마땅히 이를 실천하는데 힘써야 한다.

이 시에서 하서는, 성인이 되는 길은 그 뿐인데, 정작 세상의 선비들은 그 일은 열심히 하지 않고 글만 멋지게 지으려하고 명예와 이익을 쫒는데만 열심이라고 한탄한다.

배우고, 묻고, 생각하며, 따진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식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다.

개념들의 체계인 지식은 강의나 책은 물론이고 인터넷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객체화된 지식일 뿐이다. 그 지식을 얻으려면, 즉,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누구나 반드시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식의 담지자(혹은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식이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담지자에게 살아있는 모습으로 체화되어야 한다. 파편화되거나 박제화되어 사용될 수 없는 지식, 혹은 실천되지 않은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누구나 반드시 “생각하기(thinking)”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무리 강의를 많이 듣고,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그리고 인터넷에서 아무리 자료를 살피고 다녀도, 생각하기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생각하기는 때로 즐겁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수고스럽다.

생각하기란 대단히 적극적인 행위이다. 그것은 통상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책을 읽으며 저자에게 이론적으로 도전하고,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에게 질문을 던지고, 동료 학생들과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생각하기의 제1단계이다. 이 단계의 핵심을 한 마디로 하면 ‘대화’이다. 대화는 가장 오랫동안 검증된 지식 획득의 방법이다.

생각하기의 다음 단계는 제1단계에서 얻은 지식을 스스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다. 손으로(혹은 키보드/마우스로) 쓰고 그려야 한다. 파편화된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제1단계에서 얻은 지식을 반드시 스스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자기만의 관점이나 독창적인 발상이 들어가면 지식의 변종이 탄생하거나 새로운 이론이 창조된다.

생각하기의 제3단계는 지식을 사용하거나 실천하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지식일지라도 사용되거나 실천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그리고 지식을 사용하고 실천하면서 그것을 성찰하면 우리의 지식은 비로소 우리의 몸과 하나가 된다. 그 상태를 지식의 체화라고 부른다.

배운 내용을 묻고, 생각하고, 따지지 않으면 어떤 지식도 자기 자신의 지식이 되지 않는다. 이는 5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진리임에 분명하다.

더구나 학자들이 참다운 지식을 획득하고 실천하는데 노력하지 않고, 겉멋을 내고 권력과 명예만 탐한다는 하서의 지적은 오늘날 더욱 타당하지 않나 싶다. (2016/01/07)

우리 나라의 노인은 얼마나, 왜 가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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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삶의 어려움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는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그냥 ‘노인 빈곤율’이라고도 함)이다.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이렇게 계산된다. 한 사회의 65세 이상 노인을 연간소득 기준으로 한 줄로 세웠을 때, 딱 가운데 해당되는 소득(중위 소득이라고 함)의 50% 미만인 계층이 65세 노인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9.6%로, 위 표에서 보듯이 OECD 회원국 중 단연 1등이다. OECD 국가 평균이 12.6%이니, 그것의 거의 네 배나 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18-25세 인구층이나 25-65세 인구층에서는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이 OECD 국가 평균보다 낮다. 이는 우리나라에 가난한 사람들이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많은 편이 아닌데 유독 노인층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왜 그럴까? 다음 표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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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소득을 기준으로 산출한 노인 빈곤율을 보면 우리나라가 61.3%로 다른 OECD 회원국들에 비해 다소 낮은 편이다. 시장소득이란 요소 소득(근로소득+사업소득+재산소득)과 사적 이전소득(퇴직금, 개인연금 등)을 합한 소득을 말한다.

그런데 가처분 소득을 기준으로 산출한 노인 빈곤율은 우리나라가 49.6%로 다른 OECD 회원국들에 비해 매우 높다. 가처분 소득이란 시장 소득과 공적 이전 소득(공적연금 등)을 합한 것에서 비소비지출(소득세, 사회보험료 등)을 뺀 소득을 말한다.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에 있어 노인층에게 주어지는 공적 이전 소득이 노인 빈곤율을 현저하게 낮추고 있는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공적 이전 소득이 작아서 노인 빈곤율을 별로 낮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가난한(가처분 소득이 아주 작은) 노인들이 무척 많다. 그 이유는 일하는 노인들이 적어서가 아니라 노인들에게 주어지는 공적 이전 소득이 작기 때문이다.

이 자료들은 노인에 대한 공적 이전 소득을 늘리는  길이 우리 사회의 노인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특히 노인 인구 비율이 현저하게 높은 호남 지방에는 노인층에 대한 공적 이전 소득의 확대가 절실하다고 판단된다. (윤영민, 2015/12/30)

교육을 다시 생각한다

 

교육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것이 수행해야하는 사회적 역할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교육(혹은 공공의 교육 기관)은 네 가지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 학생들의 인지 능력과 인성(품)을 높임으로써 그것이 가능해 진다. 둘째, 삶의 기회(life chances)를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 사회적 상승 이동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셋째, 민주주의를 실천한 시민(citizens)을 육성해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시민 육성은 근대적 공민교육이 분명하게 지향하는 목표이다. 넷째,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해야 한다. 학교, 특히 대학은 국가 경제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창조적인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교육 제도와 현실을 평가하고 대안을 수립할 때는 이 네 가지 측면을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 삶의 질 향상

학교에서는 무엇보다도 독립된 인격체로서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skills), 철학, 그리고 태도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점이 교육의 본원적 기능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학교 교육이 글을 읽고 쓰고 숫자를 계산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지능력을 넘어서 창의력이나 종합적 사고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학교 교육이 현실 문제의 해결 능력을 길러주는 지는 더욱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시험문제를 푸는 능력은 높아지는데,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동료와의 협력을 통해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철학과 태도 교육은 더욱 빈곤하다. 학교 교육이 경쟁심만 부추기고 각자 도생 능력만 높일 뿐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성품, 그리고 동료나 이웃과 협력하는 기술과 능력을 길러주는데는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학 교육비는 물론이고 중고등학교 교육비가 과도하게 커서 학생 본인과 부양자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트리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녀의 삶의 질을 확보해 주기 위해서 부모의 삶의 질을 떨어트려야 하는 상황이다. 자녀의 미래가 부모의 현재를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 삶의 기회 향상

현대 사회에서 학교는 사회적 지위의 변화나 재생산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낮은 사회 계층에게는 사회적 상승 이동의 통로가 되고, 특수층에게는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수단이 된다. 학교가 지위 대물림 수단이 되는 현상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학교가 계층 상승 이동의 관문이 되도록 사회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 교육은 “개천에서 용이 나게” 했다. 그러나 교육제도가 점차 사회적 상승이동의 통로 대신에 사회적 지위 재생산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민은 물론이고 웬만한 중산층마저 감당하기 어려운 교육비(사교육비 포함), 특수층 자녀에게 유리한 대학입시제도 등이 계층을 뛰어넘는 경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 민주시민 육성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정치제도이다.  학교는 민주주의 교육장이어야 한다.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과 태도를 교육할 뿐 아니라 비판, 토론, 협의, 합의 등 실제 민주적 절차와 관행이 학생들의 몸에 충분히 밸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또한 학교는 서로 다른 계층간의 교류가 일어나는 공간이어야 한다. 서로 다른 계층 출신의 아이들이 만나서 서로 이해, 공감, 협력하는 기회를 충분히 가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민족이 하나의 민주적 공동체로 유지될 수 있다.

민주주의 교육장으로서의 학교가 지닌 역할은 특히 취약하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중대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교육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 국가경쟁력 제고

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국가간, 그리고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글로벌한 경제 환경에서 교육은 국가 경쟁력의 제고라는 또 다른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특히 대학은 연구를 통해서 새로운 기술개발에 앞장 서야 하고 국가 경제가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을 배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이점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의 ‘추격 경제’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하는데 우리 교육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우리 교육은 인지능력 제고, 경쟁심 고취, 그리고 인내심과 순응적 태도를 배양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러한 교육이 ‘선도 경제’에서도 충분할 지는 의문이다.

21세기의 선도 경제에서 필요한 창의, 공감, 그리고 협력 능력을 기르는데는 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며, 대학에서의 창의적인 연구도 투입 대비 효과가 대단히 낮은 실정이다.

우리 교육제도를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윤영민, 2015/12/28)

우리가 살기 힘든 진짜 이유

  1. 우리 나라의 경제발전 수준이 낮지 않다. 물가를 반영한 우리 나라의 실질 국민소득(PPP GDP 35,400달러)은 일본, 영국, 뉴질랜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과 같은 수준이다.
  2. 우리 나라의 전체적인 소득 불평등 수준이 나쁘지 않다. 지니계수가 3.2 정도로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캐나다와 비슷한 수준이다.
  3. 우리의 가계지출구조가 취약하다. 2015년 유럽연합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 나라 가구의 가계비 지출 중 교육비(6.7%)와 통신비(4.3%) 비율이 매우 높다. 아마도 학생 자녀를 둔 대부분의 가정은 실제로 대부분 그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상당히 많은 가정이 주택구입으로 인한 채무에 대한 원리금 상환 부담을 안고 살고 있다.
  4. 사회보장 제도가 취약하여 삶의 불확실성이 대단히 크다. 2014년 GDP 대비 복지 지출이 10.4%로 세계 주요국가 20개국 중 멕시코(7.9%) 다음으로 낮다. 참고로 프랑스는 31.9%, 일본은 23.1%, 미국은 19.2%이다. 2011년 기준 노인 빈곤율은 48.6%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2012년 기준 45.2%로, OECD 국가 평균인 65.9%에 훨씬 못미친다.
  5. 우리 나라는 개인(혹은 가족)이 삶의 무거운 짐을 대부분 져야한다. 교육, 사회적 성취, 취업, 주거, 기초 생활, 노후, 노부모 부양 등의 부담이 개인에게 주어진다. 국가나 사회 공동체의 역할이 너무 작다.
  6. 사람들이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학교 시험, 대학 입시, 취업, 승진, 사업 등 인생 동안 끝없는 경쟁에 시달린다.

이러한 현실은 국민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 국가가 가져야할 정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시사한다. (윤영민, 2015/12/27)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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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교수(KDI 국제정책대학원)가 손석춘 박사와의 대담을 통해서 경제민주화를 알기 쉽게 풀어주었다. 유 교수에 의하면 경제민주화는 공정경쟁, 분배정의, 참여경제라는 세 키워드로 정리된다.
‘공정 경쟁’은 대기업, 특히 극히 소수의 재벌기업에 의한 시장의 교란을 바로 잡아 자유와 창의를 살려내자는 주장이고, 분배정의는 마르크시즘이나 사회주의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려는 대안이며, 참여경제는 자본의 독점적 지배를 극복하고 노동자, 시민, 소비자가 당당한 경제주체로 참여하는 경제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 책은 딱딱한 경제 해설서가 아니다. DJ와 노무현이라는 민주정부의 지도자와의 경험을 경제민주화라는 관점에서 복기하고 있다. 유 교수 개인의 편향이 다분히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국가 운영을 회고하는데 누구라도 그런 한계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제도가 교과서에서 불쑥 튀어나오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형성된다. 역사는 힘이 되기도 하고 넘을 수 없는 제약이 되기도 한다. 경제민주화의 시대를 가려면 과거의 유산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얇지만 소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현실로 돌아와보면,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민주화를 왜곡시킨 장본인들이 여전히 야당의 핵심부에 포진하고 있다. 만약에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들은 다시 대통령을 둘러싸고 인의 장막을 구축하려 할 것이다. 4.11 총선 당시 민주당의 공천에서 그 조짐이 드러났다. 권력을 남용해 총선에서 민주당의 참담한 패배를 초래하고 대선마저 지금과 같은 상태로 만들었다. 그들은 대의 추구보다는 권력 장악이 우선인 집단이다. 모피아와 일부 ‘친노’가 야합해서 새 정부를 장악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연 문재인 후보가 얼마나 그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까? 과연 문재인 후보에게 그런 결단을 내릴 정도로 경제민주화에 관해 깊이 있는 이해와 의지가 있을까? 의문스럽다.
우리나라에서 경제민주화는 더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고 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르겠다. 경제민주화는 아직 시기상조인지도 모른다. (윤영민, 2012/12/13)

어른

김수환_법정

어른이 되면 한 가지를 얻고 열 가지를 잃습니다.

어른은 함부로 속 마음을 내보일 수 없습니다. 항상 온화한 모습으로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한 사회의 평화는 어른들의 온화함 속에서 나옵니다.

어른은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죽여야 합니다. 좋은 것은 주위 사람들이 먼저 갖도록 해야 합니다. 어른이 먼저 자기 잇속을 챙기면 사회는 아귀다툼에 빠집니다.

어른은 늘 남을 배려해야 합니다. 항상 주위 사람들의 형편을 살펴야 합니다. 어른이 이웃들의 통곡을 베고 편안히 잠들 수는 없습니다.

어른은 늘 베풀어야 합니다. 어른 한 명이 지갑을 열면 가난한 이웃 열 명에게 희망이 생깁니다.

어른은 당산나무처럼 든든해야 합니다. 죽는 소리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이웃들이 기댈 곳이 있습니다.

어른은 이웃을 넓게 포용해야 합니다. 어른이 당파성을 갖게 되면 사회가 평화를 구하기 어렵게 됩니다.

어른은 정의를 쫓아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와 사회의 기강이 바로 섭니다.

어른은 생색을 내서는 안됩니다. 선행을 하고서 남이 자신을 알아주길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른은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쉽게 부화뇌동해서는 안됩니다. 어른이 흔들리면 사회가 좌표를 잃게 됩니다.

어른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사라져야 합니다. 세상 것에 집착하면 마지막이 추해집니다.

진정한 바보만이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른은 가진 것 다 내어놓고, 잘 해야 존경을 얻을 뿐이지요.

그래도 누군가가 그 어려운 “어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너무 각박해요.

아, 내 한몸 편하자는 속셈인가. (윤영민, FB 201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