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연주의론 메모(1): 특이점 그리고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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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2007.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뛰어날 뿐 아니라 담대하다. 그는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천문, 심리, 의학, 전산학 등의 첨단 연구를 종횡무진 인용할 뿐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주저없이 명쾌하게 제시한다. 사실 보수적이고 분절적인 학계에서는 그 두 가지 모두 위험천만한 행동인데 말이다.

2005년 출간 이래 <특이점이 온다>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10여년 동안에 출판된 책 중 가장 심대한 사회적 영향을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많은 찬사와 비판이 쏟아졌으며, 그 책으로 인해 Singularity University라는 초유의 기관이 설립되고 첨단기업들의 AI 연구가 크게 활성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글판이 10년 동안 9쇄나 인쇄되었으니 그 영향이 작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내용이 쉽지 않은데다 840쪽이나 되는 책을 독자들이 얼마나 충실히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열흘 전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특이점(singularity)을 언급하면서 내년으로 예정된 은퇴를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10년 정도 특이점의 도래에 대비한 사업을 주도하고 물러나겠다는 것이었다.

책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가득하다.  하지만 저자의 분석 모형은 몇 가지 요소로 요약된다:

1) 인간 중심: 인간은 우주 진화의 정점. 인간은 21세기 중엽까지는 첨단 과학기술로 진화의 새로운 단계를 열 것이고, 궁극적으로 우주 전체를 지능적 존재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2) 지능 제일: 우주를 지배하는 최고의 힘은 지능(intelligence). 기억, 분석, 추론, 상상, 사랑, 공감 등은 모두 지능의 측면들이다. 진화는 보다 강력한 지능을 추구하는 단일한 경쟁이다. 지능은 인류와 지구가 직면한 문제, 나아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에 해답을 줄 것이다.

3) 기술 진화: 지능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집약되며, 과학기술의 발전은 가속적이다. 21세기는 GNR(Genetics, Nano technology, Robotics) 혁명의 무대. 2020년~2030년 정도이면 유전학은 질병과 노화를 대부분 해결하며 발전의 정점에 도달할 것이다. 2030~2040년에는 나노기술이 생물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전학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몸과 뇌, 그리고 인간이 사는 세상을 분자 수준으로 정교하게 재설계하고 재조립하게 해 줄 것이다. 가장 강력한 혁신은 로봇공학에 의해 실현된다. 인간은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창조할 것이며 그 이후의 진화는 인공지능의 몫이다. 2040년~2050년에 인류는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한다. 생물과 비생물의 구분, 인간과 로봇의 구분,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사라지며, 인간에 대한 해독이 끝나고 인간은 전혀 새로운 존재양식을 갖게 된다. 특이점 이후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 신체 구성, 수명, 쾌락 수단 등을 자유롭게 선택하게 된다.

4) 유물론: 생명의 본질은 정보이며, 생명체는 정보를 처리하는 일종의 컴퓨터이다. 몇 가지 중대한 혁신이 이루어지면서 박테리아 수준의 생물체가 탄생했고, 생물체는 수십억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 고도로 지능적인 인간에 도달했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이다.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스스로 자신을 뛰어넘는 존재로 진화한다. 과학기술 덕분에 질병, 노화,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면서 신과 종교는 불필요해진다. 죽음이 더 이상 미화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은 예방될 수 있는 정보의 손실일 뿐이다.

<특이점이 온다>는 S.F.도 아니고 철학서도 아니다. 과학자이며, 발명가이고, 사업가인 한 천재가 제시한 미래 예측이다.  그리고 그것은 21세기의 인류 문명을 이끄는 기업과 기관들의 사업 로드맵에 반영되고 있다. 사실 그점이 이 책을 다른 미래전망서와 구분짓고 있다. 그 책은 단지 미래를 예측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이점의 구체적인 범위와 도래 시점은 논란의 대상이고, 그의 예측은 맞는 것만큼이나 빗나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특이점의 도래를 완전히 부정할 수 있을까. 과학기술은 커즈와일이 예견한 방향으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그에게서 영감을 받은 사업가들은 새로운 시대를 선점하기 위해 분주하다.

특이점은 올 것이다. 그가 묘사한 것처럼은 아닐지라도. 그가 얼마나 정확히 예측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대전환–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던–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예비할 것인가이다.

나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적극 수용하지만 그의 기계론적 우주관–그것은 다수의 과학자들이 암묵적으로 취하고 있는 우주관이기도 하다–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가. 얘기해 보자.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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