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화에 대한 저항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이 지배적인 곳에서는 모든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牧歌的)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것은…인간과 인간 사이에 노골적인 이해관계, 냉혹한  ‘현금 계산’ 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남겨놓지 않았다(The bourgeoisie, wherever it has got the upper hand, has put an end to all feudal, patriarchal, idyllic relations. It…has left remaining no other nexus between man and man than naked self interest, than callous ‘cash payment’).

모든 인간관계가 상품(commodity)으로 전락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16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가족, 친구, 이웃 사이에 아직 상품화되지 않은 관계들이 존재하는 걸 보면 그들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법칙(law)까지는 아니더라도 경향(trend)으로서의 상품화를 부정하기는 힘들다. 도시에서야 오래 전부터 문밖에만 나서면 모든 게 돈이었지만, 이제는 농촌에서마저도 돈내지 않고 편안하게 들를 수 있는 곳이 점점 드물어 간다. 구경할만한 곳은 울타리를 막고 입장료를 받으며,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무데나 가서 자리를 깔고 쉬거나 식사를 할 수도 없고, 깨끗하고 시원한 물 한 잔 얻어 마시기도 쉽지 않다.

내가 사는 필암마을도 꼭 그렇게 되어야 할까? 옛날의 시골 인심이 살아있게 할 수는 없을까?

서원과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깨끗한 공기, 아름다운 경치, 편안한 공간, 시원한 식수, 그리고 맛있는 막걸리와 김치 정도는 즐기고 돌아가게 할 수는 없을까? 무료로 말이다.

올해는 이 전통을 만들어봐야겠다. 상품화에 대한 소소한 저항이다. (2016/04/24, 윤영민)

개울의 길이는?

“아빠, 깨끗한 개울을 따라 걸으니 기분이 정말 좋아요.”

함께 산책하던 막내가 즐거워한다. 2주일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변화가 개울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호영아.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개울의 길이가 얼마나 될 것 같으냐?”

“모르겠는데요. 재보지도 않고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보기에 3km에서 약간 부족할 것 같다. 2.6km에서 2.8km 정도 될 것이다.”

“어떻게 알아요?”

“집 앞  빨랫터에서 이 개울이 끌나는 문화센터까지의 직선 거리가 900m 정도 된다. 거기에 (3.14)를 곱하면 개울의 길이를 구할 수 있다. 농수로로 쓰기 위해 직선으로 만든 부분을 감안해서 100m정도 빼주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왜 를 곱해요?”

“수학자들의 발견에 의하면 완만한 경사를 흐르는 강의 길이는 직선 거리의 이다. 몽골 초원의 구불구불한 강들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오, 재밌네요.”

“그렇지? 수학자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법칙을 찾아서 공식으로 표현하려고 한단다. 우주가 수학적 법칙으로 움직인다고 믿는 것이지.”

“이제 포크래인을 가지고 개울 바닥에 깊이 묻힌 무거운 쓰레기만 치우고 나면 우리 개울은 세상의 어느 나라의 개울 못지 않게 깨끗해질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가 산책할 때 집게와 쓰레기 봉투를 들고 새로 버려진 쓰레기를 수시로 치우면 된다. 그러면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 따라 개울이 아주 말끔하게 유지될 것이다.” 

개울청소1
가장 멋진 곳일수록 쓰레기가 많았다. 쓰레기를 치워놓으니 개울의 정겨움이 되살아난다. 4월 11일 오전의 모습이다.
개울청소2
개울에서 건져낸 쓰레기가 다양하다. 전국 도시주변 농촌의 개울이 비슷한 상태이지 않을까?
개울청소3
면사무소가 노인일자리 제도를 이용해서 10명 이상의 어르신들을 보냈다. 한 남자 어르신이 전신 장화를 신고 쓰레기를 건져내고 아주머니들이 건져낸 쓰레기를 마댓자루에 담았다. 이제 포크래인이 개울 바닥에 박힌 대형 쓰레기를 치우면 청소가 마무리될 것이다.
개울청소4
개울에서 가장 쓰레기가 많았던 곳이 깨끗해졌다. ‘국민성’이란 독재자들이 만들어 낸 신화일 뿐이다. 우리도 일본이나 네덜란드만큼 깨끗한 환경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안된다”고 해버리면 결코 변할 수 없다. “된다고”고 믿으면 가능성이 열린다. 이웃과 자신을 믿고 실천에 나서면 면사무소도 군청도 움직인다.

“쓰레기는 보는 대로 주워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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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몰래 버린 폐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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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가 만 건축 폐자재 — 이것은 면사무소나 군청이 치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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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 바닥에도 폐비닐
그냥 치워야지. 모두 이웃들이 버린 쓰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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퍠비닐 —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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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가 밭에서 흘러내리는 폐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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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폐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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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또 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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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히 2년은 버려져 있는 수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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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병들 — 정말 대책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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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정자나무 옆 집이 버린 폐자재. 치워달라고 부탁하니 나중에 치우겠다고. 내가 그냥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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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개울이 저렇게 더러우니 누가 들어갈 수 있겠나…. 

눈과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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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암뜰에서 눈사람 만드는 아이들

필암에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 하지만 날이 포근하기 때문에 금방 녹아버린다. 그래서 필암에서 눈을 즐기려면 제법 운이 좋아야 한다. 어제 마을에 학생들이 행운과 함께 체험학습을 왔다. 아침에 눈이 많이 내려 필암뜰에서 하늘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눈위를 걷기도 하면서. 농촌에 사는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혜택은 자연과 더불어 실컷 지낼 수 있다는 점일 게다. 사실 어느 지역의 아이들에게도 자연은 가까이에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필암뜰이 더 많은 아이들에게 자연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눈에 갇힌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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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암문화원에서 바라본 필암뜰

폭설로 인해 마을 전체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었다. 60평생에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장성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말을 이사온지 4년만에 실감하고 있다.

폭설 때문에 비날하우스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 강추위에 어르신들은 무사하신지 모르겠다. 아직 눈이 내리고 있고 오후 3시인데 영하 9도이다. 내일 오전까지는 계속 내릴 모양이다. 아무쪼록 마을 주민들 모두 피해를 입지 않고 이 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눈속의 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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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속의 필암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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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속의 필암마을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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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리는 필암문화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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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의 필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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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빨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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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속의 삼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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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멈춘 필암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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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멈춘 핑암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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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필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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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필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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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필암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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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필암 실개천

살기 좋은 마을이 되려면…

나이 든 사람들에게 마을이 살기 좋으려면, 아름다운 경관, 깨끗한 환경, 편리한 교통, 훌륭한 의료시설, 좋은 이웃이라는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마을을 찾기는 무척 어렵다.

사실 그 중 아름다운 경관과 깨끗한 환경을 갖추었으면서 동시에 교통이 편리한 곳은 드물다. 교통이 좋으면 공업이나 상업 시설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명과 자연을 조화시키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인들의 삶의 질을 위해서는 의료 시설이 대단히 중요하다. 대중 교통을 이용해서 좋은 병원이나 의원에 손쉽게 갈 수 있어야 한다. 응급 상황에서는 5-10분 이내에 앰블런스가 도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 조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면 그것은 좋은 이웃이리라. 다정하고 친절한 이웃이 있으면 매일매일의 생활이 즐겁고 비상시에는 긴급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좋은 이웃이며, 깨끗한 환경, 그리고 심지어 의료시설까지도 두 가지 숨은 조건에 의지한다. 하나는 훌륭한 리더이고, 다른 하나는 커뮤니티를 위한 자신의 애정과 노력이다. 그런데 훌륭한 리더는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과 노력을 끌어낼 수 있고, 환경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유지하며, 심지어 교통과 의료시설의 접근성을 높일 수도 있다.

결국 살기좋은 마을이 되려면 훌륭한 리더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리더는 변화를 일으킨다. 멋진 비전을 제시하고,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며, 사람의 행동을 변하게 하고, 나아가 이웃들 사이에는 화평을, 마을에는 번영을 가져온다.

전통 연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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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패연과 가오리연

필암마을의 뒷산에는 전통 연에 쓰이는 시누대가 많이 자라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이 시누대를 베어 와서 정성을 들여 연 살을 깎았다. 연을 만드는데는 살을 깎고 다듬는 작업이 가장 어렵다.

연에는 가볍고 질긴 한지가 최고이다.  여러 가지 색상으로 생산되는 원주 한지를 구해서 연을 만들었다. 원주 한지는 중국 닥이 들어가지 않은 고급 한지이다. 그런 다음 튼튼한 실로 연에 목줄을 매달았다. 목줄에는 네 줄을 쓰기도 하지만 가운데 줄을 빼고 세 줄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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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하얀색 방패연 하나, 작은 분홍빛 방패연 하나, 그리고 작은 분홍빛 가오리연을 만들어 필암뜰에서 띄웠다. 모두 몇 차례 시도만에 하늘 높이 날았다. 아주 안정적으로 비행했다. 일차 성공이다. 다음에는 연에 무늬, 그림, 글씨를 넣기로 했다.

마을회관의 남자 어르신들의 방은 연 제작실로 탈바꿈했다. 연 제작은 상당 부분 어르신들의 기억에 의존해야 한다. 다행히 마을의 이재복 선생(한옥 목수)이 연 애호가라 비교적 쉽게 복원에 성공했다.

황금알을 낳는 때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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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어느 곳에 아주 아주 훌륭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은 경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착하고 인심이 넉넉했습니다.

어느 날 그 마을에 때까우(거위) 한 가족이 날아들었습니다. 그 때까우들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매일매일 황금알을 낳았습니다.

그 때까우 가족에게 신비스런 비밀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모이를 먹고 사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이웃 사랑이라는 한 가지 모이였습니다. 때까우들이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을 주민들이 서로 위하고 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마을 주민들이 황금알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알을 감추지 않나, 하나라도 더 가져가지 않나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서로 먼저 하나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마을에서 때까우 가족은 황금알을 낳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살아갈 수 조차도 없습니다. 때까우 가족이 점점 야위어 갑니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2016/01/08)

임서기(林棲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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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벌써 숲에 들어갔어야 했다. 조금 늦었지만 자유를 찾아 떠난다.

“명상과 고행”을 위해 숲 대신 마을을 선택했다. 자유는 숲이 아니라 이웃 속에 있다고 믿는다.

4백년 동안 서원과 더불어 살아온 이웃들에게는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한 마디면 족했다.

“21세기 서원이 되었으면 합니다.”

현판식에 함께 한 이웃들의 함박 웃음에서 공감을 읽는다. (윤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