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문명의 시금석

the-territory-of-expertise-machine-vs-human-expert-vs-group-of-amateurs-13-638

1950년 알렌 튜링은 기계가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는가를 검증하기 위한 이미테이션 게임을 구상했다. 2016년 구글은 기계가 인간보다 더 뛰어나게 사고할 수 있음을 검증하기 위해 바둑에 도전했다. 전자를 튜링 테스트 버전 1.0이라고 부른다면,  후자를 튜링 테스트 버전 2.0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튜링과 구글이 시도했던 것과 유사하게 나는 국가 관리자들이 문명인으로 사고할 수 있는가를 검증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공무원이 되고 정치인이 되도록 제도화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공감능력 테스트이다.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있는가를 검증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질문이 꼭 들어가야 할 것이다. 하나는, 당신은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하나는, 당신은 세월호가 왜 2년 이상 인양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그 시험을 세월호 테스트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그리고 세월호 테스트에서 얻은 고위공직자의 점수, 대통령과 국회의원 후보의 점수는, 마치 재산 공개하듯이 국민에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세월호 참사는 국가 관리자들에 의해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세월호포스터

3백 명이 넘는 사람이 근해에서 침몰하는 여객선에 갇혀 죽는 사회, 그것은 문명사회가 아니다. 또한 ‘실종’된 시신이 머무르고 있을 여색선을 2년 이상 바다 속에 방치하는 나라,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모든 사회에는 권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권력은 벌거벗은 폭력일 뿐이다. 그것이 사회주의이든 자본주의이든, 그것이 진보이든 보수이든, 앙리 레비의 표현처럼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다.

우리를 야만으로 만드는 것은 예절의 부재도, 법률의 흠결도, 그리고 기술의 부족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 국민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국가, 그리고 오직 권력과 돈에 대한 욕심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공감문명(empathic civilization)이라고 부른다. 인터넷, 스마트폰 같은 정보통신기술 덕분에 지구적 공감, 생태적 공감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840여 쪽에 달하는 <공감의 시대>에서 그에 대해 이론적, 경험적 증거를 깨알같이 제시한다.

empathy_big

우리 사회가 21세기 공감 문명의 일부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세월호’가 시금석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문명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문명국가가 되려면 세월호를 한시 바삐 인양하고, 참사의 원인을 밝히며, 피해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공감이 충만한 사회를 만들어 한다. 희생자들의 가족을 따뜻하게 품어 주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세월호’에 진 빚을 갚아야 우리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부디 이 땅에 인간 존중의 문화 그리고 공감의 정치가 꽃피었으면 좋겠다.

asdfasdfa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