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기를 소환하다

이발기 셋

어제는 아내에게 머리 손질을 맡겼다. 25년만인 것 같다.

1986년 가을 어느날 캠퍼스에서 마주친 동료 유학생이 내 머리를 보고 경악했다. 이용 경험이 전혀 없는 아내가 가위만으로 머리카락을 잘라 놓았으니 내 머리 모양이 기겁을 할만도 했다. 결국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고쳤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아내의 머리깎기는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서까지 한참 계속되었다.

그런데 아내에게 다시 이발기를 들도록 요청한 것이다. 읍내에서 몇 군데 이발소를 가보았지만 하나도 맘에 들지 않았다. 어떤 이발사는 면도를 얼마나 거칠게 하던지 이발하고 한 사흘 동안 얼굴이 아팠고, 어떤 이발사는 머리를 발로 자른 것처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어떤 이발사는 이발하면서 말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7-8년 동안 그들에게서 머리를 깎았으니 나름 오래 참았다.

어제 깎고 보니 아내의 솜씨가 녹슬지 않았다. 더구나 아내는 내 머리를 아주 소중하게 다루어 주지 않는가. 제대로 대접받은 느낌이다. 다만 노안 때문에 머리카락 겨누기를 쉽지 않아 하는 아내에게 미안했을 뿐이다.

내가 평생 품고 살아온 생각 중 하나는 지식인에게 검박(朴) 보다 더 큰 힘은 없다는 것이다. 지식인의 역할은 발언이다. 소신을 밝혀서 세상이 바르게 가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식인의 혀가 꼬이면 더 이상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지식인의 혀를 비트는 유혹이 많다. 돈, 권력, 출세, 허영, 물욕, 편안함, 게으름 등 생활을 느슨하게 만드는 모든 것은 지식인을 부패하게 만드는 유혹이다.

20대부터 나는 지식인을 지향하며 살아왔다. 항상 원칙에 충실했던 것은 아니지만 일탈을 하더라도 오래지 않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검박한 생활의 핵심은 무엇보다 주어진 수입에 감사하며 그 범위 내에서 살아가는 자세이다. 생활이 방만해지면 추가적인 소득을 필요로 하게 된다. 추가적인 소득을 갈망하면, 남의 눈치를 보고, 적당히 타협하고, 더 나아가 아부하고, 투기하고, 심지어 부정까지 저지르게 된다.

오랜만에 아내에게 머리를 맡기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좀 더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지출이 줄고 정신도 맑아지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202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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