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분야의 판별: 사회학을 중심으로

최근 학문에서 융합이 대세인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융합적인 연구가 얼마나 활발하게 일어날 지 의문이다.

학문의 오랜 역사는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융합이 결코 성공적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고대 이래 철학, 수학, 신학, 사회학, 물리학, 생물학….통합적 체계를 꿈꾸었던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했다. 특정 분야의 이론이나 연구방법이 학문에 있어 보편적인 적합성을 갖는다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하고, 또한 무엇을 위한 융합인지, 누구를 위한 융합인지가 분명치 않은 데다, 현실적으로 분과 학문 사이의 제도적 칸막이가 워낙 강고하기 때문이다.

설령 실용적인 이유로 인해 학문간의 넘나듦이 활발하게 일어난다고 해도 융합보다는 협업의 형태가 아닐까 예상된다. 그런데 협업은 참여자들이 자신의 정체(identity)와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을 때 더욱 잘 진행된다. 협업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경쟁이나 오해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학문간의 경계도 유동적이다. 그렇다고 특정 시점에서 분과 학문의 판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an-introduction-to-sociology-20-728

사회학개론 교과서에 나오는 이 구분은 매우 사회학답다. 그러나 이러한 추상적인 구분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좀 더 현실적인 구분을 생각해보자. 사회학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학문의 구분에는 세 가지 기준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연구 주제에 의한 판별이다. 가장 흔히 채용되는 기준이다. 예컨대 연구 대상이 천체 현상이면 천문학, 생물이면 생물학, 질병이면 의학, 신이나 믿음이면 신학(종교학), 정치 현상이면 정치학, 국가행정이면 행정학, 경제 현상이면 경제학이 된다. 여기에 두 가지만 첨언해 보자.

학문에서 인과적 명제는 종속변수와 독립변수(들)로 구성된다. 설명하려고 하는 현상(즉, 결과가 되는 현상)은 종속변수(dependent variable)이고, 설명에 사용되는 현상(원인이 되는 현상)은 독립변수(independent variable)이다.

학문의 판별에서는 독립변수보다 종속변수가 중요하다. 예컨대 석, 박사 논문을 심사할 때 심사자들은 종속변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독립변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사회학에서는 불평등, 갈등, 고령화, 저출산, 가족, 성, 세대 차이, 커뮤니티, 사회연결망, 사회심리, 사회조직, 사회발전, 사회문화가 타당한 연구 주제로 인정받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광고, 마케팅, 인공지능, 컴퓨터 소프트웨어, 컴퓨터 네트워크, 소셜미디어, 국제정치, 종의 진화 같은 연구 주제는 “그게 왜 사회학이지?”하는 정체성 논란에 부딪치곤 한다.

그러나 기초 학문의 경우는 연구 주제 선정에 관해 비교적 관대하다. 사회학, 철학, 수학, 물리학이 그렇다. 연구자가 논리적으로 방어만 잘 하면 무엇이든 타당한 연구 주제로 인정받는다.

학문간의 경계에 속한 주제이거나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주제도 있다. 예컨대 사회발전, 이노베이션, 확산 같은 주제가 그러하다. 그런 경우에 그 주제가 특정 분야의 정당한 연구 주제로 인정받는 것은 연구자의 능력과 노력에 달려 있다. 참고로 이차대전 이후 사회발전은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심지어 인류학에서도 정당한 연구 주제로 인정받았다.

실천을 강조하는 학자나 학파의 경우도 분별이 어렵거나 무의미하다. 칼 마르크스를 어느 분야의 학자로 분류할까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경제학자이며, 사회학자, 철학자, 그리고 역사학자였다. 마르크스는 사회학 창시자 중의 일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important-people-in-sociology-11-728

둘째, 연구 방법에 의한 판별이다. 각 학문 분야는 내부적으로 발전시켜온 방법론이 있다. 과학이라고 이름 붙여진 실증적인 학문에서는 연구 주제 못지 않게 연구 방법이 학문적 인정을 받는 데 중요하다.

경험적 자료를 수집하는 데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실험(또는 유사 실험), 설문조사, 문헌조사, 비교역사, 참여관찰, 심층인터뷰, 사례분석, 이차분석, 임상, 시뮬레이션 등등. 각 학문 분야마다 타당하다고 인정받는 방법들이 있으며, 그 방법을 사용하면 설령 연구 주제가 낯선 경우에도 특정 분야의 연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사회학은 매우 다양한 방법을 타당하다고 인정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사회학이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비평으로서의 사회학, 사회과학으로서의 사회학, 사회운동으로서의 사회학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세 얼굴은 모두 사회학의 정당한 모습이다. 연구방법에 있어 그 세 가지의 사회학이 동일할 수 없다. 사회비평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측면이 강조되고, 사회과학에서는 과학적 엄밀성이 강조되며, 사회운동에서는 실천성이 강조된다.

사회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채택된 연구방법이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는가, 그리고 충분히 논리적인가가 중요하다. 그 어느 경우에도 논리적이 아니면 학문적 연구가 될 수 없다.

셋째, 준거틀(frame of reference)에 의한 판별이다. 연구자가 어느 학문 분과에 소속되어 있는가를 가지고 특정 연구의 분야를 판별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연구물이 어느 분야의 이론, 어느 분야의 문헌, 어느 분야의 연구자를 주로 인용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느 분야의 저널에 발표되었는가가 그것이 어느 분야에 속한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곤 한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가지고 어느 학문 분야에 말을 걸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 때 준거틀의 선정이 대단히 중요하다. 잘못하단 돈키호테로 간주될 수 있다.

특히 사회학처럼 경계가 불분명한 기초 학문에서 학문 분야의 판별에 있어 준거틀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사회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가장 실용적인 답은 사회학자가 하는 연구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이다.

학문은 진리와 진실을 추구한다. 그러나 허공에서 그러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진실인가는 학자 커뮤니티가 판단한다. 학자 커뮤니티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진리와 진실에 관한 객관적인 판단 기준의 존재가 의심받는 시대에 학자 커뮤니티의 합의는 그래도 진리와 진실을 발견하는 차선이 되지 않겠는가.

연구자(그리고 심지어 대학생도)가 자신이 어느 학자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가를 아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정체성의 문제이면서 생존의 문제이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