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2) 대학에서의 수업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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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눈을 떴다. 마지막 수업을 하는 날. 가르치고 싶은 게 좀 많이 남아서 정교하게 수업 시나리오를 짰다. 1분도 허비할 수가 없다. 마지막 공연이다!

이 공연이 끝나면 나는 영원히 해방될 것이다. 지구 여행에서 피할 수 없는 ‘직업’과 ‘노동’이라는 무게로부터 말이다.

남보다 1년 빠른 7살에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대학도 남보다 1년 빠른 19살에 입학하였으나 고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남보다 한참 늦은 29살에야 대학을 졸업했다. 그 후 직장 생활 2년 6개월 하고 남보다 한참 늦은 32살에 유학을 가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고, 남보다 한참 늦은 39살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오래하게 되었지만, 사회학 분야의 세계 최고 대학원에서 걸출한 학자들로부터 직접 학문과 삶을 배우는 행운을 안았다.

그 후 예상치 않게 3년 동안이나 시간 강사와 임시직 연구원을 전전하는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남보다 한참 늦은 42살에야 겨우 대학 정규직 교원이 되었다. 나를 더욱 강하고 겸손하게 만들고자 하는 신의 배려였던가. 그렇게 어렵사리 들어간 대학교수직을 지병으로 인해 몇 차례 위기를 겪고 이제 남보다 1년 반 빠르게 물러난다.

교수가 된 후 6개월만에 학과장이 되었고, 2년반만에 부처장이 되었으며, 3년반만에 차관급 대통령 자문위원이 되었다. 남들은 대학 재직 30년이 넘어야 받는 홍조근정훈장을 대학 재직 5년만에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수여받았다. 교수가 된 이후에는 모든 것이 초고속이었던 셈이다.

사단법인 한국정보사회학회를 창립했고, 재단법인 아시아미래재단을 만들었으며, 사단법인 한국데이터사이언스학회를 설립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위원으로 5년 이상 봉사했고, 크리스찬 아카데미 등 시민단체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저술에 있어서는 2편의 저서가 문화관광부와 대한민국 학술원에 의해 우수도서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고, 10여 편의 저서와 20여 편 이상의 논문, 그리고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연구보고서를 썼다.

신문 컬럼도 많이 썼다. 어느 중앙 일간지에는 내 이름의 기명 컬럼을 20회 연재했고, 명사컬럼 필진으로도 참여했다, 많을 때는 한 해 50개 이상의 신문 컬럼을 기고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위해 TV 좌담, 라디오 프로그램의 신념 대담 등 방송에도 가끔 출연했다.

정권 후반 자식들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DJ가 안타까워 정부 일에 끌려들어갔다. DJ는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매료된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사회학자가 전자정부 전문가가 되었다. 전자정부는 대통령으로서 DJ가 추진한 마지막 사업이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전자정부 일을 하는 동안 20개 이상의 정보 시스템 구축을 도왔다. 공인인증서 보급 및 국가 암호기반 구축, G4C(민원 24), 국민신문고, 나이스 등에 깊이 관여했다. 특히 많은 세금을 들여서 구축한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를 오픈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정부의 요청을 받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덕분에 2018년에는 전자정부 50년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위해 꽤나 많은 공을 들였다. 그러나 정치가와 행정직이 자유로운 내 영혼에 어울리지 않음을 깨닫고 일찍 손을 털었다.

크게 화려할 것은 없었지만 짧은 지구여행 동안 하느님이 내게 주신 능력과 기회를 최대한 살려서 원없이 달렸고 많은 행운을 누렸다. 이 여정을 허락해준 하느님과 부모님, 날 버리지 않고 38년 동안 고락을 함께 해준 아내, 결함 투성이의 아빠를 잘 참아준 세 아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그 모든 추억과 부담을 뒤로 하고 은퇴자의 삶을 시작한다.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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