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에서 전공이란…

학문의 길에 들어서면 오래지 않아 전공(攻)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현대의 학문은 제도화되어 있고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든 않든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 먼 옛날에는 학문을 하려면 스승을 선택하거나 무리를 선택해야 했겠지만 오늘날에는 대학과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필수이다.

전공을 선택하고 대학원에 들어가는데, 전공 선택이 무슨 문제인가라고 되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학문 분야–그것을 흔히 전공이라고 부른다–에는 하위 전공이 또 있다. 그것을 연구 분야 혹은 관심 분야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전공이라고 부른다.

학계라는 제도권에 들어오지 않고 혼자서 연구하는 사람–요즘은 그런 사람이 극히 드물다–이라면 전공의 칸막이를 무시할 수 있겠지만, 제도권 안에 들어가면 전공의 선택은 한 사람의 미래를 좌우하게 된다. 학문 전공은 제도화되어 있어 그 전공과 운명을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있고, 전공들 사이에 사회적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며, 한 연구자가 갖게 되는 삶의 기회를 결정한다. 학부에서 택하는 전공도 그런 점이 있지만 대학원에서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미있는 구분이다.

물론 세부 전공으로 들어가면 전공 사이의 벽이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 차이가 작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당장에 교수 채용시에 세부 전공을 명시하여 전공자와 비전공자를 구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전공자로 분류되면 아예 응시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학문 풍토는 아직 전공은 ‘비전공자’를 배제하기 위한, ‘비전공분야’를 배척하기 위한 수단일 뿐 학문의 유행이 거센 폭풍처럼 전공 분야들을 모두 집어삼켜 버린다.  유행이란 폭풍우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알아서 변신하라는 요구을 지속적으로 받는다는 말이다.

사회과학만 보더라도 1970년대 경제상장기에는 경제학이 지배적이었고, 격동기인 1980년대에는 사회학이 부상하였으며, 대중 언론의 시대인 1990년대 신문방송학이 대세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 경제위기를 거치고 인터넷이 일상화되자 신문방송학은 물론이고 사회과학 전체가 헤게모니를 잃었다. 실용주의 분위기 속에서 경영학이나 행정학 같은 실용적인 전공이 그나마 사회과학의 위신을 지켰다.

200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현재 학문의 헤게모니는 사회과학에서 공학 혹은 자연과학으로 넘어갔다. 전산과학을 필두로 물리학, 생명공학, AI, 인지과학, 뇌과학, 데이터과학 등이 학문에 있어 새로운 인식과 문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사회과학은 헤게모니는 커녕 그 학문들의 공세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기에도 급급할 지경에 처해 있다. 대중은 사회현상에 대한 해석과 해답마저 물리학자, 인지과학자, 데이터과학자에게서 찾으려 하고 있다.

사회과학의 전통적인 연구 주제, 연구 방법, 연구 대상이 모조리 도전받고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사실 거의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은 무식하거나 위선적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202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누구인가. 경매 이론의 전문가이다. 필자는 일생동안 경매에 서너 번 참가해 보았다. 헌금을 위한 바자회의 경매, 그리고 인터넷 쇼핑에서의 경매가 전부이다. 그런데 그런 현상, 필자가 평생 몇 번 경험할까말까한 사회 현상을 이론화한 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은 것이다. 경매가 언제부터 그렇게 중요한 사회현상이 되었는가? 도무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경제학 내에서 대단히 실용적인 전공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언론도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회과학에서 전공 선택은 무의미한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전공과 세부 전공은 여전히 현실적으로 한 연구자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 그점에서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다만 세상의 변화는 사회과학 자체에 대해 목표 재설정(goal replacement), 재구조화(restructuring), 그리고 재과정화(remodelling)를 요구하고 있다. 한 마디로 무엇이 사회과학인지, 무엇이 사회과학이어야 하는 지를 따지는 메타 사회과학(meta-social science)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사회과학에서 그런 변화가 쉽게 일어나리라 상상하지 않는다. 제도 학문의 관성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학자들은 굳이 그런 노고를 해야할 필요를 못느끼고 중하위의 자리에 있는 학자들은 생존 게임에 정신이 없다. 아마도 완전한 몰락 직전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세상은 돌고 도는 것. 언젠가 사회과학이 헤게모니를 되찾게 될 것이다.”라며 자기 암시를 하고 있을 것이다. 과거의 영화를 회상하며 정신 승리에 사로 잡혀서 말이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미국 대학원에 진학할 때인 1980년대에는 종속이론, 발전이론 같은 거시사회학이 유행이었다. 그런데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필자는 사회심리같은 미시사회학의 매력에 빠졌다. 그리고 그것을 공부하는데 필요한 조사방법과 통계분석에 푹 빠졌다. 미국에서는 그러한 전공 분야를 방법론(methodology)이라고 부른다.

박사 과정에 들어가서도 처음에는 방법론 공부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어느 날 내게 사회학 전공에 대한 회의가 찾아들고 나는 생활 지도교수(personal advisor)와, 경제학으로 전공을 옮길까 고민 중이라는 상담을 나누었다. 그 때 그는,

“이제 논문만 쓰면 사회학 학위를 받는데 굳이 전공을 바꾸려 하느냐, 그냥 사회학에 남아서 경제학을 공부하면 되지 않겠냐?”라면서 나를 적극 만류했다. 그래서 나는 전공을 바꾸지 않은 채 경제학을 ‘자유롭게’ 공부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위 논문 지도교수(academic advisor)와 논문 주제를 바꾸었다. 필자의 새로운 논문 지도교수가 된 생활 지도교수는 논문 주제에 대해 고민하던 내게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박사 학위는 독립적 연구 능력을 인정받는 정도의 의미 밖에 없다. 빨리 학위를 받고 나가서 무엇이든 네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해라.” 그의 충고를 수용한 필자는 미시사회학과 거시사회학을 분주히 넘나들며 학위 논문을 마치고 학계에 퉁겨져 나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학자로서의 나를 정의할 수가 없었다. 나의 세부 전공을 특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그냥 방법론 전공이라고 하면 무난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방법론은 전공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냥 누구나 하는 것이 방법론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학위를 받고 나와서 나는 고민했다. 무엇을 내 전공으로 삼을까? 무엇이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인가? 내가 평생동안 흥미를 잃지 않고 연구할 분야와 대상은 무엇일까?

한참을 헤매다 선택한 것이 정보기술과 사회, 정보기술과 인간이라는 주제였다. 대학원 시절 당시에 조사방법과 통계를 공부하려면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이 필수였고, 덕분에 나는 전산과학과 통신공학을 일찍 접할 수 있었다.

아직 인터넷이 대중화하기도 전인 1990년대 중엽 나는 정보기술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나의 전공 분야로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정보사회학’이라는 전공을 시작했다. 아직 ‘정보사회학’이라는 이름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후 4반세기가 넘도록 나는 그 전공을 공부하고 실천했다.

학문의 유행이 승용차 외형의 유행만큼이나 자주 바뀌는 우리 사회에서 25년을 정보사회학자로 살아올 수 있었음은 큰 행운이었다. 다른 전공 분야를 기웃거리지 않아도 사회적 관심, 명예, 물질 같은 자원을 부족하지 않게 나눠받으며 살아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은퇴 후 지금은 잠시 대학원생 시절로 돌아갔다. 재직시 시간과 일에 쫓겨서 할 수 없었던 공부에 그야말로 매진하고 있다. 두문불출하면서 책을 읽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하루를 보낸다.

30년만에 공부하는 수학과 통계학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대학원 시절 공부하던 것과 연결이 되니 크게 어렵지는 않다. 간혹 지금 같았으면 대학원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학 때문에 무척 고생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는 수학 공부에 손을 놓은 지 이미 10년이 지났었다. 수학을 조금만 제대로 복습했더라면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텐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능력이 부족한 나는 사회학 고전을 읽고 수업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은퇴 후 지난 8월까지는 정보사회학 지식을 보완했고, 연말까지는 사회통계의 리모델링을 마칠 예정이다. 누구 한 사람도 내게 그런 일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작업들을 해낼 수 있고, 또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나는 그런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학자가 자신의 전공과 맺는 인연은 이토록 질긴 것인지도 모른다. 죽는 날까지 함께 하는 그런 인연 말이다. (2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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