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회학자의 죽음

새벽에 눈을 뜨고 갑자기 한신갑의 근황이 궁금했다. 정말 뜬금없는 일이었다. 안지는 오래되었지만 단 한번도 친근한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마지막 본 것은 몇년 전 공항 대합실에서 둘째의 귀국을 기다릴 때였다. 그는  악수조차 건네지 않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우리는 그 정도로 대면대면한 사이였다. 그런데 꼭두 새벽에 그의 안부가 궁금해 진 것이다.

네이버에서 검색하니 “2019년 9월 12일자로 한신갑(서울대교수)씨 별세”라는 부고 기사가 떴다. 그 부고를 믿을 수 없어 구글에서도 검색을 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홈페이지에 “고 한신갑 교수”라고 뜨는 걸 보니 그가 세상을 떠난 게 분명했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아래인데….그의 사인이 궁금했지만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1986년 미국 South Carolina 주 Columbia에 있는 USC에 유학을 가니 사회학과에 나보다 1년 먼저 유학을 와 있었다. 그와 나는 그곳의 석사과정에 1년을 함께 재학했다. 함께 강의를 수강한 적은 없고 유학생들이 모여서 식사를 할 때 자리를 같이 하는 정도였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거리가 멀었다.

나중에 그가 코넬대 교수로 가 있다가 귀국해 서울대학교에 부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 언젠가 학회 세미나에서 한 번 같은 발표장에 자리한 적이 있었지만, 악수를 하고 몇 마디 인삿말을 주고받은 다음 바로 헤어졌다.

그런데 몇 년 전 그에 관한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학원생 성희롱, 갑질, 연구비 횡령에 관한 기사였다.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생들이 단체로 들고 일어나서 그의 해임을 촉구한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대학원생들이 그의 잘못에 대해 상세하게 적은 글을 읽었다.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스무 가지가 넘는 죄상이 깨알 같이 적혀 있었다. 그가 학생들에게 정말 못되게 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함께 대학원에 다닐 때를 떠올려 보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20여 년의 세월이 못된 성질을 바꿀 수도 있었을텐데하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대자보에 학생들이 써서 올린 그의 죄상에 대해 절반은 공감할 수 없었다. 학생들의 비난이 많이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성격이 좀 못되기는 하지만 그가 그 정도로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으로부터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그가 복직하려고 할 때 학생들은 물론이고 동료 교수들마저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 나는 나 같으면 그냥 학교를 그만 둘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때늦게 그의 부고 기사를 본 것이었다. 사망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자살이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돌연사가 아닐까 추측된다. 그 정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면 나 같아도 죽었을 것이다.

그는 대학원에서 수리사회학을 공부하고 사회연결망분석의 전문가가 되었다. 사회연결망분석은 당시 똘똘한 미국 사회학 대학원생들에게 인기 있는 분야였다. (나도 잠시 그 분야를 탐색하다가 지나치게 비이론적이고 데이터 의존적이라서 손을 뗐다. 전혀 흥미가 나지 않았다.) 지난 10여 년 사이 빅데이터 시대가 되고나고 그 분야는 온갖 학문 전공에서 크게 부상하였다. 그는 자신의 시대가 왔다고 도래했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이룰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그가 다소 요란스럽게 보낸 학자로서의 일생 동안 성취한 것이 무엇인가. 긴 인류 역사에서 한 톨의 모래만큼이나 될까. 기껏해야 한번의 파도만으로도 흔적 없이 쓸려가버리는 모래성에 불과할 것이다.

나라고 다를까? 누구라고 다를까? 어쩌면 인간의 삶이 본질적으로 그토록 허무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이가 가깝지는 않았지만 늦게나마 그의 명복을 빈다.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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