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정말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가

betrayal

협력에 있어 무임승차 못지 않게 자주 지적되는 문제는 배신이다. 배신은 무임승차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행위이며, 공공재의 생산뿐만이 아니라 모든 유형의 협력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친구와 동료를 배신한다, 조직을 배신한다 등등.

비협조도 넓은 의미에서 배신과 묶어서 생각할 수 있다. 비협조는 협력을 거부하는 행위이고, 배신은 기대(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가리키지만, 모든 협력에는 구성원들의 협조가 기대되기 때문에 비협조도 약한 의미에서 배신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배신이 비협조의 한 유형으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배신에 관해 가장 널리 알려진 분석모형은 죄수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이다. 이 게임의 논리는 간단하다.

함께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깡패 두 명이 잡혀서 조사를 받고 있다. 구치소에 갇힌 두 피의자는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만약 두 피의자 둘 다 범죄 사실을 자백하면 두 사람 모두 세 달씩 구치소에 살아야 한다. 반대로 두 피의자 모두 입을 다물면 한 달씩만 살고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둘 중의 한 명만 자백할 경우 자백한 피의자(배신자)는 석방되고, 입을 다문 쪽(협력자)은 일년 형을 살아야 한다. 이 경우 두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까?

게임이론에 의하면, 죄수 A는, 죄수 B의 예상되는 선택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생각한다. 만약 B가 털어놓을 것 같으면 자기도 털어놓는 것(배신)이 자신에게 유리하다. 반면에 B가 입을 다물 것 같은 경우에도 털어놓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 B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게임이론에 의하면 결국 A와 B는 모두 자백(배신)을 선택하고 세 달씩 복역하게 된다. 소위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에 도달한다.

두 죄수 모두 동료 죄수가 결코 불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자백하지 않으면(협력) 둘 다 한 달만 형을 살고 나올 수 있다. 그것이 객관적으로 두 사람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하지만 죄수들은 상대편의 의리(?)를 믿지 못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판단한 결과 세 달씩 형을 살게 되는 것이다.

prisonersdilemma

정말 우리는 대부분 죄수처럼 배신적으로 행동할까? 요차이 밴클러(<펭귄과 리바이어던>, 72)에 따르면 그 동안 많은 실험 게임들의 결과는 이론이 예측하는 것보다 피험자들이 훨씬 더 자주 협력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협력의 조건을 바꾸면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협력의 상황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도 하고, 배신으로 얻는 기대 이익이 협력으로 얻는 기대 이익과의 차이가 크지 않으면 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첫째, 많은 사람들은 ‘죄수’가 아니다. 즉, 많은 사람들은 타인을 의심하면서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사람들이 많다. 둘째, 사회적으로 정직과 신뢰의 문화를 만든다. 정직하고 희생적인 행동이 존경받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반면에 ‘배신’을 통해 얻는 사회적 기대수준을 낮게 만든다.

살다보면 누구도 배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참여자들의 헌신적인 협력을 끝어내는 데는 신뢰가 필수적이다. 길게 보면, 배신하는 몇 명 때문에 참여자 모두를 의심하기 보다는, 참여자들에 대해 깊은 신뢰를 보내고 차라리 몇 명에게 배신을 당하는 편이 궁극적으로 협력을 성공시킬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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