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수확

텃밭의 고구마를 수확했다. 봄에 2천원어치 모종을 사다가 심어 여름 내내 줄기를 따서 먹고 가을이 되어 두 버킷이나 되는 뿌리를 선물로 받았다. 이웃이 가져다 준 것들까지 합하면 한 겨울 먹을 만큼의 양이다.

고구마를 온전히 캐기가 쉽지 않다. 특히 수직으로 깊이 박혀 있는 것은 끝까지 조심스럽게 파주지 않으면 끝이 부러져 버린다. 끝이 잘린다고 먹는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고구마 캐는 기술이 늘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서두르지 않고 꼼꼼이 작업을 해서 그런 건지 작년에 비하면 온전한 것들이 훨씬 많다.

옆에서 함께 작업하던 아내가 무척 좋아한다. 물론 나도 충만된 기분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몇 천원 어치에 불과하지만 우리 스스로 키웠다는 사실 때문일 게다. 10여 년 전에 처음 고구마를 심었을 때는 완전히 실패했다.

세종 때인가 고구마를 대마도에서 처음 들여와 재배를 시작했는데 아마도 나처럼 실패했었던 같다. 임금께서 대마도주에게 고구마 재배 전문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키우기 쉬운 작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작년에 비해 고구마 알이 굵다. 둔덕을 크게 만들었기 때문인가. 이웃이 충고를 해줘서 금년에는 둔덕을 큼지막하게 만들었다. 뿌리가 자랄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해야 한다는 이웃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친정에 갔던 아내가 열흘만에 돌아왔다. 더 머물 것이라 예상했는데 갑자기 돌아온 것이었다. 정읍역까지 마중을 나갔다. 100일만에 본 것처럼 반가웠다.

아내가 오니 집에 활기가 넘친다. 혼자 있어도 그래야 하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혼자보다 둘이 있는 게 나은가보다. (2020-10-23)

남천(南天) 예찬

8년 전 칠십 그루를 정원에 이식한 후 아내와 나는 남천 사랑에 빠졌다. 그 후 이백오십 그루를 더 이식해 지금은 3백 그루가 넘는 남천이 집의 3면에 걸쳐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 나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남천을 살핀다. 혹시 병충해를 입지나 않는지, 강한 비바람에 꺾이지나 않는지, 잘 자랄 수 있는 공간은 충분한 지 등에 대해 신경을 쓰고 , 너무 키가 큰 나무는 지지대를 세워서 서 있는 힘을 보강해준다. 눈이나 비가 많이 오면 가지들이 위태롭게 숙여지곤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식한 남천 중 죽은 나무가 거의 없다. 내가 잘 보살폈기 때문이기보다 근본적으로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추위에 약하다는데 아직 얼어죽은 경우는 없다.

남천의 영어 속칭이 sacred bamboo 혹은 heavenly  bamboo라고 한다. 정말로 천국 나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식물이다. 가을에는 단풍처럼 붉은 잎이 많고 겨울에는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붉은 빛 열매를 매달고 있다. 남천의 잎이 무슨 색인지는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같은 계절에도 나무들이 다양한 색을 보여준다. 초록은 기본이고 적색, 황색, 갈색, 연초록….나무마다 참으로 다양하다.  나란히 서 있음에도 잎색깔만 보면 전혀 다른 나무들처럼 보일 정도이다.

집의 뒷쪽 울타리에는 아직 남천을 심지 않았지만, 언젠가 뒤 울타리를 정비할 때 앞쪽처럼 남천을 심게 될 것이다. 아내와 내가 공통적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좋아하는 나무가 드물기 때문이다. (2020-10-05)

채소의 온실 재배를 시작하다

온실 화분

작년 가을 사랑채 공사를 하면서 작은 방 앞쪽의 파시오에 유리 천장을 씌우고 아파트 베란다처럼 유리창과 유리문을 달았다. 사실 겨울 밤에 찬 서리를 피해서 별을 관찰할 요량으로 별방이라 이름지었지만 ‘별방’ 사용은 금방 포기했다. 유리 부분의 천장이 너무 작은데다 유리 안쪽에 김이 많이 서리기도 해서 별을 보기에 적절치 않았다.

그래서 금년 겨울에는 온실 용도로만 사용키로 했다. 인터넷으로 화분을 구입해 상토와 배양토를 채우고 혜영이네가 준 씨앗을 뿌렸다. 적상추, 청상추, 케일, 열무 따위의 씨앗이다.

작년 겨울에는 화초만 보호할 목적으로 밤에 영상 5도 이상을 유지했지만, 금년 겨울에는 채소를 키우니 영상 10도 이상을 유지할 생각이다. 자동온도 조절기가 달린 전기 히터를 사용하겠지만 전기 요금이 너무 많이 나오면 가스나 석유 난로로 바꾸면 될 것이다. 사실 6kw 태양광 패널을 갖추어 놓고 있으니 전기 요금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다. 

가을이 되니 전체적으로 먹거리가 풍부해졌지만 아침 샐러드에 들어가는 푸른 잎 채소의 양은 크게 줄었다. 겨울이 되면 이 현상이 더 심해질 것 같다. 그래서 집에서 먹는 채소를 직접 키우기로 했다.

아내도 나도 처음 해보는 시도라 결과가 어찌될 지 궁금하다. 과연 채소들은 잘 자랄 지, 비용은 적절한 선에서 제어할 수 있을 지, 두 평 남짓에 불과한 온실인데 과연 우리가 먹는데 충분한 양의 채소가 나올 지…. 

이러한 소소한 즐거움이 전원에 사는 은퇴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일 것이다. (2020-09-21)

10월 마지막 날의 정원

상록수인 남천이지만 가을이 되면 잎이 붉게 물든다. 단풍나무보다 먼저 단풍이 드는 셈이다.
킨세카이(장미)가 올해 거의 마지막 꽃을 피우고 있다. 눈이 내리면 꽃이 얼어붙고 그렇게 한 해가 끝날 것이다.
버베나파라솔의 꽃이 참 오래간다. 여름을 지나 가을이 끝나기까지 꽃을 보여줄 기세이다.
붉은 빛 버베나파리솔.
꽃 이름을 잊었다. 가을에 너무 잘 어울리는 빛깔이다.
노랑 국화. 가을 뭐니뭐니해도 국화의 계절이다.
겨울을 나게 하기 위해 제라륨 화분을 온실로 옮겼다. 오염된 흙을 쓴 탓에 고생고생해서 살아남은 꽃이다.
패랭이꽃인 것 같은데, 이 꽃도 여름부터 가을까지 화단을 지키고 있다.
꽃마차 화분에 심어놓은 펜타스도 한 달째 꽃을 피우고 있다. 겨울에는 꽃마차에 패인팅을 해줘야겠다.
용담은 늦가을에 피는 꽃이다. 붉은 빛 용담은 아직 피지 않았다.
국화도 예상보다 오래간다. 꽃집 주인이 2-3주 갈 것이라고 했는데 벌써 한달이 넘은 것 같다.
백일홍은 집 정원에 심을 꽃은 아닌 것 같다. 너무 번식력이 강해서 주위의 다른 꽃들을 모두 밀어버린다.
초대받지 않은 메리골드. 꽃이 참 오래 간다.
은목서의 꽃도 핀지 2주는 지났는데 아직 향기를 내뿜고 있다.
삼색제비꽃. 눈에 뜨지 않을 정도로 작은 꽃이지만 두 가지색의 꽃을 함께 지녀 묘하게 매력적이다.
수국 중 가장 오래 피어있는 핑크에나멜. 위태위태하면서도 비바람을 잘 넘겼다.
이 꽃의 이름도 잊어버렸다. 백일홍만큼이나 번식력이 좋아 내년에도 심을지 재고해 봐야겠다.
비록 지기 직전이지만 맨드라미가 아직 피어있다. 마치 충성스런 군사처럼 오래오래 화단을 지키고 있다.

은목서 향기는 집을 감아돌고

은목서꽃

집에 내려오니 은목서 향기가 나를 반긴다. 팔각정의 창문을 열어두면 곱고 강렬한 향이 집안을 가득 채운다. 바야흐로 은목서의 계절이다.

8년 전에 이식한 은목서가 많이 자라 가지 끝이 지붕 자락 근처까지 올라왔다. 아마도 내년에는 지붕 끝에 닿을 것이다. 팔각정에 비치는 서향 햇빛을 막으려 심은 나무인데, 가을에는 향기가 덤이다.

은목서 안에는 벌레가 많은 지 작은 새들도 많이 날아든다. 이제 태풍도 지나갔으니 내일 아침에는 테라스에서 차를 마셔도 좋으리. 커피에 진한 꽃향기와 경쾌한 새소리가 더해 질 것이다. (2019-10-03)

과꽃이 피었다

과꽃

지난 초여름 아내가 테라스 옆에 심은 과꽃이 만개했다. 방장산의 백선생에게서 모종 여섯 개를 얻어와 심었는데 한 그루가 살아남았다. 분홍빛 꽃이 진붉은 맨드라미 꽃 무리와도 잘 어울린다.

가을 입문

화훼단지에 가서 가을꽃을 사왔다. 오늘 비가 내린다니 어제 서둘러 심으려는 것이었다.

앞뜰의 꽃마차에 전시한 화분을 갈았다. 큰 마차에는 펜타스를, 작은 마차에는 소국 화분을 올렸다. 지나가는 이웃 아주머니들이 좋아하실 것이다.

꽃마차의 펜타스와 소국

테라스의 꽃도 가을 정취가 나도록 보라빛 소국 화분을 추가했다. 아직 꽃들이 만개하지 않았지만 조금 있으면 소국, 용담, 카멜레온이 소담스럽게 피어날 것이다.

테라스의 소국, 용담, 카멜레온(채송화)

앞 도로와 마주한 경계화단에는 지난 봄에 이식한 백공작과 보라공작, 남천이 가득하다.

경계화단의 백공작과보라공작
대문, 남천, 영산홍,보라공작, 백공작

이제 잔디를 몇 번만 잘라주면 올해가 갈 것이다. 한여름처럼 잔디가 쑥쑥 자라지 않는다. 어제는 앞뜰 잔디를 잘랐다.

앞뜰과꽃마차

검붉은 접시꽃

한참 동안 블로그에서는 전문 지식을 공유하고, 사진 공유 SNS인 Pholar에서 일상을 기록해왔다. 그런데 Pholar가 9월말로 서비스를 중단한단다. 그래서 사진 저널도 블로그로 가져오기로 했다. 인터넷 서비스가 문을 닫으면 백업 받아두는 수밖에 대책이 없다. 특히 SNS 사용시 그것은 늘 숙제이다.

접시꽃의 색깔은 다양하다. 두 달 전 아내가 누군가에게서 얻어와 후원에 심은 접시꽃의 색깔이 범상치 않다. 한달 정도 새 환경의 적응에 몸살을 하다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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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인간의 소통 상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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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 행성B 출간

사람이 꽃이나 나무와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궁금한 점은 어떻게, 얼마나 깊이 있는, 그리고 양방향적 의사소통이 가능한가였다. 이 책은 그러한 궁금증을 푸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인간의 관계망에 식물을 포함해야 한다는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담고 있다.

“지능(intelligence)이 문제해결능력을 의미한다”면(187), 식물은 단연 높은 지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5억년 동안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고, 영토를 확장하며, 후손을 퍼뜨리는 데 있어 식물은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단지 ‘자동반응’ 덕분이라는 해석은 설득력이 없다. 식물이 고도의 판단, 구상, 대처에 필요한 지적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는 설명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식물은 고정상태에서 생존하기 위해 다양한 능력을 발전시켰다. 특히 근단(뿌리의 말단)은 고도의 지각, 판단, 명령을 시행하는 일종의 군집지성(swarm intelligence)으로 동물의 두뇌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 식물은 동물과 같은 장기를 지니는 대신에 신체 전체에 기능을 분산시키는 모듈식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움직임이 워낙 서서히 일어난다는 점에서 인간과 크게 다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식물을 마치 무생물처럼 인식한다.  그러나 이 책은 사실 식물이 고도로 지적인 행동을 하고 있음을 풍부한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보여주고 있다.

인간처럼 생기지 않고, 인간처럼 사고하지 않는다고 지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우리가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식물은 우리와 함께 즐겁게 소통하고 공존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꽃과 나무를 마치 무생물인 것처럼 대하는 사상과 태도가, 지적인 생명체로서 꽃과 나무를 대하는 그것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가. 성장, 산업 발전, 풍요의 성취?

지구에서 바이오매스(biomass)의 99.7%를 점하는 식물을 무시하고 약탈의 대상으로만 보는 한 생명존중의 사상과 삶은 인간 중심의 오만과 자기 모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인류에게 견디기 어려운 환경적 재앙이 될 것이다.

첫 나리꽃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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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나리꽃이 피었다. 작년에는 태풍에 견디지 못해 나리가 일부 꺾이고 쓰러졌다. 지지대를 받쳐주었지만 몇몇은 다시 생환하지 못했다. 금년에는 일찍 지지대를 세워 줘야겠다.

나리는 참 수수께끼이다. 자신의 줄기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꽃을, 그것도 여러 송이를 동시에 피운다. 다알리아도 그렇지만 나리가 가장 심하다. 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