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암문화원’ 현판을 달다

드디어 ‘필암문화원’ 현판을 달았다. 비록 소박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4년 전에 시도했다가 접었던 계획을 이제야 실천에 옮긴다.

온라인의 ‘윤영민의 정보사회학 글방’이 타이틀은 약간 다르지만 오프라인 대응물을 갖게 된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운영된 온라인 ‘글방’에는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의 방문자가 있다.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의 지식이 다소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필암문화원의 1차적 활동은 강의와 출판이다. 대학교수로서 내가 평생 하던 일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적어도 1주일에 1회 이상 강의와 출판을 해나갈 예정이다.

현재는 대학 e-러닝 기반 학점인정 컨소시엄에 3학점짜리 한 개의 강좌(‘정보사회학 입문’)을 진행 중에 있으며, 이번 학기에는 군 e-러닝을 포함해서 212명의 학생이 수강하고 있다.

출판 사업으로는 ‘윤영민의 정보사회학 글방’ 블로그에 1주에 1개 이상의 글을 게시하고 있다. 내년 봄학기에 빅데이터와 예측이라는 새로운 시대 환경에 걸맞는 사회통계학 과목을 온라인으로 개설할 예정인데 그 준비를 위해 블로그에 강의노트를 올리고 있는 중이다.

오프라인 활동은 아직 미정이다. 우선은 약간의 예산을 준비해 마을의 협동적인 활동을 지원하고, 코로나 19 사태가 종식되고 나면, 연간 몇 차례 초청 공연을 주최할 계획이다.

현재와 완전히 새롭거나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 동안 내가 개인적으로 하던 활동을 필암문화원이라는 조직이 하는 활동으로 바꿀 뿐이다. 필암문화원은 임의단체로 시작해서 몇 년 후에는 법인으로 만들 예정이다.

작지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시도가 되었으면 좋겠다.(2020-09-14)

귀촌단상(3): 소독

어제 늦은 오후 누군가가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었다. 길에 나가보니 비닐 하우스를 하는 영관씨였다. 이장이 소독약과 기름을 타면 그것을 오토바이 뒤에 실은 분무기에 넣어 마을을 돌아다니며 뿌리는 것이었다.

여름날 저녁 무렵에는 하루살이에 모기까지 가세하여 온갖 벌레들이 기승을 부리곤 한다. 그것을 잠재우는데 소독약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누군가 약을 뿌리는 수고를 해야 한다.

여름이 되면 마을 일에 헌신적인 몇몇 이웃들이 늘 그 일을 맡아 해준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장은 면사무소에 가서 소독약과 기름을 받아오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차나 오토바이에 분문기를 매달고 다니면서 약을 분사한다.

마을은 하나의 공동체이다. 주민들이 함께 힘을 합쳐 해야할 일들이 적지 않다. 눈치우기, 방재, 모정(시정) 수리, 당산나무 낙엽 치우기 등등. 전원에 살려면 그런 역할을 기꺼이 떠맡아서 해야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눈치껏 열심히 참여해야 한다.

자기 집에만 쏙쏙 들락거리면 결국 외톨이가 된다. 외톨이로는 전원에서의 생존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생존력을 높이려면 이웃들과 협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협력이 어느날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고 평소에 쌓아둔 정과 친분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웃들과 마을 일을 함께 하고 나서 막걸리 한 잔을 하는 것보다 더 기분 좋은 경우는 흔치 않다. 그것은 생존을 넘어서는 하나의 즐거움이다. (2020-07-09)

귀촌 단상(1)

주위 사람들은 내가 귀촌한 지 얼마 안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사실은 제법 되었는데도 말이다.

경기도 분당 도심에 살다 건강 악화로 이천시 마장면으로 이사한 게 2009년 1월이니 어언 12년 6개월째이다. 지금 살고 있는 전남 장성으로 이사온 지도 벌써 만 8년이 되었다.

6년 동안은 이천과 장성에 두 곳에 집을 갖고 있었다. 재정적으로 부담스럽고 집 관리도 너무 힘들어 2년 전에 이천 집을 팔았다. 자식들을 생각해서 서울 근교에 집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결단을 내렸다. 그것은 지난 10여 년 동안 내가 한 가장 잘된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집앞을 지나가는 행인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이 정도의 집을 지으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가이다. 궁금해 하는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답하기 참 난감한 질문이다. 땅값을 넣느냐, 정원을 단장하는 비용을 넣어야 하는지, 보수하고 개축하면서 들어간 비용도 넣어야 하는지, 게다가 밖으로 보이는 비용 못지 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인테리어 비용인데, 그것을 어디까지 포함해야 하는지….조건에 따라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물론이고, 우리 가족 모두가 현재 살고 있는 집과 마을을 좋아한다. 사실 그러기 쉽지 않다. 가족 구성원들의 니즈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한 가지가 분명하다. 은퇴 후 살 곳을 고르는 일을 결코 서둘러서는 안된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집요하게 발품을 팔아야 한다. 몇 해가 걸릴 수도 있다. 그 사이 땅값이 치솟을 수도 있고, 인건비나 자재값이 오를 수도 있다. 그래도 서두르면 후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에게 잘 맞는 마을이나 동네가 어떤 곳인지, 병원, 마켓, 식당 등의 편의시설에의 접근성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지, 친한 친구들과 지낼 수 있는 거리에 있는지, 형제나 자식들과는 교류하기 쉬운 위치인지 등부터 시작해서 주위에 환경을 오염시킬 시설은 없는지, 이웃들이 외부인에 대해 배타적은 아닌지 등등 정말로 따져봐야 할 요소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조건들을 따지면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자기 자신과 배우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냉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좀 변하면 되지, 아내가 좀 변하면 되지, 우리가 환경에 적응하면 되지….그런 가정은 세우지 않는 게 현명하다. 60살이 넘으면 사람은 변하기 어렵다. 자기가 환경에 적응하기 보다는 자기에게 맞는 환경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떤 모습의 집에 사는가는 그런 점들을 모두 고려한 후에 즐겁게 할 수 있는 결정이다. 집은 형편에 맞추어 마련하면 된다.

귀촌에 대한 모범답안은 없는 듯하다. (2020-07-02)

하늘이 열리는 순간

며칠 비가 내린 뒤 화창한 아침이 밝았다. 투명한 햇살을 받고 현관 밖을 나서니 마치 노아의 방주에서 내리는 기분이다. 온갖 꽃과 새소리, 그리고 초록의 향연 속으로 들어간다. 세상이 아직 바이러스의 어두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침은 후원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직 구름이 두텁지만 햇살을 막지는 못한다.

아침, 저녁으로 두번 열리는 ‘하늘의 문’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지상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는 순간이 아닐런지.

7월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 아침처럼 활짝 맑은 달이 되길 기원한다.(2020-07-01)

보리밭 불놓기

보리 수확이  끝나자 마자 이장 어머니인 회양촌댁이 손주를 데리고 보리밭에 불을 놓고 있다.  오른쪽 끝 부분에 회양촌댁, 반대편쪽에 손주가 서 있다. 구순이 다 되어가는 회양촌댁으로서는 힘든 일일텐데….이장 말대로  너무 극성이신가?….

상품화에 대한 저항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이 지배적인 곳에서는 모든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牧歌的)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것은…인간과 인간 사이에 노골적인 이해관계, 냉혹한  ‘현금 계산’ 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남겨놓지 않았다(The bourgeoisie, wherever it has got the upper hand, has put an end to all feudal, patriarchal, idyllic relations. It…has left remaining no other nexus between man and man than naked self interest, than callous ‘cash payment’).

모든 인간관계가 상품(commodity)으로 전락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16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가족, 친구, 이웃 사이에 아직 상품화되지 않은 관계들이 존재하는 걸 보면 그들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법칙(law)까지는 아니더라도 경향(trend)으로서의 상품화를 부정하기는 힘들다. 도시에서야 오래 전부터 문밖에만 나서면 모든 게 돈이었지만, 이제는 농촌에서마저도 돈내지 않고 편안하게 들를 수 있는 곳이 점점 드물어 간다. 구경할만한 곳은 울타리를 막고 입장료를 받으며,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무데나 가서 자리를 깔고 쉬거나 식사를 할 수도 없고, 깨끗하고 시원한 물 한 잔 얻어 마시기도 쉽지 않다.

내가 사는 필암마을도 꼭 그렇게 되어야 할까? 옛날의 시골 인심이 살아있게 할 수는 없을까?

서원과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깨끗한 공기, 아름다운 경치, 편안한 공간, 시원한 식수, 그리고 맛있는 막걸리와 김치 정도는 즐기고 돌아가게 할 수는 없을까? 무료로 말이다.

올해는 이 전통을 만들어봐야겠다. 상품화에 대한 소소한 저항이다. (2016/04/24, 윤영민)

개울의 길이는?

“아빠, 깨끗한 개울을 따라 걸으니 기분이 정말 좋아요.”

함께 산책하던 막내가 즐거워한다. 2주일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변화가 개울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호영아.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개울의 길이가 얼마나 될 것 같으냐?”

“모르겠는데요. 재보지도 않고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보기에 3km에서 약간 부족할 것 같다. 2.6km에서 2.8km 정도 될 것이다.”

“어떻게 알아요?”

“집 앞  빨랫터에서 이 개울이 끌나는 문화센터까지의 직선 거리가 900m 정도 된다. 거기에 (3.14)를 곱하면 개울의 길이를 구할 수 있다. 농수로로 쓰기 위해 직선으로 만든 부분을 감안해서 100m정도 빼주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왜 를 곱해요?”

“수학자들의 발견에 의하면 완만한 경사를 흐르는 강의 길이는 직선 거리의 이다. 몽골 초원의 구불구불한 강들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오, 재밌네요.”

“그렇지? 수학자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법칙을 찾아서 공식으로 표현하려고 한단다. 우주가 수학적 법칙으로 움직인다고 믿는 것이지.”

“이제 포크래인을 가지고 개울 바닥에 깊이 묻힌 무거운 쓰레기만 치우고 나면 우리 개울은 세상의 어느 나라의 개울 못지 않게 깨끗해질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가 산책할 때 집게와 쓰레기 봉투를 들고 새로 버려진 쓰레기를 수시로 치우면 된다. 그러면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 따라 개울이 아주 말끔하게 유지될 것이다.” 

개울청소1
가장 멋진 곳일수록 쓰레기가 많았다. 쓰레기를 치워놓으니 개울의 정겨움이 되살아난다. 4월 11일 오전의 모습이다.
개울청소2
개울에서 건져낸 쓰레기가 다양하다. 전국 도시주변 농촌의 개울이 비슷한 상태이지 않을까?
개울청소3
면사무소가 노인일자리 제도를 이용해서 10명 이상의 어르신들을 보냈다. 한 남자 어르신이 전신 장화를 신고 쓰레기를 건져내고 아주머니들이 건져낸 쓰레기를 마댓자루에 담았다. 이제 포크래인이 개울 바닥에 박힌 대형 쓰레기를 치우면 청소가 마무리될 것이다.
개울청소4
개울에서 가장 쓰레기가 많았던 곳이 깨끗해졌다. ‘국민성’이란 독재자들이 만들어 낸 신화일 뿐이다. 우리도 일본이나 네덜란드만큼 깨끗한 환경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안된다”고 해버리면 결코 변할 수 없다. “된다고”고 믿으면 가능성이 열린다. 이웃과 자신을 믿고 실천에 나서면 면사무소도 군청도 움직인다.

“쓰레기는 보는 대로 주워야 해”

SAMSUNG CSC
누군가 몰래 버린 폐의자
SAMSUNG CSC
묻다가 만 건축 폐자재 — 이것은 면사무소나 군청이 치워야지.
SAMSUNG CSC
개울 바닥에도 폐비닐
그냥 치워야지. 모두 이웃들이 버린 쓰레기다.
SAMSUNG CSC
퍠비닐 — 숙제다.
SAMSUNG CSC
개울가 밭에서 흘러내리는 폐비닐
SAMSUNG CSC
건축 폐자재
SAMSUNG CSC
비닐 또 비닐
SAMSUNG CSC
족히 2년은 버려져 있는 수로관
SAMSUNG CSC
플라스틱 병들 — 정말 대책이 없을까?
SAMSUNG CSC
200년 정자나무 옆 집이 버린 폐자재. 치워달라고 부탁하니 나중에 치우겠다고. 내가 그냥 버렸다.
SAMSUNG CSC
아름다운 개울이 저렇게 더러우니 누가 들어갈 수 있겠나…. 

눈과 아이들

SAMSUNG CSC
필암뜰에서 눈사람 만드는 아이들

필암에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 하지만 날이 포근하기 때문에 금방 녹아버린다. 그래서 필암에서 눈을 즐기려면 제법 운이 좋아야 한다. 어제 마을에 학생들이 행운과 함께 체험학습을 왔다. 아침에 눈이 많이 내려 필암뜰에서 하늘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눈위를 걷기도 하면서. 농촌에 사는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혜택은 자연과 더불어 실컷 지낼 수 있다는 점일 게다. 사실 어느 지역의 아이들에게도 자연은 가까이에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필암뜰이 더 많은 아이들에게 자연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눈에 갇힌 마을

SAMSUNG CSC
필암문화원에서 바라본 필암뜰

폭설로 인해 마을 전체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었다. 60평생에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장성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말을 이사온지 4년만에 실감하고 있다.

폭설 때문에 비날하우스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 강추위에 어르신들은 무사하신지 모르겠다. 아직 눈이 내리고 있고 오후 3시인데 영하 9도이다. 내일 오전까지는 계속 내릴 모양이다. 아무쪼록 마을 주민들 모두 피해를 입지 않고 이 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