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란 힘있는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과정이다. 불공평하지만 정치에 힘없는 사람들의 자리는 없다. 그들은 대리자들–그들도 힘있는 자들 중 일부이다–를 통해서 겨우 자신들의 이익을 챙길 수 있을 뿐이다.

힘없는 사람들이 사회혁명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딱 한 가지 방법 밖에는 없다. 선거에서 대리인을 잘 선택하고 그들이 정책을 만들게 한 다음 최대한 원점으로 돌아가기 힘들도록 법제도화하는 것이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정착한 나라에서는 한번 들어선 법제도는 뒤집기가 무척 힘들다. 그러니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려면 선거 참여가 대단히 중요하다.

물론 대리인이 약자들의 요구를 잘 대표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가 현실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 약자의 대리인은 원래 모습인 강자-지배자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정치에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그들이 변화를 위해 어느 정도의 노력을 하며 그 노력을 통해서 세상의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 변화의 속도가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속 터지게 느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정치에서 강자와 약자, 강자 편과 약자 편, 혹은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들이 주요 사용하는 용어를 보면 된다. 강자 편의 키워드는 ‘자유’, ‘질서’ ‘생명과 재산의 보호’, ‘사생활 보호’ 따위이고, 약자 편의 키워드는 ‘공평’, ‘정의’, ‘참여’, ‘변화’ 따위이다.

세상에 100 대 0의 정치는 없다. 정치의 근본은 보수적 강자와 진보적 강자 사이의 ‘타협’이다. 60 대 40 정도의 타협이면 베스트이다. 그 이상의 극단적인 타협은 사회혁명에서나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치가 쓸모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 무용론이나 무상론은 음흉한 자들의 음모적 프로파갠더이거나 이상주의자들의 좌절적 표현일 뿐이다. 정치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회의론도 시민을 호도하는 것이다. 물론 정치인들은 과도한 기대를 이용하여 정치의 동력을 끌어내곤 하지만 결국 추종자들에게 남는 것은 실망이다. 정치적 실망은 정치의 순환을 일으키는 매카니즘이다. 하지만 지나친 실망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해진다.

정치적 무관심은 하나의 함정이다. 정치적 무관심을 먹고 사는 자들이 파놓은 함정 말이다. 그들은 독재자이거나 가장 저질의 정치인이다.

기대와 실망, 또 기대와 실망, 또또 기대와 실망, 선거 때는 기대가 급상승하고 선거 후에는 실망이 시작된다.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기대를 팔고, 당선 후에는 리얼리티 쇼의 배우가 된다.  선거 때의 기대가 클수록 선거 후의 실망도 크다.

정치판에서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말은 반만 진실이다. 정치인들이 모두 강자이고 주인-대리인의 역설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진실이지만, 비록 작지만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든다는 점에서 진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치는 실제로 어떻게 실행되는가?

정치란 90% 잉여 행위이며 쇼이고 10%만이 생산적 행위이며 진실이다. 그것은 조선시대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어느 국면에서는 그 비율이 상당히 달라지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 비율은 매우 안정적으로 그렇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거의 승리, 임명권자의 재신임이기 때문이다. 말도 되지 않은 이슈로 다투면서 날을 지새우는 것은 그들이 자신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관심이 오직 집권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정치가 생산적이면 ‘위험’하다. 정치인들이 무익한 일로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혁명이나 쿠데타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시간을 정치인들이 진지하게 자신이 섬기는 ‘주인’을 위해 일한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그리고 과연 누가 그 엄청난 사회 변화를 감당하겠는가.

정치는 효율적이어서도 안되고 효과적이어서도 곤란하다. 정치가 효율적이거나 효과적이면 그것은 더 이상 정치가 아니라 혁명이나 내전이다. 사실 정치는 혁명이나 내전을 예방하기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정치가 효율적이 되면 자기모순 속에 빠지고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그것은 강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의 양해이다. 물론 어떤 역사적 국면에서는 정치가 아니라 혁명 혹은 내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정치가 끝나는 지점에서 혁명이나 내전이 시작된다.

정치인은 두 가지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너무 진지하지 말라’, 그리고 ‘너무 성과를 내려 하지 말라’. 정치인은 진지한 것처럼,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이면 충분하다. 정치는 리얼리티 쇼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는 근본적으로 잉여이다. 정치는 잉여의 배분이며, 잉여의 사용이다. 역사 이래 정치는 잉여 위에 존재한다. 정치는 90% 낭비이다.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정치의 속성이 그렇다면 말로나마 우리를 즐겁게 하고 속시원하게 하는 정치인은 탁월한 정치인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 고 노회찬 의원, 고 김상현 의원, 그리고 미국의 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그 부류에 속한다. 사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정치인이 업적도 많이 낸다.

초보 정치인들은 다를 수 있다. 그들은 진지하다. 정치가 무엇이라도 기여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그들 덕분이다. 그러나 그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 정치의 게임룰을 익히게 된다.

정치는 리얼리티 쇼이면서 서바이벌 게임이다. 살아남는 것, 즉, 재선이야말로 정치인이 추구하는 지상 목표이다. 무엇도 그 목표를 대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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