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

지난 2월 퇴직을 하자마자 팬데믹 상황이 왔고, 나는 계획했던 유럽 여행을 접었다. 그리고 3월에는 아내가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사랑채를 내 작업실로 리모델링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아내의 요양 공간으로 만들었다. 독립적인 침실과 화장실, 거실과 주방까지 갖추었는데, 딤채가 꼭 필요하다고 해서 어제 소형 딤채를 들여 놓았다. 이로써 사랑채 리모델링 작업이 일단락되었다. 

12월에 사랑채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아내의 살림집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이제야 끝을 본 것이다. 거의 10개월이 걸렸다.

은퇴를 하고나니 일을 쉽게 벌일 수가 없다. 수입이 작아 돈을 모아가면서 하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제 안채를 필암문화원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5년에 걸쳐서 진행할 예정이다.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는 역시 돈 때문이다.

안채에는 크게 세 가지 공사, 주방 리모델링, 바닥과 벽 마감 보수, 썬룸 설치가 필요하다. 그 공사가 다 끝나고 나면 필암문화원은 정말로 멋진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간단한 음악 공연, 미술 전시, 강연 등과 같은 프로그램도 운영할 수 있고, 멀리서 오는 방문자들을 위해 숙박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내가 사랑채를 너무너무 좋아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구석구석 빠짐없이 편안함을 구현하려고 노력한 덕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일생 처음으로 남편에게서 독립적인 공간을 갖게된 기쁨도 있을 것이다. 부부 사이에도 독립적인 영역이 필요하다. 늙어가니 더욱 그렇다.

인간사는 새옹지마(馬)이다. 펜데믹 때문에 은퇴 여행을 가지는 못했지만 그 덕분에 집을 수리할 재정적 여유가 생겼고, 아내가 암수술을 받아 몇 달 힘들었지만 덕분에 사랑채를 아내의 공간으로 만드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은퇴했다고 삶이 끝난 것이 아니다. 은퇴를 하고나니, 비록 여러가지 제약이 많기는 하지만 소소한 즐거움을 만들어 가는 재미가 있다. (202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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