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집이란 공간은?

지난 달 사랑채를 완성하고 살림을 그곳으로 옭겨간 후에 안채는 온전한 작업 공간이 되었다. 필암문화원 간판을 달기는 했지만 팬데믹 때문에 아직 그것을 실체화하지 못하고 있으니 나만의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마흔 둘에 교수직을 얻을 때까지 20년 이상 동안 나만의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간절히 소망했던 환경이었던가. 그래서 주중에는 늦은 밤까지, 그리고 주말에도 연구실에 나와 있었다. 누구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연구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흔이 넘어서야 가질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교수 연구실은 내 마음대로 꾸미거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러가지 제약이 있었다. 예컨대 크게 음악을 들을 수 없고 복장도 맘대로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얘들이 많은 탓에 집은 컸지만 나만의 서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거실을 서재로 사용했다. 10여년 전 아이들이 미국으로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집에 나만의 공간을 갖는 여유가 생겼다.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집에 ‘서재’라고 부를 만한 공간이 생긴 것이었다.

‘서재’도 온전히 자유로운 공간은 아니다. 집에 아내가 함께 있으니 음악을 크게 틀 수 없고 큰 소리를 지를 수도 없다. 강의 녹음이나 녹화도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아내의 눈치 때문에 마음껏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다.

그런데 지난 달부터 온전한 집 한 채가 생긴 것이었다. 태어나서 65년만에 내가 정말로 누구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졌다. 아무리 크게 음악을 틀어도, 아무리 게으름을 피워도, 또 아무리 밤늦게까지 연구를 해도 신경 쓸 일이 없다.

공간은 내게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가져왔다. 한 마디로 완전히 자율적인 삶을 안긴 것이다. 과연 나는 이 자율이라는 선물을 갖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부터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공간이란 삶의 모습을 결정짓는 구조적 요인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집은 공간 중 개인적인 수준의 영역이다. 마을이나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와 같이 공적인 수준의 영역도 존재한다. 사생활(privacy)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타인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 없이 온전한 사생활도 자율적인 삶도 존재할 수 없다. 집은 단순히 재생산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유와 자율을 위한 최후의 버팀목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집이 투자와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집이 본원적 가치가 아닌 교환적 가치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집이 자율적인 삶의 조건 대신 가치 증식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2020-10-07).

크리스마스 구유의 완성

며칠 전 만들어 놓은 구유 천장 외부을 볏짚으로 덮어주기로 했다. 아내의 아이디어이다.

어제 도동댁 추수가 끝난 후 볏짚을 한 손수레 얻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아내가 새끼를 꼬았다. 볏짚을 엮기 위해서이다.

볏짚을 한 웅큼 잡아 지저분한 껍질을 좀 털어내고 가지런히 놓았다. 내가 그것을 조금씩 건네주면 아내가 엮기로 했다.

먼저 끝쪽으로 한 번 엮었다.

그 다음 좀 띄워서 두 번째로 엮었다. 그러면 덮개가 보기도 더 좋고 좀 더 튼튼할 것이다.

덮개를 완성했다. 덮개 만들기와 씌우기는 90% 아내가 했다. 덕재댁이 지나가다 짚 껍질을 말끔이 털어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나는 보조만 했다.

덮개를 만드는 데 거의 하루가 걸렸다. 그래도 마감을 해놓고 보니 비닐로만 덮개를 했을 때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정성들여 보였다.

지인들은 시골에서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고 하지만 아내와 나는 심심한 적이 별로 없다. 멀리서 보면 매일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자연 속에서의 삶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나는 그다지 열성인 신자가 아니다. 그런데 종교와 관련된 작업을 하다보면 신앙심이 조금은 생기는 것 같다. 신앙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다보면 신앙이 생긴다고나 할까. 종교생활이 그런 게 아닌가 생각된다. 종교 생활이란 신심이 있어서, 결단을 내려서가 아니라 조금씩 실천하다보면 가슴 속에 무언가 생기고 삶에 변화가 오는 그런 어떤 것이 아닐까. (2020-10-03)

성탄절을 준비하다

성탄을 기념하기 위한 구유를 설치했다. 작년에는 집안에 했는데 올해는 정원에 했다. 아내와 둘째, 셋째까지 거들어 줘서 비교적 수월하게 설치할 수 있었다. 태양광 패널 받침대에 꼬마전구 점멸등을 두르는 데는 키가 좀 큰 막내가 기여를 많이 했다.

아내의 제안에 따라 덕재댁 내서 대나무를 얻어다 뼈대를 만들고 재활용 비닐을 물로 깨끗이 닦아서 덮었다. 눈비가 와도 걱정이 없다.

점등을 했더니 식구 모두 흡족해 했다. 생각보다 보기가 좋았다. 추석 지나고 도동댁 논 추수할 때 볏짚을 얻어다 비닐 위에 덮어주면 구유가 완성될 것이다.

작년에 성모상이 조금 부서져서 실리콘으로 보수했다. 다른 상들은 아직 멀쩡하다. 좁은 곳에 여러 상들이 촘촘하게 모여 있으니 누추한 마굿간의 느낌이 잘 나타나는 듯하다.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아내나 아이들이 이 전통을 이어갈 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아빠가 성탄을 매우 진지하게 보냈다는 사실만은 식구들이 오래 기억할 것이다.

부모라도 자녀들에게 종교 생활을 억지로 따라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종교생활이 의무보다 즐거움이 되면 자녀들이 부모가 걸어간 길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리 아빠한테는 성탄이 하루가 아니라  3개월이었다.”

그렇게 기억되길 바란다. (2020-09-29)

일급의 학자가 되는 비결

공부하는 사람은 사는 게 그저 단순해야 한다. 학자는 머리로 일하는 사람이지 몸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력에는 한계가 있다. 집중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생각을 깊이 있게 전개하려면 오랜 시간 성찰 대상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생각없이 학문적 성취는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조각난 사고작용으로는 배움과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공사다망할수록 정신 활동은 파편화된다.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은 결코 높은 학문적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젊은 날 이 원리를 깨달았지만 나는 그것을 제대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온갖 세상 유혹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자는, 마음은 어린이 같고 생활은 수도승과 같아야 한다.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주어진 화두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simple  life. 거기에 유능한 학자가 되는 비결이 있다.

나는 이제야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은퇴하고 60대 중반이 되어서야 말이다.  

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Philosopher(철학자)이다. Philosopher는 그리스어로 philo(love)와 sophia(wisdom)이 결합되어 생성된 말이다. 학문이 아직 분화하지 못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철학자가 곧 학자였다.

지금도 서양 학문에는 고대 그리스의 영향이 남아있다. 나는 사회학 박사이지만 공식 학위명은  Ph.D. (Doctor of Philosophy) in Sociology이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 눈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박물관에나 가 있어야 할 존재로 보이겠지만, 오늘날에도 학자는 여전히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다시 말해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린 지 오랜 지금에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이라도 학자의 흉내를 내면서 여생을 보내야 이 행성을 떠나면서 미련이 덜 남을 것 같다. (2020-09-29)

귀촌 단상(2): 산책

전원에 이사가면 논과 밭 사잇 길을 마음껏 걷고 싶었다. 중학교 시절 나의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이슬비가 내리는 날 흙내음을 맡으며 논이나 밭 가를 걷는 것이었다. 그러다 커다란 방죽이라도 만나면 금상첨화였다. 물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그림을 완성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요즘 50여 전의 소망을 매일 실현하고 있다. 통상 3-4km를 걷고 어떤 날은 7-8km를 걷는다. 그냥 하릴없이 전원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 그만이다.

다행히 아내도 나만큼이나 산책을 즐겨서 함께 걸으니 더욱 좋다. 별로 대화가 많지는 않지만 수많은 대상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좋다. 길가의 꽃이며, 나무며, 벌레나 동물, 그리고 달과 별을 함께 느끼고, 마주치는 이웃들과도 안부를 물으며 함께 인사를 나눈다.

전원에 산다는 것은 단지 전원주택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전원 속에 사는 것이다.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혹은 앞으로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집터를 선택할 때 집터나 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산책하게 될 공간을 살펴야 한다. 적어도 집 주위 100만평 정도는 돌아보고 산책이 가능한 지를 파악해야 한다.

하루에 한번 산책하는데 차나 자전거를 타고 근처의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게다. 그런데 만약 하루에 두세번 나가서 걷고 싶다면 어찌 할 것인가. 대문 밖을 나서서 바로 걸을 수 있는 곳이 최고이다.

시골의 국도에서는 차가 쌩쌩 달리는데다 인도가 없어 산책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 산에 집터가 있다면 잘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담력이 얼마나 큰 지. 시골은 밤과 낮이 완전히 다르다. 밤이 되면 집밖에 나다니기가 쉽지 않다. 잘못 하다간 집 안에 갇히게 된다. 산책 환경의 측면에서 공원 많은 도시만도 못한 시골도 드물지 않다.

산밑을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서 난 오솔길을 걷는 로망이 충족되기가 싶지 않다. 첫번째 전원 생활 중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혜택을 잃었다. 집 주위에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어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산과 들 대신에 군 연병장이나 학교 운동장을 걸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형질 변경이 불가능한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이사왔다. 이곳에는 아파트 단지는 물론이고 공장이나 축사도 세워질 수 없다. 물론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에 있던 시설들은 그대로 있지만. 정부가 환경을 관리해 주니 주민인 내가 신경쓸 일이 별로 없다.

아내와 나는 하루에 두 번은 산책을 나간다. 집 바로 앞에 1만평 크기의 미니 공원이 있지만 그 정도는 걷는데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운동이 되려면 열 바퀴는 돌아야 하는데 같은 장소를 뱅뱅 도는 것은 참 지루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집을 중심으로 세 갈래 장거리 코스를 정해 놓고 매번 다른 방향으로 걷는다. 반복되는 일상이긴 하지만 그렇게 하면 좀 낫다.

오늘 아침에는 오른편쪽으로 4km 정도를 걸었다. 오후 늦게 비가 내리지 않으면 왼쪽편으로 4km 정도를 또 걸을 것이다. (2020-07-06)

DIKW 모형

데이터, 정보, 지식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아마도 가장 오래, 가장 널리 가이드 역할을 해온 개념적 틀은 DIKW 모형이다. DIKW는 Data(데이터), Information(정보), Knowledge(지식), Wisdom(지혜)의 머릿글자로 구성된 이름이다. 이 모형에 따르면, 데이터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묘사(description)이며, 가공되지 않은 상태의 사실(facts)이다. 그리고 특정한 목적을 위해 데이터가 처리되면(혹은 추상되면) 그 목적에 유용한 정보가 된다. 나아가 정보가 체계화되면 지식이 되며, 지식이 고도로 추상화되면 지혜가 된다.

     

데이터-정보-지식-지혜는 위 그림과 같은  피라미드 구조를 가졌다고 해서 DIKW 피라미드 혹은 지식 피라미드라고 불리며, 데이터에서 지혜로 올라갈수록 가치가 올라간다고 해서 가치 위계 모형(value hierarchy model) 혹은 가치사슬모형(value chain model)이라고도 불린다. 이 모형은 데이터, 정보, 지식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개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자주 사용되었다. 

위 그림에서처럼 이 모형은 데이터보다는 정보의 가치가 높고, 정보보다는 지식, 그리고 지식보다는 지혜의 가치가 높으며, 데이터에서 지혜로 올라갈수록 의미(meaning)도 크다고 규정한다. 

이 모형은 MIS(경영정보학), 컴퓨터과학, 문헌정보학, 교육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폭넓게 이용된다. 네 가지 요소 중 그 지위가 애매한 ‘지혜’를 제쳐 놓고 본다면, 이 피라미드 모형은 나름대로 유용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지식, 정보, 데이터 중 어떤 것을 다루더라도 다른 두 가지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며, 앎(knowing)에 관한 어떤 모형도 이 세 가지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명쾌한 해석 혹은 입장을 포함하고 있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 모형이 지니는 가치는 그 수준에서 그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데이터, 정보, 지식 사이의 관계, 특히 데이터와 정보, 정보와 지식 사이의 관계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처리되어” 혹은 “추상되어” 정보가 된다고 하지만, 데이터의 ‘처리’ 혹은 ‘추상’이 정확히 어떤 원리에 따라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가 불분명하다.

더구나 빅데이터의 시대에 있어 정말로 정보나 지식이 데이터보다 가치가 높은 지도 의문이다.  데이터 마이닝이나 데이터과학을 통해서 빅데이터는 특정한 정보나 지식보다 더 큰 가치 혹은 더 다양한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다. 즉, 가치 생성의 측면에서 데이터가 정보나 지식보다 더 큰 잠재성을 가질 수도 있다. 때문에 데이터에서 추상화된 정보나 지식보다 데이터 자체가 더 큰 값에 거래되곤 한다. (2020-01-23)

지능이라는 이름의 게임(7): 지능기계 설계자의 해석

앞 포스팅에서 소개한 이대열 교수의 저서가 진화생물학과 행동심리학의 관점에서 지능에 접근한 사례이라면, 이 포스팅에서 소개할 제프 호킨스(Jeff Hawkins)의 저서 <On Intelligence>(2004)는 컴퓨터과학 배경의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개발자가 두뇌와 지능 연구자들에게 던지는 대담한 도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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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wkins가 지능과 두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던졌던 질문은 아주 명쾌하다. 지능(intelligence)이 무엇인가 이다. 이 의문은 인간의 두뇌가 근본적으로 어떤 점에서 지능적인가라는 질문과 바로 이어진다. 인간의 두뇌는 지상에서 가장 진화된 지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진정으로 지능적인 기계를 만들려면 먼저 인간의 두뇌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기존의 연구들에서 자신의 의문에 대한 시원한 답을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스스로 답을 제시하게 되었다. <On Intelligence>에는 Hawkins의 해답이 담겨 있다.

지능을 탐구하면서 그는 지금까지의 컴퓨터과학이 인간 지능(human intelligence)을 모사하는데 실패한 이유가 인간의 지능과 두뇌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두뇌는, 투입(input)이 들어가면 산출(ouput)을 내놓는 논리 기계나 정보처리 시스템이 아니며, 지능은, 튜링 테스트(Turing test)처럼 행동(behavior)을 측정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다. 지능이 무엇인지는, 간접적이거나 우회적인 방식이 아니라 두뇌의 내부 작용을 가지고 직접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Hawkins에 의하면, 인간 두뇌는 몇 가지 점에서 컴퓨터와 크게 다르다. 첫째, 두뇌는  S/WH/W의 구분이 없다. 지능을 주로 담당하는 대뇌 신피질은 신경세포와 시냅스로 구성된 네트워크인데, 그것은 전기-화학적 신호에 의해 작동하는 구조이지 그것들을 제어하는 별도의 S/W(혹은 그것과 유사한 무엇)가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컴퓨터와 달리 두뇌는 유전적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태생 후 성인이 될 때까지 발달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외부 자극과 경험에 의해 변화된다. 발달 단계로 보면 인간의 두뇌는 두 살 무렵에 뉴런-시냅스 조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그 다음 몇 년 동안 불필요한 뉴런-시냅스 조합은 점차 제거되며, 청소년기에 다시 한번 뉴런-시냅스 조합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후 성인이 될 때까지 불필요한 뉴런-시냅스 조합의 제거가 이루어지고 25-6세경 안정 단계에 도달한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에도 뉴런-시냅스 조합은 계속 변화된다. 두뇌의 구조가 변하는 현상을 신경(혹은 두뇌) 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고 부른다. Hawkins는 이러한 인식을 수용한다. 

셋째, 컴퓨터와 달리 두뇌는 대단히 유연하다. 두뇌의 특정 영역이 특정 기능만을 담당하지 않는다. 때문에 만약 어떤 부위가 손상을 받으면 그 부위가 맡던 기능을 다른 부위가 대신 수행하곤 한다. 이는 컴퓨터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면서 Hawkins는 지능과 두뇌의 관계에 대해 기억예측 모형(memory-prediction model)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그 모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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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은 인간의 두뇌에서 일어나는 정신적인 작용이다. 외부로부터 감각기관을 통해서 경험하는 자극(감각 정보)이 두뇌에 전달되면 신피질에서 그것은 전기-화학 신호로 전환되고 뉴런과 시냅스가 연결된 조합이 생성된다. 신피질에는 그렇게 해서 생성된 수많은 조합이 존재하며, 그것이 기억(memory)이다

가장 추상적인 수준에서 기억은 공간적시간적 패턴(spatial-temporal patterns)인데, 그것은 입력되는 감각 정보의 유형과 관계없이 항상 범주(category)와 순서(sequence)라는 요소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Hawkins는 그것을 불변표상(invariant representations)이라고 부른다(아래 그림 참조).

그에 의하면인간 두뇌는 ‘논리 기계라기보다는 ‘기억 기계이다두뇌는 끊임없이 분류하여 기억하고기억을 복원해서 예측/확인하고비교/판단한다신피질은 여섯 층(layers)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자주 반복적으로 입력되는 정보의 불변표상은 낮은 층으로 내려보내 외부 자극에 신속하게 반응하게 하고낯선 정보들은 상부 층으로 보내서 불변표상을 생성하며최 상위 층(Layer I)에서도 파악되지 않은 정보는 해마(hippocampus)로 보내 기억한다. 층2나 층3도 부분적으로 그렇지만 층1은 여러 영역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결합(association)하는 역할을 수행한다(아래 그림 참조). 

Hawkins는, 신피질이 계층적 구조를 지닌 이유는 바로 현실세계가 그러한 계층적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문어(written language)를 보면, 글자가 모여서 음절이 되고, 음절이 모여 단어가 되며, 단어가 모여서 문장이 된다. 또한 세상의 모든 객체(object)는 작은 객체들의 집합이며, 대부분의 객체들은 보다 큰 객체들의 일부이다. 신피질의 계층 구조는 이러한 현실세계의 계층구조에 조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기억들이 생성된 후에는, 감각 기관을 통해서 자극이 전달되면 그에 관련된다고 추정되는 불변표상이 호출되고, 그것을 이용해서 시간적으로 뒤따라 오는 정보를 예상한다(아래 그림 참조). 만약 새로 들어온 감각 정보가 불변표상을 가지고 예측한 모습과 일치하면 기존 뉴런시냅스의 조합이 유지되고, 만약 불일치하는 부분이 나타나면 그에 대해 새로운 판단이 내릴 수 있도록 조치한다. 만약 그러한 불일치가 반복되면 기존의 뉴런시냅스 조합이 갱신된다. 그러한 분류, 패턴 생성, 기억, 예측, 강화, 갱신 등의 과정이 바로 학습이며, 과거(기억)에 대한 유추를 통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두뇌의 능력이 바로 지능이다.

진화적으로 보면, 신피질이 확대되고,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지능은 다른 포유동물에 비해 획기적으로 향상되었으며, 고도의 상상, 창조, 논리적 추론 등이 가능해졌다. Hawkins에 의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지능은 기억-예측 모형을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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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wkins는 단순히 두뇌-지능을 연구만 할 뿐 아니라 직접 Numenta 라는 기업을 창업해서 연구와 기술 개발을 결합하고 있으며, 실제로 HTM (Hierarchical Temporal Memory)이라는 테크놀로지를 개발하였다(위 그림 참조). 그는 HTM을 이용하여 아직 상업화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분야의 이상 탐지(anomaly detection)에 활용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들을 내놓고 있다.  (윤영민, 2018-02-25)

(Bayes 학습)(13) 역확률과 가중 평균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비교적 간단한 두 가지 발상에 대해 공부해 보자. 먼저 네가 읽고 있는 <불멸의 이론>에 보면 역확률(inverse probability)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그것이 역사적으로는 논쟁을 불러 일으킨 개념이었지만 그 의미는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아래의 베이즈 정리가,

A가 주어졌을 때 B가 얻어질 조건부 확률(우변의 분모에서 )을, B가 주어졌을 때 A가 얻어질 조건부 확률(좌변 )로 변환한다는 의미이다(Jackman, 2009).

그 ‘전환’이 역사적으로 그렇게 어려웠더구나. 뭐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만약 모수  가 A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소위 빈도주의자들에게는 충격적인 발상이었겠다. 모수(parameter)는 우리가 발견하려고 하는 진리(값)인데, 그것이 확률변수로 간주되어야 하니 말이다. 대단한 역발상이지.

또 하나의 발상은 베이즈 추정값(Bayes estimates)이 사전 정보(priors)과 데이터(data)의 가중 평균(weighted averages)이라는 주장이다. 스탠포드대학교의 Simon Jackman(2009)의 책을 읽다가 눈에 번쩍 띄었던 부분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사후 확률(posterior)이 우도(likelihood)의 공액(conjugate)인 경우에 그렇다. 그러나 사후 확률이 공액인 경우가 많으니 그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발견이라고 생각된다. 꼭 기억해 두자.

위 베이즈 정리에서 A가 단일 사건이 아니라 상호 배타적(mutually exclusive)이고 포괄적(exhaustive)인 n개의 사건 집합()이라고 하자. 그러면,

이고,

이 될 것이다.

만약 이면,

이다.

 

 

 

 

 

 

전자정부: e-Gov에서 i-Gov로

지난 수요일(2017/8/9)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NIA(한국정보화진흥원)이 주관한 ‘제1차 <4차 산업혁명 대응 전자정부 협의회>’에서 기조 발제를 했다. 10년 만에 2백여 명의 전자정부 전문가들 앞에 섰다.

2007년 참여정부가 끝나면서 2000년 국민의 정부 때부터 시작한  만 7년 동안의 전자정부 전문가로서의 활동에 종지부를 찍었다. 다시는 전자정부 전문가로서는 광화문에 나타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아예 개인 전화번호까지 바꾸고 광화문을 떠났다. 지난 10여 년 전자정부의 부침을 바라보면서 때로 흐뭇하기도 하고 때로 실망하기도 하였지만 한번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전자정부에 새로운 방향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새로운 정부도 들어섰고 발제에 대한 주최측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 정부가 전자정부 진화의 올바른 방향을 잡았으면 하는 바램도 있고, 정부 안팎의 전자정부 담당자들에게 힘을 좀 실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요청을 수용했다.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발표문은 링크를 클릭)

  • 향후 30년 동안에 두 가지 요인이 전자정부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특이점(singularity)의 도래와 민주화(혹은 권리주장이 강한 시민의 등장)이 그것이다.
  • 인간 향상과 유사인간(A.I., 로봇)의 출현은 다수의 인간-공무원을 잉여로 만들 것이다.
  • ‘지시’하고 ‘아웃소싱’하는 방식을 고수하면 전자정부 담당자들은 ‘잉여’를 면치 못할 것이다.
  • 스스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내부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알고리즘과 데이터 역량이 핵심이다.
  • 전자정부(e-Gov)는 지능정부(i-Gov)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information)에서 데이터(data)로 전자정부의 무게 중심이 옮겨가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그 두 가지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  만약 4차산업혁명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주체의 변신을 의미한다. 인간 향상과 유사인간-공무원은 그러한 변신의 일부이다. (윤영민, 2019-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