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으로 충분한가?…

“나라 잃은 국치일, 기억하겠습니다.” “3.1 운동, 기억하겠습니다.” “일제의 만행, 잊지 않겠습니다.” “4.3 비극, 기억하겠습니다.” “순국선혈의 희생, 기억하겠습니다.” “4.19 정신, 기억하겠습니다.” “5월 광주, 기억하겠습니다.” “6월 민주화 운동, 기억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잊지 않겠습니다.”….

마땅히 기억해야 하는데 내가 잊어버린 역사적 사건이 또 없을까? 우리는 기억해야할 것이 많은 나라이다. 사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과거를 잊어버리는 국민에게 비극은 되풀이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기억의 다짐은 뭔가 아쉽고 허전하다. 기억해서 어쩌자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문자 그대로 역사적 사건 자체를 잊지 말자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요즘 내게는 그 다짐이 그렇게 들린다. 나만 그런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37주년.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안된다”, “나는 광주에 개입한 적이 없다”,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려고 온 독일 동포를 추방하다….이 한심한 에피소드들은 모두 지난 40여년 동안 우리가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오지 못한 결과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식에서 제창하는 문제가 그렇게 중대한 사회적 쟁점인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문제는 그 때 광주 시민들이 지키려했고 보여주었던 정신이 아직까지도 나라의 중심이 서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닌가.

‘5월 광주’로 집약되던 민주, 자유, 평등, 평화, 우애, 헌신, 협동의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우리 사회 전체는 물론이고 광주에서도 그런 정신을 찾기가 어렵다. 대신에 그 자리를 집단 이기주의, 개인주의, 황금만능, 쾌락과 허영, 출세주의, 불평등, 사회적 배제, 관료주의, 권위주의, 불신이 채우고 있다. ‘5월 광주’는 표를 얻기 위해 ‘광주’를 추켜세우는 정치인들의 헌사 속에나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중립적 역사란 잘 해야 허상이고 대부분 기만이다. 역사란 객관적 사실에 대한 주관적 편집과 해석이다. 민족 공통의 기억은 소중히 지켜져야 하고 역사는 정의의 편에서 기술되어야 한다.

‘5월 광주’에 대한 해석과 살아남은 자들의 부채 갚음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세상에 살기를 원하는가? 진정 어떤 세상을 후세에 물려주고 싶은가? 그런 세상을 가져오기 위해 나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에 대한 우리의 대답과 행동 속에 ‘5월 광주’의 정신이 살아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기억이다.

‘5월 광주’를 살아있는 역사로 만들지 않고 단순한 기억 속에 묶어두려 하는 한 그것은 빠른 속도로 잊혀질 것이다.  이 땅에 5월 정신은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고 있다. 비겁하게 살아남은 자로서 나는 그것이 두렵고 안타깝다. (2016/5/18. 윤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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