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찾아오는 작별의 순간

늙어지면 무엇보다 헤어짐과 익숙해진다. 살다가 헤어져야 할 상대가 참으로 많다. 헤어짐하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떠오르겠지만, 사실 우리는 직업, 일, 조직, 물건, 삶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과 영원히 갈라서야 한다.

늙는 것은 헤어짐의 연속이다. 그리고 죽음은 지구 행성에서 인연을 맺었던 모든 것과의 종국적 이별이다. 때문에 늙는다는 것은 죽음의 연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늙음과 죽음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 바로 이별인 셈이다.

늙어서 겪게 되는 이별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다. 때로 이별은 당사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왕왕 그것은 심리적 징후를 대동하고 찾아온다. 심리적 징후란 이별을 준비하게 만드는 마음의 변화이다. 그것은 섬세한 사람이라면 결코 놓치지 않을 힌트이다.

지속적으로 상대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다가 상대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는 현상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이별의 징후이다. 그 때가 오면 과거 인연에 관계없이 상대를 과감히 털어내야 한다.

평생 공부해 온 사회학이 최근 시답잖게 느껴진다. 내겐 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관심은 남아 있지만, 사회학자들이 만들어 낸 사회학적 쟁점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사회학적 고담준론이 무의미한 탁상공론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회학과 헤어질 때가 된 것이다. 그것을 평생 공부해 왔다는 사실이 그것과의 작별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학술 논문을 쓰는 작업도 별로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마무리해야 할 논문이 여러 편 있지만 그것을 마감할 추동력이 사라져 버렸다. 논문 작성도 털어버릴 때가 된 것이다.

현실 정치에는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는다. 노인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은 정치를 후배들에게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는 것이 무엇보다 노인들의 지나친 ‘애국’  때문이다. 좌우 가릴 것이 없이 우리 사회의 노인들의 절제 없는 나라 사랑이 문제이다. 어느 시대에도 상왕의 존재는 왕의 권위를 위협하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힐 뿐이다.

늙어서의 미련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그것은 그냥 추한 혹은 기껏해야 안타까운 집착일 뿐이다. 모두 내려놓고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 가장 중요한 여겨지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남기면 된다. 그것이야말로 궁극적 이별에 대한 확실한 준비이다. 종국에는 그나마도 털어버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 행성을 떠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되리라. (202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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