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1)

대학을 떠난다는 사실이 드디어 실감나기 시작했다.

몇 주에 걸쳐서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 7~8명과 돌아가면서 점심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수십명이 한꺼번에 모여 퇴임식을 갖기보다 그렇게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지난 화요일(2019-12-03)에는 수업에서 만나지 못하는 학생들과 송별회를 가졌다. 주로 3~4학년 학생들이 참석했다.

학교 앞 미스터피자에서 작별모임을 끝내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함께 피자를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신입생 O.T.에서 나를 처음 만났던 자리를 기억하는 학생들, 연구실에서의 개인 면담을 기억하는 학생들, 특정 과목의 수업 때문에 나를 기억하는 학생들, 2015년 필암 집 방문을 기억하는 학생들….학생들이 나와 얽힌 다양한 모습을 회상해 주었다. 이보다 고마운 일이 어디 있으랴.

그 송별연에서의 대화와 소그룹의 학생들과 나누었던 대화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 몇 가지만 기록해 두어야겠다. 그것은 교수가 자신의 수업을 얼마나 정성들여 진행해야 하는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여러 학생들이 고등학생 때 ‘수포자’였다가 내가 가르치는 통계 수업을 듣고 통계에 자신이 생겼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들은 사회조사분석사 시험을 치겠다거나 심지어 데이터 분석 분야로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며 희망 가득한 눈을 반짝였다. 그들은 내게 가르치는 일에 대해 커다란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런 학생들이 한두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사실 몇 년 전 사회통계 수업을 맡게 되면서 나는 하나의 결심을 했다. 학생들에게 통계는 물론이고 그에 관련된 수학을 배우는 ‘마지막’ 기회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사회과학 전공을 택한 적지 않은 학생들이 소위 수포자인데, 그들이 즐겁게 통계를 배우게 하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했다.

아마도 그 학생들은 중고등학교에서 이런 경험을 했을 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 선생님은 “이것은 여러분이 초등학교에서 다 배웠지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이것은 여러분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다 배운 내용이지요?” 혹은 최악의 경우에는 “여러분 이것 다 학원에서 배웠지요?” 하면서 수업을 따라가는 데 필요한 기초 지식을 다져주지 않은 채 진도를 나가는 경험 말이다. 대학에서마저 그렇게 한다면 어쩌면 그들은 새로운 수학 지식을 획득할 기회를 영원히 놓쳐버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적어도 70~80%의 학생들이 수업을 잘 따라오지 않는 한 학생들이 강의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무엇이든 추가해 가르치기로 했다. 그것이 엑셀 사용법이든 아니면 수학이든. 진도를 나가는 게 무슨 소용인가? 학생들이 강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떤 학생은 이 얘기를 내게 꼭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왔다면서 학기 중간 강의 평가에 대한 경험을 얘기했다. 원래 강의평가는 익명이다. 그런데 그 학생은 자신이 쓴 강의 평가 내용을 밝혔다. 30여 년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강의평가에 자신은 엑셀을 처음 배워서 잘 따라가지 못하니 강의를 천천히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썼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간시험 기간 후 내가 수업에서 엑셀로 문제를 푸는 과정을 눈에 띄게 천천히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직 이런 교수님도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학생들의 강의 평가를 그다지 성실하게 읽지 않은 교수이다. 특히 최근에 도입된 학기 중간 강의 평가를 나는 통상 읽지 않는다. 수업으로부터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기 싫어서이다. 그런데 이번 학기는 예외적으로 그것을 읽었다. 그리고 그 학생이 쓴 강의 평가를 보고 내가 학생들을 제대로 배려하지 못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간시험 기간 후 최대한 천천히 또박또박 강의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수업에서 그 변화를 느낀 것이었다.

그 학생이 고맙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수업 중 교수의 그 작은 변화를 그렇게 크게 느끼다니….

한 학생은 깨알 같은 글씨로 쓴 긴 내용의 편지를 주었다. 아마도 지난 10여년 동안 내가 받아본 가장 정성스러운 손편지가 아닌가 싶다. 편지는 내 수업들이 자신의 생각을 넓히고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 학생은 공부를 아주 잘 한다. 내 생각에 그는 학자적 자질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중간에 좌절하지 말고 꾿꾿하게 학문의 길을 간다면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박사를 받고 훌륭한 학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학생의 편지를 오래 오래 간직해야겠다.

그 학생은 평소 조용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 그렇게 깊은 생각이 숨어있을 줄이야. 섬뜩하다! 내가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 않고 임했던 수업들도 많았는데….학생들을 대할 때는 어느 순간에도 정성을 다해야 하거늘.

1백 여년 전 외증조부님은 당신이 가르치던 기숙 서당에서 한밤 중에 불이 났는데 학생들을 구하다 당신 생명을 잃었다. 그 정도의 정성으로 학생들을 대해야 하는 건데 나는 그보다 한없이 부족했다. 부끄럽다. 내 후손 중 혹시 다시 선생이 나온다면 외증조부님만큼 지극 정성으로 학생을 사랑하길 바란다.

재직하는 동안 내가 학생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학생들이 쏟아놓은 기억의 토막들은 내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교수가 나름 가치와 보람이 있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줄 알았으면 더욱 열심히 지도하는 건 데….후회 막급이다. 그런데 이제 돌이킬 수 없다.

학생들이 선물해 준 꽃다발은 내가 일생 받아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웠다. 화병에 꽃을 옮겨 놓던 아내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마도 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서 더욱 그러했으리라.

아내가 학생들이 선물해준 꽃다발을 화병에 옮겨 거실 탁자에 올려놓았다.

다음 주가 마지막이다. 어떻게 끝내면 좋을까? 힘이 들어서 이번 주로 수업을 마치고 싶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배우겠다는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에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떻게든 학생들이 하나라도 더 배우게 해줘야겠다. (2019-12-05)

“떠남….(1)”에 대한 2개의 댓글

    1. 난 아직 학교를 떠났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구나, 예림아.^^ 꼭 큰 병원에 가서 진찰받고 건강해지길 바란다.

Emily에게 댓글 남기기 댓글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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