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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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발행된 고등학교 수학교과서 중 하나

대학원 유학 시절 5년차인 1990년 어느 날인가 학위논문 지도교수였던 Michael Hout(현재 New York University 사회학과 석좌교수)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나는 당시 학과에서 대학원 조교를 하고 있었는데, 새로 입학한 한 대학원생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라는 것이었다.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막막하던 나는 한국에 있던 아내에게 고등학교 수학교과서를 구입해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 교과서를 가지고 집합, 미적분, 행렬, 확률을 가르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일은 내게 정말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 학생은 중학교 3학년 이후에 수학을 배운 적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영어로 수학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수학 용어의 영어 표현을 찾아가면서 가르쳐야 했다.

어찌어찌해서 악몽같은 개인 지도가 두 달만에 끝났다. 아마도 그 (여)학생의 머리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내 엉터리 강의를 알아들었으리라. 그 여학생은 Harvard University Law School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사회학을 공부하기 위해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대학원에 다시 입학했다.

아마도 지금 그 일을 한다면 훨씬 수월할 것이다. 공부를 업으로 한참을 보낸 후에야 나는 수학이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학교에서 수학의 한 가지 얼굴만을 배웠다. 바로 셈법으로서의 수학, 계산 원리와 과정으로서의 수학이다.

그런데 수학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수학 교과서에도, 수학 ‘정석’에도 없는 얼굴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논리 전개를 위한 도구로서의 수학이다. 나는 학교에서 그 수학을 배우지 못했다.

나는 그 때문에 나보다 학교(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수학을 덜 배운 지도교수가 정작 연구에서 나보다 수학을 훨씬 잘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무한한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사실 그가 사용한 수학이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문제는 자신의 주장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할 수 있었고, 나는 할 수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수학적 표현과 씨름하면서 논리 전개를 위한 수학을 뒤늦게 공부하고 있다. 이제라도 균형잡힌 수학 능력을 갖추었으면 좋겠다. 다행스럽게도 예상했던 것보다 수학 공부가 재미 있다! (윤영민, 201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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