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10년은 준비해야

내가 정년보다 1년반 먼저 퇴직하려고 했을 때 주위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말렸다. 교수직이 편하고 월급도 많은 데 하루라도 더 해야지 보장된 정년도 안 채우다니 말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어떤 일이든 대충 할 수 없었던 나는 60대 초반을 넘어가면서 교수직이 힘들었다. 급변하는 세상 때문에 공부는 끝없이 밀려있고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분야까지 공부를 하려니 정말 어려웠다. 컴퓨터 과학이나 데이터과학은 전공상 그려러니 하지만 신경과학, 인지과학, 생물학, 수학, 베이즈 통계 등은 60대 늙은 나이에  혼자서 새로 공부하기는 정말 힘든 일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지만 현직 때처럼의 스트레스는 없다. 오히려 어려운 공부가 즐겁기까지 하다.

그런데 나 뿐만이 아니라 아내까지 정년보다 일찍 퇴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들 공부도 다 시켰고, 살면서 이래저래 졌던 빚도 모두 갚았으며, 노후를 위한 터전과 수입원을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언제든 사표를 내도 두렵지 않은 상태였다. (딱 그저 남에게 신세 안 지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재정 수입을 의미한다. 오해 마시라.)

대도시로부터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10여년 동안 전원 생활을 하면서 노후에 대한 적응 과정을 충분히 거쳤다. 퇴직을 한다고 해도 새로운 도전이 별로 없을 것이었다. 낯선 곳으로 이사가서 새로운 이웃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에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50대 중반부터 두 곳의 농촌 마을에서 살았기 때문에  리스크가 큰 적응 과정을 모두 마친 셈이었다. 더구나 검소, 절약, 근면, 혼자 사는 법 등 은퇴 후 생활에 필수적인 생활 자세와 노하우를 그 10년 동안에 거의 다 익혔다.

다른 집들처럼 재정적으로 자식들의 뒤를 보아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부모 리스크는 없도록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늙은 부모가 자식에게 부담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만 철저히 지켜도 은퇴후 부모로서는 충분히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날에는 자녀의 삶이 불확실하기도 하고, 평균 수명이 길어져 부모와 자식이 함께 노인이 되어야 할 가능성이 높기도 하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앞가림을 스스로 해야 한다.

은퇴 후의 생활에 대해서는 10년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재정적, 사회적, 정신적, 그리고 직업적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은퇴 후에도 은퇴 전과 마찬가지로  24시간 365일의 시간이 주어진다. 무엇을 하고 살 지, 무엇을 먹고 살 지, 무엇을 위해 살 지, 어떻게 살 지, 그리고 누구와 더불어 살 지를 가급적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은퇴 준비가 늦어질수록 선택지가 좁아지고 자신의 의지와 선택이 아니라 남의 결정과 ‘운명’에 따라 살게 된다. (2020-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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