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부: e-Gov에서 i-Gov로

지난 수요일(2017/8/9)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NIA(한국정보화진흥원)이 주관한 ‘제1차 <4차 산업혁명 대응 전자정부 협의회>’에서 기조 발제를 했다. 10년 만에 2백여 명의 전자정부 전문가들 앞에 섰다.

2007년 참여정부가 끝나면서 2000년 국민의 정부 때부터 시작한  만 7년 동안의 전자정부 전문가로서의 활동에 종지부를 찍었다. 다시는 전자정부 전문가로서는 광화문에 나타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아예 개인 전화번호까지 바꾸고 광화문을 떠났다. 지난 10여 년 전자정부의 부침을 바라보면서 때로 흐뭇하기도 하고 때로 실망하기도 하였지만 한번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전자정부에 새로운 방향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새로운 정부도 들어섰고 발제에 대한 주최측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 정부가 전자정부 진화의 올바른 방향을 잡았으면 하는 바램도 있고, 정부 안팎의 전자정부 담당자들에게 힘을 좀 실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요청을 수용했다.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발표문은 링크를 클릭)

  • 향후 30년 동안에 두 가지 요인이 전자정부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특이점(singularity)의 도래와 민주화(혹은 권리주장이 강한 시민의 등장)이 그것이다.
  • 인간 향상과 유사인간(A.I., 로봇)의 출현은 다수의 인간-공무원을 잉여로 만들 것이다.
  • ‘지시’하고 ‘아웃소싱’하는 방식을 고수하면 전자정부 담당자들은 ‘잉여’를 면치 못할 것이다.
  • 스스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내부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알고리즘과 데이터 역량이 핵심이다.
  • 전자정부(e-Gov)는 지능정부(i-Gov)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information)에서 데이터(data)로 전자정부의 무게 중심이 옮겨가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그 두 가지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  만약 4차산업혁명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주체의 변신을 의미한다. 인간 향상과 유사인간-공무원은 그러한 변신의 일부이다. (윤영민, 2019-08-13)

빅데이터, 상관관계, 예측….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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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겠다. 우리나라에서 ‘빅데이터’는 시작부터 거품이었다. 그러나  ‘빅데이터’를 둘러싼 온갖 거품을 걷어내고 나더라도 기존의 계량적 사회과학 페러다임에 대해 ‘빅데이터’로 불리는 새로운 데이터 환경이 제기하는 도전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마존(amazon.com)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아마존은 추천 엔진(recommendation engine)이라는 기술-문화적 아이템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렇다고 아마존이 사업 초기부터 추천 엔진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처음에 아마존 웹사이트는 전문가들이 작성한 서평(추천)을 게시했다. 그 서평은 인기가 있었고 책 판매에 상당한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 성과에 만족하지 않았던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고객들 자신의 구매 선호를 기반으로 책을 추천하면 어떨까 상상했다. 그렇게 해서 아마존의 책 추천 엔진이 개발되었다. 오래지 않아 알고리즘에 의한 책 추천은 전문가에 의한 책 추천을 완전히 대체하였으며, 아마존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대형 인터넷 쇼핑 사이트들도 앞다투어 추천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아마존의 추천 엔진은 품목-대-품목 협업 필터링(Item-to-item collaborative filtering)이라는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설명을 단순화하기 위해 아마존에 네 권의 책(A,B,C,D)만 있고 사용자가 두 명(User 1, 2)만 있다고 하자. 만약 새로운 사용자(User 3)가 A라는 책을 보았다면 그에게 어떤 다른 책을 추천하면 좋을까? 아마존의 추천 엔진은 기존 사용자들(User 1, 2)의 책 탐색 기록 정보를 이용해서 A와 가장 상관성이 높은 책들을 추천한다(아래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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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Software Programming blog의 How does the Amazon recommendation system work?에서 가져왔음. https://kunuk.wordpress.com/2012/03/04/how-does-the-amazon- recommendation-system-work-analyze-the-algorithm-and-make-a-prototype-that-visualizes-the-algorithm/

이 과정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면, <그림 1>에서 User 1은 [B, C, B] 순으로 검색했고, User 2는 [C, A, B] 순으로 검색했다. 이 정보를 가지고 품목-대-품목 행렬을 구하면 우측의 상단과 같다. 이 행렬을 가지고 두 벡터(vector) 끼리의 코사인 유사도(Cosine Similarity, CosSim)를 구한다. 아래 식(1)에서처럼 두 벡터의 내적(inner product)을 두 벡터의 노름(norm, 벡터의 크기)의 곱으로 나누어 코사인값을 구하면 된다.

이렇게 구한 유사도는 –1에서 1까지 값을 갖는다. 코사인 유사도 –1은 두 벡터가 서로 완전히 반대 방향인 경우, 코사인 유사도 1은 두 벡터가 완전히 방향이 같은 경우, 그리고 코사인 유사도 0은 두 벡터가 서로 독립적인 경우를 가리킨다. 정보나 책 검색에서 빈도가 음의 값을 가질 수 없으므로 코사인 유사도는 0에서 1까지의 값을 갖는다.

굳이 코사인 유사도를 구하는 공식을 가져온 이유는 그것이 상관성 척도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사회과학에서 사용하는 피어슨 상관(Pearson correlation)은 아래와 같은 식으로 구할 수 있다.

식(1)과 식(2) 를 비교해 보면 가 로, 는 로 대치되었을 뿐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된다. 각 벡터의 평균을 뺀 값으로 계산된 유사도가 피어슨 상관이다(O’Conner, 2012).

아마존 추천엔진의 사례는 다섯 가지를 시사한다.

첫째, 인과성의 발견이 더 이상 사회과학의 금과옥조가 될 수 없다. 당연히 세상을 이해하려면 인과성의 발견이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은 사회과학자에 주어진 사명이다.  그러나 오직 인과성이라는 창을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고 사회현상(심지어 자연현상)을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은 사회과학자들의 아집과 환상에 불과하다.

아마존이 인터넷 비즈니스 초기에 도입한 전문가 서평(추천)은 인과관계에 근거한 비즈니스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책 추천을 위한 인과 모형을 만든다면, 그것은 고객의 개인 속성(나이, 학력, 전공 분야, 직업, 성별, 혼인상태, 취미 등)과 외부 요인(전문가 서평, 광고 등)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아마존은 상관 모형을 택해서 전혀 다른 길을 갔다.  그리고 상관관계 기반의 추천 시스템은 아마존의 사업 성공에 크게 기여하였다.

둘째, 아마존의 추천 엔진은 ‘빅데이터'(양, 속도, 형태의 어느 기준으로도 봐도 빅데이터임에 틀림없다)에 의존하고 있다. 위에 든 예는 4권의 책과 3명의 고객만을 가정했지만, 현실에서는  4백만권의 책과 3천만명의 고객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품목-대-품목 행렬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리고 요즘 아마존은 심지어 고객들의 클릭 데이터까지 실시간으로 책 추천에 반영하려고 하고 있다. 아마존에게 있어 ‘빅데이터’는 거품이 아니라 가장 중대한 사업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다.

셋째, ‘빅데이터’는 대단히 실용적인 동기에서 출발했다. 아마존은 개별 사용자의 관심이나 선호에 대해 예측함으로써 서비스 사용자가 안게 되는 정보과잉(information overloading)의 문제를 풀려고 했다. 아마존은 사용자가 책을 찾는데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입할 수 없다는 가정 아래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사용자에게 가장 적합한 책을 선별해서 제시하려고 했다. 한 마디로 ‘빅데이터’에서는 과학적 발견(설명)보다는 실용성(예측)이 우선적인 목표가 되어왔다. 아마존의 사례는 상관관계 기반의 추천 모형이 사업 목적에 매우 잘 부합되도록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넷째,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 알고리즘이 고객에게 상품을 추천한다. 빅데이터 덕분에(혹은 빅데이터 때문에) 데이터의 수집, 처리, 분석을 이제 사람 뿐만 아니라 컴퓨터가 수행하는 시대가 되었다. ‘빅데이터’의 진화 방향은 분명하다. 언젠가 데이터의 수집, 처리, 분석, 대응이 거의 모두 자동화될 것이다. 이미 상품 추천, 검색, 번역 등의 온라인 서비스 뿐 아니라 무인자동차 같은 오프라인 제품까지 모두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지 않는가.

다섯째, ‘빅데이터’에서는 ‘예측(prediction)’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전통적으로 예측은 대체로 거시적 현상에 대한 전망(forecasting)이나 시나리오를 의미했다. 빅데이터 시대에 예측은 아주 미시적인 개인(individuals) 단위까지 행해진다.  즉, 선거, 스포츠 경기, 도박, 증권시장 등에 대해 전망할 뿐 아니라 고객 개인의 선호, 욕망, 태도, 행동 등에 대해서도 예견한다. ‘예측’은 그렇게 넒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예측이 이루어지는 기반도 인과관계를 넘어서 시계열 패턴, 상관관계, 베이즈(Bayes) 추론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빅데이터’는 상당부분 거품이었음에 분명하다(그점에 관해서는 내가 다른 곳에서 논의하였다. ‘유행의 함정’ 참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품을 걷어내고 나면 거기에는 놀라운 진실이 발견된다. 그것은 전통적인 사회과학자들을 무척 불편하게 만들 진실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데이터 환경의 변화는 사회과학에게는 대지진 격이다. <빅데이터는 거품이다>라는 섣부른 비판으로 비껴갈 수 없는 흐름이다. 신중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실증 사회과학은 존재 기반의 대부분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윤영민, 2016/10/21)

<참고문헌>

O’Conner, Brendan. 2012. “Cosine Similarity, Pearson Correlation, and OLS Coefficients.” AI and Social Science (blog).  https://brenocon.com/blog/2012/03/cosine-similarity-pearson-correlation-and-ols-coefficients/

지진: 예측불가능한 위험

나는 지질학자가 아니다. ‘예측’,’위험’, ‘위험사회’ 따위를 가르치는 사회학자로서 지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지진이 워낙 중대한 위험이기 때문에 몇 가지 얘기하고자 한다.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라는 추궁에 대해 알리바이라도 만들어 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

1. 학자와 전문가를 닥달하지 말자. 지진을 예측하거나 예상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학자와 전문가들은 19세기 이래 지진 발생을 예측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실패했다. 미국지질연구소에 근무하는 최고의 지진 전문가 중 한명인 수잔 휴(Susan Hough) 박사는 아예 지진의 예측은 마치 예수의 성배를 쫓는 것마냥 허망한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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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진 예측에 대해 환상을 갖지 말자. 빅데이터 기술도 지진 예측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질학이든 통계학이든 학문은 아주 장기 예상(forecasting)을 하거나(이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진 발생 직전에 예후를 분석하는데 다소 도움이 될 뿐이다(이것도 사실 지진의 피해를 줄이는데 별로 효과가 없다). 지진이 발원하는 지하세상(지진은 지하 수킬로미터부터 수백킬로미터에서 발생한다)에 대한 정보는 누구에게도 없다. 정보 자체가 빈약한데 빅데이터기술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진이 언제, 어디서, 어떤 규모로 발생할 지는 ‘수수께끼’라고 말하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지진이 발생해도 그것이 본진인지, 전진인지, 혹은 여진인지조차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3. 진도를 표시하는 숫자가 작다고 가볍게 보면 안된다. 진도 1차이는 에너지 방출량으로 보면 32배 차이가 난다. 진도 4.5보다 진도 5.5가 32배 크고, 진도 6.5는 진도 5.5보다 32배가 크다. 히로시마원자폭탄은 에너지 방출량으로 보면 6을 약간 넘는 지진이었고, 북한의 최근 핵실험은 5 정도의 지진이었다. 피해 규모는 진원의 깊이에 따라서도 크게 다르다. 최근 이탈리아 중부지역에서 발생한 6.2 규모의 지진은 엄청난 피해를 초래했다. 지표면에서 비교적 가까운 지하 4km 지점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진강도와에너지방출수준

4. 북한 핵실험이 남한의 지진 단층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는 속단할 수 없다. 아직 그 인과관계에 대한 연구가 없다. 북한의 핵실험의 규모가 더 커지면 우리 지진 단층에 어떤 영향을 줄 지 시뮬레이션을 충분히 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문제를 풀면 더 좋을 것이다.

5. 원전이나 방폐장의 내진 설계를 믿지 말자. 6.5 진도에 대비한 설계라는데 이번 지진을 통해서 경주 지역에서 6.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2011년 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로 기록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사례가 도움이 된다. 일본의 지진 전문가들은 도호쿠 지방에 9.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제로로 보았다. 그래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원자로를 8.6 규모의 지진에 견디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그런데 진도 9.1 지진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 7.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이번 지진을 겪으면서 이전보다 적어도 열배 이상 높아졌을 것이다(시간이 있으면 직접 계산해 볼 수도 있을텐데, 그 정도는 지진 전문가들에게 맡겨두겠다).

6. 위험에 대한 대비는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개인적 선택이다. 위험은 현재화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100년 동안 6.5 이상의 지진이 한반도에서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에 10년 안에 6.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만이 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우리는 그런 나라에 속한다), 원전의 내진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 물론 가장 좋은 대안은 핵발전을 중지하는 것이겠지만.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낡은 주택과 아파트는 모두 내진 진단을 받아야 하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보강하거나 다시 지어야 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건축물의 내진 설계를 믿지 않는다. 내진 설계 전문가가 얼마나 있는지도 의문이고 건설과 토목 분야에 부정부패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감리가 제대로 되었는지도 의문이다.

다행히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최악의 수준은 아닐 것이다. 잘 대비하면 재난을 충분히 피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윤영민, FB 9/20 포스팅 전재)

신자연주의론 메모(3): 모든 시험이 폐지되다

2025년 나라가 대혼란에 빠졌다. 시험이라는 제도가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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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무엇이던가. 고려 광종 때 최초로 과거제도가 도입된 이래 시험은 1천년 이상 우리 사회에서 국가가 인재를 등용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었다. 비록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시험은 어떤 방법보다도 객관적이며 공정하게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방법으로 인정받아왔으며,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기적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개방성의 상징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학교는 시험을 위해 존재했고, 공부란 시험을 위한 학습에 다름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제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다. 아직 인재 등용의 새로운 방안도, 사회적 공정성을 구현해 줄 새로운 제도도, 사람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새로운 수단도 굳건하게 자리잡지 못했는데, ‘갑작스럽게’ 시험이 그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시험의 정당성이 흔들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험이 우리 사회와 우리 문화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게임’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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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의 위기는 어떤 이유론가 부정행위가 만연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게임의 규칙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부정행위는 아니지만 수험생의 학습곡선을 100배쯤 향상시킬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이용가능해졌다. I.Q.로 말하자면, 100~200 정도의 수험생들이 1,000이 넘는 수험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시험은 학식, 암기력, 계산능력, 추론 능력, 순발력, 집중력(거기에 시험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인내심을 추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등에 기반하여 학업 성취와 능력을 평가한다. 운이 좋은 사람은 뛰어난 유전자와 후원을 얻기도 하지만 그 정도의 불평등은 용인되었다. 그리고 컨닝 페이퍼를 볼펜에 숨기는 정도의 ‘전통적인’ 부정행위는 결정적인 시험이 아닌 다음에야 대체로 눈감아 줄 수 있었다. 그런 편법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수험생 자신의 노력 없이는 시험을 성공적으로 치룰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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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1년에 개봉된 영화 ‘리미트리스(Limitless)’가 현실이 되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명색이 소설 작가이지만 몇 달 동안 글 한 줄 쓰지 못한 채 폐인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옛 애인의 오빠에게서 얻은 두뇌 강화제 NZT 48 한 알을 먹고  완전히 다른 삶을 경험하게 된다. 갑자기 에너지가 주체할 수 없게 샘솟고 과거 언젠가 공부했던 지식이나 인터넷에서 스쳐간 정보와 지식이 모두 살아나서 적시에 머리에 떠오른다. 그는 출판사의 편집자가 놀랠 정도의 탁월한 작품을 일주일 만에 탈고하고 곧 주식투자의 신으로 떠오른다.

2020년대에 NZT 48은 흔해 빠진 약이 되었다. 그만큼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지만  이미 지금도 유사한 두뇌강화제–일명 스마트 알약–가 팔리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모다피닐(Modafinil)이다. 원래 기면증(수면장애) 치료제로 개발되었지만 그것이 기억력이나 집중력을 강화하는데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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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귀한 약을 우리 강남 아줌마들이 가만 두겠는가. 이미 ‘총명주사’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http://www.white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67046). 강남 아줌마가 아니라도 그렇다. 누구라고 그 강력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아직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조만간 부작용이 거의 없는 스마트 알약이 등장할 것임에 분명하다. 기업들이 그 엄청난 수요에 눈감을 수 있겠는가.

작년 여름 하버드와 옥스포드 공동 연구팀은 모다피닐의 효과를 검증한 논문 “모다피닐이 건강한 수면패턴을 가진 사람들의 인지능력 향상에 미치는 영향”을 ‘신경정신약리학’회지에 발표했다. 일반인들의 인지능력을 크게 강화시킨다는 것이었다 (http://www.hankookilbo.com/v/5339d19063794153a692b0e22abf80d4).

스마트 알약이 I.Q.를 10쯤 높여준다면 그런대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I.Q.를 열배쯤 높여준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인간 향상(human enhancement)이 그러한 화학적 방법 뿐 아니라 DNA 조작과 같은 생물학적 방법, 나노 로봇이나 칩(chip) 이식과 같은 물리적 방법 등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법으로 그 사용을 규제할 수 있을까.

10년 후쯤이면 모든 시험에서 ‘공정한 경쟁의 원칙’ 같은 것은 이미 시대착오적 게임규칙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10년은 대통령 두 번 뽑는 기간에 불과하다.

그 시대에 학교에서 학습 성취도  평가는 어떻게 하고, 입학 시험, 입사 시험, 공무원 시험, 그리고 온갖 자격 시험은 어떻게 할 것인가. 보다 근본적으로 학생들의 학습곡선이 지금보다 100배쯤 나아진 시대에 학교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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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타계한 앨빈 토플러 박사의 충고가 새롭게 다가온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특이점이 채 오기도 전에 우리는 시험이 사라지는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I.Q. 500 (1,000이라고 해도 좋다)의 트랜스 휴먼(trans-human)이 흔해지는 시대에 우리 사회는 어떻게 재설계되어야할까. 교육학자들, 사회학자들, 잠자리가 편한가. (2016/07/5)

신자연주의론 메모(2): 인간이 안고 있는 숙제들

인간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들을 안고 있을까? 전쟁, 폭력, 살인, 기아, 빈곤, 질병, 노화, 죽음, 고독, 착취, 억압, 배제, 장시간 노동, 실업, 사회갈등, 환경오염….또 무엇이 있나.

그 문제들의 발생 원인은 크게 사회적 요인과 비사회적 요인, 두 가지이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인간이 직면한 중대한 문제들은 거의 예외없이 사회적 요인과 비사회적 요인이 뒤섞여 발생함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가장 비사회적 요인 때문에 발생할 것으로 생각되는 죽음을 보자.

조너던 실버타운(<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 2016)에 의하면, 공중보건, 의학, 삶의 질 향상 덕분에 인간의 기대수명은 지난 200년간  거의 두 배로 늘었으며, 유전자가 개인의 수명에 25~35% 정도 관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 원인을 보면(아래 표 참조), 남녀 순위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자살, 폐렴, 당뇨병이  가장 큰 원인이다.

사망원인통계

이 원인들은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그리고 사회적 요인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 즉, 조상으로부터 어떤 유전자를 물려 받았는지, 물리적으로 어떤 환경에서 살아 왔는지, 어떤 직업을 갖고 있었으며, 어느 정도의 재산과 소득을 누리고 있었는지, 어떻게 일상생활을 해왔으며, 그리고 어떤 대인관계를 갖고 있었는지 등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유전학이 발전하면 사망 원인들의 유전적 요인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을 것이고, 나노테크놀로지의 발전은 그러한 질병들을 획기적으로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과학 발전은 물리적 환경까지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발전이 전쟁, 폭력, 살인, 갈등, 사기, 절도, 억압, 착취 등과 같은 사회적 요인도 마법처럼 덩달아 사라지게 할까?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언젠가–한 20~30년 후쯤이면–세월호 침몰, 미국 올랜도의 총기 난사, 터키 국제공항의 자살테러, 방글라데시 다카 도심의 인질 테러 등에서 목격되는 사람들의 비극적 죽음이 사라지게 될까?

아마도 그렇게 믿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면 몽상가일 것이다. <특이점이 온다>에서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우리더러 그렇게 믿으라고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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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학과 나노테크놀로지의 발달은 머지않아 100세 건강수명(healthspan) 시대를 실현시켜 줄 것이다. 기껏해야 60~70세 정도의 수명을 전제로 설계된 현재의 사회와 문명에게 100세 건강수명은 중대한 도전을 초래할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하면서 100년 동안 살아갈 것인가. 사람들이 100년 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란 어느 사회, 어느 정부에도 힘겨운 과제임에 분명하다. 그것은 수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죽음 이외의 다른 중대 문제들도 마찬가지이다. 전쟁, 폭력, 살인, 기아, 사기, 부정부패, 빈곤, 고독, 불평등, 착취, 억압, 배제, 장시간 노동, 사회갈등, 환경오염 등 어느 문제를 살펴보아도 대동소이하다. 과학기술 덕분에 생산력이 급증하고,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면 그 문제들이 해결될까?

God-and-scientist

과학과 과학자들이 다음 세기의 구세주가 될까? 커즈와일은 그럴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런데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위험사회론이 잘 지적하듯이 지난 2백여 년 동안 과학자들은 문제를 푸는 것만큼 문제를 새롭게 만들어 왔다. 원자핵, 신무기, 생화학무기, 인터넷 중독, 사이버 테러 등을 생각해 보라. 향후 1백년 동안 과학자들이 과거보다 사회적으로 더 책임있는 모습이 되리라 믿을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과학이 빈곤, 질병, 죽음과 같은 숙제를 푸는 데 크게 기여하리라는 점은 의심되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과학기술 문명이 만들어 내는 난제의 해결은 과학이 아니라 결국 정치, 사회, 문학, 철학, 예술, 그리고 종교에게 맡겨지지 않을까.(2016/07/04)

신자연주의론 메모(1): 특이점 그리고 그 이후

SAMSUNG CSC
김영사. 2007.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뛰어날 뿐 아니라 담대하다. 그는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천문, 심리, 의학, 전산학 등의 첨단 연구를 종횡무진 인용할 뿐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주저없이 명쾌하게 제시한다. 사실 보수적이고 분절적인 학계에서는 그 두 가지 모두 위험천만한 행동인데 말이다.

2005년 출간 이래 <특이점이 온다>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10여년 동안에 출판된 책 중 가장 심대한 사회적 영향을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많은 찬사와 비판이 쏟아졌으며, 그 책으로 인해 Singularity University라는 초유의 기관이 설립되고 첨단기업들의 AI 연구가 크게 활성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글판이 10년 동안 9쇄나 인쇄되었으니 그 영향이 작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내용이 쉽지 않은데다 840쪽이나 되는 책을 독자들이 얼마나 충실히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열흘 전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특이점(singularity)을 언급하면서 내년으로 예정된 은퇴를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10년 정도 특이점의 도래에 대비한 사업을 주도하고 물러나겠다는 것이었다.

책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가득하다.  하지만 저자의 분석 모형은 몇 가지 요소로 요약된다:

1) 인간 중심: 인간은 우주 진화의 정점. 인간은 21세기 중엽까지는 첨단 과학기술로 진화의 새로운 단계를 열 것이고, 궁극적으로 우주 전체를 지능적 존재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2) 지능 제일: 우주를 지배하는 최고의 힘은 지능(intelligence). 기억, 분석, 추론, 상상, 사랑, 공감 등은 모두 지능의 측면들이다. 진화는 보다 강력한 지능을 추구하는 단일한 경쟁이다. 지능은 인류와 지구가 직면한 문제, 나아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에 해답을 줄 것이다.

3) 기술 진화: 지능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집약되며, 과학기술의 발전은 가속적이다. 21세기는 GNR(Genetics, Nano technology, Robotics) 혁명의 무대. 2020년~2030년 정도이면 유전학은 질병과 노화를 대부분 해결하며 발전의 정점에 도달할 것이다. 2030~2040년에는 나노기술이 생물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전학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몸과 뇌, 그리고 인간이 사는 세상을 분자 수준으로 정교하게 재설계하고 재조립하게 해 줄 것이다. 가장 강력한 혁신은 로봇공학에 의해 실현된다. 인간은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창조할 것이며 그 이후의 진화는 인공지능의 몫이다. 2040년~2050년에 인류는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한다. 생물과 비생물의 구분, 인간과 로봇의 구분,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사라지며, 인간에 대한 해독이 끝나고 인간은 전혀 새로운 존재양식을 갖게 된다. 특이점 이후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 신체 구성, 수명, 쾌락 수단 등을 자유롭게 선택하게 된다.

4) 유물론: 생명의 본질은 정보이며, 생명체는 정보를 처리하는 일종의 컴퓨터이다. 몇 가지 중대한 혁신이 이루어지면서 박테리아 수준의 생물체가 탄생했고, 생물체는 수십억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 고도로 지능적인 인간에 도달했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이다.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스스로 자신을 뛰어넘는 존재로 진화한다. 과학기술 덕분에 질병, 노화,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면서 신과 종교는 불필요해진다. 죽음이 더 이상 미화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은 예방될 수 있는 정보의 손실일 뿐이다.

<특이점이 온다>는 S.F.도 아니고 철학서도 아니다. 과학자이며, 발명가이고, 사업가인 한 천재가 제시한 미래 예측이다.  그리고 그것은 21세기의 인류 문명을 이끄는 기업과 기관들의 사업 로드맵에 반영되고 있다. 사실 그점이 이 책을 다른 미래전망서와 구분짓고 있다. 그 책은 단지 미래를 예측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이점의 구체적인 범위와 도래 시점은 논란의 대상이고, 그의 예측은 맞는 것만큼이나 빗나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특이점의 도래를 완전히 부정할 수 있을까. 과학기술은 커즈와일이 예견한 방향으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그에게서 영감을 받은 사업가들은 새로운 시대를 선점하기 위해 분주하다.

특이점은 올 것이다. 그가 묘사한 것처럼은 아닐지라도. 그가 얼마나 정확히 예측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대전환–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던–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예비할 것인가이다.

나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적극 수용하지만 그의 기계론적 우주관–그것은 다수의 과학자들이 암묵적으로 취하고 있는 우주관이기도 하다–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가. 얘기해 보자. (2016/07/04)

사회연결망분석, 충분히 유용한가?(1)

지난 40여 년 동안 사회연결망분석(social network analysis, SNA)은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데 유용함을 증명했다. 구직 활동에서 개인의 ‘약한 관계(weak ties)’가 중요함을 보인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의 연구,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을 잘 메꾸는 사람이 승진에 유리하다는 로날드 버트(Ronald Burt)의 연구, 그리고 미국 로비 단체들의 커넥션과 대기업들의 상호 지배를 밝힌 에드워드 라우만(Edward Laumann)의 고전적 연구부터 시작해서 최근 빅데이터를 이용한 SNS 분석에 이르기까지 사회현상분석에 있어 SNA가 보인 성과와 잠재성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개인에 있어 사회연결망(social network)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개인의 행복, 불행, 외로움, 두려움, 정체감, 삶의 질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또한 그것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남북한 대립, 과학적 발견, 기술적 혁신, 정치적 후진성, 구조 조정, 저출산, 고령화 등과 같이 우리 사회의 중대한 현안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그런 문제에 대한 해법이나 영감을 얻는데 기여한 SNA 연구를 본 적이 없다. (혹시 그런 소중한 연구를 알고 있는 분은 내게 꼭귀뜸해 주기 바란다.)

나는 SNA가 그러한 한계를 보이는 것이 연구자들이 무능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지난 30여 년 동안 미국사회학 분야에서 가장 머리 좋은 젊은 학자들 중 상당수가 SNA에 뛰어들었고,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사회학은 물론이고 커뮤니케이션, 경영학, 정치학 등 여러 분야에서 우수한 신진 학자들이 SNA 연구를 하고 있다. 한 마디로 SNA연구가 사회과학 분야의 가장 뛰어난 신진 학자들을 대거 흡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그것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SNA 모델링이 방법론적 금기(methodological inhibition)와 규정화 오류(specification errors)에 막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SNA라는 도구가 학자들의 문제의식과 상상력을 억압하고 있다는 말이다.

C. 라이트 밀즈(Mills)는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문제 의식을 따라서 연구주제를 선택하기 보다 자신이 적용하는 방법론이 허용하는 연구주제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음을 비판하는데 방법론적 금기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그 비판을 SNA 연구에 적용하면, 사회관계중 양적으로(quantitatively) 측정이 가능하고, SNA 모형으로 표현이 가능한 사회관계만이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규정화 오류라는 두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동일한 척도로 측정될 수 없는 요인은 아예 처음부터 모형에서 제외된다. 그것이 설령 중요한 결정 요인이라고 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예컨대 대화를 트윗(tweets)을 수집해서 분석한다면, 설령 현실에서 바디 랭귀지나 눈빛을 통한 대화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분석 모형에 포함될 수 없으며, 트위터를 사용하지 않은 사회 집단, 애완 동물, 식물 같은 존재는 원천적으로 분석모형에 포함될 수 없다. 분석모형에서 중요한 결정요인이 빠져 있으면 요인들의 계수 추정은 신뢰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사회연결망(social network)을 확장해서 타자 관계망(network of  others) 분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자관계망 분석은, 나는, 왜 불행한가, 왜 외로운가, 혹은 왜 두려운가, 나는 누구인가, 내게 가장 중요한 존재는 누구인가, 나는 세계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 등과 같은 문제에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관계망 분석은 개인의 사회적 상황이나 심리상태에 대한 설명을 넘어서 개인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있어서도 대단히 효과적인 접근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관계망은 사회연결망(social networks)과 다르다. 사회적 관계망에는 인간과 조직만이 노드가 되지만 타자 관계망(network of others)에는 사람, 조직, 국가,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생물, 무생물, 교통, 통신, 자연 환경까지도 노드가 될 수 있다. 아래 그림을 보면 타자관계망이 사회연결망과 얼마나 다른 지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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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질적이고 다층적이며 복잡한 관계망이 과연 도움이 될까? 나는 타자의 중요성(significance of others)을 중심으로 모델링을 하면 충분히 간략해질 수 있으며, 질적 분석과 양적 분석이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잠재성을 검토해 보자. (계속)

신의 언어, 선지자의 언어

수학

이 세상을 창조하는데 왜 6일이나 걸렸을까? 전지전능한 신인데 한 순간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에 대해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는 이렇게 생각했다. ‘6’이 완전한 숫자였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주의 완전함을 계시하기 위해 일부러 6일이나 시간을 끌었다”(사이먼 싱, 1998에서 재인용).

완전수(complete number)란 약수들의 합이 본래의 수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수를 말한다. 6의 약수는 1, 2, 3이고 그 셋을 더하면 6이다. 6 다음의 완전수는 28이다.

완전수의 존재를 발견한 것은 피타고라스(Pitagoras de Samos)였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을 통해서 우주의 비밀을 밝힐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세상이 수학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유명한 피타고라스 정리는 그가 찾아낸 법칙 중 하나였다. 그로부터 2천년 후 갈릴레오(Galilo Galilei)는 같은 의미에서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사용한 언어가 수학이다”라고 주장했다.

수학자나 과학자가 아니고는 그러한 주장에 공감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도 그러한 믿음을 버리지 않은 수학자나 과학자들이 많다.

나는 그러한 믿음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수학적 해석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는 점이 좀 걸릴 뿐이다.

수학자들만 신의 의도를 읽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선지자들(prophets)도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은 수학자들과 달랐다. 수학자들이 신의 기획을 이해하려고 했다면, 선지자들은 신의 뜻을 대중에게 전달하려고 했다.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선지자들이 선택한 표현 형식은 메타포(metaphor, 은유 혹은 비유)였다. 예수, 공자, 석가모니와 같은 인류의 스승들은 예외 없이 메타포를 즐겨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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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포는 수학에 못지 않게 강력한 표현 도구이다. 그것은 청중의 수준에 맞추어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게 해주고, 선지자가 권력의 탄압을 피해갈 수 있게도 해준다. 게다가 두고두고 시대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다.

메타포의 구조는 단순하다. 한편에는 중대하거나 난해한 메시지가 있고 다른 한편에 일상적인 개념이 있다. 추상적인 메시지를 직관적 언어로 풀어주는 방법이다. “인생은 여행이다”, “TV는 바보상자”, “삶은 한편의 연극”,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

때로는 한 문장이나 한 문단이 아니라 책, 그림, 조각, 건물, 영화 등이 통째로 메타포일 수도 있다. 예컨대 성경 중 가장 난해하다는 요한 계시록이 그러하다.

나는 뛰어난 S.F. 소설이나 영화도 하나의 메타포로 간주한다. 조지 오웰의 <1984>, 리들리 스콧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그리고 이번 주 학교 수업에서 다루었으며, 오늘 고전 문학 동아리에서 토론할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도 그렇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거기에는 오늘의 관점에서 재발견해야 하는 역사서의, 그리고 역사가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S.F.도 그러하다. 그것은 단순히 미래에 관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거기에는 오늘의 관점에서  재해석되어야 하는 작품의,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탁월한 S.F.는 현대 사회에 대한 철학이며 윤리학이고 사회학이다. 거기에는 인간과 사회의 본질, 인간과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규범에 대한 작가의 고뇌가 녹아있다. 청중은 거기에서 오늘날에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해답을 찾을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된다.

수학으로부터, 그리고 뛰어난 메타포와 S.F.로부터 우리가 더욱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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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vs 인공지능, 진실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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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라는 역서가 출간되었다. 영국의 리딩대학교(University of Reading)의 저명한 인공지능 연구자인 케빈 워릭 교수의 저서였다. 5백쪽이 넘는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내 수업의 교재 중 하나로 채택했다.

그는 팔에 실리콘 칩으로 된 트랜스폰더를 이식했다. 그리고는 영국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미국에 있는 부인에게 신호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그에게는 최초의 인간-사이보그(cyborg)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 책을 읽힌 다음 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 물었다.

“자신이 90% 이상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드세요?”

“자신이 70% 이상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50% 이상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30% 이상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결코 사이보그라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다수의 학생들이 자신은 30% 이상 사이보그라고 대답했다. 워릭 교수는 결코 인간 최초의 사이보그가 아니었다. 사이보그가 되는데 몸에 굳이 칩을 이식할 필요가 없었다. 칩은 다만 상징일뿐.

통신 네트워크는 이미 매클루언적 의미에서 우리의 신체적(그리고 정신적) 연장(extension of body)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명된 이후 우리는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끊임없이 ‘접속’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두뇌 기능은 상당 부분 네트워크에 아웃소싱되어 인터넷과 스마트폰 없이는 우리는 제대로 생각할 수조차 없다. 그래도 단지 몸에 기계를 이식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사이보그가 아니라고 자위할 것인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 관한 수많은 논의들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인간과 기계 사이에 대한 범주착오(category mistake)를 본다. 알파고는 바둑에서 승리만을 미션으로 수행하는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난 계산, 판단, 추론 그리고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프로그램된 존재(programmed being)이다.

그런데 우리는 프로그램된 존재가 아닌가? 유치원 때부터, 아니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그보다 더 일찍부터 생존경쟁에서 이기도록 프로그램되고 있지 않는가? 지금 우리가 아이들에게 심어주려고 하는 알고리즘들은 오직 승리라는 목적만을 위해 사용되도록 개발된 것들이 아닌가? 우리가 가정과 학교에서 생존의 전사를 길러내고 있고 있음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인공지능의 응용에서 가장 앞서 가는 업체 중 하나인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가 생산하는 로봇이 어디에 일차적으로 사용될 것인가? 아마도 그것은 전투일 것이다.

Lance Cpl. Brandon Dieckmann, (front), native of Las Vegas and Pfc. Huberth Duarte, from Riverside, Calif., and infantrymen with India Company, 3rd Battalion, 3rd Marine Regiment, prepare to walk with the Legged Squad Support System through a grassy area at Kahuku Training Area on Oahu, Hawaii, July 12, 2014, during the Rim of the Pacific 2014 exercise. The LS3 is experimental technology being tested by the Marine Corps Warfighting Lab during the Advanced Warfighting Experiment. It is programmed to follow an operator through terrain, carrying heavy loads like water and food to Marines training. There are multiple technologies being tested during RIMPAC, the largest maritime exercise in the Pacific region. This year's RIMPAC features 22 countries and around 25,000 people. (U.S. Marine Corps photo by Cpl. Matthew Callahan/RELEASED)
The LS3 is experimental technology being tested by the Marine Corps Warfighting Lab during the Advanced Warfighting Experiment. It is programmed to follow an operator through terrain, carrying heavy loads like water and food to Marines training. There are multiple technologies being tested during RIMPAC, the largest maritime exercise in the Pacific region. This year’s RIMPAC features 22 countries and around 25,000 people. (U.S. Marine Corps photo by Cpl. Matthew Callahan/RELEASED)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인식 방법을 빌리자면, 알파고와, TV와 인터넷을 통해서 전세계에 중계된 이세고와 알파고의 바둑 대결은, 이미 우리 자신이 프로그램된 존재이고 우리 사회가 그런 전사들이 지배하는 황폐화된 전장임을 은폐하는 쇼가 아닐까? 기술비평가들은, 그리고 그 비평가들의 언설을 통해서 우리는 짐짓 진지하게 인간성(humanity)을 다시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의 의례(ritual)로 끝날 뿐이다. 언제 그랬냐는듯이 우리는 다시 생존의 ‘전장’으로 내몰리고 기꺼이 전투 모드로 돌아온다. 하나의 슬픈 코메디다.

미래 사회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존재는 인간도 인공지능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거대한 시스템(system)이리라. 오직 최고의 이윤과 효율성만을 덕성으로 인정하는 비정한 시스템 말이다. 창의성도, 사랑도, 공감도, 인격도, 자연도, 인문학도, 심지어 비극마저도 돈이 될 때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 시스템. 이미 그 시스템은 프로토타입(prototype) 수준을 넘어 우리 사회의 실제(reality)가 되어 있다.

진실로 우리가 인간이기를 바란다면 그 시스템에 싸움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진실로 인간이기를 바라기나 하는 걸까? (2016/3/31, 윤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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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Blade Runner의 한 장면. 인조인간 레플리컨트(replicant)와 레플리컨트를 사냥하는 인간 블레이드 러너 중 누가 더 인간적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블레이드 러너 조차 인조인간이 아닌가하는 해석도 있다.)

이 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

현대 사회는 마치 신기루 같습니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다양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지 어떤 천재의 눈에도  쉽게 잡히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겠지요. 어차피 우리는 살아야 하고 기왕에 살아야 한다면 잘 살아야 하니까요.

급변하는 세상에서는 자기가 태어난 땅에 살면서도 마치 이민자가 되어 낯선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성공적인 이민자들이 이민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적응도 잘 하고 사업도 잘 운영할 수 있을테니까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현재의 사회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난 가을 교육부가 개통한 온라인 대학교육 서비스인 K-MOOC에 제가 <정보사회학 입문>을 개설한 이유는 이웃들이 새로운 세상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강의에서 저는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실마리가 되는 일곱 가지 키워드를 선정하고 그 키워드에 관련된 고전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를 분석했습니다. 프라이버시, 맥도날드화, 위험사회, 유희, 네트워크, 연극공연, 그리고 선물경제가 제가 고른 키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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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공부하다가 난관에 부딪치면 고전에서 지혜와 영감을 구하곤 합니다. 이 강의에서 그런한 저의 노력을 이웃들과 공유하고자 하였습니다. 다만 저는 고전 문학에서 영감을 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만 과목의 성격상 강의에는 사회과학 고전만 포함시켰습니다.

4월 1일에 한양대학교 K-MOOC  서비스가 다시 시작됩니다. 이번에는 7주 동안 학기가 진행됩니다. 수강생들, 담당 교수, 그리고 운영진의 소통을 위해서 페이스북에 그룹(‘K-MOOC 정보사회학 입문’)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학기에는 9백명 정도가 <정보사회학 입문>을 수강했습니다만, 이번 학기에는 그보다 적은 수가 수강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덕분에 수강생들과 함께 대화할 기회가 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윤영민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