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

경제민주화유종일
유종일 교수(KDI 국제정책대학원)가 손석춘 박사와의 대담을 통해서 경제민주화를 알기 쉽게 풀어주었다. 유 교수에 의하면 경제민주화는 공정경쟁, 분배정의, 참여경제라는 세 키워드로 정리된다.
‘공정 경쟁’은 대기업, 특히 극히 소수의 재벌기업에 의한 시장의 교란을 바로 잡아 자유와 창의를 살려내자는 주장이고, 분배정의는 마르크시즘이나 사회주의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려는 대안이며, 참여경제는 자본의 독점적 지배를 극복하고 노동자, 시민, 소비자가 당당한 경제주체로 참여하는 경제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 책은 딱딱한 경제 해설서가 아니다. DJ와 노무현이라는 민주정부의 지도자와의 경험을 경제민주화라는 관점에서 복기하고 있다. 유 교수 개인의 편향이 다분히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국가 운영을 회고하는데 누구라도 그런 한계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제도가 교과서에서 불쑥 튀어나오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형성된다. 역사는 힘이 되기도 하고 넘을 수 없는 제약이 되기도 한다. 경제민주화의 시대를 가려면 과거의 유산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얇지만 소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현실로 돌아와보면,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민주화를 왜곡시킨 장본인들이 여전히 야당의 핵심부에 포진하고 있다. 만약에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들은 다시 대통령을 둘러싸고 인의 장막을 구축하려 할 것이다. 4.11 총선 당시 민주당의 공천에서 그 조짐이 드러났다. 권력을 남용해 총선에서 민주당의 참담한 패배를 초래하고 대선마저 지금과 같은 상태로 만들었다. 그들은 대의 추구보다는 권력 장악이 우선인 집단이다. 모피아와 일부 ‘친노’가 야합해서 새 정부를 장악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연 문재인 후보가 얼마나 그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까? 과연 문재인 후보에게 그런 결단을 내릴 정도로 경제민주화에 관해 깊이 있는 이해와 의지가 있을까? 의문스럽다.
우리나라에서 경제민주화는 더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고 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르겠다. 경제민주화는 아직 시기상조인지도 모른다. (윤영민, 2012/12/13)

어른

김수환_법정

어른이 되면 한 가지를 얻고 열 가지를 잃습니다.

어른은 함부로 속 마음을 내보일 수 없습니다. 항상 온화한 모습으로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한 사회의 평화는 어른들의 온화함 속에서 나옵니다.

어른은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죽여야 합니다. 좋은 것은 주위 사람들이 먼저 갖도록 해야 합니다. 어른이 먼저 자기 잇속을 챙기면 사회는 아귀다툼에 빠집니다.

어른은 늘 남을 배려해야 합니다. 항상 주위 사람들의 형편을 살펴야 합니다. 어른이 이웃들의 통곡을 베고 편안히 잠들 수는 없습니다.

어른은 늘 베풀어야 합니다. 어른 한 명이 지갑을 열면 가난한 이웃 열 명에게 희망이 생깁니다.

어른은 당산나무처럼 든든해야 합니다. 죽는 소리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이웃들이 기댈 곳이 있습니다.

어른은 이웃을 넓게 포용해야 합니다. 어른이 당파성을 갖게 되면 사회가 평화를 구하기 어렵게 됩니다.

어른은 정의를 쫓아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와 사회의 기강이 바로 섭니다.

어른은 생색을 내서는 안됩니다. 선행을 하고서 남이 자신을 알아주길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른은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쉽게 부화뇌동해서는 안됩니다. 어른이 흔들리면 사회가 좌표를 잃게 됩니다.

어른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사라져야 합니다. 세상 것에 집착하면 마지막이 추해집니다.

진정한 바보만이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른은 가진 것 다 내어놓고, 잘 해야 존경을 얻을 뿐이지요.

그래도 누군가가 그 어려운 “어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너무 각박해요.

아, 내 한몸 편하자는 속셈인가. (윤영민, FB 2015/08/27)

얼마나 더 부유해져야할까요?

gdppp

우리 나라만큼 안과 밖의 평가가 크게 다른 나라도 드뭅니다. 아마도 이웃 나라인 일본 정도만 비슷할 겁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는데, 밖에서 우리 나라를 보는 사람들은 우리가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의 CIA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정보력은 신뢰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내놓는 통계를 인용하겠습니다.

CIA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GDP 규모는 2014년 현재 세계 195개국 중 13위입니다. 호주, 스페인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구매력으로 환산한 1인당 GDP는 표에서 보듯이 그보다 좀 많이 떨어져서 46위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일본, 영국이 우리보다 약간 높은 각각 43위, 44위이고, 뉴질랜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스페인은 우리나라보다 아래입니다.

분명히 대한민국은 부유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가 잘 사는 나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실 그와는 반대입니다. 우리는 크게 잘 못사는 나라입니다.

지나친 경제 집중과 빈부격차, 취약한 복지제도, 높은 청년 실업, 과도한 개인주의와 배금주의, 치열한 경쟁, 각박한 인심, 엄청난 스트레스….거기에다 부패한 정치, 무책임한 행정까지.

이 문제들 중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정치인들과 일부 언론은 우리가 아직 더 경제적으로 부유해져야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합니다. 저는 바로 그점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부자가 되고도, 사유는 ‘결핍의 독재(tyranny of scarcity)’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이 우리를 더 나은 사회로 데려다 줄 것이라는 신화에 포박되어, “우리도 잘 살아보자”, “배부른 소리 하지마라”라는 주장에 아직도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기 어려운 것은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각박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주의, 배금주의, 경쟁 지상주의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만들 수 있는 모든 자원과 도구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더 이상 ‘결핍의 독재’가 우리를 지배하게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으면 설령 우리 나라가 1인당 GDP 1위 국가가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가난할 것입니다.

개인주의에 탈출구는 없습니다. (윤영민, FB 2015/10/04)

마지막 무대

오드리_햅번

노년은 이 위성에서의 마지막 무대이다. 그 고별 무대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는다. 오직 그 때까지 살아남은 자에게만 돌아온다. 그 점만 보아도 노년은 많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소중한 기회이다.

그 무대에서 어떤 공연을 펼칠 지는 개인에게 중대한 선택이다. 일생을 고단하게 살아온 사람은 아마도 평안과 휴식을 택할 것이고, 붙박이처럼 직장과 집을 왕복하며 살아온 사람은 버킷 리스트의 순서에 따라 실컷 여행을 떠나고 싶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에 봉사를 하고 싶어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친구들과의 만남을 즐기며 살고 싶어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지구라는 정박지에서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떠나고자 할 것이다.

그 실존적 선택에 대해 누구도 딴지를 걸 수는 없다. 어떤 노년이 아름다운가를 재는 보편적 잣대는 없다.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누구나 인생이라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완성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타까운 노년의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인생의 작가가 자신이 아니라 타자인 경우이다. 돈 때문에, 권력에 대한 집착 때문에, 사회적 명성 때문에, 남의 눈 때문에, 자식 때문에….

멋진 무대 공연이란 어쩌면 시간의 문제가 아닐 지도 모른다. 나이에 관계없이 한 순간이라도 인생 스토리에 있어 자신이 작가이고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커다란 후회없이 지구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마지막 무대 공연을 스스로 결정할 수만 있어도 행복한 노년이다. 노인이 되기 훨씬 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선택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선택을 대신해 주는 경우도 있다.

떠날 때가 가까워지면 누구나 진지해진다. 삶의 끝이라는 가상적 상황에서 살아온 길을 복기하는 일이 잦아지는 걸 보면 나도 마지막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 때가 오기는 온 모양이다. (윤영민, FB 2015/04/28)

인문학의 실용성

zakaria

며칠 전 출간된 책에서 Fareed Zakaria가 인문 교육을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가진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입니다.

그 책을 보면 인문학의 위기가 우리 나라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네요. 학생과 학부모는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얻는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공학이나 경영학과 같은 실용적인 전공을 선호하고, 심지어 대통령이나 주지사와 같은 정치 지도자들마저도 인문학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기술 교육에 대한 지원을 늘이겠다고 나서고 있답니다.

그러한 분위기에 대해 자카리아가 반기를 들고 나섰습니다. 그는 미국이 계속 세계를 리드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미국 대학교육의 강점인 인문학 교육을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일류 기업들이 인문학 교육을 잘 받은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책의 제3장에서 그는 인문 교육(그는 인문학에 문학, 역사, 철학, 종교, 인류학 뿐 아니라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과학도 포함합니다)의 혜택을, 쓰기(how to write), 말하기(how to speak), 배우는 방법(how to learn)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결국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지식을 획득하는 기술, 두 가지를 말하는 것이지요.

저는 자카리아의 주장에 무척 공감합니다. 요즘과 같은 인터넷 세상에 쓸 줄 모르는 사람, 말할 줄 모르는 사람, 정보와 지식을 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여러분 주위에는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정교하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가요? 그 정도야 앞으로 ‘구글신’이나 ‘빅 데이터’ 요술 방망이가 해결해 줄 것이라고요?

십수년 전 어떤 수업에서 저는,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쓸 줄만 알면 밥먹고 사는 걱정을 안해도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 멀티미디어 시대가 되었으니 워딩을 좀 바꾸겠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줄만 알면 밥먹고 사는 걱정을 안해도 될 것이다.”

저는 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과 같은 기술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합니다. 그들에게 기본적인 공학적 소양을 갖추라고 강조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공학도가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21세기의 인문학은 문학, 역사학, 철학, 예술, 심리학, 사회학, 과학, 그리고 공학적 소양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고도의 기술기반 사회에서 공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 책을 읽어주는 자카리아의 목소리에 인디언 액센트가 남아 있네요. 그도 인도 출신 미국인입니다.

그 책에 인용된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다음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은 테크놀로지인 것만큼, 심리학이며 사회학입니다.” (윤영민, FB 2015/04/07)

미래를 얘기할 때

시나리오
연말이 되니 여느 때처럼 미래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거기에는 사려깊은 분석과 예측도 있지만, 단순한 짐작, 억측, 과장, 소망, 부정직한 선언, 정치적 수사, 자기 과신, 신비주의 등도 전문가의 이름으로 제시되곤 한다.

비록 미래예측이 대부분 틀리기는 하지만, 어느 개인이나 조직도 미래를 고려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다. 많이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연말에 여러분들에게 혹시 도움이 될 지 몰라서 한 마디 올려본다.

몇년 전 CEO를 대상으로 했던 강의 자료인데, 미래전망과 대안선택의 프로세스이다.

1) 무엇에 관해 전망할 것인지를 선택한다.
2) 해당 사안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들을 모두 찾아내고, 그 요인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파악한다.
3) 그중, '중요하나 불확실한 요인(important & uncertain)'들에 주목한다.
4) 그 변수들이 지닌 불확실성의 수준에 따라 전망 방식을 선택한다.
5) 불확실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예측(forecasting)'을 수행하고, 불확실성이 너무 높다고 판단되면 기도를 열심히 하거나 점쟁이를 찾는다. 그도저도 아니라고 판단되면, 미래전망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네 개 정도의 시나리오가 적당하다.
6) 만약 귀하가 CEO라면, 위험부담의 수준을 선택하고, 그에 맞는 해법을 선정한다. 최적 해법(optimal solution)을 택하면, 기대치가 큰 반면 리스크도 크다. 전천후 해법(robust solution)을 택하면, 기대치는 낮지만 리스크가 작다. 상황이 어려울 때는 전천후 해법이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전문가는 불확실성이 높은 사안에 대해 확신을 갖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최소한 세 가지 수준의 화법을 적절히 분별해서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전문가로 간주하기 어렵다.

미래를 다루는 전문가의 가장 중요한 소양은 겸손과 정직이다. 신의 영역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윤영민, FB 2013/12/16)

뿌리

시내

시냇물을 매일 보다보면 눈앞에 물만 보지 않고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 물이 어디에서 발원해서 어디를 거쳐서 흘러 왔는지 궁금해지지요.

오늘은 물이 깨끗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물이 깨끗하지 않으면 누구집의 논에 물을 대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오수를 방류했는가 생각합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리 생각합니다.

오늘처럼 물이 맑으면 그냥 감사하게 됩니다. 비를 내려준 하늘에게도 감사하고, 오수를 버리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시냇물을 보는데 훈련된 철학자, 문학자, 사회학자, 종교인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물을 오래 보면 거기에서 철학이, 시가, 사회분석이, 심지어 신심마저 생겨납니다. 자연은 그렇게 우리의 진정한 스승이며 인도자입니다.

4백년 전 하서 선생은 시냇물을 보면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걸음 걸음 물결 보며 올라가면서
시 읊으니 생각이 더욱 그윽해
참 근원을 사람들은 찾지를 않고
담장 뚫고 흐르는 물만 멍하니 쳐다보네.”
(‘담장 밑을 뚫고 흐르는 물’, 이기동 역) (윤영민, FB 2015/04/17)

SNS 포스팅

SNS 포스팅은 말걸기이다. 아무리 심각하고 어려운 내용일지라도 대화라는 속성을 벗어날 수 없다. ‘내’가 ‘네’게 말을 걸고, ‘네’가 ‘내’게 응답하면서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기서 진짜 중요한 것은 ‘나’도 ‘너’도 아닌 대화 자체인지도 모른다.

SNS 포스팅은 스토리 라이팅이 아니다. 스토리 라이팅은 형식을 갖춘 ‘글쓰기’이다. 그것에는 저자의 치밀한 기획과 구성, 그리고 테크닉이 요구된다. ‘글쓰기’는 신문 기사, 방송 뉴스, 시, 소설, 드라마, 논문처럼 일방향적 성격을 벗어나기 어렵다. 스토리 라이팅은 먹물들에게 가장 익숙한 발화 형식이다. 그래서 나도 자주 그렇지만 먹물들의 포스팅은 글쓰기인 경우가 많다.

SNS 포스팅은 전통적인 스토리텔링에 가깝다. 스토리텔링은 ‘말하기’이다. 글쓰기와 달리 그것은 형식이 자유롭고 특별한 테크닉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말하기는 대화의 상대가 분명하고, 즉흥적이며 가변적이다. 그 때 그 때 청자들의 관심과 분위기에 맞추어 화제를 고르고 임기응변의 변주를 얼마든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SNS 포스팅이 딱 떨어진 스토리텔링은 아니다. 그것은 ‘말하기’라기 보다 ‘대화(dialogue)’이다. 진정성을 기반으로 한 언어적 교감이다. 말을 주고 받으며 서로 섞는 행위이다. 때문에 댓글과 답글이 포스팅 이상의 비중을 지닌다. 포스팅은 댓글놀이와 더불어 완성된다.

아니다. 어쩌면 미하일 바흐찐의 주장처럼 대화에 마감이란 없는 지도 모른다. 삶은 대화이고, 그것은 세상이 끝나는 날에야 마치게 될 것이다. (윤영민, FB 2015/04/19)

그리운 정치가

증언

지친 몸으로 밤늦게 집에 돌아오니 책상에 택배가 놓여 있었다. 포장을 뜯어보니 엊그제 주문한 <증언>이다. 직업 외교관이었던 김하중 전 통일부장관이 고 김대중 대통령의 외교에 관해 쓴 책이다.

보통 두터운 책이 아니었다. 쏟아지는 잠을 포기하고 책장을 열었다.

책에는 저자가 외교라는 창문을 통해서 지켜본 DJ가 담담하고 절제 있게 묘사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매 꼭지마다 DJ에 대한 저자의 존경과 감사가 흘렀다.

대한민국의 소위 엘리트들에게 DJ에 대한 언급은 일종의 터부이다. 언급해 봐야 어떤 반응을 받게 될 지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고맙다. 자신이 받게될 낙인이나 불편함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실행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DJ의 외교가 커다란 성공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그러한 성공의 이유로 네 가지 요인을 든다.

첫째, DJ의 삶에 대한 세계 지도자들의 존경이다. 그에 의하면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일본의 총리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수많은 나라의 정상들이 역경을 이기며 꿋꿋하게 살아온 DJ에게 깊은 경의를 표했다. 심지어 중국의 장쩌민 주석과 주룽지 총리는 중국의 장관들이나 고위인사들이 있는 앞에서 DJ를 “형님”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둘째, 용서와 겸손이다. 세계 지도자들은 김 대통령의 정적에 대한 용서에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DJ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겸손했다고 전한다. DJ는 상대가 누구이든 겸손하고 진심으로 대했다고 한다.

셋째, 철저한 준비이다. 중요한 면담이나 회담을 앞두고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그 바탕 위에 이루어진 명쾌하고 절제된 표현으로 상대방을 놀라고 감동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넷째, 풍부한 지식과 영어 소통 능력이다. DJ는 항상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한다. DJ가 감옥에서 얼마나 열심히 책을 읽었는지, 48세에 시작한 영어 공부를 두고두고 얼마나 부지런히 했는지는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나라에 DJ만큼 곡해된 정치인이 또 있을까? 내가 아는 DJ는 통합의 정치인, 화해의 정치인, 공감의 정치인이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증언이다.

DJ라면 세월호 비극을 어떻게 풀었을까? 4.16 1주기의 새벽에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허망한 상상을 해본다. 공감과 치유의 리더십이 아쉽다. (윤영민, FB 2015/04/16)

늙어감에 대한 반역

나이를 먹어가면 점점 편한 게 좋아진다. 새롭게 뭔가를 배우고 생각을 바꾸고, 시도하는 것이 귀찮고 두렵다. 심신의 적응력이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게 늙는 것이리라.

지금까지 당연시 해왔던 것들을 뒤집어보고 거부하면 삶의 다른 세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도전은 우리를 일상의 감옥으로부터 꺼내준다. 물론 그것은 불안과 위험을 가져오지만 삶에 활력이 솟구치게 해준다.

오늘은 뭘 거부해볼까, 이번 주는 뭘 뒤질어볼까, 이번 방학에는 어디로 탈출해볼까, 이번 학기는 어떤 변화를 시도해볼까, 올해는 뭘 새로 배워볼까…이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교수는 서서 가르치는데 학생들은 왜 앉아서 수업을 듣는가, 왜 강의를 학생들 앞에서 해야 하는가 뒤에서 하면 안되나,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전산학을 가르치면 안되나, 정치인들에게 주는 보수를 모두 없애버리면 안될까, 왜 자꾸 새로운 기계에 적응하게 하나 기계가 내게 적응해야지, 왜 꼭 투표소에서 투표를 해야하나…지리산 속에 살면서 출퇴근하면 어떨까, TV 없는 세상이 낫지 않을까, 휴대폰이 점점 값비싼 올가미가 되는구나…없애 버릴까…

앞으로도 계속 생각을 변화시키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좀 고단하기는 하지만 삶이 재밌지 않는가. 오늘도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야겠다. (윤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