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의 함정

gartner

유행은 하나의 사회구조이다. 그것은 새로운 시장 수요를 창출하는 기제이다. 자연스런 유행이란 없다. 그것은 철저히 의도되고 기획된 결과이다.

오늘날 음악, 문학, 헤어스타일, 음식, 옷, 신발, 가방 따위의 가벼운 것부터 TV, 냉장고, 에어컨, 자동차, 집과 같이 좀 무거운 것까지 유행의 프레임을 벗어난 사물이나 사회현상을 찾기 어렵다.

대체로 유행은 별 문제가 아니다. 그것에 자원 낭비와 같은 부정적 측면이 있지만 사회를 리프레쉬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단히 심각한 사회적 결과를 초래하는 유행이 있다. 바로 지식의 유행, 테크놀로지의 유행이다. 전문가들은 그것을 ‘트렌드’라고 점잖게 표현하지만 그것은 완곡어법일 뿐 본질은 ‘유행’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식-테크놀로지 유행은 대체로 그 패턴이 구조화되어 있다. [세계굴지 (미국) 컨설팅 기업의 트렌드 예측 –> 정부의 정책화 –> 학계와 업계의 백업과 추종 –> 새로운 유행의 대두 혹은 새 정부의 출범과 기존 유행의 극적 퇴출]이 반복된다.

예컨대 정보화, 전자정부, 그룹웨어, ERP, 유비쿼터스, Web 2.0/3.0, 빅데이터, 데이터사이언스, IoT(사물인터넷), IoE, 스마트 정부, 스마트 시티, 인공지능….길면 5년(정권과 수명이 같다), 짧으면 심지어 1~2년만에 ‘트렌드’가 지나간다.

‘트렌드’에 준비가 되어있을 리 만무한 정부는 해외 업체들의 벤더가 그려주는 그림에 의존해서 정책을 입안하고 아우라를 제공할 ‘전문가’를 허겁지겁 수배한다. 우연히 그 분야를 전공했거나 재빨리 ‘트렌드’를 공부한 학자와 전문가들이 그 수용에 대응하며 소위 ‘뜨게’ 된다. 권력에 신속하게 반응하는 기관들은 정책 연구는 물론이고 학술 연구까지 그 ‘트렌드’에 맞추어 배분한다. 지나간 ‘트렌드’에 집착하면 정부 연구비를 포기해야 한다. ‘철 지난’ 주제에 배분될 연구비는 없다.

지난 20여년 동안 행정기관이나 정부투자기관의 단위 조직, 대학의 단과대학, 학과, 연구실의 명칭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일별해 보면 이 현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라도 대학 연구실의 이름만 봐가지고는 그곳이 무엇을 연구하는 공간인지를 짐작하기 어렵다.

한 국가의 지식생산체계가 유행에 휘둘리는 모습은 희극이며 동시에 비극이다. 우리 사회가 지적 사대성과 천박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일부 사람의 잘못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조선 시대까지도 거술러 올라갈 수 있는 역사를 갖고 있다. 내재적 요구와 성찰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오는 요구와 자극에 반응하며 살아온 지배계층의 문화가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책적 의사결정의 기준점이, 청국이 어떻게 하는가였다가 일본이 어떻게 하는가로 바뀌고, ‘해방’ 이후에는 미국이 어떻게 하는가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지적 유행의 최대 희생자는 학문, 자생 벤처, 그리고 대학원생들이다. 그들이 새로운 ‘트렌드’에 적응할 때 쯤이면 해당 ‘트렌드’가 종료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트렌드’가 뿌리를 내리기 전에 다른 ‘트렌드’를 쫓아가야 하는 비극적 상황에 학문에서 ‘기초’는 사라지고 ‘응용’만 남는다. 그나마 ‘응용’도 단기 승부에서 끝나버리지만 말이다.

언제쯤이나 이렇게 한심한 지적 식민지성을 벗어날 수 있을런 지….하기야 나도 한 때 그 ‘유행’의 수혜자였으니 동업자들을 위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윤영민, 2016/08/27 Facebook  전제)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