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생활을 마감하며…

time to retire public engagemen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나는 인간의 삶에는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 행성에서의 여정은 길지 않다. 기껏해야 1백년 미만이다. 그나마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보내는 활동적인 기간만 계산한다면 길어야 50년을 넘지 않는다. 정말 눈 깜박할 사이이다.

지구에는 오기도 어렵고 떠나기도 쉽지 않다. 이 행성에 오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자궁(혹은 그와 유사한 인공환경)에서 아이로 태어나야 하고 적어도 20년은 부모의 품에서 자란다. 떠날 때도 훌쩍 가는 경우는 드물고 대체로 늙고 병들어서 외롭고 힘든 세월을 보낸 후에야 다른 별로 갈 수 있다. 당연히 나도 그렇다.

내게는 이제 늙고 병든 때가 왔다. 활동적인 시기에 하던 여러 가지 일들을 남은 생에서도 계속 해야 하는가에 대해 냉정히 새겨보아야 한다.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생에서는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가면 지구 여행이 잘 마무리 될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내려 놓는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과 혼란 속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가난과 혼란을 벗어나는 과제의 일부를 떠맡아야 했다. 사회적으로나 가정적, 혹은 개인적으로 그러했다.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나야 했고, 보다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했다.

우리 사회의 가난과 혼란을 극복하는 데 있어 나는 결코 남보다 더 기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신 독재에 저항하다 어려운 대학 시절을 보냈고, 대학 교수가 된 이후에도 내 시간과 능력의 3분의 1을, 돈을 버는 목적이 아닌,  순수하게 사회적으로 가난과 혼란을 극복하는 데 사용하겠다는 원칙을 지키며 20여년을 보냈다.

최근에 건강 상태가 내게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낸다. 이제 그러한 공적, 정치적 삶을 마무리하고 여생을 온전히 나와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웃을 위해 보내라는 신호로 해석된다. 진정한 의미의 은퇴를 의미하는 그 시그날을 나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상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각 세대에게는 그 세대가 짊어져야할 짐(과제)이 주어진다. 한 세대가 모든 문제를 다 풀겠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다음 세대가 져야할 짐은 과감하게 다음 세대에게 넘겨야 한다. 아쉬움은 많지만 아쉬움에 붙들리면 미련이 되고 집착이 된다.

“여보, 당신 요즘 산책하면서 정치 얘기를 통 하지 않네요.” 며칠 전 아내가 궁금한 표정으로 내게 운을 건넸다. 산책 중 수학 얘기를 계속하다 아내에게서 심한 나무람을 들은 후였다.

이상이 아내의 의문에 대한 간략한 답변이다. 은둔자의 삶이 시작된다.  그 삶이 낯설기는 하지만 지구에서 보내는 여정의, 또 하나의 소중한, 그리고 마지막 부분이 될 것이다. (윤영민,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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