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 수학이 자유를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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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 나의 새로운 역할 모형(role model)이다. 역할 모형을 갖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인가. 그는 1749년 3월 23일에 태어나 1827년 3월 5일 서거했다. 78세.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전쟁 등 혁명과 반혁명, 그리고 전쟁이 번갈아 일어나던, 인류 역사상 가장 극심한 격변과 혼란의 시대에 그는 오래 살았다. 그런데 가장 부러운 부분은 그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는 점이 아니라(장수가 부럽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가 말년에도 학문적 성과를 계속 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래와 같은 베이즈 정리의 일반 공식을 발표한 것도 60세가 넘어서였다.

이 방정식을 말로 설명하면, 사건 가 발생했을 때 그것의 원인이 일 확률 는, 원인 가 주어졌을 때 사건 가 발생할 확률 에, 이것이 일어날 확률에 대한 최초의 추정치인 를 곱한 수를 가능한 모든 원인에서 사건 가 발생할 확률(사건 의 전체 확률)로 나눈 값과 같다.

뿐만이 아니다. 확률이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중심극한정리(Central Limit Theorem)을 발표한 것도 61세 때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마이다스(Midas)가 손을 대는 것마다 모두 황금으로 바뀐다. 마찬가지로 라플라스가 손을 대는 것마다 모두 수학으로 바뀌었다. 수학 자체는 물론이고, 천체 역학, 물리학, 생물학, 지구과학, 통계학, 군사학, 인구학, 법학, 사회과학 그리고 신의 존재까지 그의 손을 거치면 모두 수학적 탐구 대상으로 바뀌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그의 전공이 무엇이었나고 묻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의 영혼은 결코 어느 한 학문 분야에 갇힐 수 없었다. 그의 호기심은 지칠 줄 몰랐고, 그는 수학이라는 도구를 가지면 세상의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던 것 같다.

계량 사회과학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회학자로 간주되는 던컨(Odis Dudley Duncan)은 회고록에서, 자신이 평생 방법론을 공부했던 이유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라플라스는 바로 그러한 자유인이 아니었을까. 전공이 무어냐는 물음이 모욕이 되는 학문적 유목민 말이다. 오늘날이라고 그런 유목민이 존재할 수 없을까.

글쓴이: 만리거사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정보사회학과의 윤영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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