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 노동 free, 돈 걱정 free, 스트레스 free, 질병 free?

60대 중반이 되면 사람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거치게 되는 인생의 단계가 은퇴이다.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고 어떤 사람은 갑작스럽게 은퇴를 맞이하지만 누구도 은퇴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흥미있게도 은퇴자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여행을 좋아하는 누군가는 오랫동안 해외 여행을 가기도 하고(그나마 코로나 19 때문에 금년에는 그것이 옵션에서 빠졌다), 또 누군가는 부지런히 국내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휴식이 필요했던 누군가는 실컷 잠을 즐기고, 원없이 영화를 보기도 하며, 사진 촬영, 악기 연주, 그림 그리기 등 미루어 두었던 취미생활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재정적이나 건강상의 여건이 뒷받침 되는 사람들의 경우이다.

게다가 은퇴자는 누구나 많은 적응을 요구받는다. 아주 운이 좋은 소수를 제외하곤 대다수의 은퇴자들은 크게 줄어든 재정 수입이나 불안한 재정 수입에 적응해야 하고, 무력감, 소외감, 박탈감, 혹은 외로움 같은 심리적 상태에도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좀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타인에 의한 망각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또한 재정적 어려움과 심리적 위축은 육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 노화가 빨리 진행되어 신체적으로 여러 가지 징후가 나타난다. 은퇴자는 이러한 신체적 변화에도 적응해야 한다.

삶에서 생산적인 활동이 빠지면서 적지 않은 은퇴자들은 삶의 의미나 보람 혹은 사회적 위상에 위협을 느낀다. 직업적인 후퇴는 사회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무력감을 수반한다. 짐짓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예전 그대로 행동하기도 하지만 머지 않아 가족이나 이웃이 그런 행동을 받아주지 않게 된다.

그것은 정도와 진행 속도가 다르기는 하겠지만 누구나 거쳐가야 하는 적응 과정이다.  은퇴 후 그렇게 몇 달 혹은 몇 년의 적응 과정을 보내고 나면, 은퇴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매일매일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라는 과제가 안겨지고, 별다를 것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주어진다. 그리고 더욱 공평하게도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병들이 찾아온다.

은퇴 이후 안타깝게도 누구나 꿈꾸었던 평안한 노후가 결코 평안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의 종류가 늘어가고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늘어가며 자신이나 배우자가 덜컥 암 수술이라도 받게 되면, ‘평안’과 ‘안녕’을 새롭게 인식해야 하는 때가 찾아 온다.

은퇴 후의 평안은 그냥 아무일 없이 편히 쉬는 삶도 아니고, 돈 걱정이 없는 삶도 아니며, 스트레스 없는 삶도 아니고, 병이 없는 삶도 아니다. 그런 평안은 보험회사 광고에나 있을 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평안이란, 사회와 자신을 위한 얼마간의 노동, 사회 초년생의 벌이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수입, 사회와 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지병(들)이 함께 하는 일상 속에서 은퇴자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마음의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노동이야말로 은퇴 후 평안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적당한 노동은 수입 문제, 스트레스 문제, 그리고 지병까지 어느 정도 해소해 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산업 현장에서 적당한 노동의 기회를 찾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특히 도시의 은퇴자들에게 개방된 일자리는 흔치 않다. 현대와 같은 노동절약적인 사회에서는 갈수록 노인에게 돌아가는 취업 기회가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발상을 바꾸면 어디에서나 생산적인 활동을 발견할 수 있다. ‘생산’이 꼭 돈벌이일 필요는 없지 않는가.

베란다에다 꽃을 가꾸고, 옥상에 채소를 재배하는 것도 생산적인 활동이며, 집안 일을 거들고 손주를 돌보는 것도 생산적인 활동이다. 길 앞 도로를 청소하고 공공 시설에서 자원 봉사를 하는 것도 물론 생산적인 활동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생산적인 일이 천지이다. 돈을 받는 일이 드물 뿐이다.

나는 삼복 더위에 땡볕 아래에서 일주일이 멀다하고 뜰의 잔디를 깎는다.  그것을 보는 사람 열명이면 아홉이 나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땀을 비오듯이 쏟아가며 잔디깍이를 밀고 다니는 나의 모습을 안타깝게들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나는 잔디와 풀들에 감사한다. 환갑을 한참 넘긴 나를 누가 그렇게 잔인하게 부릴 수 있겠는가? 돌아서면 자라나는 잔디와 잡초 덕분에 나에게는 끝없이 일이 생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너무 힘들어지면 더욱 기계화를 하든지, 유료 인력을 써서 내 노동량을 줄일 것이다. 그러나 그 때가 올 때까지 나는 정원을 가꾸는 노동을 계속 할 것이다.

잘 가꾸어진 집과 정원을 보는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이웃이나 지나가는 행인도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그래서 잔디와 꽃나무를 가꾸는 일은 텃밭에 채소를 가꾸는 것 이상으로 생산적이다. 비록 그것으로 한 푼의 수입도 올리지 못하고 오히려 기계와 도구를 사는데 지출이 들어가지만 가드닝은 매우 생산적인 활동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제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편안히 쉬세요!”라고 노인에게 말하는 것은 축복의 인사가 아니다. “너무 과하게 일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모를까. (20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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