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글을…

젊은 시절 나는 참 말 많은 사람이었다. 밤을 꼴닥 새우면서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심심치 않을 정도이다. 남의 얘기를 차분하게 듣기보다 내 생각을 말하기 바빴다. 사람들이 얼마나 싫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오십 살이 넘어서야 겨우 남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말하는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 글을 썼다. 그러면서 말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글 쓰는 양이 늘수록 말수는 줄어든 것 같다.

대체로 노인은 말이 많다. 그러나 그것이 꼭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노인이 되면 일과 행동이 줄어드는데 말조차 하지 못하면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요즘은 매일 글을 쓴다. 젊은 시절 글쓰기를 취미를 가졌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말을 안 해도 대화 욕구를 상당부분 충족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글을 써서 책을 내거나 매체에 출판할 생각이 아니라면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생각과 글이 따로 놀지 않으면 되는데 쓰다보면 글이 생각을 따라잡게 된다. 그리고 편집을 통해서 거기에 약간의 질서만 부여하면 충분히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글이 된다.

독자가 단 몇 명에 불과한 들 어떠하랴. 자기 자신만이 독자일 수도 있고 독자에 아내가 추가되거나 가족이 추가될 수도 있겠지만, 가족 독자마저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실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읽히는 것보다 쓰는 것이 목적이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쓰는 행위 자체가 충분히 즐거운 것을. 물론 운이 좋아 독자가 하나 둘 생긴다면 더 기분좋은 일이겠지만.

은퇴 후에 생활이 참 많이 바뀌었다. 은퇴 전에 별로 안하던 행동을 하는 것이 적지 않다. 성찰과 글쓰기는 그 중 하나이다. 앞만 보고 달리고 그나마 시간에 쫓겨 주위를 돌아보지도, 나를 돌아보지도, 이것저것에 대해 차분히 성찰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주위가 눈에 들어오고, 나 자신과 인생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해서 얻는 생각과 느낌을 글로 쓰니 이보다 좋은 일이 없지 싶다.

오늘도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 있음에 감사한다. 지구를 다녀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 몇 년 아니 단 몇 달만이라도 그렇게 살 수 있기를 바랬겠는가. (2020-11-20)

관계와 대화, 무엇이 먼저일까

우리네 삶에서 대화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 인간에게 있어 대화 욕구는 물욕, 권력욕은 물론이고 식욕이나 성욕보다 더 근본적이다. 그래서 미하일 바흐찐과 마틴 부버는 인간을 대화적 존재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대화는 공기만큼이나 흔하고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대화의 기회를 잃고–살다보면 누구나 그런 때가 오지 않나 싶다–나면, 사람들은 대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된다.

대화의 상실은 많은 노인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노인이 되면 대화와 관련해서 두 가지를 깨닫게 된다. 첫째는 대화의 상대가 아주 소수라는 사실이고, 둘째는 상대에 따라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는 사람이 많아 걱정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아는 사람이 ‘대화’의 상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업이나 업무로 만난 사람과는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사업상 혹은 직업상의 동료나 파트너가 아무리 많아도 그들이 당신의 ‘인간적’ 혹은 ‘사적’ 대화 상대가 되어줄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나 오해일 뿐이다.

관계의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특히 관계가 비대칭일수록 그러하다. 은퇴하면 전직과 현직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비대칭적이 된다. 사회적 위상, 정보, 재력, 체력 등 어느 것 하나 전직이 현직과 대등하거나 더 나을 수는 없다. 은퇴자는 과거를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과거가 은퇴자에게 힘이 되어줄 수 가능성은 없다. 업무상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특히 인간적인 측면에서 그러하다.

당신의 연락처 명단에서 인간적인 혹은 사적인 대화가 가능한 사람만 남기고 모든 사람을 제거하면 과연 몇 명이나 남을까? 아마도 아주 소수일 것이다. 그것 자체가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다. 누구나 그러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소수마저도 각각의 상대와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주제가 제한적이다. 대화 주제를 잘못 꺼내면 그 소수의 ‘친구’나 가족, 이웃마저도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직 시절의 화려했던 추억, 즐겁거나 슬픈 가족 이야기(대개 자식 자랑), 자신이 가진 부동산이나 주식이 오른 소식, 해외여행이나 값비싼 취미생활 등은 은퇴자의 무료한 일상을 채워줄 대화 소재이기도 하고, 입이 근질근질하여 자제하기 어려운 이야기 재료이기도 하지만, 친구를 멀어지게 할 가능성이 높은 대화 주제이기도 하다.

다양한 대화 주제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배우자만한 상대가 없다. 그러나 그 배우자마저도 항상 당신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신의 배우자는 당신이 아닌 다른 대화 상대를 선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설령 다정한 사이일지라도 그 배우자가 언제까지나 당신 곁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은퇴자에게는 누구와의 대화에서든 절제와 조심성이 필요하다. 은퇴자는 말을 꺼내기 전에 혹시나 내가 하는 말이 상대를 거북하게 하거나 부담스럽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몇 차례 해보는 습관을 가지면 좋다. 그래도 간혹 ‘선’을 넘을 것이고 ‘친구’는 기꺼이 그 실수를 양해해 줄 것이다. 하지만 ‘선’을 자주 넘으면  ‘친구’들의 인내도 바닥나게 된다.

대화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역이 더 진실이다. 관계가 존재해야 대화가 가능하다. 대화가 가능한 상대를 오래 옆에 두려면 사려깊지 못한 대화로 그 관계를 위협하는 처신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2020-11-18)

기억력 감퇴

일평생 장기 기억은 내 지능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 중 하나였다. 내 기억력은 평범했다. 시험을 치루거나 연구하는데 어려움을 초래할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억력이 좋아서 시험을 치거나 일을 하는데 남보다 유리했던 적은 없었을 정도로 그저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기억력마저도 점차 약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새로 들어오는 입력이 뇌 속에 저장되기가 무척 어렵다. 특히 숫자나 이름 같은 단편적인 것들이 그러하다. 순간 순간 좌절을 느낄 때가 자주 있지만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스스로 위로해야 하나. 아직 생활은 다소 불편하지만 공부에 크게 지장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니 말이다.

내 두뇌를 5년쯤 더 쓸 수 있을까? 그래도 칠십까지는 지금처럼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지나친 욕심인가.

기억력이 약해진 반면 이해력은 좋아졌는지 다행히 배움이 힘들지는 않다. 다만 치매가 걱정이다. 치매가 오지 않았으면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치매가 찾아올 때까지는 공부를 즐기자. 지금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만도 축복이 아니겠는가. 60대 초반이나 그 전에 치매가 찾아온 학자들도 드물지 않으니 말이다.

50대 초반에 나는 국내에서 녹내장 최고 권위자라는 의사로부터 60전에 시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아직 양쪽 눈을 잘 쓰고 있다.

두뇌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뭐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어쩌겠는가. 세상에 앞당겨서 미리 걱정할 일은 없다. 그저 하루 하루 감사하면서 열심히 살면 그만이다. (2020-11-15)

겨울의 초입에…

거실에서 바라보는 집앞의 풍경은 늘 바뀐다. 지난 한 2주간은 가을을 느끼게 하는 단풍이 일품이었다. 입동이 지나고 겨울에 들어가면서 단풍잎이 많이 떨어진다. 이제 비라도 한번 내리면 단풍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울타리로 심은 남천의 붉은 잎과 열매가 겨우내 단풍을 대신할 터이니 그다지 쓸쓸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눈이라도 내릴라 치면 그 붉은 열매들은 하얀 눈속에서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나는 일생을 일종의 유목민으로 살았다. 태어나서부터 현재의 주거지에 오기까지 한 군데서 5년 이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 20대 후반에 결혼한 후에는 한 곳에서 3년을 넘어서 산 적이 별로 없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거의 습관적으로 3년이면 이삿짐을 쌌다. 한 곳에서 오래 살면 지루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랬던 내가 8년 전 장성에 이사온 뒤로는 눌러 앉았다. 이사갈 맘이 전혀 없다. 아내는 더욱 그러하다. 한 때 목포로 이사갈까 하는 충동이 들었었지만 산이 너무 멀고, 친구가 너무 멀어진다는 생각에 그 충동을 사정없이 눌러버렸다. 친구와 멀어지는 것은 문제이긴 해도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산은 아니다. 적어도 500-600m 되는 높이의 산들이 주변에 없으면 나는 살기 어렵다. 왜 그런 지는 나도 모르지만, 50대 이후에 집터를 구하면서 나는 내가 산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산에 자주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높은 산들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내게 있어 집터의 중대한 조건이다.

그리고 집 주위의 환경이 조용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나는 소리에 무척 민감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소음을 잘 인내하지 못한다. 일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잠을 잘 이루지도 못한다. 덧붙여 집 주변에 눈 둘 곳이 있어야 하고 호젓하게 산책할 곳이 있어야 한다.

이른 아침 거실 커튼을 걷으며 멋진 풍경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행복감이 드는 지 모른다. 매일 커피를 마실 때면 맛있는 커피가 필요하지만 커피를 마시며 바라볼 수 있는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오늘도 이렇게 훌륭한 곳에서 살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2020-11-10).

전원과 도시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전원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전원에 살면 도회지의 삶을 모두 포기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전원에서 살면 생활의 중심이 도시에서 전원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도시적 삶이 일상에서 영 멀어져 버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라이프 스타일은 분명 어느 곳에서 사느냐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지만 자신이 어떤 삶을 원하는가 라는 선호에 의해서도 그에 못지 않게 영향을 받는다.

아내와 나는 대도시에서 30-40km쯤 떨어진 곳에 터를 잡았다. 서울로 치면 강남에서 분당 정도의 거리이다. 거리상 전원이라기보다 교외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곳은 전원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자동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한 시골 촌락이니 말이다. 우리는 대도시에 자주 나가지도 않는다. 한달에 두세 번 도시를 방문할 뿐이다. 도시 외출은 일상이라기보다 하나의 행사이다.

도회지에서 가져온 생활 습관 중 하나는 커피 마시기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우리는 하루 한 차례 커피를 마신다. 직접 원두를 갈아서 정성들여 내린 커피를 쿠키와 함께 먹는다. 커피 끓이기는 내 몫이다. 원두는 광주나 목포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사오고 쿠키는 목포 수문당에서 사온다. 처음에는 이곳 저곳에서 원두를 사고, 쿠키도 여기저기에서 샀지만 몇 년만에 스타 원두에 수문 스콘/브라우니로 정착했다. 수 년 동안에 우리는 그보다 더 좋은 콤비를 찾기 어려웠다. 아내는 내가 내린 커피가 서울 강남이나 분당 정자에서 마셨던 핸드드립 커피에 못지 않게 맛있다고 좋아한다. 수문당의 쿠키는 대체가 불가할 정도로 맛있다.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 그렇다.

우리의 일상의 90%는 마을 안에서 이루어지고 나머지 대부분은 차로 10~20분 거리에서 충족된다. 발달한 택배 서비스 덕분에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냥 적응하고 살았을 것이다.

우리에게 전원과 도시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자신의 입맛대로 적당히 섞어서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올 가을 첫 서리가 내렸다. 겨울이 온다는 신호이다. 어제 도동 어른이 선인장을 가지고 오셨는데, 즉시 화분에 심어서 실내로 들여 놓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얼었을 뻔 했다.

두 달 전에 소장을 길게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사경을 헤매던 장모님이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음식도 상당히 잘 드시고 재활운동도 열심이시란다. 자식들 효성에 감동한 저승사자가 발길을 돌렸나보다.

오지랖이 넓으면 시골에 살기 어렵다. 기존의 대인관계를 대충 대충 포기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사람 구실을 대충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그렇게 아쉬워 할 필요가 있겠는가. 결국 머지않아 우리의 영혼은 다른 행성 여행을 시작하고 우리의 몸뚱아리는 5리터 항아리 속이나 0.5 입방미터도 되지 않은 나무 상자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운명이거늘. (2020-11-05)

노년…상자 속의 삶

노년의 삶이란 여러 모로 상자 속의 생활이다. 무엇보다 재정적으로 그렇다.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 노인들은 매달 고정된 수입 속에 살아야 한다. 그것도 넉넉치 않은 수입으로 말이다. 연금 생활자가 특히 그러하다.  통상 연금 액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 버는 정도의 수입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사회 초년생과의 다른 점은 수입이 늘 가능성보다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어느 달 지출이 갑자기 증가하면 노인들은 그 후유증을 오래 앓아야 한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안정된 수입이 있기 때문에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고 생활비를 아껴쓰면 돈을 조금씩이나마 채곡채곡 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란 게 어찌 그렇게 되던가. 살다보면 늘 예상치 않은 지출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노인은 가난하다.

노년의 삶이 재정적으로만 박스 안인 것은 아니다. 노화로 인해 체력이 약화되고 의욕이 줄어들면서 재력이 있어도 노인은 상자 안에 갇히게 된다. 늙어갈수록 박스는 점점 더 작아지고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그 박스가 요양원의 침대 정도로까지 축소되고 만다.

그래서 노년을 보낼 곳을 잘 택해야 한다. 어떤 환경이 좋은가에 대해 누구에게나 맞는 정답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노인 각자의 선호에 달려 있다. 자연이 좋은 사람은 자연 속에, 도회적 삶이 좋은 사람은 도시 속에 터를 잡아야 할 것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은 가족이나 친지, 친구가 가까이 있는 지역이 좋을 것이고,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은 호젓한 산 속이라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따뜻한 곳이 좋을 것이고, 추위에 잘 견디는 사람은 기후가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집을 따뜻하게 하고 살면 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겨우내내 집안에만 머물 수도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에는 겨울에 영하 10도는 말할 것도 없고 수시로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지역이 드물지 않다. 반면에 겨우내내 영하 5도 이하로는거의 내려가지 않은 지역도 적지 않다. 이 작은 나라에서 기후와 기온이 지역에 따라 놀랍도록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전원의 기온은 기상청이 공표하는 기온과 몇 도씩 차이가 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끝으로 누구에게는 공통적이겠지만 병원들이 가깝고 근처에 훌륭한 요양시설이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노인들에게는 이사도 이동도 쉽지 않다. 노후에 지낼 지역은 신중히 선택되어야 한다. 충동적인 결정은 마음에 들지 않는 곳에 노년을 영영 갇히게 만들 수도 있다. 특히 전원 주택은 거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지역이 더욱 신중하게 선택되어야 한다.

어느 곳이라도 100% 만족스러울 수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결국 현재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왕이면 아쉬움이나 불편함이 적은 곳이 좋지 않겠는가.

오늘도 나는 동네라는 박스 속에서 산다. 그러나 그 박스 밖의 세상을 일주일에 한 두번만 나가도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곳에서 노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창 밖으로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고 문밖에만 나가면 한 겨울에도 별로 추위를 느끼지 않고 걸을 수 있으며, 소리에 민감한 내가 온갖 소음–특히 자동차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에서 살 수 있음에 감사한다. (2020-11-02)

백양사…여유…마음의 눈

어제 오후 늦은 시간에 백양사에 갔다. 둘째가 기분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4-5년 전만 같아도 광주나 전주로 나갔겠지만 이제 둘째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취향이 좀 바뀌었다. 물론 팬데믹 탓도 있겠지만.

백양사는 집에서 차로 20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니 나들이랄 것도 없다. 그래도 기분전환에는 좋은 곳이다. 봄에는 길가에 벛꽃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단풍이 가득해 특별히 좋지만, 사실 아무 때나 찾아가도 수십년 심지어 수백년 된 나무들, 그리고 백암산의 고혹적인 자태를 만날 수 있어 가성비가 최고인 곳이다.

더구나 백양사 근처에는 우리 식구가 즐겨가는 맛집도 몇 군데 있어 금상첨화이다. 어제는 저녁 식사 후에 맛있는 전통차를 파는 가게를 들렀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 지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고, 주인 아주머니가 정성을 다해 준비한 차와 디저트를 내왔다. 20년 된 찻집이라는데 이렇게 좋은 곳을 어떻게 이제야 오게 되었을까. 차를 마신 후에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산책까지 마치고 돌아왔다.

결국 마음이 문제였고, 여유가 관건이었다. 평생동안 나는 나들이를 가도 늘 쫓기듯이 다녔으니 제대로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다녔던 것이었다. 아마도 대학 1학년 때 이후 45년만에 처음으로 진정한 여유를 찾은 것 같다. 세상은 결국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보는 것이며, 세상을 보는 마음은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 살이를 시작한 지 37년만에 은퇴하고 나는 비로소 세상을 관조하는 여유를 얻었다. 이보다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덕분에 하루를 마치 천일처럼 산다. 살아있음을 마음껏 느낀다. 오늘이 마치 지구 여행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지나간 것을 안타까워하거나 아쉬워 하지 말고 매순간 새롭게 주어지는 현재를 사랑하고 만끽하자. 이렇게 살 수 있음을 하느님과 조상, 그리고 아내에게 감사하면서. (2020-10-31)

목포에서

거의 한 달만에 목포에 갔다. 집안에 일이 생겨서 여유가 없었다.

오늘은 점심식사부터 저녁식사 후 산책까지 제법 긴 시간을 목포에서 지냈다. 둘째가 워낙 중화루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점심식사는 늘 거기서 하게 된다. 식사 후에는 수문당에 들려서 후식을 먹고 쿠키를 한 보따리 샀다. 여기까지가 기본 코스이다.

둘째는 수문당에 남아서 학교 일을 하고 아내와 나는 유달산에 올랐다. 새로 산 등산화를 신고 등산스틱을 짚고 하는 등산이라서 그런지 아내의 표정이 아주 밝았다. 신발이 미끄럽지 않고 발목을 잘 잡아주어 계단을 오르내르기에 아주 좋았다고 한다.

등산 후에는 둘째를 픽업해서 함께 바닷가에 갔다. 밝은 태양빛에 찬란하게 비치는 목포 앞바다가 눈부셨다. 쑥굴레집에서 저녁식사를 간단히 하고 나의 모교인 유달초등학교에 가서 산책을 한 다음 돌아왔다.

사실 우리 식구에게 목포만큼 ‘가성비’ 좋은 여행지가 또 있을까 싶다. 오후 한 나절만에 그렇게 다양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다른 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목포가 갈 때마다 달라진다. 내 마음에 드는 변화도 있고 좀 아쉽게 느껴지는 변화도 있다. 그래도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좋다. 더불어 방문객들이 늘어나는 모습도 고무적이다. 1-2년 전만해도 밤이 되면 죽은 도시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도시가 밝고 다소 활기가 느껴진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렇게 좋아하는 도시가 있는 아빠가 부러워.”

둘째의 지적처럼 나는 목포를 유난스럽게 좋아한다. 그리고 목포를 언제든 그다지 힘들지 않게 다녀올 수 있어 무척 행복하다. 언제까지 그렇게 다닐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2020-10-25).

고구마 수확

텃밭의 고구마를 수확했다. 봄에 2천원어치 모종을 사다가 심어 여름 내내 줄기를 따서 먹고 가을이 되어 두 버킷이나 되는 뿌리를 선물로 받았다. 이웃이 가져다 준 것들까지 합하면 한 겨울 먹을 만큼의 양이다.

고구마를 온전히 캐기가 쉽지 않다. 특히 수직으로 깊이 박혀 있는 것은 끝까지 조심스럽게 파주지 않으면 끝이 부러져 버린다. 끝이 잘린다고 먹는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고구마 캐는 기술이 늘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서두르지 않고 꼼꼼이 작업을 해서 그런 건지 작년에 비하면 온전한 것들이 훨씬 많다.

옆에서 함께 작업하던 아내가 무척 좋아한다. 물론 나도 충만된 기분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몇 천원 어치에 불과하지만 우리 스스로 키웠다는 사실 때문일 게다. 10여 년 전에 처음 고구마를 심었을 때는 완전히 실패했다.

세종 때인가 고구마를 대마도에서 처음 들여와 재배를 시작했는데 아마도 나처럼 실패했었던 같다. 임금께서 대마도주에게 고구마 재배 전문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키우기 쉬운 작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작년에 비해 고구마 알이 굵다. 둔덕을 크게 만들었기 때문인가. 이웃이 충고를 해줘서 금년에는 둔덕을 큼지막하게 만들었다. 뿌리가 자랄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해야 한다는 이웃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친정에 갔던 아내가 열흘만에 돌아왔다. 더 머물 것이라 예상했는데 갑자기 돌아온 것이었다. 정읍역까지 마중을 나갔다. 100일만에 본 것처럼 반가웠다.

아내가 오니 집에 활기가 넘친다. 혼자 있어도 그래야 하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혼자보다 둘이 있는 게 나은가보다. (2020-10-23)

Solitude의 우리 말 역어는?

한글은 세상에서 가장 어휘가 풍부한 언어로 간주된다. 한글로 번역되지 않은 영어 표현이 별로 없지만, 영어로 번역이 불가능한 한글 표현은 엄청 많다는 사실이 그것을 방증한다.

그런데 유독 ‘혼자 있음’에 대한 우리말 어휘는 상대적으로 매우 빈곤하다. 혼자 있음은 그냥 단순히 홀로 있는 객관적 상태를 가리킬 수도 있고, 혼자 있어 외롭고 쓸쓸하다는 심리 상태까지 포함할 수도 있으며, 그와 반대로 혼자 있어서 편안하고 즐겁다는 심리 상태까지 나타낼 수도 있다. 영어로 isolation, lonliness, solitude라는 표현이 그 상황들에 각각 대응한다. 그렇다면 우리 말로는 그에 상응하는 표현이 무엇일까? 고립, 고독, ??? 세 번째 solitude에 해당되는 우리 말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과문한 탓인가?

나는 그것이 내 어휘 부족 탓이라기보다 혼자 있음에 관한 우리 말 표현이 발달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독을 즐긴다”는 표현이 있지만, 그 말은 사실 형용 모순이다. 고독이라는 어휘가 외로움과 쓸쓸함의 정서를 담고 있는데, 그것을 어찌 즐긴단 말인가. 고독을 즐긴다는 말은 번거로운 사람관계에서 벗어나 혼자 있음으로서 느끼게 되는 한적함과 평안함을 즐긴다는 의미일 것이다.

혹시나 우리 사회에는 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 그리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적극적으로 고립을 선택하는 삶을 배격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혼자 있음에 관한 표현의 빈곤은 바로 그런 사회적 배경 때문이 아닐까?

그야말로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요즘같은 세상에 작가와 인문학자들은 혼자 있음에 대한 다양한 뉘앙스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어휘들을 발굴해주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고독사’라는 표현이 맘에 들지 않는다. 혼자 살다 죽는 것이 모두 외롭고 쓸쓸하게 죽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죽음을 보는 사람들이, 기자들이 그렇게 감정이입하고 있을 뿐이리라. 고독사 대신  ‘고립 사망’ 혹은 ‘독사(死)‘, 아니면 그냥 ‘혼자 죽음’ 따위의 보다 중립적인 어휘로 바꿀 수는 없을까? 물론 그래봐야 혼자 있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선입견 혹은 편견이 지워지지 않겠지만 혼자 살다 혼자 죽는 현상에 대해 적극적은 아닐지라도 최대한 중립적으로 대해주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 있다고 반드시 외롭고 쓸쓸하지 않다. 반대로 혼자 있어서 자유롭고 심지어 행복한 사람도 적지 않다. 제발 우리 사회가 그들의 삶을 마음대로 일방적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생동안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학자라는 직업이 그러하고, 전원 생활이 그러하다. 30년이 넘는 직업 생활, 10년이 넘는 전원 생활이 모두 결혼 상태에서 보낸 세월이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내가 직장 생활을 하고 아이들은 일찍 집을 떠났으며, 직장이 먼 탓에 아내와 별도로 살림을 한 세월도 제법 길었다.

혼자 있음을 즐기지 못하면 좋은 학자가 되기 어렵다. 깊이 있게 그리고 집중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 고립은 필수적이다. 연구실 혹은 서재에서 홀로 긴 시간을 충만하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 학자에 적합하다.

혼자 있다고 폐쇄적인 것은 아니다. 미하일 바흐찐의 주장처럼 인간은 대화하는 존재이다. 사실 우리는 혼자 있어도 자주 대화한다. 자신 자신과도 대화하고, 인터넷이나 전화, 그리고 책이나 논문을 통해서 다른 연구자들과 소통하고, 이웃이나 친구와도 대화하고, 자연과도 소통한다.

학자는 그냥 적극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한다. 그것이 직업 생활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적극적 고립을 어떤 어휘로 묘사할 수 있을까? 그것이 오늘 아침 내게 떠오른 의문이었다. (2020-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