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위하는 노인은 없다

세상 기준으로 조금이라도 성공한 듯 보이는 사람들이 노년에 보이는 공통된 행태 중 하나는 과도한 자기 확신과  고집이다. 자신의 주장이 옳고, 자신의 판단이 틀림없으며, 자신이 가장 현명하다고 믿으며 남의 말에 귀를 닫아버리는 행태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년의 아집은 개인적 현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문제이다. 소수의 노인들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수많은 노인들에게서 보이는 문제라는 말이다.

우리를 가족이나 이웃과 공존할 수 있게 해주는 근본적인 조건은 자신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인식타인에 대한 신뢰이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인식, 다른 사람도 본인 이상으로 세상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잘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가족은 물론이고 이웃과의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노인들이 변했다. 우리 사회에 관대하고 자애로운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라지고 고집불통의 노인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것이 노인들의 손에 스마트폰이 주어지고 인터넷과 유튜브를 즐겨 쓰면서 부터가 아닌가 싶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노인들에게 보다 넓은 세계, 보다 다양한 관점, 보다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 창구가 아니라 자신들만의 세계, 자신들만의 관점, 자신들 끼리의 소통만 일어나게 만드는 폐쇄 회로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초래한 가장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 중의 하나가 바로 노년의 폐쇄 회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것은 가정 내 소통의 단절, 나아가 가정의 평화마저 위협하고, 무덤에서 나온 ‘좀비’들이 젊은이들을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사회적 관대함과 포용의 상징이 되어야 할 노인들이 배타적 태도와 불통의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과 편향동화(biased assimilation)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남북의 이념 대립과  분단, 비극적인 한국전쟁, 그리고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경험한 노인 세대에서 그러한 사회 심리 현상이 두드러 진다. 자신들이 품어왔던 시대정신이 퇴조하고 자신들의 공헌과 존재가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노인들이 시대착오적 이념 대립을 부추기는 세력들의 주장에 쏠리면서 자신들의 믿음에 맞는 증거와 주장만 찾고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주장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덕분에 노인 세대가 퇴장하면서 안고 갔어야 할 낡은 이념과 사상이 오히려 부활하고 생각의 세대 교체, 정치와 사회 권력의 세대 교체가 지연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좀비 현상이라고 본다. 생명 없는 자들이 마치 생명 있는 존재인 것처럼 나돌아 다니며 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디지털 시대에 노인들이 세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사회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관용의 모범을 보이고 후 세대를 믿어주는 일이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노인은 좀비가 된다. 세상에 튀어나온 노인 치고 세상을 참으로 위하는 사람은 없다. “노인을 위한 세상이 없는” 것 이상으로 세상을 위한 노인은 없다. 노인의 애국적 행동은 시대착오적이고 반사회적인 집착일 뿐이다.

노인의 목소리가 큰 가정에 평화는 없다. 노인들의 목소리가 큰 사회에도 평화는 없다. 어찌해야 좋을까. 나도 노인이니 그냥 안타까워 할 수밖에….(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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