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생활을 마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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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의 삶에는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 행성에서의 여정은 길지 않다. 기껏해야 1백년 미만이다. 그나마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보내는 활동적인 기간만 계산한다면 길어야 50년을 넘지 않는다. 정말 눈 깜박할 사이이다.

지구에는 오기도 어렵고 떠나기도 쉽지 않다. 이 행성에 오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자궁(혹은 그와 유사한 인공환경)에서 아이로 태어나야 하고 적어도 20년은 부모의 품에서 자란다. 떠날 때도 훌쩍 가는 경우는 드물고 대체로 늙고 병들어서 외롭고 힘든 세월을 보낸 후에야 다른 별로 갈 수 있다. 당연히 나도 그렇다.

내게는 이제 늙고 병든 때가 왔다. 활동적인 시기에 하던 여러 가지 일들을 남은 생에서도 계속 해야 하는가에 대해 냉정히 새겨보아야 한다.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생에서는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가면 지구 여행이 잘 마무리 될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내려 놓는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과 혼란 속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가난과 혼란을 벗어나는 과제의 일부를 떠맡아야 했다. 사회적으로나 가정적, 혹은 개인적으로 그러했다.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나야 했고, 보다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했다.

우리 사회의 가난과 혼란을 극복하는 데 있어 나는 결코 남보다 더 기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신 독재에 저항하다 어려운 대학 시절을 보냈고, 대학 교수가 된 이후에도 내 시간과 능력의 3분의 1을, 돈을 버는 목적이 아닌,  순수하게 사회적으로 가난과 혼란을 극복하는 데 사용하겠다는 원칙을 지키며 20여년을 보냈다.

최근에 건강 상태가 내게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낸다. 이제 그러한 공적, 정치적 삶을 마무리하고 여생을 온전히 나와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웃을 위해 보내라는 신호로 해석된다. 진정한 의미의 은퇴를 의미하는 그 시그날을 나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상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각 세대에게는 그 세대가 짊어져야할 짐(과제)이 주어진다. 한 세대가 모든 문제를 다 풀겠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다음 세대가 져야할 짐은 과감하게 다음 세대에게 넘겨야 한다. 아쉬움은 많지만 아쉬움에 붙들리면 미련이 되고 집착이 된다.

“여보, 당신 요즘 산책하면서 정치 얘기를 통 하지 않네요.” 며칠 전 아내가 궁금한 표정으로 내게 운을 건넸다. 산책 중 수학 얘기를 계속하다 아내에게서 심한 나무람을 들은 후였다.

이상이 아내의 의문에 대한 간략한 답변이다. 은둔자의 삶이 시작된다.  그 삶이 낯설기는 하지만 지구에서 보내는 여정의, 또 하나의 소중한, 그리고 마지막 부분이 될 것이다. (윤영민, 2018/11/12)

세상에 관한 몇 가지 진실(1): 일과 잉여

매월 급여 명세서를 읽을 때마다 나는 화를 누르기 쉽지 않다. 정부가 가져가는 세금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라. 세금이 많아서가 아니다. 내 몸에 빨대를 꽂고 있는 잉여들, 세금 도둑들 때문이다.

세상에 관한 가장 중요한 진실은 “쓸데없는 일은 ‘일’이 아니라 ‘잉여’다” 라는 명제이다. 적어도 정부 부문에 관한 한 “쓸데없는 일”는 형용모순이다. 쓸데없는 일은 일이 아니다.

정부에 관해서 ‘쓸모’에 대한 판단 기준은 딱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국민 혹은 주민의 입장에서 도움이 되는가, 둘째는 그 일을 직접 수행하는가이다. 이 두가지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잉여이다.  실내에서 하는가 실외에서 하는가, 기획인가 집행인가 따위와는 근본적으로 관련이 없다.

(일과 잉여의 구분에 대한 예시)

1. 환경미화

일: 동네 쓰레기통에 버려진 쓰레기의 수거 행위

잉여:  쓰레기를 치우라고 지시하는 행위, 쓰레기 수거를 민간 업체에게 용역을 주고 관리하는 행위

2. 재난 예방

일: 태풍이 몰아 닥칠 때, 취약 지역, 취약 가구를 방문하여 피해가 일어날 요인을 줄이는 작업

잉여: 면사무소 안에서 확성기를 통해서 피해 방지에 유념하라고 방송하는 행위

3. 사회복지

일: 취약 가구를 방문하여 노약자를 살피고 도와주는 행위

잉여: 사회복지정보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외부 업체에 용역을 주는 행위

4. 교육

일: 학생을 지도하는 행위

잉여: 교사나 학교 운영을 감독하는 행위

5. 범죄 예방

일: 동네와 마을 순찰을 도는 행위

잉여: 마을 CCTV 설치와 관리 업무를 외부업체에게 용역 주는 행위

6. 정책 수립과 예산

일: 정책을 기획하고 예산을 수립하는 행위

잉여: 정책 기획과 예산 수립을 용역화 하는 행위

몇 가지 사례를 보았다. 어떤 공무원의 업무가 일인가 잉여인가를 판단하는 업무는 잉여이다. 그것은 머슴(공무원)의 역할이 아니라 주인(국민 혹은 주민)의 역할에 해당된다.

우리나라 정부는 수백년 묵은 잘못된 공무원 제도 때문에 발생하는 잉여가 너무 많다. 왕정과 독재정은 오래 전에 종식되었지만 그 시대에 형성된 관료 제도와 문화가 온존되어 왔다. 더구나 안정성 중심의 관료체제는 21세기 급속히 변화하는 세상과 너무 맞지 않다.

지금과 같은 신분보장=정년보장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직업공무원제도 아래에서는 세상이 빨리 변할수록 정부 내에 잉여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한다. 신분보장=정년보장이 신분보장=임기보장이라는 원칙으로 바뀌어야 한다. 약간의 예외를 둘 수는 있겠지만 공무원제도의 기본틀이 임기제 혹은 계약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정부는 ‘용역’ 국가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현재도 정부의 일 중 상당 부분이 용역화된다. 공무원은 용역 관리자이고 외부 업체가 실제 일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용역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대신에 그 정책이 꼭 필요하다면 그 정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공무원으로 채용해야 한다. 아예 해당 정책을 수행하는 부서 전체를 모듈식으로 꾸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관료 체제에서는 불가능한 대안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한 가지만 손질하면 가능하다. 정년보장이라는 제도를 없애고 모든 공무원을 임기제 혹은 계약제로 바꾸는 것이다. 만약 전문성이 필요해서 장기 계약이 필요한 경우라면 그런 자리는 보수를 낮게 책정하고, 반대로 계약 기간이 짧은 자리는 보수를 더 많이 주어서 보상에 균형을 맞춰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이긴자가 다 가져가는 방식으로는 정부의 잉여를 줄일 길도, 효율적인 정부를 실현할 길도 없다.

인간의 지식은 쉽게 업그레이드되지 않는다. 반드시 많은 노력을 들여서 학습을 해야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는 그런 업그레이드에 한계가 있다.  인간은 언젠가 여러가지 이유로 적응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Fortran과 DOS를 배워서 컴퓨터를 시작한 기술자에게 AI 개발 업무를 맡긴다고 상상해 보라. 그냥 그것은 불가능하다.

정부 내에서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요술 방망이가 바로 ‘용역’이다.  용역 관리자는 얼마든 변신이 가능하다. 심지어 자신이 용역을 내주는 업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도–실제로 그런 경우가 흔하다–용역을 관리할 수 있다. 업무 수준이 엉터리일 것이 불을 보듯하고 벤더(vender)들의 손바닥에서 놀아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말이다.

용역 관리를 감독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면 감독자들도 그 업무를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거대한 용역 비즈니스가 발생한 공간이 존재한다.  그 공간에서 잉여로 가득찬 용역 정부가 탄생하는 것이다.

일하는 공무원은 많아도 무방하다. 비용은 좀 많이 들지만 국민, 주민이 편해진다.

그러나 잉여는 과감히 제거되어야 한다. 아마도 그러면 정부 예산의 3분의 1정도, 잘하면 절반 정도는 절약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이 나라에서 천년 래의 사회혁명이 될 것이다.

우리 나라에는 두 종류의 사회계급이 존재한다. 공무원과 일반인이다.  헌법에는 이 나라의 주인이 국민으로 되어 있지만, 현실에서 이 나라의 주인은 공무원이다. 머슴이 주인 자리를 차리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모순이다. 그들은 제 위치에 돌려보내고 국민이 주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21세기의 진정한 혁명이다. (2018-08-25)

도덕, 우리 정치의 목을 조르다: 또 불행한 대통령을 보게 될 것인가

한국의 지식인들은 현대 한국사회를 유교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학자들의 태도를 반기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인에게 유교란 ‘삼강오륜’, 권위주의, 노인 정치, 가부장제, 도덕주의, 제사, 위선, 과거 지향 등과 같은 시대착오적 원칙이나 도덕적 적폐와 동일시된다. 그러니 한국사회가 유교적이라는 해석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냉정히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아직 뼛속까지 유교적이다. 기독교가 전래된 지 1백년이 훨씬 넘었고 국민의 3분의 1 이상이 기독교 신자이지만 한국은 여전히 유교 사회이다.

유교적 유산은 마치 한국인의 유전자에 박혀 있는 것 같다. 그것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서양의 이론과 개념만 가지고 한국의 정치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경전적 유교와 현실적 유교를 구분해야 한다. 경전에서 읽히는 유교와 현실에서 구현된 유교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 사회의 문화와 정치를 규정하는 프레임은 경전 속의 유교가 아니라 6백년 조선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고 유지되어온 문화적 규범과 사회 관계로서의 유교이다.

나이, 성별, 지위, 혈연, 지연, 학연 등이 사회적 연대와 배제의 근간으로 작용한다. ‘큰 뜻을 품은’ 사람은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되어 국가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 맹목적인 충성과 의리는, 그것이 설령 범죄 집단 내에서 일어나는 것일지라도 사회적으로 칭송받거나 적어도 용인되는 반면 배신은, 그것이 설령 정의를 위한 내부 고발일지라도 비난 받는다.

예컨대 나이를 보면, 아직 우리는 대학입시의 동점자 처리, 공직 선거의 동일 득표자 처리,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장 선임시 동일한 선수자 처리 등에서 한 살, 아니 단 하루라도 먼저 태어난 사람이 우대받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런 원칙에 대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지 않는가.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지금도 사회질서의 한 축인 것이다.

유교 정치는 한 마디로 모럴폴리틱(moralpolitik)이라는 개념으로 집약된다(김상준, 2011). 유자(者)들의 자아실현은, 자아 수양에서 시작되며 국가 경영에의 참여를 통해서 완성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下)가 바로 자아실현의 요체이다. 김 교수에 의하면, 유자들은 성왕(王)의 이념을 가지고 때로는 왕권을 강화, 수호하고 때로는 반대로 왕권을 견제, 견인한다. 물론 유자들은 신민들에 대해서도 유교적 질서의 지킴이 역할을 수행했다. 정치 투쟁에서 유자들은 칼과 화살이 아니라 “도덕적 가치와 논리”를 핵심 무기로 사용했다(김상준, 2011: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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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으로 표현하면, 학문을 하는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정치에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학문의 목표는 지상에 ‘바른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고 지식인이라면 필히 ‘바른 세상’을 세우고 유지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지식과 실천은 분리될 수 없다. 특히 정치적 실천이 으뜸으로 강조된다.

물론 정치를 하기 전에 먼저 수신(身)과 제가(家)를 해야 한다. 왕에게 성인(人)이 되길 요구하듯이 유자들도 서로에게 도덕가(道德家)가 되기를 요구했다. 업무 수행의 유능함은 그 다음 문제였다. 아무리 뛰어난 업무 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도덕적 흠결을 가지고 있으면 중요한 직책을 맡을 수 없었다. 

우리의 정치가 유교적 모럴폴리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다음 몇 가지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입증된다. 첫째,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들은 대부분 임기 후반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도덕적 비판에 직면했고 그중 몇 사람은 그로 인해 고통스런 말년을 보내거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그들이 어떻게 한결같이 유사한 운명에 처했는지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둘째, 2000년 도입된 고위공직자의 인사청문회는 후보자의 직무적합성이나 능력에 대한 검증은 뒷전이고 도덕적 검증에서 시작해서 도덕적 검증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덕적 검증에 집착했다. 후보자 자신도 기억할 수 없는 과거의 도덕적 흠결을 문제 삼아 결국 후보자를 낙마시키고 그를 임명한 대통령과 집권당에게 도덕적으로 흠집을 냈다. 한 마디로 인사청문회는 여야 그리고 언론이 참여하는 도덕정치, 도덕 투쟁이 장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대통령은 해당 직책에 가장 적합하고 유능한 인물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흠이 가장 작은 인물을 장관에 임명해야 할 정도였다.

셋째, 1990년 대까지도 학생 운동이 정치사회 운동의 근간이 되었다. 3.1 운동 때부터 계산해도 적어도 70여년 동안 우리 나라 정치의 한 축을 학생들이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1 운동, 광주학생운동, 일본 유학생의 독립운동, 해방 이후 좌우대립, 한국전쟁 때의 학도군, 4.19, 한일회담 반대 데모, 3선 개헌 반대 데모, 유신체제 반대운동, 광주민주학쟁, 6월 민주화운동 등 굵직한 역사적 순간에는 항상 학생 세력이 있었다.  이는 우리 나라의 지식인이 지닌 실천적 특성을 무엇보다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넷째, 지식인들의 정치 참여가 무척 활발하다. 특히 권위주의 시대에 지식인들은 사회적 불이익은 물론이고 심지어 생물학적 생명까지 바치면서 정권 비판에 앞장 섰다. 대학교수들의 정치 참여–그것이 집권 세력을 위해서든 비판 세력을 위해서든–는 ‘폴리페서’라는 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활발하다.

조선 시대 이래 모럴폴리틱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전통(혹은 구조)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역사적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국가의 안위가 위태로울 때, 통치자가 사리사욕과 부정부패에 빠졌을 때 지식인들은 어김없이 하나의 세력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아마도 그 덕분에 오랜 세월 하나의 민족으로서 살아남았고 정치적 독립을 유지했으며 민주화와 산업화를 성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자들, 그리고 그들의 역할을 이어가는 지식인들의 지나친 관념적, 도덕적 집착은 조선을 위기에 몰아넣었고, 지금 다시 우리 정치의 발전을 가로 막고 있다. 우리 정치는 지금, 민주화와 개혁이 명분과 구호, 그리고 형식에 머무르고, 국가 부분이 지나치게 비대하고 자율적이 됨으로써 과잉국가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 국가를 책임있게 경영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정치 권력만 향유하는 사회적 잉여가 되고 있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정책의 성공적 집행과 정부의 효율적 운영을 감당하지 못한다. 우파 정권은 힘과 공포로 정부를 운영할 수 있다고 믿고, 좌파 정권은 대의(大義)와 국민의 지지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일찌기 마키아벨리가 지적했듯이 군주가 당위성, 사명감, 선의, 스타일 등으로 위업을 이룰 수는 없다. 특히 유교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엘리트 관료를 장악하고 그들을 국가 경영에 있어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능력이 필요하다. 집권하는 능력과 국가를 경영하는 능력이 다르다는 말이다.

관료를 장악하고 그들을 적극적인 동반자로 만들지 못하는 정권은 집권 초기를 지나면서 점차 관료의 포로로 전락한다. 이 법칙에는 거의 예외가 없다.

모럴폴리틱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우리 사회는 관료국가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관료 국가는 모험 회피적이고 잉여적이며, 통제적이다. 관료는 끝없이 조직을 확대재생산하고 규제를 양산하려는 강력한 동기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책임지려하지 않는다. 더구나 놀랍게도 그들은 정치적 대의나 의지를 삼킬 수 있는 엄청난 수단과 능력을 갖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다.

비도덕적 정치가 도덕이라는 명분과 위선의 늪에 빠져 있는 동안 무도덕적 관료는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서 나라를 끌고 간다. 개인적으로 그들은 ‘대과없이’ 임기를 마치면 되고 집단적으로 나라를 망하지 않게 하면 된다. 그리고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는 늘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돌린다. 그 뿐이다.

모럴폴리틱은 우리의 정치를 청와대 문 앞에서 멈추게 한다. 국가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정치적 영향이 대통령이 머무르는 청와대를 나오지 못한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그 어느 선임자들보다 착하기는 하지만 역시 실패한 대통령을 다시 한번 보게될 것 같다는 우려가 드는 것은 비단 나 뿐일까(2018-07-22).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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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은 중요하다. 스스로 어떤 잘못을 했는가를 살피는 일은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반성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우리의 뇌가 소극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가, 이상적인 기준을 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후회스런 기준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무엇을 잘못했는가에 못지않게 무엇을 잘 했는가를 발견하고 그 점을 최대한 키워나가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우리 자신이 점점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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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게 하니 문제가 생기는구나.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는 다짐도 필요하지만, “야, 이렇게 하니 잘 되는구나. 앞으로도 꼭 그렇게 해야지.”라는 의지를 불태우는 자세도 꼭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의 두뇌와 근육의 신경세포를 적극적, 긍정적 모드로 바꾸는 비결이리라. (윤영민, 2018-07-09)

대학에서 교육이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25년 동안 나는 교육이란 내가 아는 지식 혹은 기껏해야, 학생들이 알아두면 좋을 것이라고 믿어지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어떻게 해서 내게 그런 시대착오적인 교육 패러다임 자리잡게 되었는 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놀랍게도 나는 그 패러다임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패러다임의 유효성을 의심하거나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정말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접근이었다.

한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식이 모두 인터넷에 있는 시대에 지식 전달 패러다임은 대학 교육에 관한 시대착오적 프레임이다. 그런 시대에 있어 대학 교육은, 1) 학생의 고민에 공감하고, 2) 학생 스스로 자신의 미래 모습을 찾으며, 3) 학생 자신이 만들어 가고자 변화를 옆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어야 하리라. 근본적으로 대학교육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 지능 형성 지원 체계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지능이란 사람이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의사결정 능력을 말한다.

정년 때까지 남은 기간만이라도 이 사상을 충실히 지켜가자. (윤영민, 2018-07-09)

정치인이 위대한 국가 지도자가 되려면….

우리 나라에서는 좀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치와 행정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 정권은 국가 운영에 있어 군대식 지휘, 즉, 비민주적 권위주의가  통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반면에 진보 정권은 지도자가 올바른 목표와 의지만 지니면 관료를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런데, 관료란 집권자(당)이 공포와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따라 오지도 않고, 정의의 깃발을 나붓낀다고 따라오지도 않는다. 이 중요한 진실을 인식하지 못한 탓에 지난 20년 동안 대부분의 보수 정권도 진보 정권도 국가 운영에 성공하지 못했다.

관료는 정권의 압력을 피해갈 수 있는 100가지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정권은 짧고 관료는 길다고 믿는다. 불행하게도,  짧게는 1백년, 길게는 7백년 동안 그들의 믿음이 틀린 적이 없다.

정치가가 국가가 나아가야할 올바른 이념과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을 잘 설득할 수 있다고 위대한 국가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정권을 잡을 수는 있지만 정권을 성공시킬 수는 없다. 정치가가 뛰어난 행정 원칙과 능숙한 스킬로 관료를 장악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을 때 비로서 위대한 국가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고 정권을 성공시킬 수 있다.

이승만, 장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해방 이후 이들 대통령 중 과연 누가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겼고 위대한 국가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는가? 김대중일 것이다. 박정희는 산업화를 성공시켰지만 비명에 갔고, 김영삼은 문민화는 성공시켰지만 국가를 재정 위기에 처하게 했다. 노무현은 탈권위주의 정치를 시작했지만 기득권 세력을 넘어서지 못했다.

DJ는 탁월한 설득력을 지닌 대중적 정치인이면서 동시에 대단히 조심스럽고 용의주도한 지도자였다. 비록 김종필과의 연합을 통해서 겨우 정권을 잡았고 여소야대의 약한 정부였으며, 아들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어느 정부에 못지 않은 업적을 남겼다. 경제 위기의 극복, 부정부패의 해소, 정보화 추진, 전자정부의 구축, 남북대립의 완화 등을 상기해 보라.

DJ는 행정 관료를 잘 이해했다. 그는 이념이나 좋은 뜻, 혹은 힘만으로는 관료를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이해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장악하고 움직일 수 있는 지를 알았다.  아니면 적어도 행정 관료를 잘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을 적재 적소에 기용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참으로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과연 어떻게 될까? 문 대통령이 착한 인물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주장처럼 선한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대 국회, 대 야당 관계를 놓고 보면 정치적 리더십이 눈에 띄지 않는다. 행정 능력은 이제 겨우 허니문 기간이 끝났다. 지금부터 행정 관료들의 저항과 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과연 DJ만큼 해낼 수 있을까? 과거에 노무현을 보좌해서 통치한 경험이 있으니 잘 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부디 집권 후반기에 행정 관료의 포로가 되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윤영민, 2018-07-08)

대학 사회통계 입문,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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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중요한 점은 학생들에게 “나도 통계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다. 사회과학 전공자들 중 수포자가 많다. 그들도 통계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안다. 도전할 자신이 없을 뿐이다.

대학 수업이 그들에게 새로 출발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전제로 가르치기보다는 필요한 부분은 중고등학교 수준부터 더 쉽고 자상하게 가르치는 게 바람직하다. 단, 한 명이라도 더 통계에 흥미를 느끼게 해야 한다.

기초통계 정도는 4년제 대학 학생이면 누구나 충분히  잘 배울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다. 통계를 포기하면 학생들이 좋은 직장의 절반을 포기해야 함을 명심하자. 

2) 초급 통계에서 가설 검증이나 회귀분석까지 다루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학생들 다수를 수업에 따라오게 하면서 한 학기에 그것까지 하기는 무리이다. 그래야 진도에 여유가 있다. 그리고 사실 현업에서 가설 검증나 회귀분석까지 하지 않아도 기술통계만으로도 업무를 충분히 멋지게 처리할 수 있다. 빅데이터 시대에는 특히 그렇다.

3) 매주 퀴즈를 시행한다. 퀴즈는 학생들이 꾸준히 공부하게 하는 방법이며, 또한 교수자가 학생들이 지난 주 수업을 잘 이해했는 지를 파악하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만약 다수의 학생이 전주의 수업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판단되면 보충 수업을 해서 학생들의 이해를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수강생의 10%가 퀴즈에 실패하면 학생들 자신의 책임이 클 지 몰라도 수강생의 30% 이상이 퀴즈를 맞추지 못하면 교수자의 잘못이라고 판단하는 게 옳다. 철저히 준비해서 다시 가르쳐야 한다.

교수자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교육은 아니다. 교육은 학습자가 목표로 하는 지식과 능력을 습득했을 때 완성된다.  다수의 학생들이 교수자의 강의를 알아듣지 못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교수자의 실패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통계를 쉽게 가르치는 데 보탬이 되는 자료가 수두룩하다. 선진국의 학교들에서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알아듣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다양한 자료를 사용하는 지 모른다.

통계 교육에서는 특히 시뮬레이션 방법이 효과적이다. 웹사이트나 유튜브에서 시뮬레이션 자료를 찾든 지 아니면 스스로 개발해야 할 것이다.

4) 테크니컬한 부분의 설명에만 그쳐서는 안된다. 학생들이 현실의 맥락에서 그것의 쓰임새를 인식하면서 수업에 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학생들은 지식의 현실 적용가능성을 절실히 느낄수록 더 열심히 공부한다. 통계 수업에서 학생들의 학습 동기와 몰입은 크게 두 가지에 의해 좌우된다. 그것은 해당 지식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지식 습득에 대한 자신감이다.

5) 기술통계를 제대로 활용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간단한 통계라도 정확히,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상치(outlier)를 발견하는 박스플롯, 분포의 모양을 추정하는 히스토그램, 두 변수의 관계를 보여주는 산포도, 이동평균이나 기하평균, IQR, 사분위수, 백분위수, 확률변수, 확률분포, 조건부 확률, 베이즈 정리, 이산확률분포, 연속확률분포, 이항분포, 정규분포, 표준정규분포, z-값, 상관계수 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게 훈련시켜야 할 것이다.

6) SPSS나 SAS 같은 통계전용 프로그램 대신에 MS 엑셀을 사용하는 편이 다수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엑셀 사용에 흥미 있어 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교수에게 편한 도구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유익한 도구를 채택해야 한다.

엑셀은 편리하고 유용할 뿐 아니라 SPSS로 할 수 있는 어떤 통계 분석도 가능하다. 마치 SPSS를 써야 전문적인 통계 분석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자.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엑셀에 추가 프로그램을 덧붙이면 모든 기초 통계 기법을 구현할 수 있다.

7) 학생들이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는 방법에도 익숙하게 해주면 좋다. 엑셀, Probability Distributions 앱은 아주 유용하다. 학생들이 훗날 직장에서 바로 바로 통계 지식을 사용할 수 있으면 주위 동료나 상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와 스마트폰 앱만 잘 사용하면 즉시 업무에 관련된 공공 데이터를 불러와서 스마트폰으로 분석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 모니터나 빔프로젝터를 연결하면 금상첨화이다.

8)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초급 통계를 실제로 적용할 수 있게 훈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중급 과목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기초를 다져주어야 한다. 조건부 확률과 베이즈 정리는 중급 이상에서 예측분석(predictive analytics)을 하는 데 필수적인 기초이다. 베이즈 정리에 확률분포만 결합하면 훌륭한 예측분석이 가능하다. 학률변수와 확률분포는 학생들에게 다소 어려운 주제이지만 좋은 사례들과 시뮬레이션 기법을 적절히 사용하면 효과적인 교육이 될 수 있다.

9) 끝으로 현실에서 가져온 연습 문제를 최대한 많이 풀어야 한다. 교수자에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학생들을 위해서는 생생한 실제 사례를 하나라도 더 소개해야 한다.  (윤영민, 2018-06-28)

확률변수와 확률분포(3)

이제 연속확률분포를 살펴보자. 확률변수가 실수이기 때문에 연속확률분포는 유형도 많고 적용 범위도 다양하다. 자주 사용되는 연속확률분포로는 균일확률분포(uniform probability distribution), 정규확률분포(normal probability distribution), 지수확률분포(exponential probability distribution),  분포( distribution),  분포(chi-squared distribution),  분포( distribution), 베타 분포(Beta distribution), 감마 분포(Gamma distribution), 멱함수 분포(power law distribution, Pareto distribution) 등이 있다.

균일확률분포는 단위 구간당 발생확률이 동일한 경우이다. 얼핏 보기에 그런 확률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 아주 유용한 경우가 있다. 어떤 현상에 대한 정보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면 그 현상을 균일확률분포로 가정할 수 있다. 어떤 현상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확률적으로 표현하면, 확률변수의 단위 구간당 발생 확률이 동일하다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균일확률분포는 베이지안 통계에서 매력적인 사전 확률분포(prior probability distribution) 후보이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주로 가르쳤던 빈도주의 통계학(frequentist statistics)에서는 별로 대우받지 못했던 균일확률분포의 위상이 베이지안 통계의 부상과  함께 달라지게 된 것이다.

표본값에서 모수를 추정하는 추리 통계학(inferential statistics)에서 정규확률분포가 차지하는 중요성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표집분포(sampling distribution)가 정규분포를 이룬다는 점은 모수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이론적 근거 중 하나이다.

정규확률분포에서 확률변수를 표준화하면 표준정규확률분포가 된다. 아래는 정규확률밀도함수이다.

이 정규확률함수를  를 통해 를 로 정규화하면 평균이 0, 표준편차가 1인 표준정규확률밀도함수를 얻는다.

표준정규확률분포는 “bell curve”라고 불리며, 그것의 데이터 분포가 알려져 있다. 아래 그림에서처럼 어떤 현상이 표준정규확률분포를 이룰 경우 전체 데이터의 68.2%가 평균을 중심으로 1 표준편차 범위 내에 있으며, 전체 데이터의 95.4%는 2 표준편차의 범위 내에, 전체 데이터의 99.7%는 3 표준편차의 범위 내에 있다.

 

standard normal distributio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 밖에 통계적 추론에는 카이자승분포, t분포, F분포가 자주 사용되고, 베이즈 추론에는 베타와 감마 분포가 자주 사용된다. 그 분포들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예제를 하나 보자. 국내 대기업의 주식형 펀드에 대한 평균 수익률은 2009-2011년 3년간 14.4%였다. 3년간 수익률이 표준편차 4.4%로 정규확률분포를 따른다고 가정하자. 개별 대기업 주식형 펀드의 3년간 수익률이 적어도 20%일 확률은?

해제:   (Probability Distributions app. 이용)

(윤영민, 2018-06-19)

확률변수와 확률분포(2)

앞 포스팅에서 확률변수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았다. 이제 확률분포와 확률함수에 관해 살펴보자.

확률변수는 이산적 확률변수(discrete random variable)와 연속적 확률변수(continuous random variable)로 나눌 수 있다. 이산적 확률변수는 0, 1, 2, 3과 같은 정수의 값을 가지며, 연속적 확률변수는 소수점의 값을 포함하는 실수의 값을 가진다. 확률변수가 그 두 가지 중 어느 것에 속하는가에 따라 확률의 의미와 계산 방법이 크게 달라진다.

이산적 확률변수는 확률변수의 각 값이 발생 확률을 갖지만, 연속적 확률변수는 특정 값의 발생 확률은 0이다. 연속적 확률변수는 확률변수가 특정 구간에 속할 확률만을 계산할 수 있다.

예컨대 필자가 가르치는 사회통계 과목은 상대평가이다. 그 과목에서 어떤 학생이 A+를 받을 확률은 10%, A0를 받을 확률은 15%이다. 등급(letter grade)은 이산적 확률변수이다. 그러나 그 학생이 기말시험에서 90점을 받을 확률이나 80.5점을 받을 확률은 모두 0이다. 취득점수(score)는 연속적 확률변수이다. 만약 확률을 계산하고 싶으면,  90점 이상 받을 확률(), 80점 이상 90점 미만을 받을 확률() 처럼 확률변수의 구간을 정해주어야 한다.

이산확률변수은 확률변수의 확률과 확률분포를 생성하는 확률함수를 갖는다. 반면에 연속확률변수는 확률변수의 구간 확률과 확률분포를 생성하는 확률밀도함수(Probability Density Function, PDF)를 갖는다.

이산확률변수가 이루는 이산확률분포에는 이항확률분포(binomial probability distribution), 포아송 확률분포(Poission probability distribution), 초기하 확률분포(hypergeometric probability distribution), 기하확률분포(geometric probability distribution) 등이 있다. 

이항확률분포는 이항실험(binomial experiment)과 연관되어 있다. 이항실험은 네 가지의 특성을 갖고 있다. 

  1) 실험은 n개의 동일한 시행으로 구성된다.

  2) 각 실험은 두 가지 결과를 가진다. 그 결과를 성공, 실패라고 부른다.

  3) 성공 확률은 p이며 반복실험에서 변하지 않는다. 

  4) 각 실험은 독립적으로 행해진다.

위에서 1번을 제외한 세 가지 특성을 가진 실험을 베르누이 시행(Bernoulli Trial)이라고 한다. 베르누이 시행을 반복하면 이항실험이 된다. 이항확률함수는, 

    여기서  = n회 시행에서 성공의 횟수가 x일 확률; x = 성공횟수; n = 시행 횟수;  p = 각 시행에서 성공이 일어날 확률; 1-p = 각 시행에서 실패가 일어날 확률;

이항확률분포의 기대값과 분산

포아송분포는 이항분포와 성격이 비슷하나, 시행횟수 n이 크고, 사건의 발생(성공) 확률 p는 매우 작은 경우에 사용된다. 포아송 확률함수는,

여기서  = 구간에서 x회 발생할 확률; (람다) = 구간에서 발생횟수의 기대값 또는 평균(이다); 

포아송 분포의 기대값과 분산


초기하 확률분포도 이항분포와 관계가 있다. 성공할 확률이 매회 동일할 경우(상호 독립적인 사건)는 이항분포를 이용하고, 동일하지 않을 경우(상호 종속적인 사건)는 초기하분포를 이용한다. 즉, 같은 실험에서 복원추출을 하는 경우나, 표본추출을 하는 모집단의 크기가 무한한 경우는 이항분포를 사용하고, 비복원추출인 경우나 모집단의 크기가 작은 경우는 초기하분포를 사용하여 확률을 구한다.

기하확률분포는 단 한번의 성공을 위해 실패를 거듭해야 하는 경우에 사용한다. x-1번까지는 계속 실패를 하고, x번째에 비로소 성공할 확률은 다음과 같이 구할 수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이항확률분포) 한 개의 동전을 4번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오는 횟수가 2회일 확률은 얼마인가?

n = 4, x = 2, p = 0.5

실제 계산은 스마트폰 앱 Probability Distributions로 수행할 수 있다. 답은 0.37500 이다.

(포아송확률분포) 주중 아침 15분 동안 자동차를 탄 채로 은행 서비스를 받기 위해 창구에 도착하는 자동차 대수에 관심이 있다고 하자. 과거의 자료로 볼 때 15분 동안 도착하는 자동차는 평균 10대이라고 하자. 경영자가 15분 동안에 5대가 도착할 확률을 알고 싶어한다. 그 확률을 계산해 보자.

, x = 5.

(초기하 확률분포) 온타리오 전기는 전기 퓨즈를 생산한다. 한 박스에는 12개의 퓨즈를 넣는다. 검사자는 박스에 들어있는 12개의 퓨즈에서 무작위로 3개를 뽑는다. 박스에 5개의 불량품이 있을 경우 검사자가 3개의 퓨즈 중 불량품 1개를 뽑을 확률은 얼마인가?

N(모집단의 갯수) = 12, n(시행횟수) = 3, M(모집단에서 성공원소의 갯수) = 5, x(성공 횟수) = 1

(기하확률분포) 한 개의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확률은 1/2이다. 동전을 던질 때 다섯 번째 비로소 앞면이 나올 확률은 얼마인가?

(윤영민, 2018-06-18)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오해와 진실

에피소드 1) 오늘 아침 동아일보에 “트럼프, 무식이 화근이다”라는 컬럼이 실렸다. 그 글에서 그 신문의 논설위원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북핵 협상 열차에 덜렁 올라탄 트럼프“가 북미회담 이후 자신이 저지른 난감한 실수를 수습하느라 급급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에피소드 2) 오늘 아침 중앙일보에 실린 6.13 지방선거 결과에 관한 인터뷰에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런 언급을 했다.

“문 대통령이 용기 있게 새로운 대북 정책을 추구한 공이 있다. 문제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보수·진보 모두 전쟁 위협을 느낄 정도로 걱정을 하는 상황이었다가 극적으로 반전됐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풀어나갈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 점은 문재인 정부엔 행운이었다. 그러나 계획된 것이라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인 결정의 결과물이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로 북핵문제에 관해 무지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이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판단이 빚어낸 결과일까? 필자는, 이 두 개의 에피소드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우리 나라의 소위 오피니언 리더나 정치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 미국 대통령의 언행에서 보고싶은 것만을 보는 오류에 빠져있음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다.

한 마디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해 ‘무지’하지도 않고, ‘즉흥적’으로 북핵 문제를 다루지도 않고 있다. 트럼프가 천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과 한국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언론인, 정치인, 심지어 지식인보다 머리가 좋을 뿐 아니라,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북핵에 관해 정보와 지식을 많이 갖고 있다고 추정하는 것이 그렇지 않다고 단정하는 것보다 훨씬 타당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것은 사실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미국 국민과 미국 선거 제도에 대한 몰이해이고 모독이며,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미국 정보기관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트럼프를 옹호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적어도 민주국가에서 정당한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정상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느 나라이건,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트럼프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와 정황을 종합해 볼 때 그의 언행에는 세 가지 입장이 투영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전통적 고립주의, 사업가적 실용주의, 새로운 방식의 정치 커뮤니케이션이 그것이다.

그는 공화당의 고립주의적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미국(혹은 미국인)의 사활이 걸린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외 문제에 개입하지 말자는 입장이다. 그가 외치는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는 그러한 전통을 표현하는 구호이다. 미국 기업들의 이익과 미국민들의 일자리와 번영이 정책의 지상 목표라는 말이다.

isolationism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러한 관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어 미국 본토에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국가인 북한이 미국의 통제 밖에 있는 상황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정치적인 방법으로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면 남한에 대규모의 미군을 주둔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비용이 많이 드는 한미 군사 훈련도 계속할 이유도 없다.

그는 평생동안 부동산 개발업자로 살았다. 부동산 분야에서 비즈니스는 반드시 승패로 귀결되는 게임이 아니다. 피아가 분명하고 적을 죽여야 내가 사는 극단적인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내가 충분히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면 경쟁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 무방하다. 그것은, 얻는 게 있으면 주기도 해야하는 하나의 거래이다. 또한 거래에서 최대한의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면 위협, 허세, 속임수, 친근함, 칭찬이나 아부 같은 립서비스, 밀당, 정직 등 어떤 언행이나 태도도 구사할 수 있다. 이는 사업가적 실용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행동을 보면 다양한 전략적 언행이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대선 때 한반도 정책의 방향을 강력히 시사했다. 그는 김정은과 나란히 햄버거를 먹으면서라도 더 나은 비핵화정책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어제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미 1999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지도자와의 대화에 맹렬히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대통령 취임 후 북한과 대화에 나서기 전까지 그는 북한과 김정은을 향해 거친 언설을 쏟아부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과 되고 난 후 트럼프가 극적으로 변했던 것일까? 아마도 트럼프의 정책적 입장에 관해 그보다 더 잘못된 해석은 없을 것이다.

그가 내뱉는 말만 가지고 판단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때로는 무식하고 때로는 막무가내이거나 즉흥적이며 변덕이 죽끓은 듯한 인사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언행을 거래와 협상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의 언행에는 놀라운 일관성이 발견된다.

끝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의 어떤 미국 대통령도 하지 않았던 커뮤케이션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그는 선거 때부터 주류의 대중매체와는 척을 지고 트위터라는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대중과 소통한다. 미국 대통령의 공식적 발화가 도날드 트럼프라는 개인의 사적 대화의 틀 속에서 터져나온다.

trump and twitter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지적처럼, 21세기에는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등 정보기술 덕분에 연극의 시대가 되었다.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이 말하는 일상적 연극공연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21세기적 연극공연의 탁월한 기획자이며 연기자이다. 무대, 소구 관객(target audience), 배역(character), 출연진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이 주도하는 공연에 대한 팀웍, 공감 획득, 그리고 공연의 궁극적 성공을 위해 각종 연극 기법을 거침없이 구사한다. 기존의 정치 커뮤니케이션에 포획되어 있는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은 그러한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본질도, 또 그것을 구사하는 트럼프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그것이 결코 낯설지 않는 것임에도 말이다.

‘말에 품위가 없다’, ‘주류 언론과 싸우려고만 한다’, 이 말들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평가이다. 그런데 그 말들, 언젠가 들어본 익숙한 언급들이 아닌가? 맞다. 16, 17년 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귀에 따갑도록 듣던 표현이다. 그 때 우리는 노무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거의 동일한 이유로 지금 우리는 트럼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기반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선구자였다. 당시는 SNS가 아니라 블로그가 겨우 시작되던 시절이었고, 아직 웹사이트의 게시판이 지배적이었다. 노 대통령은 당시 그 어느 정치인보다 일찍 쌍방향적 소셜미디어를 이해하고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국가의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기존의 사고 프레임–냉전주의, 지역주의, 보수주의–과 기득권에 격렬하게 도전했다. 당시 노 대통령의 발화나 행동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치인이나 유권자가 부지기수였다. 주류언론인 조중동은 노 대통령의 모든 것을 공격했다. 당연히 그의 탈인습적인 언행은 집중적인 비판을 면치 못했다. 노 대통령을 상기하면서 트럼프를 봐보라. 놀랍도록 유사한 행보를 읽을 수 있다.

트럼프는 언행에 있어 일관성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의 행동이나 정책이 좌충우돌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일관성이 낳은 결과일 뿐이다. 그는 미국의 국익을 미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경제적 번영이라는 좁은 의미로 해석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추구하고 있다. 그에게 예외란 없다. 그래서 소위 전통적인 우방국들이 아우성이다. 피아의 구분이 불분명해졌다. 정확히는 지금까지의 피아 구분이 먹히지 않는다. 그리고 적과 싸우려 하지도 않는다. 적을 굳이 패배시키려하지도 않는다. 설령 ‘적’과 윈윈하더라도 미국의 이익을 얻어내면 그만이라는 입장이다.

필자의 눈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데자뷰를 넘어서 트럼프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빙의한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곤 한다. 진실은 우리 사회의 주류 언론인 조중동이 노무현을 공격하고 배격했듯이 지금 미국사회의 주류 언론인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가 트럼프를 공격하고 배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기자회견을 봐보라. 그것은 거의 전쟁터이다. 미국 주류 언론의 기자들이 질문을 통해서 트럼프 대통령을 거의 죽이겠다고 작정하고 덤벼드는 양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은 인정사정없다. 조중동 기자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필자가 볼 때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구사하는 말은 ‘직설적’이기는 하지만 ‘막말’은 결코 아니다. 막말이라는 표현은 주류 언론인들이나 정치인들이 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서 사용된 언어 폭탄이다. 고도로 계산된 발화가 어찌 부주의하게 내뱉는 막말일 수 있겠는가. 거칠게 보이는 표현은 상대의 위선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고 엄포를 놓는 방식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기득권 사회가 추구하는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도 미국 기득권의 일부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는, 적어도 개입주의 이념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인, 정부관리, 무기 제조업체와 무기상, 주류 언론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이익 카르텔을 해체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그렇게 해야만 미국 군인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나아가 미국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의 ‘줄타기’를 보면서 그의 안위가 걱정될 정도이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불태울 마녀이거나 최소한 사형을 언도받아야할 악당이어야 한다. 그것은 남한의 극우보수만이 아니라 미국의 개입주의 카르텔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네오콘’에는 이념이 없다. 공존과 평화 대신 대립과 전쟁을 통해서 추구되는 이익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북미회담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신뢰할만한 지도자로 인정했다. 김정은에게는 뿔이 있어야 하는데,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에게는 뿔이 없다고 폭로해 버렸다. 그러니 위태위태한 것이다.

지금 싯점에서는 어지간한 필부도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언행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시간이 흘렀건만 우리 나라의 정치인과 오피니언 리더들에게는 아직도 그의 정체가 분명히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아마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역할 기대에 눈이 멀어서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거나 그의 자유분방해 보이는 수사에 현혹되어 진실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는, 한반도 문제에 관해 최소한 트럼프 씨가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고,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머리 회전이 비상한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하고 그의 행보를 예측하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친 김에 트럼프 대통령이 흔쾌히 인정하는 파트너인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그리고 그의 카운터파트인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서도 일국의 지도자로서의 능력과 태도를 인정해야 비로소 현재의 한반도 문제가 투명하게 보이기 시작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윤영민, 2018-06-15)