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노인은 얼마나, 왜 가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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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삶의 어려움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는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그냥 ‘노인 빈곤율’이라고도 함)이다.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이렇게 계산된다. 한 사회의 65세 이상 노인을 연간소득 기준으로 한 줄로 세웠을 때, 딱 가운데 해당되는 소득(중위 소득이라고 함)의 50% 미만인 계층이 65세 노인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9.6%로, 위 표에서 보듯이 OECD 회원국 중 단연 1등이다. OECD 국가 평균이 12.6%이니, 그것의 거의 네 배나 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18-25세 인구층이나 25-65세 인구층에서는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이 OECD 국가 평균보다 낮다. 이는 우리나라에 가난한 사람들이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많은 편이 아닌데 유독 노인층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왜 그럴까? 다음 표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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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소득을 기준으로 산출한 노인 빈곤율을 보면 우리나라가 61.3%로 다른 OECD 회원국들에 비해 다소 낮은 편이다. 시장소득이란 요소 소득(근로소득+사업소득+재산소득)과 사적 이전소득(퇴직금, 개인연금 등)을 합한 소득을 말한다.

그런데 가처분 소득을 기준으로 산출한 노인 빈곤율은 우리나라가 49.6%로 다른 OECD 회원국들에 비해 매우 높다. 가처분 소득이란 시장 소득과 공적 이전 소득(공적연금 등)을 합한 것에서 비소비지출(소득세, 사회보험료 등)을 뺀 소득을 말한다.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에 있어 노인층에게 주어지는 공적 이전 소득이 노인 빈곤율을 현저하게 낮추고 있는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공적 이전 소득이 작아서 노인 빈곤율을 별로 낮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가난한(가처분 소득이 아주 작은) 노인들이 무척 많다. 그 이유는 일하는 노인들이 적어서가 아니라 노인들에게 주어지는 공적 이전 소득이 작기 때문이다.

이 자료들은 노인에 대한 공적 이전 소득을 늘리는  길이 우리 사회의 노인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특히 노인 인구 비율이 현저하게 높은 호남 지방에는 노인층에 대한 공적 이전 소득의 확대가 절실하다고 판단된다. (윤영민, 2015/12/30)

교육을 다시 생각한다

 

교육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것이 수행해야하는 사회적 역할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교육(혹은 공공의 교육 기관)은 네 가지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 학생들의 인지 능력과 인성(품)을 높임으로써 그것이 가능해 진다. 둘째, 삶의 기회(life chances)를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 사회적 상승 이동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셋째, 민주주의를 실천한 시민(citizens)을 육성해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시민 육성은 근대적 공민교육이 분명하게 지향하는 목표이다. 넷째,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해야 한다. 학교, 특히 대학은 국가 경제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창조적인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교육 제도와 현실을 평가하고 대안을 수립할 때는 이 네 가지 측면을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 삶의 질 향상

학교에서는 무엇보다도 독립된 인격체로서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skills), 철학, 그리고 태도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점이 교육의 본원적 기능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학교 교육이 글을 읽고 쓰고 숫자를 계산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지능력을 넘어서 창의력이나 종합적 사고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학교 교육이 현실 문제의 해결 능력을 길러주는 지는 더욱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시험문제를 푸는 능력은 높아지는데,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동료와의 협력을 통해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철학과 태도 교육은 더욱 빈곤하다. 학교 교육이 경쟁심만 부추기고 각자 도생 능력만 높일 뿐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성품, 그리고 동료나 이웃과 협력하는 기술과 능력을 길러주는데는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학 교육비는 물론이고 중고등학교 교육비가 과도하게 커서 학생 본인과 부양자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트리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녀의 삶의 질을 확보해 주기 위해서 부모의 삶의 질을 떨어트려야 하는 상황이다. 자녀의 미래가 부모의 현재를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 삶의 기회 향상

현대 사회에서 학교는 사회적 지위의 변화나 재생산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낮은 사회 계층에게는 사회적 상승 이동의 통로가 되고, 특수층에게는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수단이 된다. 학교가 지위 대물림 수단이 되는 현상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학교가 계층 상승 이동의 관문이 되도록 사회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 교육은 “개천에서 용이 나게” 했다. 그러나 교육제도가 점차 사회적 상승이동의 통로 대신에 사회적 지위 재생산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민은 물론이고 웬만한 중산층마저 감당하기 어려운 교육비(사교육비 포함), 특수층 자녀에게 유리한 대학입시제도 등이 계층을 뛰어넘는 경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 민주시민 육성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정치제도이다.  학교는 민주주의 교육장이어야 한다.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과 태도를 교육할 뿐 아니라 비판, 토론, 협의, 합의 등 실제 민주적 절차와 관행이 학생들의 몸에 충분히 밸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또한 학교는 서로 다른 계층간의 교류가 일어나는 공간이어야 한다. 서로 다른 계층 출신의 아이들이 만나서 서로 이해, 공감, 협력하는 기회를 충분히 가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민족이 하나의 민주적 공동체로 유지될 수 있다.

민주주의 교육장으로서의 학교가 지닌 역할은 특히 취약하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중대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교육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 국가경쟁력 제고

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국가간, 그리고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글로벌한 경제 환경에서 교육은 국가 경쟁력의 제고라는 또 다른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특히 대학은 연구를 통해서 새로운 기술개발에 앞장 서야 하고 국가 경제가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을 배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이점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의 ‘추격 경제’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하는데 우리 교육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우리 교육은 인지능력 제고, 경쟁심 고취, 그리고 인내심과 순응적 태도를 배양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러한 교육이 ‘선도 경제’에서도 충분할 지는 의문이다.

21세기의 선도 경제에서 필요한 창의, 공감, 그리고 협력 능력을 기르는데는 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며, 대학에서의 창의적인 연구도 투입 대비 효과가 대단히 낮은 실정이다.

우리 교육제도를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윤영민, 2015/12/28)

우리가 살기 힘든 진짜 이유

  1. 우리 나라의 경제발전 수준이 낮지 않다. 물가를 반영한 우리 나라의 실질 국민소득(PPP GDP 35,400달러)은 일본, 영국, 뉴질랜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과 같은 수준이다.
  2. 우리 나라의 전체적인 소득 불평등 수준이 나쁘지 않다. 지니계수가 3.2 정도로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캐나다와 비슷한 수준이다.
  3. 우리의 가계지출구조가 취약하다. 2015년 유럽연합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 나라 가구의 가계비 지출 중 교육비(6.7%)와 통신비(4.3%) 비율이 매우 높다. 아마도 학생 자녀를 둔 대부분의 가정은 실제로 대부분 그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상당히 많은 가정이 주택구입으로 인한 채무에 대한 원리금 상환 부담을 안고 살고 있다.
  4. 사회보장 제도가 취약하여 삶의 불확실성이 대단히 크다. 2014년 GDP 대비 복지 지출이 10.4%로 세계 주요국가 20개국 중 멕시코(7.9%) 다음으로 낮다. 참고로 프랑스는 31.9%, 일본은 23.1%, 미국은 19.2%이다. 2011년 기준 노인 빈곤율은 48.6%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2012년 기준 45.2%로, OECD 국가 평균인 65.9%에 훨씬 못미친다.
  5. 우리 나라는 개인(혹은 가족)이 삶의 무거운 짐을 대부분 져야한다. 교육, 사회적 성취, 취업, 주거, 기초 생활, 노후, 노부모 부양 등의 부담이 개인에게 주어진다. 국가나 사회 공동체의 역할이 너무 작다.
  6. 사람들이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학교 시험, 대학 입시, 취업, 승진, 사업 등 인생 동안 끝없는 경쟁에 시달린다.

이러한 현실은 국민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 국가가 가져야할 정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시사한다. (윤영민, 2015/12/27)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

경제민주화유종일
유종일 교수(KDI 국제정책대학원)가 손석춘 박사와의 대담을 통해서 경제민주화를 알기 쉽게 풀어주었다. 유 교수에 의하면 경제민주화는 공정경쟁, 분배정의, 참여경제라는 세 키워드로 정리된다.
‘공정 경쟁’은 대기업, 특히 극히 소수의 재벌기업에 의한 시장의 교란을 바로 잡아 자유와 창의를 살려내자는 주장이고, 분배정의는 마르크시즘이나 사회주의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려는 대안이며, 참여경제는 자본의 독점적 지배를 극복하고 노동자, 시민, 소비자가 당당한 경제주체로 참여하는 경제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 책은 딱딱한 경제 해설서가 아니다. DJ와 노무현이라는 민주정부의 지도자와의 경험을 경제민주화라는 관점에서 복기하고 있다. 유 교수 개인의 편향이 다분히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국가 운영을 회고하는데 누구라도 그런 한계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제도가 교과서에서 불쑥 튀어나오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형성된다. 역사는 힘이 되기도 하고 넘을 수 없는 제약이 되기도 한다. 경제민주화의 시대를 가려면 과거의 유산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얇지만 소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현실로 돌아와보면,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민주화를 왜곡시킨 장본인들이 여전히 야당의 핵심부에 포진하고 있다. 만약에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들은 다시 대통령을 둘러싸고 인의 장막을 구축하려 할 것이다. 4.11 총선 당시 민주당의 공천에서 그 조짐이 드러났다. 권력을 남용해 총선에서 민주당의 참담한 패배를 초래하고 대선마저 지금과 같은 상태로 만들었다. 그들은 대의 추구보다는 권력 장악이 우선인 집단이다. 모피아와 일부 ‘친노’가 야합해서 새 정부를 장악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연 문재인 후보가 얼마나 그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까? 과연 문재인 후보에게 그런 결단을 내릴 정도로 경제민주화에 관해 깊이 있는 이해와 의지가 있을까? 의문스럽다.
우리나라에서 경제민주화는 더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고 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르겠다. 경제민주화는 아직 시기상조인지도 모른다. (윤영민, 2012/12/13)

어른

김수환_법정

어른이 되면 한 가지를 얻고 열 가지를 잃습니다.

어른은 함부로 속 마음을 내보일 수 없습니다. 항상 온화한 모습으로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한 사회의 평화는 어른들의 온화함 속에서 나옵니다.

어른은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죽여야 합니다. 좋은 것은 주위 사람들이 먼저 갖도록 해야 합니다. 어른이 먼저 자기 잇속을 챙기면 사회는 아귀다툼에 빠집니다.

어른은 늘 남을 배려해야 합니다. 항상 주위 사람들의 형편을 살펴야 합니다. 어른이 이웃들의 통곡을 베고 편안히 잠들 수는 없습니다.

어른은 늘 베풀어야 합니다. 어른 한 명이 지갑을 열면 가난한 이웃 열 명에게 희망이 생깁니다.

어른은 당산나무처럼 든든해야 합니다. 죽는 소리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이웃들이 기댈 곳이 있습니다.

어른은 이웃을 넓게 포용해야 합니다. 어른이 당파성을 갖게 되면 사회가 평화를 구하기 어렵게 됩니다.

어른은 정의를 쫓아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와 사회의 기강이 바로 섭니다.

어른은 생색을 내서는 안됩니다. 선행을 하고서 남이 자신을 알아주길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른은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쉽게 부화뇌동해서는 안됩니다. 어른이 흔들리면 사회가 좌표를 잃게 됩니다.

어른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사라져야 합니다. 세상 것에 집착하면 마지막이 추해집니다.

진정한 바보만이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른은 가진 것 다 내어놓고, 잘 해야 존경을 얻을 뿐이지요.

그래도 누군가가 그 어려운 “어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너무 각박해요.

아, 내 한몸 편하자는 속셈인가. (윤영민, FB 2015/08/27)

얼마나 더 부유해져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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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만큼 안과 밖의 평가가 크게 다른 나라도 드뭅니다. 아마도 이웃 나라인 일본 정도만 비슷할 겁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는데, 밖에서 우리 나라를 보는 사람들은 우리가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의 CIA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정보력은 신뢰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내놓는 통계를 인용하겠습니다.

CIA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GDP 규모는 2014년 현재 세계 195개국 중 13위입니다. 호주, 스페인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구매력으로 환산한 1인당 GDP는 표에서 보듯이 그보다 좀 많이 떨어져서 46위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일본, 영국이 우리보다 약간 높은 각각 43위, 44위이고, 뉴질랜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스페인은 우리나라보다 아래입니다.

분명히 대한민국은 부유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가 잘 사는 나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실 그와는 반대입니다. 우리는 크게 잘 못사는 나라입니다.

지나친 경제 집중과 빈부격차, 취약한 복지제도, 높은 청년 실업, 과도한 개인주의와 배금주의, 치열한 경쟁, 각박한 인심, 엄청난 스트레스….거기에다 부패한 정치, 무책임한 행정까지.

이 문제들 중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정치인들과 일부 언론은 우리가 아직 더 경제적으로 부유해져야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합니다. 저는 바로 그점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부자가 되고도, 사유는 ‘결핍의 독재(tyranny of scarcity)’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이 우리를 더 나은 사회로 데려다 줄 것이라는 신화에 포박되어, “우리도 잘 살아보자”, “배부른 소리 하지마라”라는 주장에 아직도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기 어려운 것은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각박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주의, 배금주의, 경쟁 지상주의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만들 수 있는 모든 자원과 도구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더 이상 ‘결핍의 독재’가 우리를 지배하게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으면 설령 우리 나라가 1인당 GDP 1위 국가가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가난할 것입니다.

개인주의에 탈출구는 없습니다. (윤영민, FB 2015/10/04)

인문학의 실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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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출간된 책에서 Fareed Zakaria가 인문 교육을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가진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입니다.

그 책을 보면 인문학의 위기가 우리 나라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네요. 학생과 학부모는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얻는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공학이나 경영학과 같은 실용적인 전공을 선호하고, 심지어 대통령이나 주지사와 같은 정치 지도자들마저도 인문학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기술 교육에 대한 지원을 늘이겠다고 나서고 있답니다.

그러한 분위기에 대해 자카리아가 반기를 들고 나섰습니다. 그는 미국이 계속 세계를 리드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미국 대학교육의 강점인 인문학 교육을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일류 기업들이 인문학 교육을 잘 받은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책의 제3장에서 그는 인문 교육(그는 인문학에 문학, 역사, 철학, 종교, 인류학 뿐 아니라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과학도 포함합니다)의 혜택을, 쓰기(how to write), 말하기(how to speak), 배우는 방법(how to learn)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결국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지식을 획득하는 기술, 두 가지를 말하는 것이지요.

저는 자카리아의 주장에 무척 공감합니다. 요즘과 같은 인터넷 세상에 쓸 줄 모르는 사람, 말할 줄 모르는 사람, 정보와 지식을 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여러분 주위에는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정교하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가요? 그 정도야 앞으로 ‘구글신’이나 ‘빅 데이터’ 요술 방망이가 해결해 줄 것이라고요?

십수년 전 어떤 수업에서 저는,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쓸 줄만 알면 밥먹고 사는 걱정을 안해도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 멀티미디어 시대가 되었으니 워딩을 좀 바꾸겠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줄만 알면 밥먹고 사는 걱정을 안해도 될 것이다.”

저는 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과 같은 기술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합니다. 그들에게 기본적인 공학적 소양을 갖추라고 강조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공학도가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21세기의 인문학은 문학, 역사학, 철학, 예술, 심리학, 사회학, 과학, 그리고 공학적 소양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고도의 기술기반 사회에서 공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 책을 읽어주는 자카리아의 목소리에 인디언 액센트가 남아 있네요. 그도 인도 출신 미국인입니다.

그 책에 인용된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다음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은 테크놀로지인 것만큼, 심리학이며 사회학입니다.” (윤영민, FB 2015/04/07)

미래를 얘기할 때

시나리오
연말이 되니 여느 때처럼 미래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거기에는 사려깊은 분석과 예측도 있지만, 단순한 짐작, 억측, 과장, 소망, 부정직한 선언, 정치적 수사, 자기 과신, 신비주의 등도 전문가의 이름으로 제시되곤 한다.

비록 미래예측이 대부분 틀리기는 하지만, 어느 개인이나 조직도 미래를 고려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다. 많이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연말에 여러분들에게 혹시 도움이 될 지 몰라서 한 마디 올려본다.

몇년 전 CEO를 대상으로 했던 강의 자료인데, 미래전망과 대안선택의 프로세스이다.

1) 무엇에 관해 전망할 것인지를 선택한다.
2) 해당 사안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들을 모두 찾아내고, 그 요인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파악한다.
3) 그중, '중요하나 불확실한 요인(important & uncertain)'들에 주목한다.
4) 그 변수들이 지닌 불확실성의 수준에 따라 전망 방식을 선택한다.
5) 불확실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예측(forecasting)'을 수행하고, 불확실성이 너무 높다고 판단되면 기도를 열심히 하거나 점쟁이를 찾는다. 그도저도 아니라고 판단되면, 미래전망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네 개 정도의 시나리오가 적당하다.
6) 만약 귀하가 CEO라면, 위험부담의 수준을 선택하고, 그에 맞는 해법을 선정한다. 최적 해법(optimal solution)을 택하면, 기대치가 큰 반면 리스크도 크다. 전천후 해법(robust solution)을 택하면, 기대치는 낮지만 리스크가 작다. 상황이 어려울 때는 전천후 해법이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전문가는 불확실성이 높은 사안에 대해 확신을 갖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최소한 세 가지 수준의 화법을 적절히 분별해서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전문가로 간주하기 어렵다.

미래를 다루는 전문가의 가장 중요한 소양은 겸손과 정직이다. 신의 영역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윤영민, FB 2013/12/16)

뿌리

시내

시냇물을 매일 보다보면 눈앞에 물만 보지 않고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 물이 어디에서 발원해서 어디를 거쳐서 흘러 왔는지 궁금해지지요.

오늘은 물이 깨끗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물이 깨끗하지 않으면 누구집의 논에 물을 대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오수를 방류했는가 생각합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리 생각합니다.

오늘처럼 물이 맑으면 그냥 감사하게 됩니다. 비를 내려준 하늘에게도 감사하고, 오수를 버리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시냇물을 보는데 훈련된 철학자, 문학자, 사회학자, 종교인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물을 오래 보면 거기에서 철학이, 시가, 사회분석이, 심지어 신심마저 생겨납니다. 자연은 그렇게 우리의 진정한 스승이며 인도자입니다.

4백년 전 하서 선생은 시냇물을 보면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걸음 걸음 물결 보며 올라가면서
시 읊으니 생각이 더욱 그윽해
참 근원을 사람들은 찾지를 않고
담장 뚫고 흐르는 물만 멍하니 쳐다보네.”
(‘담장 밑을 뚫고 흐르는 물’, 이기동 역) (윤영민, FB 2015/04/17)

SNS 포스팅

SNS 포스팅은 말걸기이다. 아무리 심각하고 어려운 내용일지라도 대화라는 속성을 벗어날 수 없다. ‘내’가 ‘네’게 말을 걸고, ‘네’가 ‘내’게 응답하면서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기서 진짜 중요한 것은 ‘나’도 ‘너’도 아닌 대화 자체인지도 모른다.

SNS 포스팅은 스토리 라이팅이 아니다. 스토리 라이팅은 형식을 갖춘 ‘글쓰기’이다. 그것에는 저자의 치밀한 기획과 구성, 그리고 테크닉이 요구된다. ‘글쓰기’는 신문 기사, 방송 뉴스, 시, 소설, 드라마, 논문처럼 일방향적 성격을 벗어나기 어렵다. 스토리 라이팅은 먹물들에게 가장 익숙한 발화 형식이다. 그래서 나도 자주 그렇지만 먹물들의 포스팅은 글쓰기인 경우가 많다.

SNS 포스팅은 전통적인 스토리텔링에 가깝다. 스토리텔링은 ‘말하기’이다. 글쓰기와 달리 그것은 형식이 자유롭고 특별한 테크닉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말하기는 대화의 상대가 분명하고, 즉흥적이며 가변적이다. 그 때 그 때 청자들의 관심과 분위기에 맞추어 화제를 고르고 임기응변의 변주를 얼마든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SNS 포스팅이 딱 떨어진 스토리텔링은 아니다. 그것은 ‘말하기’라기 보다 ‘대화(dialogue)’이다. 진정성을 기반으로 한 언어적 교감이다. 말을 주고 받으며 서로 섞는 행위이다. 때문에 댓글과 답글이 포스팅 이상의 비중을 지닌다. 포스팅은 댓글놀이와 더불어 완성된다.

아니다. 어쩌면 미하일 바흐찐의 주장처럼 대화에 마감이란 없는 지도 모른다. 삶은 대화이고, 그것은 세상이 끝나는 날에야 마치게 될 것이다. (윤영민, FB 2015/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