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shall McLuhan과의 가상적 대화(3)

Tetrad
Tetrad

만리거사: 선생님, 아마도 지구촌(global village)과 재부족화(retribalization)는 선생님께서 고안하신 개념들 중 가장 널리 애용되고 있을 겁니다. ‘지구촌’은 선생님 생전 때부터 현재까지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재부족화’는 지난 10여 년 사이에 학문적으로 부활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특히 노마디즘(nomadism), 부족주의(tribalism)에 관심을 가진 프랑스 학자들이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그런데 애초에 그 개념들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였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 개념들이 원래의 의미를 많이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McLuhan: 한 명의 학자로서 사후에도 자신의 학문적 성과가 널리 애용되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고 영광이지요. 그런 점에서 나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개념들이 대중화되면서 제 원래 의도가 다소 왜곡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이미 그 개념들이 제 손을 떠나 사회적 자산이 되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 사용되든 사실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닙니다만 원 뜻이 존중된다면 저로서는 더욱 만족스럽겠지요.

제가 하늘에서 내려다 보니까, ‘지구촌’에 대한 가장 심각한 오해는 그것을 사랑과 조화가 충만 된 곳으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그런 의미로 사용한 적이 없는데. Playboy지 인터뷰에서도 분명히 밝혔듯이 “일치(uniformity)와 평온(tranquility)이 지구촌의 특징은 아닙니다.” 부족화되면 사랑과 조화만큼 갈등과 불일치도 잦아집니다. 부족이란 게 원래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기도 하지만 헤게모니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기도 하고 뭐 그런 것 아닌가요?

사려 깊은 독자라면 “지구촌”과 “미국의 발칸화”라는 두 현상이 서로 별개이거나 상충되는 경향이 아니라는 내 입장을 정확히 파악했을 텐데, “미국의 발칸화”는 무시하고 “지구촌”만 살려 놓는 탓에 그런 오해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만리거사: 선생님이 글을 너무 재미 없게 써서 독자들이 선생님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때문도 있겠지요. 그건 선생님 자신의 책임이 큰 것 같네요. 그리고 미국의 발칸화로 표현한 소국(ministates)의 번성이라는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명제를 무시하거나 잊어버린 게 아닐까요? 결국 “지구촌”만 살아남은 것이지요.

McLuhan: 뭐 틀린 해석으로 보이지는 않군요. 근데 내가 서로 대비해 지적했듯이, 인쇄미디어는 사회적으로 중앙집중화(centralizing)시키고, 심리적으로는 파편화(fragmenting)시킵니다. 반면에 전자미디어는 사회적으로 탈중앙화(decentralizing)시키고, 심리적으로는 통합(integrating)시킵니다. 인쇄미디어는 개인주의를 촉진시키며, 거기에서 자유(freedom)는 기껏해야 소외되고 파편화되기 위한 권리일 뿐입니다. 반면에 전자미디어는 부족주의를 촉진시키고, 통합된 개인을 출현시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결과 수많은 소국들(ministates)이 출현하리라 예상했습니다. 나는 그런 맥락에서 미국의 발칸화(balkanization of the United States)를 예견했던 것입니다.

만리거사: 제가 보기에는 미국의 발칸화라는 예측이 맞지 않았다는 사실이 선생님의 인쇄미디어와 전자미디어의 구분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선생님은 TV를 전자미디어라는 이유로 신문과 다른 사회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단정했는데, 거기에 문제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을 공부하는 젊은 연구자들은 신문과 TV를 한 묶음으로 간주합니다. 뭐 선생님도 기억하실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좀 오래 된 연구자들도 그렇게 봅니다. 세 가지 의미에서이지요. 하나는 일방향적 매체라는 점, 둘은 중앙집중적 매체라는 점, 셋은 사회통합적 매체라는 점입니다. 신문이나 TV같은 대중매체가 일방향적이라거나 중앙집중적이라는 점은 요즘은 상식적인 얘기이고, 사회통합적 매체라는 주장은 좀 논란 중입니다.

위르겐 하버마스, 베네딕트 엔더슨(Benedict Anderson), 그리고 최근에는 카스 선스타인(Cass Sunstein) 같은 학자들이 대중매체의 사회통합적 기능에 주목합니다. 선생님과는 다르지요? 이 중 하버마스와 선스타인은 인터넷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사회를 파편화시킨다는 겁니다. 소위 반향실(eco-chamber) 효과라는 가설인데, 뭐 인터넷이 사용자들에게 고도의 정보선별(filtering)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유사한 생각, 유사한 취미, 유사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뭉치는 경향이 강화된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을 위협한다고 주장합니다. 반 앨스타인과 브린졸퍼슨(Van Alstyne and Brynjolfsson)은 그것을 사이버발칸화(cyber-balkanization)라고 불렀는데, 선스타인은 사이버발칸화를 넘어 사회 전체에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를 초래하고, 인터넷은 테리리스트나 KKK같은 극단적 집단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주장합니다.

반면에 요차이 벤클러(Yochai Benkler)나 클레이 셔키(Clay Shirky), 그리고 저도 그렇습니다만, 대중매체는 상당히 엘리트 중심적이고, 억압적인 측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대중매체는, 통합은 통합인데, 불평등한(비대칭적 정보) 계층질서 위의 통합을 촉진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통합이 아니라는 거지요.

저는 인터넷이 바로 그 지점에 도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도전을 “엘리트주의의 종말”, “지식인의 죽음”이라고 해석합니다.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지식인이 아니라, 비대칭적 지식 분배 위에 권력을 향유하는지식권력으로서의 지식인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일방향적 매체, 선생님 표현으로 하자면 hot media가 사라짐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사실 쿨미디어(cool media) 시대가 온다는 선생님의 예측은 놀랍게 들어맞았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바로 그것이고, Social media야말로 쿨미디어가 아니겠습니까? 지난번에 제가 선생님의 쿨미디어 주장을 비판한 것은 이제 모든 매체가 쿨미디어가 되었기 때문에 핫미디어니 쿨미디어니 하는 구분이 불필요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미국의 발칸화” 예측이 틀린 또 다른 이유는 선생님이 민족주의(nationalism)의 자기 재생산 능력을 과소 평가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부족을 강조하다 보면 당연히 민족주의를 가볍게 보게 되겠지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 민족주의는 죽은 개가 아닙니다. 아직도 한참 동안 민족주의는 사람들의 정체성(identity)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세계의 정치적 지형을 형성하는데 있어 거대한 힘을 행사할 것입니다. 민족, 민족주의, 민족국가와 같은 논쟁은 별도로 해야 하겠지만, 간단히 말씀 들이자면, 그것들을 기능적으로만 접근하는 학자들은 쉽게 민족국가의 종말을 얘기하지만, 근본적으로 민족이 지닌 역사적, 그리고 권력적 측면을 무시했기 때문에 나온 섣부른 결론이지요. 선생님도 그런 학자들 중 한 분이고요.

그렇다고 “부족”의 개념이 무용하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마페졸리(Michel Maffesoli)가 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집단으로서의 “부족주의”는 민족주의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족주의”와는 좀 다르지요? 마페졸리는 선생님한테 큐를 받아서 “신부족주의”를 제기했는데, 선생님만큼 그렇게 all-encompassing(모든 것을 포함하는) 컨셉을 제시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터넷상에 마페졸리적 의미의 “부족”과 “부족주의”는 넘쳐나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페이스북이 전세계 사용자 5억 명을 넘어 질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지구적 규모로 돌아가는 페이스북이 갖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혹은 문화적 함축성이 무엇일까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입니다.

일단 선생님의 시각을 원용하면, 페이스북에 등장한 실시간 지구촌에는 한편으로 “사랑(love)과 조화(harmony)”가 넘치고, 다른 한편으로 “단절(discontinuity), 다양성(diversity), 분리(division), 갈등(conflict), 불일치(discord)”가 끊임 없이 발생하리라 예상되는 군요. 뭐 크게 인상적인 예측은 아닌데요. 좀 더 구체적인 전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선생님이 주실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윤영민,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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