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벌레’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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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를 풀듯이 읽는 작품. 현실에서는 결코 발생할 수 없는 변신.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왜 이런 황당한 작품을 남겼을까? 변신과 갑충은 무엇의 메타포로 봐야할까?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말도 안되는 변신이 주는 황당함, 그리고 심지어 거부감과 더불어 책읽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독자는 갑충-그레고르와 동일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점이야말로 이 단편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른다.

“나도 어느날 갑자기 갑충으로 혹은 갑충처럼 변해 있지 않을까?”

“타인의 눈에도 발견되지 않고 자신도 모르고 있을 뿐 내 자신 안에 갑충처럼 징그러운 모습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날 내가 갑충처럼 흉물스럽고 쓸모없게 변한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사랑해줄까? 내 부모님은, 내 아내는, 내 형제들은, 내 자식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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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후반부로 가면서 독자는 그레고르가 겪는 아픔과 변화보다는 갑충-그레고르에 대한 가족의 심리와 태도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독자의 시선은 이내 자기 자신을 향한다. 그레고르의 부모와 누이동생은 갑충-그레고르에 대해 점점 무관심해지고 심지어 그가 사라져 주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갖게 된다. 그리고 존재 부정이 뒤따른다. 즉, 처음부터 갑충은 그레고르가 아니었다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훙물스럽고 쓸모없는 존재로 변하는 두려움을 갖고 살며, 가족이나 이웃 누군가가 그렇게 변신할 때 그에 대해 무관심하고, 부담스러워하며, 결국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나약한–어찌보면 비정한–인간이 아닐까.  우리 중 누가 자신은 결코 ‘벌레’일 수 없고, 절대로 ‘벌레’가 되지도 않을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 중 누가 ‘벌레’가 되어버린 가족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며, 그 ‘벌레’를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사랑과 용기란 그렇게 약하고 부족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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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충-그레고르는 굶어 죽었다. 그런데 그(것)는 정말로 굶어서 죽었을까? 그것은 표면적인 사인일뿐 가족의 무관심이나 절망감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닐까? 우리 주위에 무관심과 절망감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사람은 없을까? 그런 사람을 볼 용기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진실에 대해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치매에 걸린 부모, 불치병에 걸린 아내, 직장을 잃은 남편, 능력없는 이웃, 희망을 찾지 못하는 젊은이, 냄새나는 노인….우리는 혹시 잠자 가족처럼 그들을 갑충-그레고르로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아직 생명이 붙어있음에도 존재를 부인당하고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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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척 하지마. 우리는 벌레야!” <변신>에서 카프카는 내게 그렇게 외치고 있다. (2016. 5. 26)

글쓴이: 만리거사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정보사회학과의 윤영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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