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퇴직을 신청하다

지난 10월 28일 학교 당국에 명예퇴직서를 제출했다. 며칠 동안 고민을 한 끝에 그렇게 하는 것이 현재 나로서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양대에 마흔둘에 입사해 육십다섯에 퇴직하니 남들보다 한참 늦게 들어가서 남들보다 조금 일찍 나오는 셈이다. 정보사회학과 학생들이 모두 졸업할 때까지 남아주지 못해 학생들에게 미안할 뿐 그 외에는 전혀 아쉬움이 없다. 내가 학과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정보사회학과 생기면서 한양에 부임했고, 내가 학과를 없애지 않았지만 정보사회학과 없어지면서 한양을 떠난다.

한양에 들어가면서, 길어야 25년이 되지 않을 교수생활이니 좌고우면하지 말고 이곳에서 커리어의 승부를 내자는 내 결심이 별로 잘못되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학당국은 내게 충분한, 아니 분에 넘치는 자유와 존중을 주었고 학생들은 내 열정에 잘 호응해 주었다. 남부럽지 않은 호사였다. 대학원이 약한 점은 아쉬웠지만 어느 직장에 간들 그 정도의 아쉬움이 없겠는가.

지난 해 11월 21일 여기에 공적 생활을 마감한다는 글을 올리고(공적 생활을 마감하며….) 직업 이외의 공적 활동을 끝냈으니, 1년만에 직장 생활을 마감하는 글을 올리게 되었다. 내년 3월부터는 거의 사적인 생활만 남는다.

아마도 내게는 은퇴의 충격이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이미 8년 전부터 은퇴 후의 삶을 기획하고 추진해 왔으니,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나름 단단히 준비했다는 생각이다. 아름다우면서도 그닥 불편하지 않은 곳에 새로운 터전을 잡았고, 시골생활에 대한 적응을 충분히 했다. 넉넉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자식들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의 재정도 확보했다. 시골에서는 대도시에 비해 생활비가 훨씬 적게 든다는 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은퇴 후에는 수입을 늘리려고 애쓰기 보다는 수입에 맞춰 사는 게 현명할 것인데 시골생활은 그점에서 크게 이롭다.

멀리 떨어진 직장에 다니면서 전원생활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지만 12년을 그렇게 살았다. 국내 최고 명의라는 의사가 회복불능이며 머지않아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라는 진단을 내린 지 13년이 되었지만 나는 앞을 잘 보고 있다. 내 눈을 7~8년 동안 보살펴 준 지금의 주치의는 2년 전 내게 “난 당신이 녹내장이라는 사실도 의심스럽다”고 의아해 했다. 시신경이 급속히 죽어가는 현상이 멈춰 버린 것이다.

육십 전에 실명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는데 지금까지 앞을 잘 보면서 강의를 해왔고 이렇게 멀쩡히 글을 쓰고 있다. 거의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 그리고 작은 스트레스의 전원생활을 빼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한번도 녹내장 약을 쓴 적이 없고 수술을 받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이 내 눈에 해준 게 없다.

큰 질병에 관해서는 세 주체의 역할이 있다는 생각이다. 하느님이 하시는 역할, 의사가 하는 역할, 그리고 환자 자신이 하는 역할이 그것이다. 나는 환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의사는 별로 한 일이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내 눈의 건강은 하느님의 선처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건강으로 인한 몇 차례의 고비를 잘 넘기고 교수생활을 마치게 되어 정말 기쁘다. 정년을 다 채우지는 못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오래하지 않았는가.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전임 교수로서 한달 보름 정도의 강의가 남았다. 학생들에게도 내게도 즐거움이 가득한 수업이 되도록 해야겠다.  (2019-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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