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이라는 이름의 게임(3): 새 패러다임

지난 20여년 사이에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은 수 억명의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아주 최근까지도 겨우 영화적 상상 속에서나 존재감을 보여주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은 단기간에 대중을 기대와 우려의 혼돈 속에 밀어넣고 있다. (집단지성보다는 집단지능이 collective intelligence의 더 적합한 역어이다.) 예컨대 아마존 닷컴, 옥션, G-마켓 등 온라인 상점에서 고객은 별점 정보와 댓글을 확인하며 판매자의 신뢰와 상품의 품질에 대해 판단하고, 거래가 끝나면 별점을 매기고 댓글을 올려서 판매자와 상품을 평가한다. 아마도 전세계적에서 매일 수천 만  혹은 수억 건의 온라인 거래가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집단지능이 일상화된 예이다. SNS의 맞춤형 친구 추천, 검색 사이트의 개인화 서비스. 인터넷 쇼핑몰이나 인터넷 서점의 맞춤형 상품 추천 , 스마트폰의 음성 어시스턴트, A.I. 스피커의 음성 제어, 자율주행 자동차, 자동화 공장, 드론 등 인공지능의 목록은 이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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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을 지능(intelligence)의 관점에서 파악하려다 보면, 우리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능에 대한 20세기적 패러다임, 즉, IQ 패러다임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그러한 현상을 지능이 아니라 다른 개념으로 표현해야 한다. 지능 개념의 현실 부적합 정도가 심각하다는 의미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능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쓸 수는 없다. 필자는 지능에 관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고 본다. 집단 지능이나 인공지능을 굳이 지능이 아닌 다른 용어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1) 그렇다면 지능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앞 글에서 지적한 IQ 패러다임의 다섯 가지 특성을 재고하면서 논의해 보자. 지능은 정신적인 능력(mental capability)인가? 지능이 추론, 문제 풀이, 추상적 사고, 이해, 학습, 기억 등을 포괄하는 정신적 능력인가? 정신적인 능력으로만 지능을 정의하면 우리는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첫째, 지능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리고 왜 출현하였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둘째, 정신(mind)이 없으면 지능이 없다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정신은 두뇌(brain)를 가진 존재만이 갖게 되는데, 두뇌가 없으면 지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예컨대 두뇌가 없는 식물이나 사물은 지능을 가질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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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에 대한 좀 포괄적인 정의를 보자. 신경과학자 이대열(2017: 26)은, 지능을 “다양한 환경에서 복잡한 의사결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환경에서 생존과 번영–그것을 이 교수는 유전자의 자기복제라고 한다–에 관련된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능력이라는 의미이다. 행동과 결과에 촛점을 맞춘 이 정의는 앞의 두 가지 문제를 피해갈 수 있게 해준다. 지능을 진화론적, 발생론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지능을 정신 혹은 두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2)  지능은 개인적인 능력인가? 만약 지능이 정신 능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문제 해결 능력이라면, 더 이상 지능은 개인적인 속성으로만 간주될 수는 없다. 환경이나 주위로부터 도전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접근해야 더 잘 대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생물학자들이 지적하듯이 개체들 사이의 경쟁이 아니라 개체들 간의 협력(collaboration)이 유전자의 자기복제, 즉, 생존과 번영에 효과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크로포트킨, 2005; 벤클러 2015;  이대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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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인터넷을 통해서 나타나는 새로운 유형의 지능 현상에 주목하는 사회과학 저술이 등장하였다. 그것은 집단지능(collective intelligence: 레비, 1994/2002; 셔키, 2008; 리드비터, 2009)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군중의 지혜(wisdom of crowds: 서로위키, 2004)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군집지능(swarm intelligence: Gloor, 2006)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모두 동일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은, 인터넷 상에서는 중앙의 조정 없이도 많은 사람들이 생존에 관련해서 높은 수준의 지능, 즉, 상황 대처 능력, 문제해결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장 최근에 등장한 블록체인(blockchain)도 집단지능의 일종이다. 그것은 P2P 기술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협력을 유도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교환(거래)에 요구되는 신뢰와 인증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Norman, 2017).

3) 지능은 선천적인 능력인가? 집단지능을 지능 혹은 지능 현상으로 인정하면, 지능이 선천적인 것이냐 양육될 수 있는 것이냐는 하는 논의는 무의미해진다.  집단 구성원의 상호작용, 특히, 협력을 통해서 창출되는 지능은 정의상 천부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직 충분히 실현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화학적, 물리적 혹은 의학적 처치로 지능을 일시적으로 강화시키거나 무생물에게마저 인위적으로  지능을 부여할 수 있는 시대가 된다면, 지능은 더 이상 자연적인라고도, 양육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하나의 기능(function)이 된다. 이미 신경 향상(neuro-enhansment) 기술의 초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모다피닐(Modafinil)은 기면증 치료제로 개발되었음에도, 대학생, 컨설턴트,  심지어 군인들이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두뇌 강화제로 사용하고 있으며(Battleday et. al., 2015), 인공지능-로봇은 안내, 문서처리, 회계 등과 같은 정부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Baart,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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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능은 IQ 테스트와 같이 동일한 척도로 측정되고 비교될 수 있을까? 알파고처럼 바둑을 두는 A.I., 전자제품을 자율적으로 제어하는 A.I., 전투를 수행하는 A.I. 로봇, 화성을 탐험하는 A.I.로봇, 자율주행차, 산업스파이용 A.I. 드론, IBM Watson 같은 암진단 전용 A.I.,  그리고 가사용 A.I. 로봇처럼 특정한 분야에서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A.I.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그러한 A.I.들의 지능 수준이 어떻게 측정되고 상호 비교될 것인가. 또 서로 다른 분야,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A.I.의 지능이 설령 비교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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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구상에서 인간이 가장 높은 지능을 지니고 있을까?  인간은 생물 중 가장 복잡한 문제들에 관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대열 교수(2017)는, A.I.가 스스로 자신을 복제하고, 그 복제를 위해 두뇌를 사용할 수 없는 한 A.I.의 지능이 높은 수준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먼훗날 A.I.가 그렇게까지 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리고 아무리 바둑을 잘 두고 암 진단을 잘 한다고 할 지라도 자율성이 없는 A.I.는 결코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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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에서도 지적했지만, 누가 누구보다 더 지능이 높다는 판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구상에서 인간이 가장 복잡하고 발전된 문명을 이룩했지만, 만약 바로 그 문명 때문에 핵전쟁이 일어나고 지구가 죽음의 행성으로 변해버린다면 과연 인간은 아메바나 식물보다 더 지능이 높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인간은 유전자의 자기 복제에 완전히 실패한 것이 될텐데.

이제 지능이라는 개념을 20세기적 IQ 패러다임에서 풀어주자. 그럴 때가 되었다. (윤영민, 2017-02-05).

참고문헌

레비, 피에르(권수경 역). 1994/2002. <집단지성: 사이버공간의 인류학을 위하여>. 문학과지성사.

리드비터, 찰스(이순희 역). 2009.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21세기북스.

벤클러, 요차이(이현주 역). 2013. <펭귄과 리바이어던>. 반비 출판.

서로위키, 제임스(홍대운/이창근 역). 2004. <대중의 지혜: 시장과 사회를 움직이는 힘>. 랜덤하우스.

서키, 클레이(송연석 역). 2008. <끌리고쏠리고들끓다>. 갤리온.

이대열. 2017. <지능의 탄생>. 바다출판사.

크로포트킨, P. A.(김영범 역). <만물은 서로 돕는다>. 르네상스.

Baart, Ruben. 2016/09/07. “Robots Taking Government Jobs”. NNN. 

Gloor, Peter. 2006. Swarm Creativity. Oxford University Press.

Norman, Alan T. 2017. Block Chain Explained. Alan T. Norman. Kindl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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