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글을…

젊은 시절 나는 참 말 많은 사람이었다. 밤을 꼴닥 새우면서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심심치 않을 정도이다. 남의 얘기를 차분하게 듣기보다 내 생각을 말하기 바빴다. 사람들이 얼마나 싫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오십 살이 넘어서야 겨우 남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말하는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 글을 썼다. 그러면서 말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글 쓰는 양이 늘수록 말수는 줄어든 것 같다.

대체로 노인은 말이 많다. 그러나 그것이 꼭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노인이 되면 일과 행동이 줄어드는데 말조차 하지 못하면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요즘은 매일 글을 쓴다. 젊은 시절 글쓰기를 취미를 가졌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말을 안 해도 대화 욕구를 상당부분 충족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글을 써서 책을 내거나 매체에 출판할 생각이 아니라면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생각과 글이 따로 놀지 않으면 되는데 쓰다보면 글이 생각을 따라잡게 된다. 그리고 편집을 통해서 거기에 약간의 질서만 부여하면 충분히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글이 된다.

독자가 단 몇 명에 불과한 들 어떠하랴. 자기 자신만이 독자일 수도 있고 독자에 아내가 추가되거나 가족이 추가될 수도 있겠지만, 가족 독자마저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실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읽히는 것보다 쓰는 것이 목적이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쓰는 행위 자체가 충분히 즐거운 것을. 물론 운이 좋아 독자가 하나 둘 생긴다면 더 기분좋은 일이겠지만.

은퇴 후에 생활이 참 많이 바뀌었다. 은퇴 전에 별로 안하던 행동을 하는 것이 적지 않다. 성찰과 글쓰기는 그 중 하나이다. 앞만 보고 달리고 그나마 시간에 쫓겨 주위를 돌아보지도, 나를 돌아보지도, 이것저것에 대해 차분히 성찰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주위가 눈에 들어오고, 나 자신과 인생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해서 얻는 생각과 느낌을 글로 쓰니 이보다 좋은 일이 없지 싶다.

오늘도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 있음에 감사한다. 지구를 다녀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 몇 년 아니 단 몇 달만이라도 그렇게 살 수 있기를 바랬겠는가.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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