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여유…마음의 눈

어제 오후 늦은 시간에 백양사에 갔다. 둘째가 기분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4-5년 전만 같아도 광주나 전주로 나갔겠지만 이제 둘째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취향이 좀 바뀌었다. 물론 팬데믹 탓도 있겠지만.

백양사는 집에서 차로 20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니 나들이랄 것도 없다. 그래도 기분전환에는 좋은 곳이다. 봄에는 길가에 벛꽃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단풍이 가득해 특별히 좋지만, 사실 아무 때나 찾아가도 수십년 심지어 수백년 된 나무들, 그리고 백암산의 고혹적인 자태를 만날 수 있어 가성비가 최고인 곳이다.

더구나 백양사 근처에는 우리 식구가 즐겨가는 맛집도 몇 군데 있어 금상첨화이다. 어제는 저녁 식사 후에 맛있는 전통차를 파는 가게를 들렀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 지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고, 주인 아주머니가 정성을 다해 준비한 차와 디저트를 내왔다. 20년 된 찻집이라는데 이렇게 좋은 곳을 어떻게 이제야 오게 되었을까. 차를 마신 후에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산책까지 마치고 돌아왔다.

결국 마음이 문제였고, 여유가 관건이었다. 평생동안 나는 나들이를 가도 늘 쫓기듯이 다녔으니 제대로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다녔던 것이었다. 아마도 대학 1학년 때 이후 45년만에 처음으로 진정한 여유를 찾은 것 같다. 세상은 결국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보는 것이며, 세상을 보는 마음은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 살이를 시작한 지 37년만에 은퇴하고 나는 비로소 세상을 관조하는 여유를 얻었다. 이보다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덕분에 하루를 마치 천일처럼 산다. 살아있음을 마음껏 느낀다. 오늘이 마치 지구 여행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지나간 것을 안타까워하거나 아쉬워 하지 말고 매순간 새롭게 주어지는 현재를 사랑하고 만끽하자. 이렇게 살 수 있음을 하느님과 조상, 그리고 아내에게 감사하면서. (202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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