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펜, 그리고 글

너무 오래 컴퓨터로 글을 쓰다보니 손글을 잃어버렸다.  그 변화는 단지 필기구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깊이 생각한 후에 글을 썼다. 평소에 메모는 해두었지만 그것을 엮어서 글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작업이었다. 더 이상 크게 손질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생각이 잘 정리된 후에 원고지나 노트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워드로 글을 쓰면서부터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비로소 본격적으로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한다.  그리고 긴 편집 시간을 갖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머지않아 커리어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했는지 모르겠다) 최근 문득 문득 다시 손으로 글을 쓰고싶다는 충동이 일곤 했다. 그러다 엊그제는 맘을 크게 먹고 수성펜 세 자루를 샀다.

그런데, 어제 우연치고는 상당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오래 전 석사 학위 지도 학생이었던 제자로부터 몽블랑 펜을 선물받은 것이었다. 그것은 25년이 넘는 커리어에서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기품있는 필기구였다.

과연 과분한 선물을 받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다가 그 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 전부터 내게 만년필을 선물하고 싶었다는 그에게 차마 돌려준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약속했다. 앞으로 그 펜으로 글을 쓰겠노라고.

행복한 우연이다. (윤영민, 2018-05-24)

커피 그라인더 구입

SAMSUNG CSC
Zassenhaus La Paz mill

18년 전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커피 그라인더를 퇴역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2년 전 일본제 Kalita를 구해서 몇 번 사용했으나, 뚜껑이 없어 원두가 튀어나오고, 커피분 담는 상자가 너무 작아 분이 넘치는 불편이 있어 사용을 포기했다.

최근에 손이 아파서 커피 갈기가 어려워 자동 그라인더를 구입했다. 편하기는 한 데 커피 맛이 현저히 떨어져서 결국 다시 수동 그라인더로 돌아왔다.

지난 금요일(6/3) 남대문 시장에 가서 독일 자센하우스 라파즈 밀을 구했다. 수입상가(옛날 도깨비시장) 지하 1층 161호 우신상사(02-319-5770)에서 24만원 달라는 것을 흥정을 해서 겨우 2만원 깍고 현찰로 구입했다.

상품이 격조가 있다. 뚜껑은 황동, 내부 부품은 7천도의 고열에서 생산된 탄소강철, 목재 부분은 너도밤나무라고 한다. 자센하우스 커피 그라인더 중 가장 고가 제품이다.

몇 번 사용했는데 아직 손에 익지 않다. 원두가 잘 흘러내려가지 않아 공회전이 자주 발생한다. 잘 되다 안되다 하니 며칠 더 사용해보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환을 해야할 듯 싶다.

커피 맛은 훌륭하다. 라파즈 밀은 미분이 많이 나와 쓴 맛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우리에게 그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사람도 물건도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가야한다. 지난 번 독일산 그라인더를 18년 사용했으니 이번 제품도 그렇게 오랜 사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내 생애 마지막 커피그라인더가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