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shall McLuhan과의 가상적 대화(4)

만리거사: 이제 선생님과의 대화가 종착역에 가까워졌습니다. 선생님과 저와의 대화에서 다른 분들은 무엇을 느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선생님과 제가 공감한 점은 새로운 시대가 대화의 시대, 참여의 시대라는 인식입니다. 선생님을 그것을 쿨미디어의 시대라고 규정하셨고, 저는 인간메시지의 시대라고 규정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선생님은 참여를 강조하였고, 저는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참여와 의미의 공통점이 바로 인간이라는 점에서 선생님과 제가 도달한 지점이 같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은 social media의 네트워크성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SNS라는 용어가 뜨고, 인맥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트워크는 손가락일 뿐입니다. 정작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인간과 의미입니다. 네트워크를 쫓는 것은 잘해야 꽁무니를 쫓는 일이고 대개는 헛다리를 짚는 일입니다. 네트워킹은 수단일 뿐이지요.

아무튼 이 점이 이번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제가 얻은 가장 큰 성과입니다. 이번 대화 덕분에 최근 Mark Zuckerberg의 행보에서 network에서 meaning으로의 이동이라는 변화를 읽어냈습니다. 지적 돌파구를 열 때는 항상 선생님 같은 대가와 붙는 것이 최곱니다. 바로 아이디어를 얻든 지, 아니면 비판 속에서 아이디어가 파생적으로 얻어질 수도 있거든요. 죄송합니다. 선생님의 지적 세계를 너무 거칠게 다루어서요. 이해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제가 워낙 훈고학을 싫어해서요.

끝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나누지요. 문화적 갈등에 관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문화적 갈등을 어떤 뜻으로 사용하셨나요?

McLuhan: 세상의 변화는 그냥 오지 않습니다. 항상 치열한 갈등을 수반하지요. 문화적 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각 문화(visual culture)에서 구두 문화(oral culture)로의 변화도 그렇습니다. 예컨대 학교는 죽어가는 인쇄문화인 선형적 사고와 시각적 가치에 포박되어 새로운 사고방식과 가치를 핍박하고, 새로운 세대들에게 “담벼락 없는 감옥”이 됩니다. 탈중앙화, 분산화 경향은 기존의 관료제도와 충돌합니다. 1960~70년대 저항문화와 지배문화의 충돌은 바로 그러한 문화적 갈등의 표출이지요.

만리거사: 좋은 말씀이십니다. 요즈음 저는 우리 사회에서 비슷한 문화적 갈등을 많이 봅니다. 참여적, 수평적 대화가 핵심인 새로운 문화와, 일방적, 수직적 커뮤니케이션이 근간이 된 기존 문화 사이에 치열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일방적, 수직적 커뮤니케이션이 지배적입니다. 참여적, 수평적 대화가 차츰 확산되고는 있지만 아직 걸음마에 불과합니다. 지난 몇 년간 과거의 권위주의 문화가 다시 회귀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과거 문화의 복수”일 수도 있지요.
제가 마지막에 문화적 갈등을 들고나온 이유는, 기업이나 기관 조직 내부에서도 그렇고, 사회 전체적으로 보아도 문화적 전환이 심각한 갈등을 수반하지 않고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선생님과의 대화를 마치려고 합니다. 선생님께 충분한 발언 기회를 드리지 않고 거의 일방적으로 공격만 한 점, 진심으로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제 능력이 거기까지입니다. 선생님이 저의 무례를 기꺼이 용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내 책들은 발견의 완성된 산물이 아니라 발견의 과정을 구성한다”. 언제든 까 부셔도 좋다고요.

다시 영면하시길 빌면서 이만 줄입니다. <끝> (윤영민,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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