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일의 학자 중 한 명이었던 하서의 학문법

하서가 지은 五言古詩(오언고시) 중 ‘讀白鹿洞規(백록동 학규를 읽고)’를 보면, 그의 학문법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學問且思辨(학문차사변) 篤行在先知(독행재선지)

身修而可推(신수이가추) 應接皆得宜(응접개득의)

此乃爲學要(차내위학요) 儒者當孜孜(유자당자자)

  1. 배우고 묻고 그리고 생각하고 따지며,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다음 성실하고 친절하게 행동한다.
  2. 그러면 심신을 수양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하면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데 있어 적절함을 얻게 된다.
  3. 학문의 요체가 거기에 있으니, 선비는 마땅히 이를 실천하는데 힘써야 한다.

이 시에서 하서는, 성인이 되는 길은 그 뿐인데, 정작 세상의 선비들은 그 일은 열심히 하지 않고 글만 멋지게 지으려하고 명예와 이익을 쫒는데만 열심이라고 한탄한다.

배우고, 묻고, 생각하며, 따진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식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다.

개념들의 체계인 지식은 강의나 책은 물론이고 인터넷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객체화된 지식일 뿐이다. 그 지식을 얻으려면, 즉,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누구나 반드시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식의 담지자(혹은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식이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담지자에게 살아있는 모습으로 체화되어야 한다. 파편화되거나 박제화되어 사용될 수 없는 지식, 혹은 실천되지 않은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누구나 반드시 “생각하기(thinking)”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무리 강의를 많이 듣고,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그리고 인터넷에서 아무리 자료를 살피고 다녀도, 생각하기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생각하기는 때로 즐겁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수고스럽다.

생각하기란 대단히 적극적인 행위이다. 그것은 통상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책을 읽으며 저자에게 이론적으로 도전하고,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에게 질문을 던지고, 동료 학생들과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생각하기의 제1단계이다. 이 단계의 핵심을 한 마디로 하면 ‘대화’이다. 대화는 가장 오랫동안 검증된 지식 획득의 방법이다.

생각하기의 다음 단계는 제1단계에서 얻은 지식을 스스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다. 손으로(혹은 키보드/마우스로) 쓰고 그려야 한다. 파편화된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제1단계에서 얻은 지식을 반드시 스스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자기만의 관점이나 독창적인 발상이 들어가면 지식의 변종이 탄생하거나 새로운 이론이 창조된다.

생각하기의 제3단계는 지식을 사용하거나 실천하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지식일지라도 사용되거나 실천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그리고 지식을 사용하고 실천하면서 그것을 성찰하면 우리의 지식은 비로소 우리의 몸과 하나가 된다. 그 상태를 지식의 체화라고 부른다.

배운 내용을 묻고, 생각하고, 따지지 않으면 어떤 지식도 자기 자신의 지식이 되지 않는다. 이는 5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진리임에 분명하다.

더구나 학자들이 참다운 지식을 획득하고 실천하는데 노력하지 않고, 겉멋을 내고 권력과 명예만 탐한다는 하서의 지적은 오늘날 더욱 타당하지 않나 싶다. (2016/01/07)

글쓴이: 만리거사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정보사회학과의 윤영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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